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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반둥에서 빈둥거리기

일상이 그립다. 조용하고 여유있고 소소한 일상.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그 일상이.
오전에 보고르에서 반둥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필리핀 일로일로에서의 두 달이 가장 가까웠을까. 하지만, 일상이 되기엔 너무 짧았던 시간, 너무 열악한 공간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그런 일상을 그리워하며 여행을 계획해왔는데, 사실 여행은 일상이 아니다. 이동하고 잘 곳과 먹을 것을 찾고 매일 돈을 세고 남은 돈을 가늠해봐야 하는 것. 하긴, 이 정도 수고도 없이 나의 그 힘들었던 일상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나 있었을까. 어찌 보면, 보라카이에서, 필리핀 북부의 계단식 논을 내려다보며, 또는 말레이시아 랑카의위 해변놀이 중에 충분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밤엔 무척 추웠다. 덥지 않을 것 같아 선풍기는 끄고, 이불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안했는데, 자는 동안 추워서 긴 팔을 껴입고 그래도 추워서 겨우 가방 깊숙히 넣어둔 살롱을 꺼내 덮었다. 낮의 더위를 생각하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일어나서도 긴팔 차림으로 아침을. 인도네시아는 숙박비에 거의 아침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저렴한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랄까. 아침은 겨우 로띠 한 장. 먼저 밥을 다 먹은 서양 커플이 설탕 그릇을 살짝 밀어주었다. 항상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커피를 타서 커피콩들이 다 가라앉기를 기다려 함께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 주인은 인도계인 것 같다.

 

나름대로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에서 알려준 대로 앙콕을 타고 터미널에 가서 반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앙콩 안에서는 중국계로 보이는 커플이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신기한 듯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항상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는 혼자 여행을 하느냐, 왜 혼자냐 하는 것. 뭐... 그냥 웃을 뿐이다.
버스 터미널에 가니 사람들이 도시 이름을 외치며 달려든다. 나도 "반둥!"하고 외치니, 누군가 얼른 내 가방을 들고 막 떠나려는 버스에 실으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과 상인들과 짐으로 가득찬 그 이코노미 버스는 탈 엄두가 나지 않아, 얼른 가방을 찾아들고 익스프레스 버스는 없냐고 물어보니, 신나게 가방을 옮기던 소년은 실망하며 뒷 차를 가리킨다. 과연 익스프레스 버스는 에어컨과 TV(절대 취향에 맞지 않는 가라오케 비디오만을 틀어주긴 하지만), 그리고 넓은 좌석이 완비된 것이다. 여긴 한 술 더 떠 화장실과 흡연공간까지 있다. 승객들 보다 먼저 상인들이 올라타고 끊임 없이 물, 과자, 잡지 등을 권하는 가운데 꾿꾿이 버텨야 했다. 아니, 하지만 가는 도중 슬슬 배가 고파지는 관계로 이번엔 내가 상인이 올라타기를 바라는 형국이 되었는데, 아주 가끔 타는 사람들 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먹거리만 들고있으니, 참... 결국 배고픔도 거의 잊혀질 무렵 코코넛 떡으로 보이는 것을 사서 잘 먹었다. 인도네시아 버스는 다른 동남아와는 달리 휴게소 같은 곳에 들르지 않고 상인들이 올라타는 것만을 허용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긴, 화장실도 있으니, 사람들은 굳이 시원하고 안전한 버스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지.) 탈 것을 타기 전엔 꼭 군것질 거리를 준비하자는 팁을 마음속에 되새기는 계기였다. 그나저나, 에어컨 버스와 이코노미 버스의 가격 차이는 5배가 넘는다. 짧은 거리를 갈 때에는 이코노미를 이용해야지 하고 다짐해보지만, 앞으로 그럴 수 있을진 모르겠다.

 

반둥에 떨어진 건 1시쯤, 또 무더위 속이다. 다시 정신 없는 터미널에서 숙소에 가는 방법 찾기. 항상 문제는, 내가 내린 터미널이 과연 지도상에서 어디냐는 것이다. (전에 말레이시아 테란가누에서 이것 때문에 큰 코 다쳤었지...) 여하간에, 기차역에만 가면 찍어놓은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물어모니 앙콕을 타란다. 베낭을 거의 끌어안고, 더 이상 개미새끼 하나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채울 때 까지 출발하지 않는 앙콕 안에서 인내심이 바닥날 때 쯤, 드디어 출발. 하지만 내린 곳은 기차역은 커녕, 큰 구획으로도 3,4 블럭은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먼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내리는데다, 기차역이냐고 물어도 다들 맞다길래 내렸건만, 막상 내려 거리 이름을 확인해보니 정확힌 모르겠지만 가이드북 지도로만 봐도 1k가 넘는 듯. 게다가 무슨 앙콕 요금을 2,500이나 받는담. 그나저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또다시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지도를 연구하고 하여 일단 걷기 시작. 하지만, 덥다 덥다. 두 시가 넘었는데도... 게다가 나는 완전한 길치에 방향치 아닌가. 이러다 큰 코 다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결국 절반 쯤 왔나 생각 될 무렵 슬쩍 손을 들어보이는 베챠(자전거 인력거) 아저씨와 협상 시작. 내 생각엔 먼 길을 가는 앙콕도 2,000이니 50m 정도 베챠를 타고 가는 건 2,500이면 될 것 같은데, 아저씨는 10,000을 달라고 하신다. 이런이런... 한참 실갱이 끝에 아저씨의 액수가 3,000까지 내려갔고, 나는 2,500으로 버티면서 결국 낙찰! 하지만, 지도도 보여드리고 확실히 목적지를 말했건만, 아저씨는 길을 잘 못찾으신다. 여기저기 묻다 조금 돌아 도차간 호텔은 어쩐지 수상한 기운을 풍기는 게, 지나가던 동네 청년들 이야기로는 역시 문을 닫았단다. 하지만 더 협상하기도  귀찭고 여기서라면 지도에 있는 다른 수소를 걸어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내렸다. 2,500을 드리려는 데, 아저씨 갑자기 지갑에서 10,000짜리 지폐를 꺼내더니 이걸 달라신다. 이런... 돈 걸 생각하면 3,000은 드릴 수 있다고 생가했건만, 순간 성질이 뻗친 나는 영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 이럴 땐 기싸움이다. 무슨 소리냐, 다 이야기 되고 온 게 아니냐 실컫 이야기하고, 2,500 드리고 가방을 들고 내려서 갈 길을 갔다. 사실 나중에 알고 보니 2,500은 좀 적은 액수이긴 했다. 하지만 분명 협상을 한 것인데... 일단 태우고 보자는 아저씨 심보가 괘씸할 뿐.
하긴, 나는 이런 작은 사건들에 대해 화를 참 잘 낸다. 어떻게 보면 불필요하게 오버한다 싶을 만큼. 작은 사기들 뿐이 아니라, 지나치게 다가오는 삐끼들이나 구걸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나와 같이 여행을 다닌 사람들은 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씩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로서는 무척 자연스런 반응이란 말이다. 무슨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뭐, 워낙 성질이 더러워서 일 수도 있고, 아님 나에게 뭔가 부당한 걸 요구하거나 해꼬지를 할 것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을 과장해서 해소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

 

결국 찾아간 숙소는 By Moritz라고, 가방을 끌고 걷는 도중 모든 사람이 거기 가는 길이냐고 하길래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었다. 이번인 화장실이 딸린 방으로... 배낭여행에 맞게 구성되어 있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좋구만, 론리 필자는 왜 별로인 것 처럼 써놓았는지, 참...
짐을 풀고 나니 허기가 져서 미치겠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부실한 로띠 한 장을 지난 숙소에서 얻어먹은 뒤로 코코넛 떡 몇 점 먹은 게 전부로구나. 더 찾을 것도 없이 숙소 맞은편 작은 나시 캄푸르 집으로 갔다. 삶은 계란 하나와 배추 삶은 요리를 얹어 멋진 칠리소스 (이 집은 젓갈로 만든 것이었다!)와 함께 먹이니 정말 꿀맛이다. 차까지 한잔 주시는데, 가격은 4,000밖에 안되니 얼마나 훌륭한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숙소 찾고 밥 먹고 나니 치져서 잠깐 쉴까 하고 방에 올라갔다. 선풍기를 켜놓고 자니 춥다. 잠깐은 커녕 일어나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음음...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나. 해 지고 나면 저녁도 못먹을 거 같아 저녁이나 먹으로 휘적휘적 다시 몸을 움직여본다. 아아... 내일은 뭘 좀 해야할텐데.

 

숙소 By Moritz의 공용공간.

아침 먹을 떄와 저녁엔 사람들로 가득 찬다.

여기서 일하는 아저씨들은 일한다기 보다 항상 기타를 튕기며 노는 모습. 그래도 연주 실력이 그럴듯 해 귀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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