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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바섬 여행 시작

인도네사이 자바 섬, 오래 된 역사도시 족자카르타와 솔로 주변의 힌두, 불교 사원들, 그리고 단일 건축물로는 최대 규모의 불교 탑인 보르두부루 사원이 있는 곳. 이제 까지 다닌 대만, 필리핀, 홍콩, 말레이시아 등과는 달리 풍성한 문화적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이제 부터 서쪽으로 서쪽으로, 새로운 체험을 찾아 떠난다.

 

자카르타를 떠나 첫 방문지로 선택한 곳은 기차를 타고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는 보고르라는 작은 도시. 별로 볼 거리는 많지 않은 것 같지만, 큰 식물원이 하나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페낭 식물원에 대한 기억이 워낙 좋은데다, 자카르타에서 바로 족자카르타 까지 기차를 타고 가긴 너무 멀고 지루할 것 같아, 중간중간 기착지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방문지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라운더리를 찾고 밍기적 거리고 가방을 다시 싸고  가계부를 좀 정리하니 이미 체크아웃 시간. 숙소에 가방을 맞기고 숙소 앞 길거리 식당에서  점심으로 소토를 하나 사먹었다. 소토는 일종의 국으로, 오늘 먹은 소토는 주로 고기로 국물 맛을 낸, 아주 매운 것. 안에는 다양한 야채, 고기, 토마토 등과 함께 비훈(흰 국수, 아마 쌀국수가 아닐까 추정됨...)도 들어있다. 마치 우리 설렁탕에 들어있는 당면과 같달까...  사실 국수가 많을 줄 알고 그냥 소토만 달라고 했는데, 너무 매운데다 양이 차지 않아 사양했던 밥을 다시 조금 달라고 했다. 요리를 잘 하는 젊은 청년이, 고맙게 작은 물 까지 사서 준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느낀 거지만, 매운 음식들이 참 많다. 베트남에도 훼 지역 쌀국수는 이 비슷한 매운 맛이었지 않나. 태국 똠양도 그렇고... 왜 한국 음식이 맵다고들 하는 지 알면서도 모를 일이다. 동나아 사람들 중에서 필리핀 사람들만 매운 걸 못먹는 거 같다.

 

맛있는 점심을 7,000 루피아 (약 700원)으로 해결하고, 가방을 들고 보고르로 가는 기차역을 찾아 나선다. 숙소에서 일하는 언니가 가는 길을 설명해주고, 맘이 놓이지 않는지 종이에 기차역 이름도 써주었다. 덕분에 가는 길에 사람들에게 종이만 보여주니 금방 손짓으로 가르쳐준다. 사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이다. 필리핀과 홍콩에서 영어가 통용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만과 말레이시아 역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것은 참 새로웠다. 덕분에 나는 항상 현지인보다 영어를 못하는 여행자라고 할 수 있었는데, 여행에서는 말이 통하는 것 처럼 쉬운 일도 없었다. 대충 물어봐도 상세히 대답해주니 말이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숙소 등 여행 업소를 제외하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고, 영어를 한다고 하더라도 발음이 엄청 좋지 않아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동남아 영어에 무척 익숙해져 오히려 네이티브들의 발음을 듣는 데에 무리를 느끼는 나 조차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여하간에, 새로운 도전! 바디랭귀지로 살아남는 법을 알아야 한다!!

 

점심 직후이니, 날씨는 무척 덥다. 다행히, 보고르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는 곤당비아 역은 별로 멀지 않았다. 가는 길에 ATM에 들려 인출도 하고 (수수료가 아까워 앞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쓸 돈을 한번에 뽑고 싶었지만, 한도액이 너무 적어서 실패했다.) 역으로 가는 길 길거리 식당들에서 밥먹는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역 건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으나, 상점들만 많고 도대체 어떻게 들어가는지... 지나가는 세련되어 보이는 언니에게 물어보니 완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어디나 역 풍경은 비슷한가, 화려하지 않은 상점들, 노숙인들, 다양한 사람들...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일러준대로 이코노미 말고 에어컨이 나오는 익스프레스 표를 산다. 플랫폼에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한 시간 반 정도 가는 시외 노선이 전철인 것 같다. 곧 익스프레스 열차가 들어오고, 익히 들어왔던 인도의 이코노미 열차 풍경이 연상되는, 짐과 사람이 뒤엉키고 사람들이 문 밖에 매달려 내리고 타는 복잡한 열차의 풍경이다. 전철인데도 말이다...

곤당비르 역에 도착한 이코노미 열차의 풍경


익스프레스 열차도 곧 도착했다. 옆에서 기다리던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친절하게 타라고 알려준다. 역시 상대적으로 비싸서인가, 사람이 별로 없다. 검표도 끝났겠다, 어느 새 꾸벅꾸벅 졸다 보니 보고르 역에 다 온 듯 하다.
역시 캐리어 형태로는 역에 오르내리는 것이 쉽지 않더니, 기찻길을 건너기도 마찬가지라 오랫만에 배낭 형태로 메고 건넌다. 다행이 말레이시아 여행을 끝내고 동생과 헤어지면서 짐을 한 차례 더 정리한 관계로 가방은 훨신 얄상해졌지만 아직도 무겁긴 하다. 역을 빠져나가는 순간 견딜 수 있을 만한 삐끼들의 접근. 고개를 설렁설렁 저으며 론리를 펼쳐들고 있는데, 마침 거기 써있는 숙소들 중 하나에 일하는 사람이 오길래 데려다달라고 했다. 두 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어찌나 더운지. 게다가 보고르는 그리 작은 도시가 아닌가보다. 교통량이 장난이 아니다. 매연을 뚫고 태양과 싸우며 다시 캐리어 형태로 바꾼 가방을 도로에서 질질 끌며 한참 걸었다. 아니 무슨 숙소 삐끼가 탈 것을 안가지고 온단 말인가. 지쳐서 화가 날 무렵이 되자 겨우 도착한 숙소는, 참으로 가족저인 분위기이지만 최소한의 시설만이 있는 곳이다. 싸긴 싸다. 공동욕실을 써야 하는 선풍기 방이 4,500 루피아. 우리 돈으로 4,500원이다. 아침 까지 포함된데다, 차와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니 감지덕지. 뭐 좀 지저분하고 불편하면 어떤가.

 

숙소 내 방 입구. 이렇게 찍어놓으니 좋아보이네. 쩝... 완전 최소사양의 방이었는데 말이다.

 

더위에 지쳐 전망이 괜찮은 2층 공용공간에서 차 한잔 마시며 다이어리를 끄적거렸다. 2층은 전망도 좋고 탁자와 의자도 많아서 분위기가 좋지만, 가장 싼 방들은 1층에 있으니, 놀 땐 올라오는 수 밖에. 조금 쉬고 나서, 그래도 여기 왔는데, 뭔가 해야 하지 싶어서 식물원을 찾아나섰다. 삐끼 아저씨가 식물원에서 가깝다고 자랑하고, 여기라고 가르쳐줬는데, 막상 입구를 찾을 수가 없다. 손짓발짓으로 정말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식물원 담을 끼고 한참을 걸었다. 덕분에, 매연을 마시며 이 동네 시내 중심가로 보이는 곳 까지 갔지만 아직인가... 겨우 입구로 보이는 곳에는 경비아저씨가 있고 5,000 루피아를 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도 정식 입구는 아니었다. 표를 안줄 때 부터 알아봤지만, 그 곳은 식물원 안에 있는 고급 아파트의 입구. 입장료는 그대로 아파트 경비아저씨 부가수입이 된 것이다. 조금 더 걸었어야 했는데, 참을성이 없었다.
어쨋든 들어가서 본 식물원은, 그저 그런, 식민지 지배자의 취미가 관리 허술한 채로 남아있는 거대한 정원이었다. 잘 정비된 동네 주민들의 휴식과 운동 공간이었던 페낭 식물원을 기대했건만, 역시 여긴 말레이시아가 아닌 인도네시아이다. 그래도, 도시의 공해와 소음이 금방 사라지고, 열대 식물들과 새 소리, 큰 도마뱀과 고양이들이 여유작작 어우러져 그럭저럭 맘이 편안하다. 멀리서 인도네시아 전역에 다섯 개 있다는 궁전도 보이고, 오래 전 궁전을 짓고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으며 그나마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유치한 생활이 보이는 듯도 하다.

 

이렇게 보면 마치 정글이라도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원이었던 것이다.

고양이가 연못을 건너고

 

도마뱀도 활보하는 정원


사실 내가 도대체 여기 왜 왔나 하는 생각을 조금 하고 있었는데, 느긋하게 조용한 숲속에서 론리를 더 연구하며, 역시 인도네시아는 사원 중심으로 보는 게 낫겠다고 다시 결론을 내렸다. 덕분에 여기서 가까운 산자락 휴양도시에 들러 차 플렌테이션을 보고 가겠다는 일정을 변경하고 바로 반둥이라는 큰 도시로 가기로 했다. 거기선 족자에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조금 살펴보니,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 것 같지만, 혹자는 그 도시를 "동양의 파리"라고 칭했다고 하고, 적어도 네덜란드 풍의 아르데코 건물이 많다고 하니 하루 쯤은 도시를 구경할까 하는 생각도...

 

타만네가라에서 정글도 봤겠다, 열대식물엔 별 관심이 없어 대충 돌아보다 식물원을 떠난 것은 해가 뉘역뉘역 져가는 시간. 상점 건물들과 쇼핑몰이 주류를 이루는 동네 중심가엔 여전히 앙콕(봉고차로 만든, 일종의 시내버스)과 오토바이, 자통차들로 인한 매연이 가득이지만 저녁 시간을 맞이해서 노점 음식점들이 차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엔 길도 알겠다, 구경을 하며 천천히 걸었다. 자카르타와는 달리 튀김집들이 많이 눈에 띄고, 로띠를 파는 집들도 간간히 있어, 여기 인도인들이 다소 정착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것은 두꺼운 팬케익 같은 것 사이에 검정 찹쌀밥 같은 것을 넣어 만든 일종의 케익. 혹시나 하고 손짓발짓 해서 맛을 본 검은 앙꼬가 찹쌀이 맛길래, 큰 맘을 먹고 하나 사보았다. 커다란 케익이 4,000 루피아. 혼자 먹기엔 너무 많다고 아무리 반만 달래도 막무가내. 인도네시아 싼 밥에 한참 버닝한 상태라 또 뭐 색다른 밥을 찾아먹어야지 하던 기대를 접고 식기 전에 커피를 한잔 타서 이 케익+떡을 먹었다. 달달한 찹쌀밥과 코코넛 가루가 두텁한 버터 빵 사이에서 괜찮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좀 먹으니 질리고 역시 양은 많다. 도저히 혼자 먹지 못해 숙소 일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내 저녁밥이 될 빵+떡이 포장되고 있다.

 

참, 자바 커피에 대해 한마디. 자바는 커피의 산지로 워낙 유명한 동네. 여기서 먹는 커피도  역시 맛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 사람들은 간 커피 콩을 마치 인스탄트 커피처럼 타먹는다. 다시 말하면 원두 커피를 몇 스푼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넣어 (그리고 대부분 커피 보다 설탕을 더 많이 넣어 타먹는다.) 휘휘 젓는다. 당연히, 원두는 물에 녹지 않으므로, 커피에는 원두 가루가 둥둥 떠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 지 모르지만, 나는 최대한 가라앉혀서 마실 수 밖에. 오늘 터득한 방법은, 어느 정도 원두 가루가 가라앉으면 윗 부분만 작은 컵에 따라서 마시면 커피가루를 씹어야 하는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큰 컵에 남은 원두로는 한번 더 커피를 타먹으면 된다. 담날 아침 먹을 때 보니, 웨스턴들은 개인적으로 커피 거르는 망을 마련해서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의 커피 관습은 귀차니즘의 발로일까, 커피 콩 씹는 맛을 좋아해서일까. 동남아 각국의 커피에 대한 관습을 비교하는 것도 참 재미있다. 하지만, 역시 진한 커피에 연유를 타서 얼음을 넣어 마시는 베트남 커피가 짱이다. 그래도, 커피 자체의 맛 만큼은 여기도 뒤지지 않는 듯 하다.

 

밥을 대충 때우고, 2층에 올라가 샤워도 하고 (1층 공용 화장실엔 샤워꼭지도 안달려있으므로, 2층을 이용했다.) 또 다이어리와 장부를 끄적거리기 시작. 오늘 하루는, 이동과 숙소, 입장료를 모두 포함해도 얼마 쓰지 않았다. 물론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선 그리 돈이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아서 안심이다. 한달 반 뒤 돌아가서 백수생활을 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요즘 통장 잔액이 눈에 밟히는 참인데 말이다.

 

공짜라고 커피를 넘 많이 마셨는지 잠이 안온다. 그렇게 덥더니 밤엔 조금 쌀쌀한 느낌. 선풍기도 끄고 잠을 청해본다.

내일은 또 다른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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