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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반둥 시내, 앙쿨릉 공연 보기

춥다. 밤엔 또 춥다. 밤에 추워서인지 매연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야간 감기기운이 있어 약을 아예 먹고 잤더니 몸은 가뿐하지만...
비교적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매일 먹는 토스트와 버터와 잼 그리고 커피에 벌써 질렸는지 별 맛이 없다. 그래도 숙소비에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건 일찍 일어나는 동기도 되고 좋은 것 같다. 어제 하루를 낭비한 탓에 오늘은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하고 방에 올라와 급한 빨래를 일단 한다. 한 일도 없었던 어제 빨아두었음 좋았겠지만, 컨디션이 완전 꽝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막상 빨아보니 오랫 동안 입고다니던 긴 바지가 너무 더러워서 충격적이었다. 정말 심플한 이번 숙소엔 빨래줄 널 공간도 별로 없구나... 대충 바지는 샤워커튼 있는 곳에, 양말 등은 침대 사이에 널고 방을 나섰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 정도면 성공이다!

 

일단 역 근처에 있는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기차 시간도 그렇고, 오후에 있다는 전통음악 시간표도 알아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족자로 가는 기차는 8시간. 시간표는 비교적 다양했는데, 이 동네에선 크게 할 일도 없을 것 같고 숙박비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밤 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족자에 떨어지는 시간이 새벽 네시. 조금 주저하고 있으려니 인포센터 아저씨가 수소를 예약하면 픽업을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료로! 브로셔를 보여주는데, 사진도 좋고 가격도 50,000밖에 안하길래 얼씨구나 예약을 부탁했다. 예약의 댓가로 5,000을 요구하는데, 좀 꺼림직했지만 줄 수 밖에. 시내 가는 길과 공연 시간표와 공연장 가는 길도 상세히 알아두고 나와서 생각해보니 호텔 이름과 연락처라도 적어둘 걸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공공인포메이션센터에서 사기를 칠까 하는 안심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착각. 나는 5000루피아를 버리고 새벽에 족자카르타 기차역에서 해가 뜰 때 까지 혼자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오늘 밤 기차를 탄다는 건 오늘 12시 까지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는 것. 시내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재빨리 둘러본 후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인포센터에서 볼 것도 있고 안전하다고 추천해준 길을 따라 서둘러 걸어가면서, 참 특색 없는 도시구나 싶었다. 한 20분 정도 걸어 도착한 중심가. 가이드북에서 이야기한 네덜란드 식 아르데코 건물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표적이라는 호텔 사진을 열심히 찍긴 했다만, 내가 알고있는 아르데코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 뿐.

 

아르데코 건물로 유명하다는 호텔. 더대체 어디가?

 

근처의 다른 건물. 이건 좀 유럽풍이긴 하다.


이번엔 이 거리에 있는 볼거리라고 추천되어있는 박물관에 들렀다.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기념 박물관. 1955년, 바로 이 자리에서 종전 이후 처음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이 모여 평화와 재건에 대한 회의를 했다고 하는데, 당연하게도 호치민, 네루 등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은 거의 모두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였고, 이 즈음 해방이 되고 국가를 수립해나가는 과정에서 한번쯤 모여볼 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방문한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모두 8월 15일 근처에 독립기념일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처럼 워낙 독립국이다 일본의 직접지배를 받던 나라는 일본 패전 이후 바로 독립이 되었지만,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처럼 원래 다른 국가의 식민지였다 일본으로 넘어간 나라들은 승전국들 끼리의 계산과 협상에 시간이 좀 필요했던 모양으로, 독립기념일이 며칠 늦는다.) 하지만, 아아... 나는 이 회의에 대해 이전에 알고있던 지식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때 까지 나름 교과서 열심히 보고, 대학땐 한 학기 동안 한국근현대사 세미나도 대충이나마 했었는데, 잘 모르는 걸 보니 별로 안중요한가보다 생각할 수 밖에. 그나저나, 행사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이런 작은 도시에서 그런 국제적인 행사가 열렸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지, 그 당시 회의장을 고대로 보전하는 한편, 그 회의와 관련된 사전 준비 모임들에 대한 기록, 당시의 사진들에서 부터 최근 회의 까지 모두 잘 전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이 회의엔 별 관심이 없었고, 사실 이 박물관에 오면 인도네시아 독립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나는 좀 시들했다. 하지만, 처음 박물관 문을 열자 마자 환하게 웃더니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지적이고 예쁜 가이드 언니 덕택에 끝까지 다 관람. 나중에 당시 참가국들의 명단을 보니 일본도 들어있어서, 아니 이 회의에 온 거의 모든 나라들을 지배했던 나라가 어찌 여기 껴있냐고 했더니, 글쎄... 아마도 이 때 쯤이면 반성하고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면서 함께 씁쓸한 미소. 그리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던가 하는 공통의 화제에 대해 조금 떠들었다. 아, 오랫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기쁨과 함께, 매연을 벗어나 시원하고 잘 정비된 작은 박물관에서 보낸 산뜻한 짧은 시간이었다.


자, 이제 숙소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시간. 조금 걷다 보니 동네 모스크 말고, 정부에서 지었을법 한, 종합운동장 느낌의 큰 모스크도 볼 수 있고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시간인지라 지리한 협상 끝에 베챠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얼른 샤워하고 짐 싸고 짐을 내다놓고는 숙소 거실에서 노닥거리는 아저씨들의 기타 소리를 들으며 한참 쉰다. 한숨 자면 딱 좋겠구만, 나는 이제 한동안 숙소 없는 신세. 아아... 별 거 아닌데 서글프다.

 

공연 시간을 여유있게 앞두고 공연장을 찾아 나섰다. 인포센터에서 배운 대로 큰 길에 니가서 지명을 대니 사람들이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태워준다. 시내버스지만 외곽까지 나가서인지 꽤 큰 차다. 했는데, 인포센터에서도 숙소에서도 하도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길래 긴장을 많이 했는데 당연히 별 일은 없구만. 차장아저씨가 내가 미리 말한 동네에서 내려주신다. 여기서부터는 오토바이로 조금 가야한다고 하는데, 모여서 쉬고 계시는 베챠 아저씨들하고 협상을 하니 첨엔 10,000을 부르던 가격이 7,000까지 내려간다. 인포센터에서도 5,000에서 10,000이라고 했으니 그냥 탄다. 얼마 안가 도착한 곳은 규모가 꽤 있는 마을 같은 곳이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입장료가 예상보다 비싸다(80,000). 하지만 애써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공연시간이 좀 남아 기다리는 동안 공짜로 주는 음료수를 마시며 이곳 공연과 관련된 각종 나무 기념품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공연에도 쓰인 각종 나무인형들

 

 

악기들

탈들

 

 

가장 탐이 났던 건 이 볼펜. 공연을 다 보고 공연이 좋으면 이 여왕님으로 하나 구입할까 했는데,

끝나고 가보니 이미 이 여왕님은 다 팔리고 없었다. 역시, 사람들 눈이 다 비슷하지...

 

 

이 곳은 앙쿨룽이라는 지역 전통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고 교육하는 공간인 듯 싶었다. 앙쿨룽은 대나무로 만들어 진 일종의 타악기인데, 악기 하나가 하나의 음을 낸다. 따라서, 7음계를 내기 위해선 7개의 악기가 필요하다. 원래는 5음계만 내는 악기였는데, 이 곳을 만든 부부의 스승이 7음계 짜리로 계량하면서 현대적인 대중성을 띄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이 악기를 계승하고 있는 셈일까. 제작하고 판매하고 교육하면서 공연을 통해 보여주는 일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공연장 뒤에 넓게 펼쳐진 마을에서 놀던 아이들도, 나중에 보니 모두 공연에 투입되고 있었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 낸 부부는 정부의 지원도 받아낸 듯 했는데, 지금은 판매와 공연 입장 수입으로만 유지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공연 전, 마을에서

 

공연 시간이 다되어 가자, 여기저기서 단체관광객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온 중장년층 부부들과 현지 관광객들인 듯 싶었다. 공연 자체는 꽤나 볼거리였는데, 사회자들이 사전에 이야기했 듯, 자바 지역의 전통 특히 앙쿨룽이 포함된 목관 연주를 곁들인 무대들을 시연삼아 보여주었다.
첫 무대는 힌두교의 전통적인 서사시인 라마다야단을 기초로 한 나무 인형극. 말레이시아에서 본 그림자 공연 처럼 한 분이 인형을 조정하고 목소리 연기도 직접 하셨다. 마지막에는 장막을 걷어 공연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인형극 공연의 셋팅. 무대 오른 쪽이 선한 편, 왼쪽이 악한 편을 상징하는 인형들이란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다수 출연했는데, 예전 부터 내려오던 할례 의식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연주를 하는 둥 마는 둥, 의상을 입고 무대에 나온 것 자체가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무용 공연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꽤나 기교를 가지고 전통 무용을 재현해주었다.

 

 

음악 자체만 즐기는 공연들도 있었는데, 동네 청소년들이 총출동하여 자바 각 지역의 전통 민요들을 연주하고, 모두에게 친숙한 동요를 연주하여 같이 부르는 시간도 있었고,

청소년들로 구성된 소규모 오케스트라의 힘있는 연주도 있었다. 그들은 푸가를 편곡해서 연주했는데, 열정과 힘이 느껴지는 무대여서, 관객들 모두 완전히 몰입되었다.

이렇게 앙쿨룽을 연습하고 연주하며 지내는 청소년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전체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은, 직접 앙쿨룽을 연주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모든 관객에게 앙쿨룽이 하나씩 돌아갔다. 개인이 낼 수 있는 음은 하나 밖에 안되지만, 이 마을의 계승자의 지휘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니 꽤 긴 노래도 함께 연주할 수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쉬운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를 가지고 하나의 음악을 표현해보는 즐거움. 죽은 표현이긴 하지만,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앙쿨룽 연주 사범님. 이 업계(?)의 후계자이신 듯.

저 보드에 있는 각 숫자가 하나의 음계를 나타낸다. 내 숫자가 올 때 흔들기만 해도 멋진 음악 완성.

 

다들 열심히 연주에 참여하며 신났다.

 

역시 마지막은 화합의 한마당이랄까. 공연에 투입되었던 동네 사람들과 관객들이 어우러져 무대에서 노는 시간. 약 세 시간의 공연으로 이런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니, 꽤나 괜찮은 공연이 아닌가.

 


돌아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 버스를 타고 떠날 때 쯤, 나는 큰 길가에 서서 버스 정류장 까지 나를 태워줄 탈 것을 찾아야 했다. 마침 지나가던 오토바이가 서서, 3,000밖에 안하는 가격으로 태워주셨다. 역시, 거리를 보아하니, 올 때 지나친 가격을 지불한 듯. 문제는 버스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다. 불안해서 돌아가는 버스도 여기 서는지지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확실하지는 않다. 이미 어두워지는 시간, 배도 고픈데 꾸꾹 참았더니 오긴 했다. 숙소 근처의 거리에서 내려 한참 걸어 무사히 도착! 가방을 챙겨들고 서둘러 기차역으로.

 

시간이 간당간당하여 서둘러 걸었더니, 아직 조금은 시간이 남아 역 앞 가판에서 밥을 먹었다. 쌀밥에 야채 약간과 상추와 삼블 (매운 소스)를 얹어 맛있게 먹고 있으려니, 식당에 밥먹으러 온 분들이 아주 흡족해하며 바라보고 더러 칭찬도 곁들이신다. 가격도 4,000밖에 안하니 행복하여라!

 

이것이 우리 돈 400원 짜리 저녁식사. 왼편의 분홍 그릇은 손 씼는 물이다. 잘못 알고 마시면 바보된다.

 

긴 기차여행을 대비한 물과 군것질 거리를 사서 드디어 입장.

표가 비싼 것이긴 하지만 이 기차 기대보다 좋다. 의자도 넓고, 각각 베게와 담요가 지급되는데데가, 떠날 때 쯤 빵과 물이 든 작은 박스를 나누어 줄 때는 약간 감동하기도 했다. 비행기보다 낫지 않은가. 내가 이용하곤 하던 동남아 저가 항공들은 물 한모금 안주고 비싼 값에 팔기나 하는데...

 

반둥에서 족자로 가는 야간열차, 익스프레스

기차에서 나누어준 빵과 물. 챙겨두니 좋은 식량이 되었었다.

 

하지만, 깔끔한 걸 기대하면 큰 오산. 담요에선 적당히 냄새가 났지만 추운 관계로 다리라도 덮어주었다. 베게는 사양하고 내 목베게를 이용. 옆 자리에 앉은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아저씨가 적당히 챙겨주시고 적당히 귀찮게 하시며 8시간의 기차길을 함께 했다. 잘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야간 이동은 생각 보다는 힘들다. 그래도, 드디어 족자카르타에 가는구나. 이제부턴 사원들을 많이 볼 수 있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앙쿨릉을 들고 있는 내 모습. 셀카 실력의 부족으로 이정도 밖엔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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