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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하루를 그냥 보내기

족자카르타는 자바 섬의 중심지에 있는 오래된 도시이다. 덕분에 주변에는 보르두부르를 비롯, 오래된 불교, 힌두 사원 유적이 많이 있다고 한다. 족자 자체로도 볼 거리는 많지 않을까. 큰 기대를 하고 이곳 땅을 밟았다.

 

좋은 기차를 타고 왔건만 생각만큼 잘 자지는 못했다. 내릴 때 쯤엔 푹 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주변이 소란해진다 싶더니 옆에 앉은 아저씨가 내려야 한다고 깨워주신다. 어리둥절 한 채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가방을 들고 무사히 내렸다. 신기하게도 기차는 연착이 아니라 더 빨리 도착한 모양이다. 아직 새벽 네 시도 안된 시간, 어둡고 조금은 쌀쌀한 족자 역에 가방과 함께 덩그러니 남겨졌다. 야간열차가 많은지, 역에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별 기대는 안했지만 일단 개찰구를 지나 역 앞에 나가서 혹시나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마중을 올지 기다려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다리다 각자 마중온 사람들을 만나 반갑게 떠나건만, 나는 역시나 반둥의 인포센터에서 사기를 당한 게 확실해졌다. 해 뜰 녁에 한다는 새벽 기도소리가 들리고, 역 안에 모스크가 있는지 몇몇 남자들이 기도를 하러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네 시 반, 원래 열차 도착 시간이 지나고 조금 더 기다리다가 이윽고 포기하고 해 뜰 때 까지 기다리기 위해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갔다.
역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조금 편한 자리를 찾아 카페로 들어갔다. 몇몇 여행객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모습. 따뜻한 커피 한잔을 시켜 자리를 하나 차지했다. 커피에서는 어릴 적 나도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보채면 엄마가 타주곤 했던 프림 차 맛이 났다.

족자카르타 기차역에서 해가 뜨길 기다렸다.


해가 뜨고도 얼마 쯤, 사람들을 구경하고 다이어리를 끄적거리다 힘을 내서 가방을 끌고 다시 기차역을 나섰다. 택시를 외치는 삐끼들을 지나 큰 길 까지 나오긴 했는데, 여전히 방향치인 나는 순간 갈 길을 잃고 만다. 그 때, 가이드북에서 찍어놓은 숙소의 명함을 들고 한 사람이 접근하길래, 그 사람을 따라 방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 숙소는 생각보다 비싼 것 같아서 더 싼 숙소가 없냐고 했더니, 어딘지 음침한 느낌의 다른 숙소로 데려다준다. 어설프고 샤워기도 안달려있고 물도 안나오는 숙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니, 어느 정도는 가닥이 있어 보이는 또 다른 숙소로. 많이 낡았지만 개인 욕실에 60,000 정도의 가격에 묵을 수 있는 숙소로 낙찰을 봤다. 방금 체크아웃을 한 방이라 청소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동안, 이 청년은 이런저런 투어상품을 팔기 위해 열심히 정보들을 늘어놓는다. 나는 필요한 정보들을 찾아 열심히 받아적고... 하지만, 근교의 사원들을 가는 투어 상품들은 전반적으로 너무 비싸다. 원래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혼자 찾아다니기 좋아하는 나는, 거의 모든 제안을 거절할 수 밖에. 하지만 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식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은 너무 낡았다고, 가격을 믿지 말라는 말은 어느정도 수긍이 가지만, 도대체 어디에 소속되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 청년 역시 나는 믿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유명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한다고 했다가, 나중엔 어느 여행사 소속이라고 했다가... 정보는 대충 걸러 들었지만, 자기는 한국사람을 비롯한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 많으며, 지금 미술을 배우고 있고, 지금 학교에서 오일 페인팅과 바틱 페인팅을 전시 중이니 전시장에 꼭 들려달라는 말은 믿었다. 독립기념일 즈음해서 2주간 진행된 전시는 토요일은 오늘 오후 세 시면 끝난다고 했다. 어차피 오늘은 토요일이라, 왠만한 시내 박물관을 비롯한 볼 거리들이 일찍 문을 닫을테고, 나는 좀 쉬고 전시를 구경가겠다고 약속했다.

 

얼마나 오래 된 숙소일까. 넓은 방과 침대에선 먼지가 풀풀 날리고 화장실 역시 있을 건 다 있지만 하수구 냄새가 난다. 하지만 며칠은 여기 머물러야 한다. 어느 정도 정을 붙이기로 하고, 우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였다. 일어나 보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작은 박물관이라도 구경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 사원들에 방문하기 위해선 정보도 더 필요하고, 이 도시에 대한 감각도 어느 정도 익혀야 할텐데. 얼른 샤워하고 양산을 쓰고 거리로 나서보았다. 좀 큰 길에 나가 대충 야암 미고랭 (닭고기가 든 볶음국수)를 하나 사먹는데, 밥값이 조금 비싼 것도 같다. 여행자들이 밀집되어 있고 크라톤(술탄 팰리스)를 비롯한 유적들에 가는 길목인 이 거리에는 양옆으로 바틱과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있고, 인도엔 또 싸구려 기념품 노점상이, 차도 옆으로는 베챠, 마차, 오젝(오토바이) 드라이버들이 밀집되어 있다. 볼거리가 많은 만큼 삐끼들의 공세도 그치지 않는다. 한 발자국 옮길 때 마다 "곤니치와"를 들으며,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나섰다. 일단 한번 사기를 당했어도, 이 동네 삐끼들 보단 믿을만한 게 공공인포센터가 아니겠는가. 역시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꽤 잘 만들어진 지도를 토대로 가고싶은 사원들에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방법과 비용을 알려주었다. 이윤에 구애받지 않는 공공인프라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볼만한 공연의 정보까지 얻어들고, 가뿐한 마음으로 다시 거리로.

 

노점상에서 흥미로운 몇 가지 물건들을 놓고 흥정을 해보는데, 역시 가격은 1/3 까지 떨어지는 것이었다. 지갑 등을 넣어다닐 작은 손가방 한개를 사들고, 전시를 볼 시간에 맞추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아저씨가 따라붙더니, 관심있으면 바틱 전시를 보고가라고 꼬드긴다. 뭐, 아직 시간도 조금 있겠다, 어차피 숙소로 가는 길이겠다,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아침에 만난 청년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미술학교 학생들의 작품이고, 오늘 세 시면 전시가 끝나고, 가면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다고... 약간 꺼림지한 마음으로 따라가 본 곳은 숙소 근처의 작은 골목 안, 그야말로 작은 갤러리 같은 곳에 바틱에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장삿속이 분명한 공간. 전통이라면서 차를 한잔 내주는데, 덥다고 거절하고, 가격이 저렴하니 하나 기념으로 구입하라는 말을 뒤로 하고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왜, 관심 없냐는 질문에, 관심있으니 온 거 아니냐, 좋은 전시였다고 대답해주었다. 도대체 이런 식으로 관광객을 데리고 온 들 사는 사람이나 있을까.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 아저씨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을까, 별로 유쾌하지는 않은 기분.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 청년을 만나 같이 전시를 보러 갔다. 오는 길에 다른 갤러리에 갔는데, 이상하게 너와 같은 말을 하더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인포센터에서 들은 정보의 예를 들며, 왜 다르게 가르쳐주었냐, 이런 이야기는 왜 안해주었냐고도 했다. 여기선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단지 갤러리일 뿐이다. 그리고 가이드북이나 인포센터는 믿지 마라는 둥의 답변이 들려온다. 이런 거짓말쟁이, 반쯤은 농담이었는데, 야간이동으로 피곤한 내게 숙소를 찾아 준 고마움도 있고, 어느 정도의 친근감과 신뢰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땡볓 아래를 한참 걸어 도착한 그 전시장에서 나느 꽤나 배신감을 느꼈다. 방금 다녀온 곳 보다 크고 오일 페인팅 작품도 분명 있긴 했지만, 마치 확장된 재연극을 보는 듯 똑같은 상황. 도착한 곳에는 약간 예술가 필이 나는 남자가 있고,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가 차를 한잔 내오며 "우리의 전통이다."고 이야기하고, 그림을 보는 동안 따라다니며 조금 설명하는 듯 싶다가 가격이 괜찮으니 기념품으로 하나 사라고 하고, 나올 때 쯤 "왜, 관심 없나?"고 물어본다. 게다가, 걸려있는 그림들 중에는 아까 본 것과 똑같은 그림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예상 외로 빨리 나와버린 나를 따라 그 청년도 서둘러 나오길래, 이게 정말 너희 학교 학생들 전시냐, 학교도 구경해보자고 했더니, 잠시 당황한 그 청년은 학교는 도시 외곽에 있으며 여긴 교수의 집이라는 설명을 한다. 아아, 땡볓 아래서, 나는 작은 배신감에 끓어올랐다. 내가 바보로 보이냐, 너는 계속 나에게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는구나. 나는 여기 있는 것과 같은 작품을 방금 다른 갤러리에서 보고 왔고, 같은 말을 들었다. 이게 어떻게 학생들의 전시냐, 다시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라. 이런 때는 영어도 아주 잘 나온다. 혼자 화내고 나와 다시 숙소로 찾아가는 길은 아주 헷갈리고 더웠다.

 

그럭저럭 하루가 갔다. 저녁 시간은 싼 라운더리 서비스를 찾아 빨래를 맞기고 인터넷 카페를 찾아 블로깅을 하고 부모님과 채팅하는 데 보냈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맥주 한 캔. 뭔가 사이비 무슬림 국가인지, 내가 다니는 곳들이 여행자들이 있는 지역이라서인지, 말레이시아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에선 맥주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방에 와서 보니 아까 그 청년으로부터 온 메모가 방문에 끼워져있다. 나한테 화난줄 안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모두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어쩌구 저쩌구... 원한다면 사원들에 기름 값만 내면 오토바이로 데려다주겠다. 친구가 되고싶다. 연락해라... 또 다른 여행사 팜플렛 뒤에, 문법에 맞지 않는 영어로 적힌 그 메모를 보고, 내가 너무 심하긴 했다 싶었다. 조금 무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구절절 늘어놓은 그 이야기들 속에도 뻔한 거짓말들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더 이상 엮기고 싶지 않은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이걸로 끝. 맥주 한 캔을 마시니 잠이 스스르 든다.

내일은 이 도시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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