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혁명_창간준비 2호] <기고> - 노동조합투쟁과 ‘사회주의자’ 조직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고> - 노동조합투쟁과 ‘사회주의자’ 조직

 

 

- 김태훈

 

 

 

  이명박 정권의 무자비한 폭압과 거듭된 실정으로 인해 무수한 투쟁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아니 자본가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 사기 치며 거품을 무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하에서조차 진짜 많은 것을 빼앗겨 온 노동자들이 이제 우리도 살아야겠다 라고 몸부림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한 줌 자본가들만의 천국이고 지긋지긋한 착취와 억압의 체제이자 비정규직 ․ 정리해고 ․ 노예노동의 체제인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고자 사회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많은 조직들이 분투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지난 몇 년의 투쟁들을 돌아볼 때, 사회주의와 노동자혁명을 내걸고 분투했던 사회주의 조직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투쟁현장 가까이에서 노동조합원으로 사회주의자들의 투쟁결합을 바라보며 느꼈던 점을 밝히고 사회주의 조직과 사회주의자들이 그 이름에 걸맞는 실천을 모색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성했음을 밝혀둔다.

 


노혁(추), 사노위, 노건투, 사노련, 사노신, 노해투사, …


  그 정치나 규모, 현재 활동여부를 떠나 명시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노동자투쟁에 연대하고 결합해 투쟁하였거나 투쟁하고 있는 조직들이다.
이와 별개로 사회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등의 정당들과 사회진보연대, 다함께 등의 단체, 노동전선, 전국회의 등의 노동조합운동 내의 정파조직 등 무수한 단위들이 노동자투쟁(더 정확하게는 노동조합투쟁)에 결합해오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에 거론한 조직 가운데 일부 조직은 현재 노동자운동이 보수화 ․ 개량화 되면서 대다수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정치를 받아들일 준비는커녕 적대감을 표출하는 ‘현실’을 거론하며 지금은 내실을 다지고 준비를 해야 할 시기라며 노동자투쟁에 ‘기권’했다. 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터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그 투쟁들을 통해 정세반전을 꾀하거나 사회주의 정치를 전파하고 조직원을 충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한 조직들도 있다.
  여기서는 각 조직들의 정세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노동자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한 제 조직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그리고 지금도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몇 년 사이의 대표적인 노동자투쟁을 보면, 코스콤, 기륭전자, 이랜드-뉴코아, GM대우 비정규직지회,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희오토비정규직지회, 쌍용자동차, 학습지노조(대교, 한솔교육, 재능교육), KEC, 전북지역 버스노동자투쟁,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발레오공조코리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등의 투쟁을 들 수 있다. 지역과 업종,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망라한 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열거한 투쟁 대부분에 사회주의 조직은 물론이고 제 정당과 단체들이 개입했음은 물론이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이라면 적극적으로 결합해 함께 싸우면서 계급정치를 설파하고 단위사업장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투쟁을 조직해 정세반전을 꾀하고 그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전술을 구사할 것인지 치열하게 논의해야 하는 것은 상식일 것이다. 이는 비단 사회주의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제 사회주의 조직은 과연 그러했던가? 단연코 아니다.

 

 

무원칙, 전략의 부재, 전술적 혼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선 소규모 사회주의 조직들의 제한적인 역량배치의 문제부터 보자. 정말 어떤 때에는 이 곳 저 곳에서 투쟁이 벌어져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하기에 제한된 역량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자본가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티격하고 투쟁사업장들의 공동투쟁을 조직하여 힘을 집중 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조직들의 우선순위는 그것이 아니었다.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 사업장에 일단 결합하기, 자기 조직원들이 관계 맺고 있는 사업장에 대한 지나친 역량투여(따라서 동일한 시기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다른 투쟁에 대한 방기), 이 현장 저 현장 무턱대고 한 번쯤 가보기 등 과연 노동조합투쟁 개입과 관련한 원칙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둘째, 쉴 새 없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자본가언론의 왜곡선전과 참주선동에 맞서, 실상은 자본가계급에 투항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지만 노동자를 위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된 중간계급 이데올로기에 맞서, 노동자계급을 위해 분투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택한 잘못된 정치에 맞서, 당면 투쟁의 전진과 승리는 물론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일관되고 적실하게 공급했는가를 봐도 역시 “아니올시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라고 강변해 봐도 위에 열거한 무수한 투쟁이 이를 반증한다. 코스콤 투쟁을 거치며 등장한 ‘중규직’, ‘무기계약직’, 이제는 당연빵이 되어버린 선별복직과 순차복직, 반성문과 다름없는 각서, 투쟁의 결정적 국면마다 등장하는 양보안…….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가능하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없세, 희망버스 기획단에 의해 좀 더 현실적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현실은 또 어떤가?
  정리해고 분쇄!, 비정규직 철폐!가 단지 구호로만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니라 결코 후퇴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이 앞장서서 입증해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노동해방 세상, 사회주의체제에서는 정리해고도 비정규직도 없고 노동자가 생산을 통제하며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것이 단지 구호가 아님을 노동자계급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대로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노동자계급의 정치와 이를 현실화 시켜 내기 위한 실천의 결합이 너무나 미약하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주야농성, 선전전, 집회에 거의 매일 결합하며 갖은 고생을 다해도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한두 번 행차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쓸려가거나 개량주의 정당이라 비판하는 이른바 진보정당들과의 차별성도 모호해지면서 계급정치는 제대로 전파되지도 못 한 채 사라질 위기에 봉착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실적 영향력의 압도적 열세와 물량지원 역시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주관적 조건에서 사회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은 혁명적 정치에 어울리는 실천뿐이다. 투쟁의 매 순간마다 그리고 결정적인 국면이 닥칠 때 누가 진정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철저하게 끝까지 옹호하고 관철시키는가에 달려있다. 쓰라린 패배를 통해 얻은 교훈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가장 먼저 그 교훈을 일반화해 전파하고 조직하고 다시 투쟁하는 것에 달려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현실에서 수 없이 적용되고 검증된 사상이 있지 않은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 지난 몇 년 동안의 치열한 계급투쟁의 현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살펴보자. 노동자계급 해방 사상을 움켜쥐고 원칙과 강령, 전략과 전술을 제대로 벼려 너무나 끔찍한 자본주의 세상 이제는 갈아엎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