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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파업 - 평가와 과제

 

철도파업 - 평가와 과제

 

 

 

  철도노조 파업은 박근혜 정권에 타격을 가하고 싶어 하고 박근혜 퇴진투쟁이 전면화 되기를 열망하는 대중들에게 정권퇴진 투쟁의 구심점으로 다가왔다. 대중들은 무기력한 민주당 등 제도권 야당을 대신하여 박근혜 정부와 맞서는 전투적 야당의 모습을 철도파업 속에서 보았다. 그래서 철도파업에 환호했고 철도파업 주위로 결집했다. 철도노조 파업은 단순히 사회적 지지를 받는 단위노조의 투쟁을 넘어서 대중적인 반박근혜 투쟁전선의 기수로 떠올랐다.

 

 

철도파업과 정세

 

  철도파업에 이러한 지위를 부여한 대중들의 기대는 터무니없는, 과도한 기대였나?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런 바램이고 정당한 기대였다. 대선 이후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 특히 국정원 선거 개입사태에 대한 대응에서 무기력함을 넘어 야합으로 일관하는 모습에 대중들이 갖는 불신과 반감은 되돌릴 수 없는 수준까지 갔다. 그러나 제도권 야당에 대한 기대를 거둔 상태에서 반박근혜 투쟁전선을 전면에 나서 펼쳐줄 다른 어떤 정치세력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시국회의가 국정원 촛불집회를 이어갔지만, 대중들의 박근혜 퇴진투쟁 열망을 받아 안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누적적으로 확인되었다. 시국회의는 ‘대선불복 프레임’에 갇혀 있는 민주당을 의식해서 촛불 대중들의 자발적인 ‘박근혜 하야’ 구호조차도 받아 안기를 부담스러워 했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평화적 집회 기조를 고수하며 민주당 중심의 야권연대 강화 쪽으로 촛불투쟁을 몰고 갔다. 이에 대한 실망감으로 초기에 솟구쳤던 국정원 촛불투쟁의 기운은 시들어가고 투쟁 동력도 정체, 약화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파업은 대중들의 반박근혜 투쟁 열망에 다시 불을 붙였다. 곧바로 박근혜정부의 전방위적인 탄압에 직면하면서 철도파업은 단박에 정국의 핵이 되고 반박근혜 투쟁전선을 달구어내는 강렬한 불쏘시개가 되었다. 박근혜 퇴진투쟁을 재활성화 시키면서 대중적인 대정부 정치투쟁으로 솟구쳤다. 한편으론 ‘안녕들’ 대자보 운동이 확산되고, 2008년 촛불의 대중들이 가세하기 시작하는 등, 사회적 연대투쟁, 민중연대투쟁을 끌어내며 정치투쟁의 저변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었다. 대안 정치세력을 발견하지 못하는 가운데 대중들이 철도파업에서 제도권 야당을 대신할 대체 구심을 발견하는 것은 이 상황에서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파업을 철회하고 난 지금이 아닌, 당시 기준으로는 대중들이 철도파업에 전투적 반정부당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조금도 과도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는 지도부를 비롯한 철도 조합원들이 애초 이 투쟁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제한된 투쟁목표를 가지고 있었는지와 상관없이 객관적인 정세조건에 의해 형성된 기대였다. 물론 철도파업은 공식적으로 ‘박근혜 퇴진’을 투쟁요구로 내건 적이 없고, 처음부터 그럴 의지와 태세를 갖추어서 시작한 파업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와 상관없이 박근혜 퇴진 투쟁전선을 활짝 열어젖혀 주었다. 다름 아닌 정세의 효과이다. 다른 정세였다면, 즉 이번처럼 파업 이전에 박근혜 퇴진투쟁 흐름이 형성되어 있던 상황이 아니라면 그러한 기대와 바램은 ‘단위노조의 투쟁에 과도한 목표를 짐 지우는 터무니없는 요구’라고 일축되었을 것이다. 민영화 문제가 아무리 사회적 국민적 이슈일지라도 말이다

 

 

대체구심 역할에 대한 기대와 파업철회

 

  철도노조 지도부의 국회 철도소위 구성 합의와 그에 따른 파업철회는 오직 이와 같은 정세 배경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즉 반박근혜 투쟁전선에서 제도권 야당을 대체할 대안 구심 역할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 그리고 그러한 기대를 자연스런 것으로 만든 정세 조건에 비추어서 평가되어야만 하며, 단순히 단위노조의 투쟁 차원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철도노조 지도부는 철도파업 주위로 결집하여 투쟁하고자 한 대중들의 기대와 바람을 한 순간에 저버렸다. 의회에서의 입법적 해결에 의탁하여 파업을 철회함으로써 달아올랐던 전국전선은 일순 식어버렸다. 다른 부위가 투쟁의 바통을 이어받기도 전에 투쟁의 초점을 황망하게 잃어버렸다. 박근혜 퇴진투쟁을 민주당 등 제도권 야당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대중투쟁의 힘으로 밀어가고자 했던 대중들의 열망에 그렇게 찬물을 끼얹었다. ‘철도노동자 잘 싸웠지만, 무척 아쉽다’는 대중들의 소박한 평가들의 이면에는 이런 당혹감과 배신감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누구도 지도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며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려고 한다. 노동조합 조직보존을 위한 퇴각론을 들이밀면서, 또는 ‘파업대오의 임계치를 보려 하지 않는 강경노선’을 비판하는 논리로, 또는 ‘단위사업장 노조에 과도한 정치적 요구를 실으려 한다’는 비난을 앞세워, 또는 ‘책임 없는 외부세력의 급진 정치논리일 뿐’이라는 폄하까지 등등. 투쟁은 출발부터 단사의 범위를 넘어선 투쟁인데, 평가는 단사 차원으로 되돌려서 하겠다는 것이다. 투쟁이 솟구쳐 가던 파업철회 이전 상황이었다면 감히 이런 조합주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심지어 이들 대세 추종자들 중 일부는 파업 초기부터 철도파업을 두고 ‘계급대리전’, ‘전투적 야당의 역할’ 등을 자기 입으로 이야기했던 인사들이다.) 그리고 현재 이런 비판 봉쇄 논리들은 철도 조합원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노동조합 관료 지도부를 방어하고자 하는 세력들 -- 그 자신들도 ‘외부세력’인 --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철도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당장은 평가보다는 현장 복귀와 동시에 직면한 사측의 징계와 현장탄압에 맞서 싸우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22일간 지속한 파업투쟁에 대한 자긍심과 정당성을 훼손하는 그 어떤 패배주의적 논리와 정서도 용납할 수 없고 또 용납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결코 지도부의 오류에 대한 비판을 덮어버리자고 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발등에 떨어진 징계 탄압에 맞선 투쟁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미루고 있을 뿐이다.      

 

 

민영화 저지와 정권퇴진투쟁의 결합
 

 

  철도파업은 정부 정책인 민영화에 반대하는 ‘정치파업’이었다. 이 점은 파업 지도부를 비롯하여 파업에 나선 철도 조합원 모두가 의식한 바였다. 정부 정책을 넘어 정부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나아갈 의지와 태세를 가지고 시작한 파업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곧바로 정부의 총체적인 탄압에 맞딱뜨릴 것이라는 점은 조합원 모두가 의식하고 각오하면서 나선 파업이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철도파업은 단사 차원의 경제투쟁이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지도부의 파업철회를 옹호하고자 노동조합 조직보존을 앞세운 퇴각론이나 ‘단위사업장 노조에 과도한 정치적 요구를 실으려 한다’는 등의 비난은 정부 탄압을 각오하며 정치파업에 나선 조합원들을 대상화하는 관료주의적인 평가를 바탕에 깔고 있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비난이다.

 

  더군다나 조합원들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장기 파업을 밀어가면서 스스로의 집단적 힘을 자각하는 가운데 철도파업이 사회적 지지를 넘어 대중적인 대정부 정치투쟁의 구심점 역할까지 부여받고 있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은 부당하다고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조합원들은 ‘왜 우리 철도파업이 민영화 저지만이 아니라 박근혜 퇴진투쟁까지 담당해야 하느냐’고 반발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투쟁 과정에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접하면서 깨달았다. 민영화 저지가 전 사회적 문제라는 것, 그것과 정권퇴진 투쟁은 자연히 결합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게 결합을 이루면서 파업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늘어나고 투쟁 대열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외부’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이와 같이 파업대오 내부적으로도 지도부의 국회 소위 구성 합의와 그에 따른 파업철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외면하고 노조 조직보존론을 내세워, 또는 ‘단위사업장 노조에 과도한 정치적 요구’ 운운하며 파업철회를 옹호하는 것은 자신들의 관료주의를 스스로 폭로하는 것에 불과하다.

 

 

국회 소위 구성 합의의 반동적, 반계급적 본질

 

  문제는 파업철회 자체보다 ‘국회 소위 구성 합의에 따른’ 파업철회에 있다. 파업은 중단할 수 있다. 파업대오의 역량을 보존하며 조직적으로 퇴각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12월 30일 파업철회는 파업대오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달아오르던 투쟁전선에 찬물을 끼얹은 직권조인에 의한 파업철회이다. 그리고 그 직권조인은 지도부가 3자합의라는 형식으로 부르주아 정치권과 밀실합의를 한 것이었다. 지도부의 직권조인에 의한 파업철회가 아니라 파업대오의 조직적 토론을 거쳐서 결정되는 조직적 퇴각이라면 이런 방식의 합의는 원천적으로 차단될 것이다. 직권조인과 조직적 퇴각은 양립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 직권조인은 철도파업에 한정되지 않은, 전국전선에 대한 총체적 직권조인이다. 철도파업 주위로 결집한 대중들의 반박근혜 투쟁열망, 그리고 민영화 저지와 철도파업에 대한 사회적 연대 물결, 나아가 12월 22일 지도부 체포 경찰 침탈에 맞선 ‘정동대첩’, 28일 ‘민영화 저지․ 박근혜 퇴진 국민총파업’ 등 이 모든 것에 두루 걸친 ‘정치적’ 직권조인이다. 그 점에서 보더라도 파업철회를 단위사업장 노조 차원으로 한정하여 평가할 수 없다. 

 

  합의의 방식과 절차보다도 진짜 문제는 합의 자체의 반동적, 반계급적 본질이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노조 상층 지도부들이 이 합의를 두고 ‘철도투쟁의 승리’로 포장하려 한다. 우리는 파업 지도부가 국회 소위 구성 합의로 이번 투쟁에 어떤 짓을 했는지 똑똑히 봐야 한다. 부활하던 대중투쟁의 정치, 복원되던 거리의 정치를 다시 의회 정치에 종속시켰다는 것, 그렇게 해서 계급적 정치투쟁의 생성을 짓밟아버렸다는 것, 이것이 국회 소위 구성 합의의 본질이다.
 

 

 

철도파업의 ‘정치적’ 지도부는 민주당?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대중들이 그 실체를 거듭 확인하면서 이미 정치적 선을 그은 민주당이다. 그 민주당에게 어이없게도 철도노조 지도부는 정치적 지도를 의탁하고 파업을 철회했다. 이미 대중들은 더 이상 부르주아 의회 내에서의 입법적 해결에 대한 기대를 접고서 철도파업을 비롯한 대중투쟁의 힘으로 민영화를 저지하고자 철도파업의 주위로 결집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파업 지도부는 이러한 대중들의 기대를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민영화 저지를 다시 의회 내 입법적 해결에 의탁해버린 것이다. 파업대오를 해산시키고 달아오르던 투쟁전선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말이다.
  부르주아 의회주의에 투항하여 대중투쟁의 정치, 거리 정치의 복원을 이렇게 짓밟은 것을 두고 경향신문은 1면 머릿기사로 ‘이것이 정치다’라며 추켜세웠다. 소부르주아 언론의 찬사와는 반대로 우리는 투쟁의 성과를 부르주아 정치권에 헌납하는 정치, 죽쒀서 개주는 조합주의 정치가 노동자의 정치적 독립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나아가 움터 나오던 노동자계급 주도 반박근혜 투쟁의 싹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똑똑히 본다. 

 

  대중들이 반박근혜 투쟁에서 의회 부르주아 정당을 대체할 대안 구심 역할을 기대했던 철도파업이다. 그런데 그 파업투쟁의 ‘정치적’ 지도부가 다름 아닌 민주당이라는 사실, 대중들이 반박근혜 투쟁에서 이미 선을 그은 저 부르주아 야당이 바로 파업투쟁의 정치적 지도부라는 사실을 파업 지도부에 의해서 확인 받는 기막힌 순간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국회 소위 구성 3자합의 뒤인 1월 2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결과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차지했다.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의 투쟁으로 정치권을 견인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이번 합의를 이끌어내서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한’ 박기춘 민주당 사무총장은 합의 당일인 12월 30일 JTBC 9시 뉴스에 나와서 손석희 앵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쌍용차 문제도 국회에서 여야협의체로 국정조사 실시를 약속했지만 아무 것도 된 게 없다. 철도산업발전 소위를 구성한다는 데 그런 것으로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밖에서의 의문들이 있다. 쌍용차에서 바로 증명이 됐기 때문에...”

 

  ‘실효성’ 없는 잡담가게 의회에 의존하기 위해 정작 그 실효성을 우리 눈앞에서 위력적으로 입증시키고 있던 대중파업을 해산시키는 것에 손석희 앵커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쌍용차 문제를 비롯한 많은 사례들에서 이미 누적된 검증과 확인이 있었기 때문에 투쟁하는 대중들은 제도권 야당과 의회를 통한 입법적 해결에 대해 기대를 버린 지 오래고 이미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철도파업에서 대체 구심을 찾고 전투적 야당의 역할을 기대한 것 아닌가.) 경험으로 대중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관료 지도부들은 항상 대중을 핑계 대며 배신을 때린다.
 

  정치권에 의탁하기 위해 확대 강화되어 가던 투쟁대오를 해체시켜 놓고서 ‘우리의 투쟁으로 정치권을 견인할 것’이라는 말을 누가 진지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번 같은 대중파업이 지도부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칼 같은 것인가? 배신을 맞은 조합원들로서는 지도부의 ‘정치권을 견인할 것’이라는 말이 ‘이제 파업을 풀었으니 정치권을, 국회 소위를 지켜보자’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파업을 풀고 현장 복귀한 조합원들한테 조합의 각급 지도부들이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국회 소위 결론 날 때까지 몇 달만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6개월 뒤 선거에서 승리하면 민영화는 완전히 물 건너가게 될 거다’라고 환상을 유포하며 현장투쟁에 김을 빼고 있다. 
  

 

 

꺼지지 않은 박근혜 퇴진투쟁과 조합주의 정치

 

  철도파업으로 조성되었던 팽팽한 긴장 국면은 일단 해소되었지만, 박근혜 퇴진투쟁의 흐름, 그리고 철도파업이 동반한 사회적 연대의 물결은 다음 국면에서도 꺼지지 않고 지속할 것이다.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 개입, 법과 원칙을 앞세운 박근혜 강권통치, 사기와 기만으로 끝난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 철도에 뒤이은 의료, 교육, 가스 민영화, 공기업 구조조정, 전교조 공무원노조 탄압, 재벌 중심의 ‘경제활성화’ 등등 지난 국면에서 이월된 것들과 새 국면에서 시작되는 것들로 투쟁의 조건은 그대로 살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안이 박근혜 정권을 향해 있고, 철도파업처럼 사회적 연대 물결을 이끌어낼 사안들이다.
 

 

  그러나 이번 철도파업과 파업철회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내 준 계급운동의 현주소는 우리 앞에 엄혹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번 국회 소위 구성 합의는 조합주의가 경제투쟁, 생존권투쟁 차원에서의 계급협조를 넘어 이제 정치투쟁에서, 전국전선에서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하위 파트너로 안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민노당, 통진당 등 진보정당운동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민주대연합, 야권연대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면서 노동자의 정치적 독자성은 바닥까지 무너진 상태였다. 이번 합의는 갈 데까지 간 계급운동의 정치적 독자성의 현주소를 정당운동에서만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에서도 확인시켜 주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자유주의 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계급정치가 대중투쟁 속에서 배태되려 하던 바로 그 순간에 조합주의가 그 싹을 자른 것이 이번 합의의 본질이라고 할 때, 계급적 활동가들은 정치투쟁에서, 전국전선에서 조합주의와의 투쟁을 현 시기 정세적 과제로 부여잡아야 한다.    

 

 

대체구심 건설과 정권퇴진투쟁의 계급적 재편

 

   ‘그 주위로 반박근혜 대중을 결집시키고 역동적인 사회적 연대를 끌어낸 그 강렬한 정치파업이 어째서 그렇게 허망하게 부르주아 정치권과의 합의로 끝나버렸는가’,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들은 이렇게 자문했을 것이며, 이번 과정을 통해 투쟁의 정치적 전망 부재, 그리고 그것과 결부된 대담한 투쟁의지의 결여를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 우리는 노동조합 지도부들의 조합주의가 어떻게 제도권 야당에 기대서 이번 같은 솟구치던 대중파업조차도 부르주아 의회 정치에 종속시킬 수 있었는지, 그 조건과 구조를 정세적 구체성 속에 놓고 봐야 한다.

 

  철도파업은 민영화라는 정부 정책을 바꿔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정부와 직접 대면하는 정치파업이었지만, 정부 그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이라는 의미에서의 정치투쟁은 아니었다. 의회와 정부를 압박해서 민영화 문제의 입법적 행정적 해결을 목표로 하는, 즉 ‘경제투쟁에 최대한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을 기조로 하는 ‘경제적 정치투쟁’을 넘어서지 않았다.   철도파업이 박근혜 퇴진투쟁 흐름과 결합하여 전국전선의 기수로 떠올랐고 이러한 역할을 철도노동자들은 거부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받아 안았지만, 그러나 정권퇴진투쟁 기조 하에 투쟁방향을 재구성하는 목적의식적인 과정은 수반되지 않았다. 투쟁은 자생성의 한계 안에서 최고치까지 갔고, 그럼으로써 반박근혜 투쟁의 계급적 주체가 부각되고 형성되는 단계까지 도달했지만, 정권퇴진투쟁의 계급적 재편으로까지 끝내 나아가지 못한 채 3자합의 직권조인을 맞았다.

 

  만약 그 상황에 이르는 것을 막고 투쟁방향의 재구성을 이뤄냈다면, 재구성의 방향은 의회에서의 입법적 해결에 맞춰져 있는 경제적 정치투쟁 기조를 폐기하고, 민영화 저지와 박근혜 퇴진투쟁을 결합시켜서 정부 그 자체에 도전하는 정치투쟁 기조로 대체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민주당과 정치적 선을 명확히 긋고 반박근혜 투쟁에서 민주당에 대당하는 대체구심으로 나서는 것, 그리하여 박근혜 퇴진투쟁의 계급투쟁적 재편을 이뤄내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여기에는 민주당에 정치적 지도를 의탁하려 하고 부르주아 의회주의에 정치적으로 투항하려는 조합주의와의 투쟁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철도 파업대오 내에서, 그리고 전국전선에서 이 투쟁을 담지할 주체, 즉 전투적 계급적인 현장운동, 노동운동 세력은 어떠했는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정치투쟁이 요구되는 국면에서 기권한 채 고립분산적이고 수공업적인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철도파업과 그 주위에 결집한 반박근혜 대중들, 그리고 철도파업이 끌어낸 사회적 연대 물결 등, 총칭해서 2013년 12월 대중파업을 지도부의 배신적 합의와 직권조인에 내맡겨버렸다. 

 

  다음 국면에서도 이 같은 결말을 다시 맞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분명하다. 민영화 저지투쟁이든 구조조정 저지투쟁이든 정권퇴진투쟁 기조를 목적의식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반박근혜 투쟁에서 민주당 또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연대에 대당하는 대체구심 건설과 박근혜 퇴진투쟁의 계급적 재편(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조합주의와의 투쟁)을 정세의 중심 과제로 삼고, 이 과제 하에 여타 전술적 사안과 임무들을 배치해야 한다. 이 과제에 동의하는 세력들이 현장에서, 전국전선에서 공동활동 공동투쟁을 조직하고, 이 정세를 선두에서 돌파할 노동자 정치투쟁 대오 형성을 앞당기는 촉매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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