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의잡기

분류없음 2016/06/30 09:53

 

베드버그 

 

일터 한 곳에 베드버그 (Bedbugs, 빈대) 아웃브레이크가 일어나 하루에도 대여섯 번 관련 이메일을 받는다. 많아야 일주일에 두어 번 가는 곳이라 크게 신경쓰고 있진 않지만 어쩐지 이 정도로 회사에서 같은 주제로 이메일을 받으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처음에 이 나라에 와서, 아니 이 도시로 옮긴 뒤 베드버그베드버그 하는 뉴스를 듣고 막연히 나쁜 벌레 (Bad bug) 이야긴줄 알았다. 한국에서는 옛날옛적 한국전쟁 뒤의 시대면 모를까 아니면 70년대 이야기라면 모를까 "빈대" 가 사람사는 아파트나 호스텔 같은 데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금시초문. 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는 속담은 들어봤다. 이 나라에서 얻은 첫 직장 (그리고 여전히 일하고 있는 참 좋은 곳) 에서 베드버그 인스펙션을 한다고 하길래 그게 무슨 벌레야? 어떻게 생겼어? 했더니 한 번도 못봤냐면서 모두들 의아해했다. 응, 본 적이 없어. 나쁜 벌레지? 했더니만 다들 뜨악 --- 너네 나라엔 베드버그가 없어? 응, 한 번도 못 봤어. 했더니 못믿겠다는 눈치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오신 한 분의 이민자 동료께서는 너희처럼 못사는 나라에 베드버그가 없다니 믿을 수 없어, 라는 듯 피식 웃었다. 이 곳은 거의 정신병원 수준의 인스펙션을 강조하는 데라 한 번 베드버그 리포트가 나오면 당장 모든 것을 갖다버린다. 매니저의 지침이 그렇다. 그리고 베드버그 냄새를 맡아 디텍팅하는 래브라도강아지와 전문가가 나타난다. 케미컬 트리트먼트 등등 프로시져에 맞춰 일을 진행한다. 그래서인지 아웃브레이크 수준으로 일이 번진 적은 없다. 다른 한 곳의 일터는 약간 지침이 다르다. 그곳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일 년 이상 살고있는 "집" 인지라 모든 것을 갖다버릴 순 없다. 하지만 역시 래브라도강아지와 전문가 출동, 케미컬 트리트먼트 등 다음 절차는 비슷하다. 

 

언젠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누군가 베드버그를 리포트했다. 이웃들이 덜덜 떨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사랑스런 아파트매니저 왈, 북미대륙 베드버그는 동아시안은 안 물어. 너네 피가 맛이 없나봐. 으하하하하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베드버그도 인종차별하냐. 다행히 우리 둘은 아직까지 물린 적이 없다. 우리 유닛엔 없다는 말씀. (아니면 진짜 우리 피가 맛이 없나) 그런데 네이버에 찾아보면 물린 사람들 이야기가 아주 많다. 그러니 베드버그가 동아시안은 안 문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사람사는 곳이니 벌레도 당연히 있기 마련이고 지하철, 버스 같은 데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내일 일하러 갈 때 조심조심해야겠다. 

 

 

엄마 

 

이디오피아에서 이민오신 한 분의 동료. (이 분은 이디오피아에서 사실 적에 상류층이었는데 이민온 뒤 상황이 급전직하했다) 이 양반은 한국을 아주 잘 알고 계시다. 관심도 많다. 왜 그런가 했더니 친척 중에 한 분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이 자신들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일어나 부흥을 일궜다고 믿고 계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6월 25일 함께 일하게 됐다. 자연스레 한국 이야기가 나왔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그 분이 물으셨다. "너네 나라엔 김씨들이 참 많잖아. 듣기엔 백만 명도 넘는다는데 그럼 다 어떻게 구별해? Mr. Kim 혹은 Ms. Kim 이런 식으론 절대 구별하지 못할 것 같은데?" 생각해보지 않았던, 들어본 적조차 없는 질문이다. 생각해보니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진짜 많긴 많다.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씨가 얻어맞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어이 김씨, 이렇게 부르면 모든 김씨들이 다 대답하느라 헷갈릴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국에선-직장에선 다들 포지션으로 사람을 부르는 것 같다. 사장님, 부장님, 대리, 계장 등등 그리고 맥락이 있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처음엔 대부분 성을 따서 사람을 부르고 한두 번 교류가 생기면 이름을 부른다. 패밀리네임 (성) 이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민자들도 거의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렇게 소수의 (김, 이, 박 등) 성씨가 지배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는 아무래도 한국 (북한 포함) 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Singh, Gupta, Khan 등의 패밀리네임이 흔한 인도/ 파키스탄 출신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김씨 만큼은 아니다. ㅠㅠ 지못미 김씨. 

 

 

그런데, 이디오피안 그 동료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부족/씨족 문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기네 나라에서는 삼촌도 아버지, 동네 아저씨도 삼촌/ 아버지, 사돈의 팔촌 아저씨도 아버지/ 삼촌으로 부르고 이모든 고모든 크게 구별하지 않는다고. 다만 엄마는 확실히 한 명이고 엄마만큼 소중한 존재가 있으면 그 사람도 엄마로 부르기는 하나 원래 엄마를 지칭하는 말은 엄밀히 따로 있다고. 얼마나 그들과 가깝고 친한지 여부에 따라 가족 개념이 확장된다. 딱히 일촌/삼촌/사촌 관계의 혈연을 명확하게 따지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민절차를 밟을 때 이런 전통이 종종 문제로 된다고. 이민 어플리케이션에 써넣은 아버지 이름이 그 때 당시엔 아버지만큼이나 가까웠으므로 써넣었는데 나중에 이민국 심사에서 친부가 아닌 탓에 거짓정보를 써넣은 것으로 발각 (?) 되는 일이 왕왕 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나의 아버지요, 하고 우겨도 소용없다고. 서유럽의 전통을 계승한 캐나다 이민국 방침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거짓말을 했다" 고 기각/ 반려당하는 것 같다. 아마도 출생신고서 같은 행정절차가 서구사회와 다르고 딱히 또 그것을 분명히 할 이유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낳은 엄마 한 명은 엄밀히 존재하고 확실히 따로 구별하다는 데에서 깊은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왔다. 그렇지. 암만. 

 

아! 생각해보니 이 나라에서도 무언가 굉장히 은밀하고 당사자만 알 수 있는 확실한 것을 따질 때, 가령 사회보장번호를 발행할 때 반드시 엄마의 메이든네임 (maiden name),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 이름을 기록하는 게 있기는 있다. 사람의 혈연 (리니지) 을 부계로 구별하는 것의 한계를 초절정가부장체제도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암만. 

 

2016/06/30 09:53 2016/06/30 09:53
Trackback 0 : Comment 0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ys1917/trackback/1186

Write a comment

◀ PREV : [1] : ... [77] : [78] : [79] : [80] : [81] : [82] : [83] : [84] : [85] : ... [405]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