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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테제 내 맘대로 정리(?) 한거...

포테제는 각 번역 판본마다 다르게 적혀있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이해도 잘 안가게 써져있어서 문제다. 번역은 백의 출판사 것이 가장 나은 것 같기도 한데 장정 커리로 넣기에는 옛날 판이어서 문제가 되는 부분도 좀 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선집에 있는거나 아니면 독이데 뒤에 붙어있는 걸로 해야겠다. 여하간 새내기들이 이거 읽으면서 이해 안되요~ 이럴 때 나도 당황할까봐 대강 쉬운말로 풀어서 적어본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괴상한 축소/확대 해석도 있고 유치하게 바꾼 부분도 있겠지만 일단 15분만에 적은 것 치고는 괜찮은 것 같아서 일단 올려놓고 나중에 수정해야겠다.

 

1.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포함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의 한계는 대상, 현실, 감각이 단지 객체 내지는 직관의 형태로만 파악되었을 뿐, 그것을 인간의 감성적인 활동 즉 실천으로 파악하지 않았으며, 주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은 데 있다.

즉 대상, 현실, 감각 = 인간의 실천과 관련된 것이어서 주체적인 관점에서 봐야한다. but 지금까지의 유물론자들은 이걸 직관적으로 파악되는것으로 보았다. 직관은 고요히 앉아 세상의 실제적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머리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의) 활동적인 측면은 기존의 유물론자들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관념론자들이 요상하게 해왔다. (관념론자들이 말하는 '주체적인 활동'이 요상한 것인 이유는 순수한 '정신'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느끼고 한다는 것인데, 실제 사람은 정신으로 그런 짓을 하는게 아니라 먹고 자고 하는 '몸'을 가지고, 그리고 더 정확히는 사회 속의 몸 혹은 인생 속에서 이런 활동이나 실천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이어바흐는 나름대로 관념론에서 말하는 사유 객체가 아니라 감성적인 객체를 파악하려고 했지만 추상적인 감각이나 이론적으로 어떻다라고 하는게 아니라 인간의 활동 자체가 객체적 활동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실제 역사 속의 인간이 행동을 하는 것이 역사를 바꾸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인간의 사유가 진리를 포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이 세상 역사 속의 인간과 관련한 진리는 그 역사적 행위로 현실에 드러나는 것으로 진리임을 실증하는 것이지 않아서 펜대 돌린다고 진짜 진리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백날 펜대 굴려보라, 역사가 그렇게 돌아가나.

 

3.

인간은 환경과 교육의 산물이고 따라서 인간이 변화려면 다른 환경과 변화된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유물론에서 주장하는데, 여기에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인간이고 교육자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교육받은 존재라는 사실이 빠져있다. (즉 인간은 단지 수동적으로 사회에 맞추어지는 존재라기 보다는 그 자신의 활동과 역사적 삶 속에서 세상에도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또 그것에 의해 영향 받기도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걸 잊고 있으면 사회에 대해 엘리트 주의가 되며, 꼭 그런 엘리트주의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 그리고 자신이 엘리트라 한다. 결론적으로 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활동 변화의 문제는 실천으로, 역사 속에서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4.

포이어바흐는 종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종교가 실은 세속적 세계의 일부라는 걸 밝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보다 성스럽고 좋은 세상을 허공에 만든 건 세속의 세상 자체가 그렇게 양분(즉 더 좋고 우월한 사람들과 더 낮고 못 사는 사람들? - 이 부분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듯)되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종교건 예술이건 현실과 무관할 수는 없고 현실의 모순을 표현 - 직접적이건 그 존재로서 웅변하는 것이건 - 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로 나타나는 그런 모순은 현실 세계에서, 즉 역사적인 지금 여기에서의 실천으로 바꿔야하는 것이다.

 

5.

결론. 포이어바흐는 자기 머리로 상상한 '인간', 자기 기준에서 파악한 '감성적 인간'을 '인간'이라 부르면서 비판이건 주장이건 하고 있는 것이다.

 

6.

하지만 그런 '인간', 혹은 인간의 '본질' 같은 건 없다. 3번 테제에서 보았듯이 인간은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므로 고정된 본질 같은 건 없고 다만 사회적 관계, 역사적인 맥락과 행동들의 총체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맥락을 빼고서는 로빈슨크루소처럼, '객관적인 인간'을 이야기하는 넌센스 밖에는 안된다.

 

7.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이건 추상적 개인이건 다 일정한 사회 형태에 속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8.

결론. 사회적 삶, 역사 속의 인간, 진짜 인간은 행동하는 인간, 곧 실천이다. 추상적인 인간을 가정하고 궁시렁대는 것들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이 실천을 이해하는 것 밖에 없다.

 

9.

위에서 살펴본 포이어바흐와 같이 직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유물론이 도달하는 '인간'에 대한 결론은 '시민사회'에서의 개별적인, 원자화된 개인이다.

 

10.

즉 이전까지의 유물론의 근본은 시민사회(이전까지의 유물론의 주장 혹은 유물론자들의 바탕은 시민사회의 산물이라는 말)이고 새로운 유물론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적 사회이다.

 

11.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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