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011/03/04 23:25 분류없음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__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__이 결정하신 대로, __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__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__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__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__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__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__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__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__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__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__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__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__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__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__은 __의 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그 때 그일 이후로 나는 __께서 저를 끝까지 믿어주지 않았다고,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했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끝까지 믿지 않았고, 끝까지 신뢰하지 않았고, 관계에 어떤 자신감도 내보이지 않은 비겁한 사람은 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제가 여전히 __과 대화를 더 해보고 싶다고 하자,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되묻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친구가 하고 싶은 얘기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참 많이 망설여지고 그냥 눈물이 날 때가 더 많습니다. 사실 갖가지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준비해야하는 것은 저 자신입니다. 나는 처음에 __이 나와 다시 대화를 해줄까를 고민했지만, 지금은 사실 나는 __과 다시 대화할 자신이 있는 가를 물어야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관계를 이어갈 자신이 있는 가. 그것이 나에게 던져진 아주 현실적인 질문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S와의 일이 마음속에서 정리가 푹 될 때까지 1년이 좀 넘게 걸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1년정도가 지나면 그때의 S처럼 __도 나에게 뭔가 어렴풋하게 나마 손을 내밀어올지도 모릅니다. 내가 못참고 손을 내밀지도 모릅니다. 혹은냥 이렇게, 그때가 정말 끝이었음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될겁니다.  
스님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스님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결정하신 대로, 스님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스님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스님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스님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스님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스님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스님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스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스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스님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스님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스님은 스님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스님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스님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결정하신 대로, 스님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스님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스님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스님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스님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스님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스님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스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스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스님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스님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스님은 스님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스님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스님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결정하신 대로, 스님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스님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스님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스님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스님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스님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스님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스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스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스님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스님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스님은 스님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스님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스님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결정하신 대로, 스님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스님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스님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스님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스님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스님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스님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스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스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스님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스님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스님은 스님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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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23:25 2011/03/0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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