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 쉬고 싶음.

2010/06/28 02:38 잡기장

미술치료를 받는 내내 나는 쉬고 싶다는 강렬한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벌거벗은 채 등을 보이고 누워있거나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목이 꺾여 있는 그런 이미지들. 명상을 할 때에도 계속 피곤한 기분과 머리가 무거운 느낌 등등이 계속 되었었다. 그러다가 오늘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쉬고 싶다고 함은, 내가 좀 내려 놓고 싶다는 것은 열심히 분석하고 열심히 치료 받고 열심히 상담받는 일이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댄스학원을 통해서 알게 된 미술치료사 분이 원장님을 통해서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하셔서 만났었다. 솔직히 반갑고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당시 같이 치료를 받았었던 학원의 선생님들은 아무도 다시 만나지 않는 데 나를 만나고 싶다고 지목아닌 지목을 하셔서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학원에서 각종 무드의 롤러코스터를 본의 아니게 다 보여주었었고 선생님들이 내가 심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음을 대강이나마 눈치챈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할지라도, 이게 우스워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냥 좀 챙피했다. 멍청한 생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여전히 나는 뭔가 감정을 너무나 드러내거나 무슨일이 있다고 광고하게 되는 나의 얼굴이나 제스츄어에 창피함을 많이 느낀다. 막 미성숙한 것 같고.... 그런 감정을 내보이는 것이 엄청 인간적이라는 거, 어쩌면 엄청나게 건강한거 라는 거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문제 있어요 라고 광고하는 것 같아서 맘이 불편타.

 

 

그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얘기를 듣기 보다 들려주기를 더 많이 하신 다는 것, 특히나 열정적으로 가지고 오신 프린트물들을 거의 그대로 읽으신다는 것 등이 나를 좀 힘들게 했었었다. 솔직히 정말 감사한 일이고 너무나 수고하시는 거 알지만, 모르겠다. 나는 좀 힘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사실 또 그랬다. 나는 운동을 하고 난 다음인데다가 아침만 먹은 상태라서 3시가 넘어가자 너무나 지쳤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난 뒤 완전 엔돌핀 넘치는 나의 상태가, 그 분이 계속 부모 문제를 자극적으로 짚어내면서 완전히 바닥으로 굴러떨어져서 나는 막 울었다. 그 분은 나를 위해서 열심히 이 얘기 저 얘기를 하셨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힘들었다. 부모에 대한 분석이나 그로 인한 영향 같은 것은 건방진 소리일지 몰라도, 나 정말 질리도록 해왔다. 이제는 그걸 어떻게 벗어날까 혹은 어떻게 조금 더 나아질까를 고민하고 싶은 데, 계속 부모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상태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시니까 눈물이 너무 나면서도 막 그 선생님이 얄미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 분의 요지는 나에게 종교를 권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 그것에 대해서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몇달 전부터 계속 종교를 택해서 의지하는 것이 나에게 좋을까 아닐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기에 종교를 권하시는 것이 나쁠 거 없었다. 전같으면 기절하게 싫어했겠지만. 사실 어떤 면에서 동의도 되었다. 상담도 어쨌든 꽤 받았고, 혼자 책 읽고 분석도 지독하게 해댔고, 내 부모가 사과하거나 할 사람들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고... 결국 기댈 곳은 종교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얘기를 듣는 것이. 그게 내 깊숙이에 남아있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그 분과 나의 코드가 안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저번에는 그러지 못했는 데, 이번에는 너무나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욕구가 너무 커서 아프다고 말하면서 그 선생님의 말을 막고 말았다. 그 선생님은 온 몸으로 서운해하고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다. 본인이 나를 꼭 도와야하는 데 그걸 너무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너무 못된건지도 모르겠지만, 제발 그 곳을 나오고 싶었다. 그렇게 오래 내가 사랑하는 댄스학원에 사무실을 꿰차고 앉아서 다른 분들께 피해를 주는 듯한 느낌도.. 나 혼자만의 느낌인지도 모르지만 너무 슬프고 싫었다. 모르겠다. 그냥 너무 힘들었다. 그 선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끝내지는 않으셨다. 그리고 매주 만나자고 제안하셨다. 나는 시간을 좀 더 갖고 싶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뭔가 결심하신 것 같아서... 어쨌든 2주뒤에 만나자고, 다음엔 밥도 사주시겠다고 하시며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하심을 피력하셨다.

 

 

그 선생님이 내가 지금까지 했던 상담이나 치료가 "소용없었으니" 종교를 가지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시는 것만 같아서 화가 났던 것도 같다. 연애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내 연애상대를 남자로만 국한하는 게 답답했던 것도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데 이건 내치지 말아야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런 동시에 어떻게 거절의 이메일을 보낼까 문구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받았던 상담과 7주간의 미술치료. 내가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떠앉게 된 관계나 신뢰를 쌓는 문제를 해결해보기에는 너무 짧았던 기간들이었을까. 그러니까, 이 선생님과 좀 더 긴 신뢰관계를 쌓는 모험을 해봐야하는 것일까. 이 선생님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건,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 혐오 같은 것이 드러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린 안 맞는 사람들일까.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것이 너무나 토할 것 같이 몰려와서 나는 확 머리를 터뜨려 버리고만 싶다. 나는 어떤 상태일까, 얼마만큼 정상일까. 얼마만큼 비정상일까.

 

 

쉬고 싶다. 이 모든 것에서 쉬려면 여행을 가야한다.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을 하니 바로 돈 생각부터 났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목돈을 금방 버는 것은 영어캠프라는 생각이 들었고 막 찾아봤다. 그리고 혼자 영어면접때 할법한 말들을 웅얼거려 보다가 다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망칠 곳도, 내려놓을 곳도, 쉴 곳도 나에게는 없다.

 

 

답답한 마음. 터질것 같은 머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6/28 02:38 2010/06/28 02:38
─ tag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1. 비밀방문자  2010/07/05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빵꾸빵꾸  2010/07/05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게로 가~ ㅎ 그냥 한발짝 나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좀 아닌 사람이었던 것 같은 데, 눈 앞에서 너무나 "선한 의도"가 느껴져서 정신이 없었던 것도 같고.. 결론적으로는 너무 심하게 상처받고 절망해서 너무 힘들었어. 지금도 여전히 좀 남아있고.. 어떻게든 여행을 가야할 것 같애. 댓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