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3

2011/03/13 20:46 분류없음

아마도 나에게 일본은 그냥 덩어리였나보다. 내가 살았던 지역은 정말 멀쩡할 텐데도, 나는 무너질 것이 남아있지도 않을 것 같았던 나의 어린시절이 그렇게 땅이솟고 쓰나미가 들이치고 너덜너덜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좀 웃긴다. 그치만 아무리 웃겨도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근래에 있었던 여러가지 불행의 마무리같은 느낌도 든다. 마지막 한방 같은거. 내 마음은 말 그대로 너덜너덜 해졌다. 너무나 너덜너덜해서 누군가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말할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해졌다. 부분부분은 말해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모든 불행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말할 수는 없다. 

 

어디서 부터 시작된 불운의 기운이었을까. 그 태동은 어디였을까. 나의 인생 중에 시작된 것이기나 할까. 혹시 그냥 너무나 오랜 옛날부터 예견되고 시작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작년의 마무리가 너무 힘겨웠기에, 올해는 사실 많은 희망으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희망을 가지는 것과 현실이 희망적인 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라서, 올해도 참 힘들게 있다. 이것이 바닥이다, 인내심이 다 했다 라고 생각했던 순간마다 더 큰 인내심을 요구받는 일들이 벌써 여럿 있었다. 겨우, 혹은 벌써 3월 13일인데.

 

 

NHK, 후지테레비 등을 번갈아 보다가 뜬금없이 sex & the city를 봤다. 옛날에 영어 가르칠 때 sex in the city라고 해서 나중에 챙피했던 기억도 잠깐 스쳐갔다. 그 에피에서 케리는 38살이었다. 그리고 얼추 파산했다. 뭐 워낙 친구들이 돈이 많으니 미란다나 사만다는 꿔준다고 했는 데, 샬롯만 눈을 피했다. 샬롯은 미술관에서 자원봉사한다는 얘기만 했다. 그게 얄미워서 나중에 캐리가 따지러 갔다. 나는 돈 없어 죽겠는 데, 너는 얼마나 여유로우면 자원봉사씩이나 하면서 돈 꿔달라고 할까봐 눈을 피하냐고. 그랬더니 샬롯이 그런다. 여기저기 갤러리랑 박물관에 다 이력서를 넣었는 데 다들 샬롯의 이력이 너무 넘친다며 받아주지 않아서, 그냥 울며겨자먹기로 자원봉사라도 하기로 한거라고.

 

 

머ㅜ sex & the city에 대해서 어떤 이는 다 환상이고 가짜라며 열변을 토하지만, 사실 저런 장면은 정말로 찡하지 않나. 나도 그래서, 졸라 지금 상황에서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2개국어 문화잡지 (영어/한국어 둘다 쓰여있는)에 번역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시급 500원이라도 받고 일을 해야할판에, 알바몬을 뒤지고 뒤지고, 이력서를 보내고 보내고, 뭐 그러는 와중에 진짜 모두들 엿먹어라 라는 심정으로 그러고 말았다.  

 

 

밀려오는 쓰나미를 보면 마치 "불행"이라는 것의 실체는 저런 모양새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형상화된 불행의 모습. 너무나 적절한 모습이 아닌가. 나는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토록 혼자인데. 이토록 마음 둘 곳이 없는데. 

 

 

요즘 하는 웃기는 생각은, 정말 죽음도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기를 한번 놓쳐버리면 이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가 되어, 좀비처럼 살아남아 못볼 꼴들을 보면서 울기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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