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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2011/03/21 18:41 분류없음

여러가지 일을 겪었다. 그 모든 일들을 "여러 가지"라는 말 이외에 뭐라고 더 표현할 수 있겠는 가.

 

벌써 그 일은 저번주 목요일이되었다. 나흘전. 정말 얼마 안 되었다고 생각했는 데, 나흘이나 지났다.

 

나흘간의 시간동안의 나는 일상을 보냈고, 또 그 일 역시 그 일상에 여전히 함께 했다.

 

 

내 손에 지금 놓여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그 일은 참 좋은 일이었다. 굳이 긍정의 힘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냥 괜찮은 일이었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사람, 혹은 소중한 사람, 나를 정말로 사랑해주는 사랑해줄 사람들을 여실히 구분해준 일이었다. 결국 내가 원했던 사람들만 오롯이 남아준 셈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막연히 알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속으로 여러번 이 관계가 굉장히 슬프게 끝날것만같은 느낌을 느끼고는 했었다.  그래도 고마웠다. 그 애정이 너무 달콤해서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했었다.

 

 

나는 그 일을 동맥경화에 비유했고, 친구는 나더러 사우나에 다녀온 듯 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불행이 일단락 되었음을 느꼈다.

 

 

내가 잘 되기를 바란다.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길 바란다.

 

 

홍대 여기저기에 붙은 (사실 난 하나밖에 못봤지만 아직까지)

대학 동기의 전시포스터에 질투가 난다.

작업이 별로였음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기지개를 펴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내딛고 싶다.

 

 

너무나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었어서

이제 정말 날라갈 방법밖에 없는 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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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오스터의 공중곡예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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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우리는 이제 미주리에 있지 않아. 이 꼬마 녀석아. 우리는 캔자스에 있어. 네가 이제껏 보았던 어떤 곳보다도 더 따분하고 황량한 곳이지. 1540년에 코로나도와 그 부하들이 황금의 도시를 찾아서 여기로 진격해 왔었을 때 그 사람들은 너무 기가 막혀서 그 중 절반이 미쳐 버렸어. 어디가 어딘지 통 알 길이 없었거든. 산도, 나무도, 하다못해 길가에 튀어나온 바위도 하나 없었으니까. 여기는 온 주의가 끔찍학 단조롭고, 그래서 한동안 돌아다녀 본 다음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 외엔 아무데로도 갈 곳이 없다는 걸, 네 유일한 친구는 하늘뿐이라는 걸 알게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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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Toto, I've got a feeling we're not in Kansas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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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8:41 2011/03/2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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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2011/03/13 20:46 분류없음

아마도 나에게 일본은 그냥 덩어리였나보다. 내가 살았던 지역은 정말 멀쩡할 텐데도, 나는 무너질 것이 남아있지도 않을 것 같았던 나의 어린시절이 그렇게 땅이솟고 쓰나미가 들이치고 너덜너덜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좀 웃긴다. 그치만 아무리 웃겨도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근래에 있었던 여러가지 불행의 마무리같은 느낌도 든다. 마지막 한방 같은거. 내 마음은 말 그대로 너덜너덜 해졌다. 너무나 너덜너덜해서 누군가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말할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해졌다. 부분부분은 말해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 모든 불행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말할 수는 없다. 

 

어디서 부터 시작된 불운의 기운이었을까. 그 태동은 어디였을까. 나의 인생 중에 시작된 것이기나 할까. 혹시 그냥 너무나 오랜 옛날부터 예견되고 시작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작년의 마무리가 너무 힘겨웠기에, 올해는 사실 많은 희망으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희망을 가지는 것과 현실이 희망적인 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라서, 올해도 참 힘들게 있다. 이것이 바닥이다, 인내심이 다 했다 라고 생각했던 순간마다 더 큰 인내심을 요구받는 일들이 벌써 여럿 있었다. 겨우, 혹은 벌써 3월 13일인데.

 

 

NHK, 후지테레비 등을 번갈아 보다가 뜬금없이 sex & the city를 봤다. 옛날에 영어 가르칠 때 sex in the city라고 해서 나중에 챙피했던 기억도 잠깐 스쳐갔다. 그 에피에서 케리는 38살이었다. 그리고 얼추 파산했다. 뭐 워낙 친구들이 돈이 많으니 미란다나 사만다는 꿔준다고 했는 데, 샬롯만 눈을 피했다. 샬롯은 미술관에서 자원봉사한다는 얘기만 했다. 그게 얄미워서 나중에 캐리가 따지러 갔다. 나는 돈 없어 죽겠는 데, 너는 얼마나 여유로우면 자원봉사씩이나 하면서 돈 꿔달라고 할까봐 눈을 피하냐고. 그랬더니 샬롯이 그런다. 여기저기 갤러리랑 박물관에 다 이력서를 넣었는 데 다들 샬롯의 이력이 너무 넘친다며 받아주지 않아서, 그냥 울며겨자먹기로 자원봉사라도 하기로 한거라고.

 

 

머ㅜ sex & the city에 대해서 어떤 이는 다 환상이고 가짜라며 열변을 토하지만, 사실 저런 장면은 정말로 찡하지 않나. 나도 그래서, 졸라 지금 상황에서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2개국어 문화잡지 (영어/한국어 둘다 쓰여있는)에 번역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시급 500원이라도 받고 일을 해야할판에, 알바몬을 뒤지고 뒤지고, 이력서를 보내고 보내고, 뭐 그러는 와중에 진짜 모두들 엿먹어라 라는 심정으로 그러고 말았다.  

 

 

밀려오는 쓰나미를 보면 마치 "불행"이라는 것의 실체는 저런 모양새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형상화된 불행의 모습. 너무나 적절한 모습이 아닌가. 나는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토록 혼자인데. 이토록 마음 둘 곳이 없는데. 

 

 

요즘 하는 웃기는 생각은, 정말 죽음도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시기를 한번 놓쳐버리면 이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가 되어, 좀비처럼 살아남아 못볼 꼴들을 보면서 울기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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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20:46 2011/03/1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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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십시오

2011/03/10 23:20 분류없음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이든, 부디 용서하십시오. 

 

나의 부모가 지은 죄이든. 부모의 부모가 지은 죄이든

 

부디 용서하십시오.

 

 

제발 이 불행에서 나를 구해주십시오.

 

한번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나를 구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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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23:20 2011/03/1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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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011/03/04 23:25 분류없음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__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__이 결정하신 대로, __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__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__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__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__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__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__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__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__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__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__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__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__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__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__은 __의 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그 때 그일 이후로 나는 __께서 저를 끝까지 믿어주지 않았다고,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했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끝까지 믿지 않았고, 끝까지 신뢰하지 않았고, 관계에 어떤 자신감도 내보이지 않은 비겁한 사람은 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는 제가 여전히 __과 대화를 더 해보고 싶다고 하자,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되묻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친구가 하고 싶은 얘기를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참 많이 망설여지고 그냥 눈물이 날 때가 더 많습니다. 사실 갖가지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준비해야하는 것은 저 자신입니다. 나는 처음에 __이 나와 다시 대화를 해줄까를 고민했지만, 지금은 사실 나는 __과 다시 대화할 자신이 있는 가를 물어야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관계를 이어갈 자신이 있는 가. 그것이 나에게 던져진 아주 현실적인 질문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S와의 일이 마음속에서 정리가 푹 될 때까지 1년이 좀 넘게 걸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1년정도가 지나면 그때의 S처럼 __도 나에게 뭔가 어렴풋하게 나마 손을 내밀어올지도 모릅니다. 내가 못참고 손을 내밀지도 모릅니다. 혹은냥 이렇게, 그때가 정말 끝이었음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될겁니다.  
스님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스님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결정하신 대로, 스님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스님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스님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스님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스님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스님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스님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스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스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스님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스님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스님은 스님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스님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스님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결정하신 대로, 스님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스님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스님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스님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스님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스님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스님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스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스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스님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스님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스님은 스님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스님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스님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결정하신 대로, 스님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스님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스님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스님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스님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스님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스님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스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스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스님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스님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스님은 스님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스님 
 
몇달 간 몇번 씩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고 지우다가 오늘은 한번 써 봅니다. 이 메일을 스님께서 읽으실지 읽지 않으실지 잘 모르겠지만, 저도 이렇게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결정하신 대로, 스님이 저에게 보내신 이메일을 끝으로 더이상 관계를 잇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마무리 짓기에는 제 마음이 먹먹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먹먹함을 풀겠다고 다시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전보다 나은 결과를 의미하는 것일지, 그것이 스님에게나 저에게나 좋은 일이 될 지 알 수가 없어서 많이 헷갈립니다. 
 
 
지난 몇달 간 스님께 굉장히 화가 나기도 했고, 밉기도 했고, 너무나 슬프기도 했고, 후회가 되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제 자신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서커스를 거쳤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실, 스님과 있었던 마지막일들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진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아닌 지, 어디까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너무도 헷갈려서 나중엔 그냥 먹먹한 기분만 남을 때가 많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만나고, 또 마지막에 그 일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한번도 스님의 도움이 도움이 아니라고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제 말재주와 글재주의 부족으로 그 동안의 저의 행동이나 언사가 스님께 어떤 인상을 드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저의 진심은 그러했습니다. 적절한 표현방식을 갖추지 않는 진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냥 제 진심은 그러했으니, 그 부분에서 혹시 노여움이 있으시면 조금이라도 누그러지셨으면 합니다. 스님께 상처가 되었을 말이나 행동들도 사실은 저에게 주어진 흔한 소소한 불행들과 상황들, 주변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지 한번도 그것이 스님을 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께서 여러모로 제 삶의 상처나 저에게 주어진 삶의 짐을 덜어주시려고 애써주셨던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나 짐은 그냥 주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자체가 숨을 쉬고 성장도 하다보니, 치유하려는 손을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또 다시 제 삶에 부모같은 존재가 생길까봐, 누군가 나를 통제하려 할까봐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그 통제가 그리워서 미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버스 터미널에서의 스님 얼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도 기억합니다. 그 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실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스님은 계속 저에게 화가 나 있었고, 저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화나 있는 스님 얼굴이 마지막 얼굴이고, 마지막 목소리였고,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것이 저는 많이 슬픕니다. 하지만, 당신이나 저나 우리가 뭘 그렇게 다르게 할 수 있었겠습니다. 스님은 스님세계가 있고, 저는 얼토당토 않을 만큼 아슬아슬한 저의 세계에서 온 사람인데요. 서로가 낯선 외국인 둘이서 한달 넘게 손짓 발짓으로 소통을 했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할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언어까지 배우려 드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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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4 23:25 2011/03/0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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