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입양아 데려다준 거 아니에요.
아는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들과 딸, 두 남매를 오래 전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놓고 있는 언니다. “언니는 좋겠다. 심심찮게 미국 나들이도 하고..... 혼자만 다니지 말고 내 생각도 좀 해 줘 봐요.”하고 농담을 건넸던 게 엊그제였다. 그런 언니가 귀국한 것이다.
“일전에 애기 좀 데리고 갔다가..... 허리병이 생겼어.~”
“언니, 손자 보셨나요?”
“아~ 아니~, 애 데려가는 거, 입양아 데려다주는 거 말이야....”
“아! 홀트 아동복지회 그런 거요? 그래서 아픈 거예요?”
“글쎄, 이래저래 겹친 거지.”
둘이 만나 회포나 풀자고 명동성당 밑에 있는 ‘가톨릭 청소년문화의 집’에서 마주 앉았다. 언니는 아들이 취직하고 집을 샀다는 얘기며, 딸이 뉴욕으로 옮겼다는 얘기를 재밌게 했다. 하지만 나는, 입양아를 데려다 준 얘기’를 조금 더 자세히 해줄 수 없냐고 말했다.
“지금 하려던 참이야!”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야말로 조근조근이다. 그럼 그렇지! 꼼꼼하고 자상한 성격 하나는 알아줘야하는 사람답다. 혹시나 몰라서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아이의 여권에서 아이가 입양될 집 주소랑 이름을 적어놨다는 것이다. 수첩을 들추더니 아이의 이름을 말해준다. 박서영이라는 아이였다.
왜 주소는 적어놓고 그러셨어요?
그러게, 서운해서 그랬어. 괜히, 버려진 꽃 하나를 주워서 가슴에 담는 기분이랄까......
우리나라는 6.25 전쟁이 일어난 나라다. 그로 인하여 수많은 전쟁고아가 생겨났다. 한때는 이 고아들을 해외로 수출하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세계 고아수출 1위 국가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우리의 입양역사에 대해서 운운할 생각은 없다. 그럴만한 지식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다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역만리 타국으로 입양을 가야했던 한 아이에 대한 관심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여 시간을, 아기를 등에 업고 좁은 비행기 안에서 노심초사했던 언니의 심정처럼, 어머니로서 여자로서 같은 아픔을 느꼈을 뿐이다. 그것은 기도였고 염원이었다. 그 아이가 안정을 유지하도록 다독이느라 등골 빠지도록 맘고생, 몸 고생을 치룬 도우미 엄마가 겪은 자그만 에피소드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서영이는 젖도 빨지 않고, 깊은 잠이라고는 도대체 들지 못하는 정서불안의 아이였다고 한다. 생후 7개월 난 여아였단다. 애는 우는 것이 ‘앵앵’도 아니야. 온 힘을 다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딱딱거리고 울어! 어쩜 그렇게 공항이 떠내려 갈 정도로 울기만 하는지....
포동포동하지 않으면 어때. 웬만만 해도 좋으련만, 아이는 그야말로 막대기처럼 빼빼 말랐어. 배가 고픈 것 같아서 우유병을 대주면, 입에 대고만 있지 정작 빨아먹지는 않는 거야. 난 그저 기도하고 다독이며 긴 비행시간을 보내야 했어. 어떻게 해야 이이가 편한 잠 한숨이라도 잘 수 있을
까만 생각하며 진땀을 뺐지.
양부모를 첨 만났을 때 제발 까탈스럽게 굴지 않았으면, 보채지 말고 방긋방긋 웃어서 상견례 하는 첫 인상이 나쁘게 박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어. 양부모하고 다 잘 사는 것도 아니라잖아? 심하면 사춘기 때 가출도 하고. 첫 인상이 평생을 갈지도 모르는 거라서.... 꼭 껴안고서, 아이 예뻐. 뽀뽀해줄게. 얘야! 안심해. 널 이렇게 사랑하고 있어. 하고 끊임없이 말하며 기도하고 기도했지. 그리고 엄마, 아빠 만났을 때는 제발 울음 뚝 그치고, 잘 안기고, 잘 웃어. 라고 다독거렸어.
언니 맘고생 심해서 몸 아픈 거였네요? 편히 좀 가시지 그러셨어요?
아니, 돈 때문에 그러지는 않았어. 그땐 아픈 것도 몰랐다니까. 그럴 정신이나 있었게?
미국행 비행기 삯은 대략 200여만 원이 조금 넘는다. 논스톱으로 가는 직항로 삯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다. 이를 조금이나마 아껴보려고 재작년 여름엔 그야말로 언니가 먼저 입양기관을 찾았다고 한다. 홀트, 동방, 대한, 세군데 신청했는데 역삼동에 있는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처음 해봤지. 아이 데려다주는 일은.......”
하지만 두 번째, 서영이 때는 복지회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럴 만한 이유라면..... 울기만 하고, 우유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안자는 아이여서 사람들이 애를 먹은 때문인가, 하고 짐작해 볼 뿐이야. ‘그래, 서영이를 데리고 갈 누구 좋은 사람 없을까. 전에 한번 일을 했던 홍지영씨 한 테 연락 좀 해보자.’ 이렇게 된 것 같아.
“복지회에서 말하기를 ‘와서 아이를 한번 보기나 하라’는 것이었어.” 직원이, 서영이를 안겨주면서 하는 말이 ‘다른 사람한테 가면 우는데, 아주머니에게는 잘 안기네요!’라는 거야. 서영이 하고는 이렇게 연결이 됐어.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거절을 못했지. 복지회 쪽에서 보면, 차분하고 꼼꼼하고 감동 잘하고, 비록 남의 말이라 하더라도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성실한 사람 하나를 콕 찝은 셈인지도 몰랐다.
그 어린 것이, 언니를 보자마자 ‘잘 따른다는데......’ 그만 측은지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언니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다. 늘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할 준비가 돼있는 사람이었다. 토끼 같은 서영이의 눈을 보는 순간 가엾다는 생각이 물결쳤을 것이다. 알만했다. 서영이를 덥석 껴안으면서 “주님이 내게 또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군요!”하면서 받아드리게 된 것이다.
30시간이라고 했는데, 비행시간이 그렇게 긴 거예요? 공항에서는 어떠셨어요?
입양기관인 역삼동에는 6시까지 도착해야해. 아침 새벽에 택시를 타도 그 경비는 드니까, 미리부터 역삼동에 와 있는 것이 훨씬 안정감이 있는 거지. 그래서 전날에 근처에 있는 모텔에 투숙했어. 세수하고 화장 좀 하고 나가면 몇 시겠어? 수속 밟으려면 공항엔 최소 두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고, 새벽부터 서둘러야지.
사무실에서, 아이의 여권이랑 서류를 받아 챙기고, 짐도 챙겨야해. 아이 먹을 우유와 젖병이랑 짐 가방, 옷가방. 여기다가 내짐이 있는 거야. 바퀴달린 가방과 보조 가방,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내짐만 해도 2개는 되잖아. 서영이 얘는, 포대기 두르고 등에 업어야 했어. 요즘은 웬만하면 아기띠를 사용해서 가슴에 안는 게 보통인데, 근데 서영이는 포대기 둘러서 업어 키웠다나봐. 그래서 꼼짝없이 나도 업고 가야했어.
공항은 복잡하고 활기찬 곳이다. 시끌벅적 시장바닥은 저리 가라다. 각자 바쁜 처지에 다른 사람한테 눈길 돌릴 겨를이나 있나. 그렇지만 온 세상이 떠내려갈듯이 빡빡대고 울기만 하는 아이, 이 아이를, 그것도 포대기를 두르고 전전긍긍하며 기저귀가방에 옷가방에 바퀴가방에 보조가방까지 주렁주렁 잔뜩 짐 매달고 가는 자그만 아줌마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나보다. 외국 사람들 중에서는 이 모습을 보고는 일부러 다가와서 눈을 마주치고는 빙그레 웃고 가더라는 것이었다.
힘들고, 창피했겠네요?
창피한 줄도 몰랐어. 애가 가엾다는 생각만 했어. 하도 우니까 말이야.....
‘나리타공항’에서는 대기 시간이 6시간이나 되었다. 직행노선을 타면 비행시간이 단축되련만,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를 타다 보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게 간 것이었다. 양부모로부터 제반 수수료를 미리 다 받았을 테지만 입양기관에서는 경비를 아끼려고 최대한 쥐어짜는 스케줄로 짠 것이다. 여기다 아이를 데려다 주는 도우미 엄마도 비행기 삯으로 45만 원 정도는 내게 한다.
애 딸린 사람은 할 일도 많다. 더구나 젖먹이 아이, 잠 한숨 안자고, 바스락거리기만 해도 앙앙거리며 울어재끼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은..... 도무지 옴짝달싹도 못하고 온 신경을 애한테만 집중해야만 했다. 나리타공항에서 머문 시간이 6시간이라지만, 기저귀 갈아주고, 먹일 우유 미리 타놓고, 짐을 끌고 화장실 두어 번 간 거 외에는 다른 건 엄두도 못 내고 지나갔다. 하긴, 졸음이 올까봐 애를 등에 업은 채 서서 먹은 캔 커피 하나. 이 정도였다.
이 와중에,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비행기에서가 아니라, 그래도 공항 대기실에서 변 처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유박스에 아이를 누이고 기저귀를 갈아줄 때 울어서 얼룩진 얼굴의 눈물 자국을 씻어줄 수 있었고, 더러워진 아랫도리를 씻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물티슈 그거, 써보면 알지만 금세 피부가 벌게지고 별로 좋지만은 않다.
비행기 안에서는 울다가 지쳤는지 ‘엥엥~’ ‘에에~’ 소리로 바뀌었다. 얘야, 대체 왜 그러니? 낯가림을 하느라 처음에는 울었다 치자. 근데 끊임없이 우는 건 대체 왜냐? 싶어서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며 끊임없이 스킨쉽을 시도하며 그저 계속해서 “예수님, 서영이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성모마리아, 성요셉, 세상의 모든 성인 성녀여! 이 아이를 위하여 빌어주소서!”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입양아의 약 70%는 양부모 될 사람들이 직접 데리러 오지만 나머지 30%는 데려다 주는 케이스라고 했다. 그나저나 어떤 경우라도 첫 만남에서부터 힘든 상황이 벌어지면, 누구라도 당황스럽고 짜증이 날일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노심초사하느라,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기내식도 못 먹고 아이나 어른이나 쫄쫄이 굶고 버틴 시간이었다.. 아이는 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찢어지는 마음을 아는 지나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뉴욕이 가까워지기 시작할때부터는 저도 지쳤는지 ‘칭얼칭얼’ ‘에에~’거리는 소리가 상당히 잦아들고 있었다.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아들 내외가 마중을 나와 있었어. 그래서 짐을 받아주니까 나도 일단은 한숨 돌리게 됐어.”
그런데 신기한 일이지.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주셨구나. 했어.” 양부모 될 사람들이 좋아 보이는 거야. 탑승 장소에서 빠져나와 환영객들이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니 “아 , 저 사람들이구나!”하고 서영이 부모 될 사람들인 걸 알겠더라고...... 엄마 될 사람은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 서영이를 받아 안았어. 아빠 될 사람은 그 모습을, 우리가 나오는 상황을 모두 비디오로 다 찍고 있는 거야.
아! 그거, 서영이의 생애사가 되겠네요.
그렇지. 다행이다 싶었어. 신기하다고 할 수 밖에, 애가 안 떨어지려고 빡빡대며 울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첨엔 놀래가지고 긴장을 하면서 몸에 힘을 꽉 주는 거야. 그리고는 이내 신기한 듯이 주위를 막 둘러보더라. 자기 엄마한테 안기면서는 크게는 아니더라도 ‘방싯’하고 웃는 거야.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거 있지?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구나!”했어. 서영이의 할아버지, 할머니 될 분도 서영이 오빠의 손을 붙잡고 같이 나와 계셨어. 오빠도 같은 동양 애더라고....
코리아? 같은 한국이라서 서영이를 데려온 거 아닐까요?
그러면 더 좋겠지. 그 사람들은 나한테 선물을 건네는 것이었어. 초콜렛과 ‘서영이를 데려다준 당신은 천사’라고 적혀있는 카드였어. 휴우~ 그 때 내가 무슨 정신이나 있었겠어? 머리는 띵하고, 어깨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김에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지만, 사람은 참 이상해. 그 경황에, 내 눈에서는 또 눈물이 흐르고 있는 거야.
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서영아, 잘 살아라! 너의 집은 뉴욕주 영 블로드 로드야. 잘 살아야 해! 널 위해서 때때로 기도할게. 안녕~ 난 그렇게 마지막 기도를 했어.
그래요. 언니? 저도 언니처럼 기도 해볼래요.
서영이를 위해서, 세상의 모든 입양아들을 위해서 기도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