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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뉴스-한상균인터뷰-29일

함께 살자 희망 행진단, 송전탑 농성중인 쌍용차 해고자들을 향하다지난 11월 20일 평택 쌍차 본사 앞 송전탑에 올라,
한상균 전 지부장 "살아있는 우리가 무엇이라도 해야하지 않겠나"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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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29 15: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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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자 3명이 고공농성에 돌입한지 열흘째다. 지난 11월 20일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지부장, 문기주 쌍용차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지회 수석부지부장 3명은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건너편에 위치한 15만 4000V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랐다. 송전탑 중간 지점인 높이 40m 지점에 나무 합판으로 작은 공간을 만들고 칼바람과 겨울 강추위에 맞서면서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3년째 변함이 없다. 쌍용차 국정조사와 정리해고 사태의 책임자 처벌 그리고 해고자 원직 복직이다.

 

   
▲ 문정현 신부와 행진단이 송전탑 위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지난 9월 3년 만에 열린 국회청문회에서 쌍용차 사태가 회계 조작을 기반으로 한 기획 부도였다는 증거가 쏟아졌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농성 9일차였던 11월 28일 오후 3시 ‘함께 살자 농성촌’ 농성단과 ‘노동자 대통령 후보 김소연 선거운동본부’ 회원 등 100여명은 평택역에서 송전탑 농성장이 있는 쌍용 자동차 본사 앞까지 2시간 동안 행진을 벌였다.

송전탑 보며 용산 참사 일어난 망루 떠올라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진단 맨 앞줄을 지킨 용산 참사 유가족 전재숙 씨는 도착하자마자 송전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이 송전탑에 올라간 뒤 두 번째 방문이라는 전 씨는 “망루에서 일어난 용산 참사가 떠올라 송전탑으로 걸어오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전 씨는 “우리가 힘이 없어서 이렇게 와서 쳐다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미안하다”며 결국 눈물을 쏟았다.

행진에 함께 한 녹색당 사무처장 하승수 변호사는 “송전탑에 오른 노동자들의 위치는 전자파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 곳”이라며 “이 추운 겨울에 사람이 저런 높이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처참하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결국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정치권인데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서 모든 것들이 파묻혔다”고 안타까워했다.

 

   
▲ 15만 4000V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위에서 쌍용차 해고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송전탑 위에서 농성 중인 한상균 전 지부장은 <지금 여기>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김정우 지부장의 단식을 지켜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안쓰러움을 느꼈다”면서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이 육체적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쌍용 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가족인 이정아 씨는 “한 조합원이 따뜻한 집에 들어가는 것도, 전기장판을 트는 것도 미안하다고 하더라”며 “올라간 세 분이 결국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씨는 쌍용 자동차 해고자들의 심리치유를 위한 공간인 ‘와락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와락 센터에서는 송전탑 위 노동자 세 명의 매 끼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이 씨는 “도시락을 올려 보낼 때마다 위에서 고맙다, 미안하다고 하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우리다”라고 말했다.

 

한상균 전 지부장과의 전화 인터뷰 전문

한상균 전 지부장은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77일간 옥쇄파업을 주도했다. 당시 쌍용자동차 노조는 정부의 공권력 투입에 맞서다 무급휴직과 희망퇴직을 수용하는 대신 경영 정상화 후 우선 복직시키겠다는 합의를 받아들였다. 파업을 풀고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경찰에 연행된 한 전 지부장은 불법파업과 점거농성을 이유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고 지난 8월 5일 만기 출소했다.

Q : 열흘째인데 건강은 괜찮은가?

A : 아직 적응중이다. 생각보다 사람이 잘 적응하는 것 같다.

Q : 날씨가 추워지고 바람이 세졌는데 버틸 만한가?

A : 오늘은 어제보다 바람이 덜하다. 기온강하보다 강풍을 견디기가 더 어렵다. 밤이면 밤마다 달을 보며 바람 좀 멈추게 해달라고 빈다. 건강을 지키는 것도 큰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잘 버텨나가겠다.

Q : 수감생활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수감 생활동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A : 세상과 단절된 느낌, 외로움과 그리움이 컸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 밖에 있는 동지들의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전해 듣게 되고 그들의 울음소리가 내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이명박 정권 들어 노동자를 탄압하는 방식이 더욱 파렴치해졌다. 군사정권에서도 하지 않았던 방식이다. 노동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소모품으로 취급한다. 그런 현실에서 2000만 노동자들이 있는 세상이 더 큰 감옥이라 여겨졌다. 감옥은 오히려 온실이었다.

Q : 출소 후에는 곧이어 김정우 지부장의 40여 일간의 단식을 옆에서 지켜봤다.

A : 사실 매일 옆에 있으면서도 눈을 마주치기가 겁나서 애써 눈길을 돌리곤 했다. 어쩔 수 없이 방문하는 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김정우 지부장과 눈이 마주치면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 인간의 한계를 의지로 견디는 모습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안쓰러운 마음이 겹쳐서 힘들었다.

Q : 어떤 마음으로 송전탑에 올라야겠다고 결심했나?

A : 수감생활 중에 여러 동지들을 먼저 떠나보냈고 나와서는 옆에서 일하던 형님을 보냈다. 이런 과정들이 계속되면서 살아있는 동지들의 삶도 파괴 되어갔고 고립되어 갔다. 인간 본연의 가치들이 짓밟힌다고 느꼈고 그것은 육체적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현실을 보면서 살아있는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 뻔한 질문이지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A : 국회는 청문회를 통해 정리해고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이제 이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고 직간접적으로 이를 공모한 정부는 관련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또한 회사는 기만적인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해고 노동자들을 복직시켜야 한다. 최소한의 요구라고 생각한다.

Q : 송전탑에 올라오기 전 가족들과는 이야기를 나눴나?

A : 이야기하지 못했다. 아내에게도 입이 안 떨어져서 그냥 올라왔다. 올라온 뒤에 전화통화도 하고 있고 아이들과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Q:. 쌍용차 뿐 아니라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유성기업 등도 고공 농성 중이다.

A: 정치의 계절이고 대선이 코앞이다. 모든 후보들이 당선되면 노동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상 후보들은 노동 문제를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등한시하는 공약들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가. 노동자들의 문제를 전면에 걸고 노동자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 어찌되었던 노동의 문제를 뺀 경제 민주화나 복지 국가는 허구에 불과하다. 현장과는 동떨어진 공약들이다. 서민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정치인이 필요하다.

 

   
▲ 한상균 지부장, 문기주 지회장, 복기성 부지회장이 행진단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JUMBBAE J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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