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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주의자가 되다] 에 이어지는 글...
'빈집' 프로젝트가 점점 구체화되면서... 계속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가라타니 고진이다.
게스츠하우스의 구상은 여행중에 만나고 신세졌던 많은 사람들과 장소들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고진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에 대한 몇가지 글을 보며 다시 고민중...
박가분, 가라타니 고진 비판 유감 중
(현대자동차 노조원이 많이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랜드 홈에버 불매운동에 대해 논하며...)
나는 노조라는 기존의 노동운동 조직을 중심으로 '소비자 운동'을 전개하는 이런 형태에 대해 주목한다. 이런 주체성이야말로 노동자-소비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정식과 부합하지 않는가?
...
문제는 소비자 운동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물적토대'가 필요한 법인데, 그러한 토대가 잘 갖추어진 노조중심의 노동운동과 달리 소비자운동에는 그러한 구심점이 결여되어 있다. 그게 소비자 운동의 가장 큰 약점인데, 위의 기사와 같이 결국 소비자와 노동자의 정체성은 다르지 않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봄직하다.
이랜드 불매운동이 의미가 있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의 '소비자 운동'은 특정 상품에 대한 불매가 아니라, 상품 일반에 대한 불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상품 일반에 대해서 불매하면서도 삶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고진의 관심이 아니었던가?
소비자 운동의 '물적토대'를 노동자 운동의 '물적토대'로 등치시키는 것은 노동운동의 한계에서 빠져나온 순간 다시 뒷문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위 기사의 불매운동은 우연히 그 지역에 노조원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울산 홈에버에서 소비하는 소비자는 노조원이 아니라 노조원의 아내와 아이들이다. 여전히 노동자는 노동하고 있고, 소비자는 소비하고 있다. 다만 홈에버가 아니라 이마트라는 것이 다를 뿐. 그마저도 잠시겠지만.
소비의 공간은 가족이고, 지역이다. 공장과 노조의 재구성이 필요한 만큼, 가족과 지역의 재구성 역시 필요하며, 이것이 없이는 노동자-소비자 어소시에이션은 존재할 수 없다.
박가분, 가라타니 고진의 질 들뢰즈 중 에서 재인용
'푸코의 맑스(갈무리,2004)'에 수록된 들뢰즈와 푸코의 대담 중 일부(192p)를 인용.
"맞습니다. 하나의 이론은 꼭 연장통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의미심장한 것(le signifiant)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것은 유용해야 하며 기능해야 합니다. 이론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론가 자신부터 시작해 아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가치가 없거나, 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의 이론을 개정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구축해 냅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을 만들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묘하게도 이러한 생각을 명확히 밝힌 사람은 순수 지식인으로 생각되어 온 프루스트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나의 책을 바깥을 향한 하나의 안경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맞지 않으면, 다른 것을 찾으십시오. 필연적으로 전쟁 도구가 될 당신만의 도구를, 스스로 찾으십시오.' 이론은 총체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양화의 도구이며, 스스로 다양화합니다. 총체화하는 것은 권력의 본성입니다."
윤여일, '몰락 이후' 쉰이 넘어 코뮨주의자 되다 중
즉 일하지도 상품을 사지도 말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일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까닭에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 협동조합의 연합’을 제시한다.
...
어소시에이션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와 닮아 있지만 잉여가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공동체의 교환원리인 상호부조와 유사하지만 배타적이지도 구속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소비자운동은 실상 입장이 바뀐 노동운동이며, 노동운동 역시 소비자운동인 동안 자신의 국지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소비과정은 육아, 교육, 여가 등 생활세계 전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 고진은 생산자/소비자의 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주의 바깥에서 생활의 지평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
그렇다면 그가 기획한 현실운동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가라타니 고진은 FA(Free Association)라는 또 하나의 조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라타니 고진은 2002년 「FA선언」을 통해 NAM(New Association Movement)을 해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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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기대와 달리 NAM은 그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한 지식인들의 모임이 되었다. 가라타니 고진이 「FA선언」에서 밝힌 해산 이유 역시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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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지금의 가라타니 고진에 대해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 그의 시도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의 긴장감을 놓쳤으며, 그의 실패는 그마저도 이론적 완결성을 위해 희생되었다.
NAM이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을 했는지도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데... 해산했다 하고, 또 FA가 발표되었다고 하고,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이 끝났다느니, 호의적이고 싶지 않다느니... 난리다.
그것이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다면, 가라타니 고진이 말했던 NAM은 시작도 안 한거라고 본다. FA선언은 보고 싶지만, 아직 못봤는데 FA가 NAM과 특별히 다를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고진이 'NAM 운동을 지속할 운동체가 부재하다'는 것이 사태의 정확한 진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태는 고진의 이론적인 결함과는 무관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는 조직론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NAM을 기존의 노동운동 조직이 정책적 전환만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기존의 시민운동 조직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나야 한다는 정도의 얘기라면 가라타니 고진이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얘기다. 공장과 가족이 그대로인 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그대로인 채, NAM은 가능하지 않다.
자본을 위해 노동하지도 말고, 소비하지도 말라는 대전제가 잊혀져서는 곤란한다. 즉 자본을 위한 생산 공간인 공장/농장과 자본을 위한 소비 공간인 가족/지역이 이 대전제 하에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 그리하여 자본=스테이트=네이션을 넘어선 삶을 구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노동자로서의 소비자운동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디디님의 [고진, 맑스, 공동체 화폐, 가능한 꼬뮤니즘.] 중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노동자는 두 가지 관점에서 자본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일하지 않는 거다. 또 하나는 사지 않는 거다.
하지만 -_- 노동자는 고뇌한다. 딸린 처자식은 어쩌라고!
문제는 분명하다.
노동자(=소비자)들이 일하지 않고 사지 않는 것,
즉 자본주의적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비자본주의적으로 일 하거나 살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공동체 화폐는 그러한 장소를 만들기 위한 분투다.
"자본과 국가에 내재하면서, 그 원리를 대체하고 넘어서려는 운동.
([지역통화LETS에대하여])”
내재하는 외부-되기.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화폐의 가공할 속도는
그러한 외부에 자꾸만 폐쇄의 의지를 부여한다.
그러나 자족적인 공동체가 되는 순간 그건 이미 외부도, 운동도 아니다.
그냥 자본이 허용하는 다양성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수많은 공동체 마을들은 관광지가 되고
마을 바깥에서, 자본의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비자본주의적으로 일하거나 살 수 있는 장소...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공간, 주거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주거 공간은 단지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생산의 공간으로서의 면모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현재의 전형적인 주거형태인 핵가족 주거, 개인 주거의 형태로서는 불가능하지 않는가?
폐쇄의 의지를 근본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자족적인 공동체가 되지 않는 공동체, 꼬뮨...
누구든지 맞아들여 친구로 만들수 있는 공동체, 언제든지 떠나서 친구를 만들고 또 돌아올 수 있는 공동체.
아마도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만큼을 소비할 수 있는 비자본주의적인 생산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생산한다는 것이니까.
반대로 비자본주의인 것은... 조금 생산하되 좋은 것을 잘 생산하는 것이며, 또한 덜 소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화폐로 구입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로 얻을 수 있는 자원은 꽤 많다. 자본주의 착취하기.
그나저나... 여전히 궁금한 LETS. 시스템도 다양하고, 운영하는 조직도 다양하고...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몇가지 원칙만 가지고 멋진 LETS의 시스템을 구성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흑.
행복의 건축 -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이레 |
"오늘날 가정 생활은 우리가 가구를 소유해야 한다는 개탄스런 관념 때문에 마비되고 있습니다. 그런 관념을 근절하고 그 대신 장비라는 관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현대인이] 원하는 것은 수도사의 방이다. 조명과 난방이 잘 되어 있고 모퉁이에서 별을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취향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절망하지 않도록, 이전의 미학적 혁명을 이루는데 필요한 수단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생각해 보는게 좋겠다.다른 사람들이 따라올만한 실행가능한 모범을 제시하는데 보통 건물 몇 동과 책 한 권이면 충분했다. 보통 '이탈리아 르네상스'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으로 알려진 발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참가자들이 이뤄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니체는 그것이 실제로는 불과 백명 정도가 해낸 일이라고 말한다. 또 교과서에서 '고전주의의 재탄생'이라고 부르는 혁신 작업은 그보다 적은 수의 옹호자들에게 의존했다. 브루넬레스키의 고아원이라는 단 하나의 건물과 레오네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건축론>이라는 한 권의 논문만으로도 세계는 새로운 감수성의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팔라디오 스타일을 영국의 풍경에 박아 넣는데는 콜런 캠블의 <영국의 건축가들> 단 한 권이면 충분했고 20세기의 환경을 구축한 많은 것들의 출현을 결정하는 데는 르 코르뷔지에의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200여 페이지면 충분했다. 어떤 건물들 - 슈뢰더 하우스, 판스워스 하우스, 캘리포니아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등 - 은 자신의 규모나 건축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이 모든 건축적 변화에서 처음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의 끈기는 그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자원만큼이나 중요했다. 건축의 위대한 혁명가들은 예술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을 겸비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고 생각할 줄도 알았지만, 의뢰인과 정치가들을 달래고, 유혹하고, 괴롭히고, 또 끈기와 조심성을 잃지 않고 그들과 오랫동안 게임을 할 줄도 알았다."
"놀이는 언제나 더 잘 노는 법을 가르쳐준다.""일단은 놀기 시작해야 한다. 정말로 잘 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즐거움을 자극하고 소비하는 무수한 장난감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서툴게 시작해도 좋다. 일단 놀기 시작하면 우린 점점 더 잘 놀게 될 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건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D에게 보낸 편지 -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학고재 |
옆에 발레리의 글은 프라이부르크에서 묵었던 친구집에서 본 글귀다.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무서운 얘기지만 별 거 아니다.
자동차를 갖고, 자동차를 몰게 되면...
길이 넓어지길 바라고, 터널이 뚫리길 바라고, 고속도로가 놓이길 바라게 된다.
또, 기름값이 내리길 바라고, 유류세가 없어지길 바라고, 자동차값이 더 싸지길 바라고, 현대자동차가 잘 나가길 바라고, 파업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차창 밖 공기가 맑아지길 바라는 대신,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구매하게 된다.
모르지 요트를 갖게 되면 대운하도 찬성하게 될지...
"
자동차가 우리의 삶에 가져다준 모든 이득마다 그에 대응하는 손실이 있다. 어떤 신체부자유자에게 축복이 되는 바로 그 자동차가 사고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평생토록 신체적 부자유자로 만든다. 어떤 노인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허용하는 바로 그 자동차로 인해 다른 노인들은 분주한 거리에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갇혀 지내게 된다. 어떤 아이들을 디즈니랜드로 데려다 주는 바로 그 차들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자기네 동네길에서 자유롭게 놀지 못한다. 우리들 중 몇몇을 편하게 직장에 갈 수 있게 하는 자동차들이 다른 사람들의 출근길을 점점 더 힘들게 만든다. 우리를 병원에 빨리 데려다 주는 바로 그 차들이 없었다면 애당초 우리가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 우리들 중 몇몇의 사교생활을 넓혀준 바로 그 차들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은 동네와 거리를 잃고, 친구와 이웃 사람들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불유쾌한 부작용을 넘어서 아마도 훨씬 더 불길한 문제가 있다. 즉, 자동차는 현대인의 영혼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자동차는 점차로 자아를 대신하고 있다.
"
- 볼프강 주커만, {파국을 향해 가는 자동차}, [녹색평론선집1], 녹색평론사
주식을 사면 주식가치가 오르길 바라고 기업과 금융 산업이 잘 나가길 바라게 된다.
집을 사면 집값이 오르길 바라게 되고, 철거와 재개발을 바라게 된다.
'가구들과 소유물들'이 많아질 수록 더 넓은 집 더 '안전한' 집을 바라게 된다.
"
집과 가옥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가옥은 사람들이 가구들과 소유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그것은 사람들 자신보다는 가구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마련된 곳이다. 간디의 오두막이 함축하는 것은 인도 사회와의 완전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가능해지는 기쁨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이나 상품들은 주위 환경으로부터 행복을 섭취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을 위축시킨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
- 이반 일리치, {간디의 오두막}, [녹색평론선집1], 녹색평론사
다이 호우잉이 쓰고 신영복 선생이 옮긴 <사람아 아, 사람아!>를 다시 보고 있다.
보고 있던 책이 너무 난해한 탓에 볼 것이 없던 차에,
선배집에서 굴러다니는 책에 우연히 눈이 갔던 탓이다.
한 12년, 아니 15년 만인가?
재밌다.
예전에도 재밌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의 내가 아래와 같은 문장에 주목할 수 있었을까?
시 왕은 3층 화장실 옆의 작은 방을 열었다. 너무나 초라한 방이었다! 몹시 낡은 나무 상자 하나와 책이 가득한 선반 몇 개가 있는 것 외에는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방에는 2층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다. 호 아저씨는 아래쪽에서 자고 위쪽에는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또 하나의 2층 침대는 비어 있었는데, 시 왕의 이야기에 의하면 단신 부임한 교직원이나 노동자가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를 하루 이틀 묵게 하는 데 사용된다고 했다. 침구는 더더구나 볼품이 없었다. 이불은 퇴색되어 꽃무늬가 회색에 가까웠고 그나마 몇 군데는 솜이 삐어져 나와 있었다. 베게는 작고 딱딱했으며 베갯잇 대신 그냥 수건을 감아 두었을 뿐이었다.
호 젠후라는 사람... 사랑과 혁명에 상처를 입고 떠나, 하루하루 '노동을 팔아서 밥으로 바꾸'고, 단 두 권의 책 <홍루몽>과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을 동무삼아, 10여년을 홀로 세상을 유랑하다 돌아온 사람의 방이다.
사람에 어울리는 방이다.
단지 허름하다는 것 말고, 비어 있다는 것, 혼자 사는 방에 2층 침대가 두 개 있다는 것...
'자기만의 방'에 누구라도 묵고 갈 수 있고...
손님이 묵고 어울리게 되면서 주인과 손님의 구별이 희미해지고...
마침내 자신도 손님의 한 사람이 되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방...
그런 방, 그런 집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문득...
가라타니 고진, [윤리21]
신란(일본의 승려이자 불교철학자)
성경의 저자(들)
예수
지음
맑스
가라타니 고진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한 때 좀 읽다가, 그래서 뭐하자는 건가가 참 갈수록 애매해진다 싶어 그만뒀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가 아주 구체적인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배경을 알기 위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이것 저것 재밌는게 많은데, 다음은 그 중에 한 가지.
예컨대 어떤 사람이 평생 사람이나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돈이 있어서 그러한 입장에 놓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으니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신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확히 읽지 않으면 거꾸로 읽을 가능성이 많다. 정확히 읽자.
선인임에도 왕생을 얻는다. 하물며 악인이랴.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항상 말하기를, 악인도 왕생한다, 하물며 선임임에랴. ...
- [단니쇼] 제 3조
... 그가 이렇게 말한 시점에서 '악인'이란 종래의 계율에서 볼 때 악으로 간주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악을 면한 부자나 지배계급이 구원된다면 악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구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악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악인의 운명애. 초인이 된 악인. 예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 예수께서 이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 [마태오의 복음서] 9장 10절-13절
니체도 여러번 얘기하곤 했지만, 예수는 멋진 인간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 [마태오의 복음서], 19장 23절-24절
크리스트교에서는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라는 예수의 말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바꿔 말한다. 정말 절묘하지 않은가? 이를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고진도 대단하지만. 그러면 부자라도 마음이 가난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를 살찌우는 것은 부자일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이러한 논리의 전도가 필요했던 이유? 다시 말해 현실의 사회적 관계는 그대로 두고 개인의 내면만 착하면 된다는 말이다. 뭐 굳이 종교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맑스도 얘기했지만,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이미 끝났다.
종교상의 불행은, 첫째로 현실 불행의 표현이고 둘째로는 현실의 불행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번민하는 자의 한숨이며 인정없는 세계의 심정인 동시에 정신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 민중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를 폐기하는 것은 민중의 현실적 행복을 요구하는 일이다. 민중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그리는 환상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버리라고 요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종교를 후광으로 하는 저 고통스런 세계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헤겔 법철학 비판]
이것도 고진의 다른 책에서 다시 인용한 것인데, 중간의 말줄임표는 너무도 유명한 '그 말'을 내가 일부로 생략한 것이다. 고진 역시 '그 말'이 자주 인용되는데, 거의 확실히 오해되고 있다. 그러한 오해를 하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이 맑스를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에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하튼, 부자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난해서 될 게 아니고, 현실에서 가난해져야 하는가 보다.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을 좀 더 빡시게 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가난해질 정도로.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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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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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를 남기고 갑니다...부가 정보
박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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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제 견해를 남깁니다...http://blog.naver.com/paxwonik/4004793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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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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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_ㅜ 내가 고진을 사랑해서 철학책을 읽기 시작하였더랬지. 하지메상이 고진이랑 술마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러움의 눈물을 줄줄. (이라는 이상한 답글을 크크크)부가 정보
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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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구나.연락 한 번 주지 그랬어..
아닌 척 할래도 섭한 맘 금할 길이 없다.
......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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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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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사람들이 지음아규 지음아규 하길래 어떤 커플인가 했는데 그 지음이 그 지음이네. -.- 세상에나.... 난 뇌의 일부분이 포맷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