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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알기

이제 6일만 자면 홍아를 만난다. 전에 한 수술 때문에 이번에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데, 3월 5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아 떨려.

 

임신 기간이 끝나가니 홍아를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하지만

'엄마'가 된단 사실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 기간이 끝나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임신은 어렵게 했지만, 임신 기간은 별로 어렵지 않게 지냈다.

남들 많이 한다는 입덧도 하나 안 하고, 그러니 가리는 음식도 하나 없고

잠도 잘 자고, 살도 많이 안 찌고.

임신 체질인가 보다, 싶게 컨디션이 좋았다.

 

막달이 되니 핏줄도 팍팍 터지고

(많은 비가 쏟아진 뒤 땅이 마르면 모래가 결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핏줄이 결을 이루며 터져 있다. 자고 일어나면 범위가 또 넓어진다.) 

다리 신경도 눌러 시큰거리지만,

뭐 이 정도야 주변 사람들 말 들으면 애교다.

 

임신을 하고 참 많은 배려를 받았다.

이제 그런 배려, 보살핌을 못 받게 되겠구나, 하니 좀 섭섭하다.

 

서울에 갔다 전철에서 앞사람이 자리를 양보하는데, 쑥스럽고 또 고맙고 묘한 기분이 들었었다.

일산에서도 버스를 타면 자리 양보를 많이 받는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해도, 막상 그런 배려를 받으니 쑥스럽고 또 많이 고마웠다.

딸기를 육천원 어치 사도, 아저씨가 천원이나 깎아주며 예쁜 아가랑 같이 먹으라고 인사를 하고, 사과를 사면 아줌마가 예쁜 걸 먹어야 한다며 동글동글하니 때깔이 고운 사과로만 골라 주었다.

 

쭌은 짐을 다 들어 주었고, 살림도 거의 다 했다.

내가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된대, 오래 서 있어도 안 좋대, 라고 말을 한 후

장보기와 집안일 등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노동은 그가 거의 도맡아 했다.

게으르고, 안전 염려(증)에 부실한 몸을 지닌 그이지만,

그래서 날 배고프게 하고 지저분한 환경에 두기도 했지만

그걸 '당신 탓이야'하면 '응'하고 수긍하고 미안해 할만큼 그는 많은 일을 자기 책임으로 두었다.

대한민국에 이런 남편은 드물 거라고, 으쓱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당위로는 마땅한 일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테니.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 또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남의 기분은 잘 파악하고 맞춰주기도 잘하지만, 나를 표현하는 것은 어렵다.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리면 왜 그리 궁상이었지, 싶은 일이 많다.

 

쭌은 자기 상태와 욕구를 잘 안다.

예를 들면, 안마를 해 줄 때도 두드리는 게 좋은지, 긁는 게 좋은지, 주무르는 게 좋은지, 쓰다듬는 게 좋은지 알고, 원하는 위치가 목인지, 어깨인지, 등인지, 머리인지, 손인지도 잘 안다. 그리고 내가 힘들다고 해도 이쁜 짓을 하며 계속 안마를 받아낸다.

그런데 나는 다리가 아퍼,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말을 하고, 맛사지를 받다보면 상대가 힘들까봐 '이제 됐어, 그만 해'라는 말을 빨리 한다.

 

그런데 이번 일로 많은 배려를 받으며

또 내 상태를 민감하게 지켜보며

내가 어떤 상황이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뭔지, 그걸 남에게 도와달라고 어떻게 말하는지를 배우고 있다.

 

참 소중한 경험이다. 아이를 낳고도 내가 원하는 걸 알기, 말하기, 부탁하기의 감각을 잃지 않고 싶다.

 

오늘 아침에도 동료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해야지, 하면(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이고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것이면) 신경이 곤두서 잠을 설치게 된다.

거절당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싫은 소리를 하기도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익숙해져야겠단 생각이 든다.

 

이게 홍아가 내게 준 선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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