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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진보평론] 성폭력을 딛고, 작은꽃 노동자로 피어라! - 피해자 대리인 권수정

성폭력을 딛고, 작은꽃 노동자로 피어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금양물류 성희롱 사건 피해자 대리인 권수정

 

  

1. 사건 경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협력업체에서 14년 동안 그랜저와 소나타 검사 일을 했던 여성 노동자가 2008년 경부터 업체 관리자인 조장과 소장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참고 참던 그녀는 2010년 8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며 사건을 제보하였고, 9월 3일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9월 20일 업체 금양물류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회사 내에 선량한 풍속을 문란하게 하여,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곤란한 경우’라며 피해여성노동자만 해고했다.

 

너무 억울했던 피해자는 9월 27일부터 아산공장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했다. 10월 14일 정규직 관리자들과 용역경비들이 몰려나와 피해자에게 “현대 땅에서 나가라!”, “아줌마는 부끄러운 줄도 몰라.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지랄이야.”라고 욕을 하며 그녀를 인도에서 밀어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넘어져 전치 4주의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2주 만에 퇴원한 그녀는 아산공장 정문 앞에 앉아 농성을 시작했다.

 

성희롱 당한 피해자를 별다른 고민 없이 해고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 회사는 11월 4일 금양물류 역시 쉽게 폐업해 버렸다. 그녀가 14년 일하는 동안 모두 8번 폐업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해자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들의 고용이 승계되었다. 금양물류에서 억울하게 해고된 피해자만 겨울 내내 아산공장 앞에서 추위와 정규직 관리자들, 용역경비의 모욕적인 폭행을 견디며 농성을 했다. 유난히 찬바람이 불던 지난겨울 천막이라도 치려하면 현대차 정규직 관리자와 용역경비 300여명이 칼과 각목을 들고 몰려나와 천막을 찢고 같이 농성하던 비정규직조합원들을 폭행해서 중상을 입어 수십 명의 조합원이 병원에 입원했다. 두 번을 그렇게 당하니 천막은 엄두가 나지 않고 폭설이 쏟아질 때 비닐이라도 덮어 눈을 피하려하면 정규직관리자들과 용역경비들이 몰려나와 비닐을 빼앗고 찬물을 뿌려, 농성하는 바닥이 빙판이 되었다. 항의하면 “XX년들아 마음대로 해봐.” 쌍욕하며 비웃고 갔다.

 

해가 바뀌어 2011년 1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을 받았다. 우리가 진정 낸 사건에 대해 직장 내 성희롱을 인정하고 성희롱을 인지한 회사의 고용상의 불이익을 인정했다. 가해자 조장과 소장 그리고 금양물류 사장에게 각각 300만원, 600만원, 900만원의 손해배상을 권고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 결정이 나온 후에도 가해자들은 사과한마디 없고 현대자동차는 자기들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충남지역 현대자동차 영업소 앞에서 1인시위도 하고 촛불문화제도 했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다. 마침내 5월 언니와 독하게 마음먹고 서울상경투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산 사내하청지회 집행부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끝나기 전에는 복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을 왜 하냐고 했고, 피해자에게 다른 조합원들 생각은 왜 안하냐고 했다. 당시 피해자 또한 지회의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하고 있었다. 피해자 또한 비정규노조 조합원으로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는 성희롱 해고 사건에서 정규직화가 아니라 성희롱 당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아 달라는 것이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복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것이 맞지만 먼저 그녀는 성희롱 당하고 억울하게 해고된 것에 대한 복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비정규직지회 확대간부 회의에서는 서울상경농성을 동의하지 않지만 지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과 성희롱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 투쟁은 다른 성격의 투쟁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녀가 정규직이었다 해도 성희롱 당했을 것이며 또 그것을 말했다고, 해고되었을까.’ 그녀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당하는 성희롱과 성희롱으로 인한 부당한 해고가 인정되어 복직된다면, 이것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성과로 수렴될 것이라고 언니와 나는 판단했다. 집행부의 말처럼 현대자동차는 불법파견의 구실이 될까봐 절대 복직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반대로 당장 그녀가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업체로의 복직을 합의한다 해도 이것은 성과로 남을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집행부의 반대에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울상경투쟁을 결정하고 5월 30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으로 올라와 자리를 깔고 노숙을 시작했다.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자고 언니와 다짐을 했다. 서울 올라가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면 그때는 내려오는 거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이니까. 누가 뭐라 해도, 정규직이 되건 되지 않건, 지금 당장, 우리는 생산현장에서 관리자가 몸을 달라하면 주면서 살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는 없다. 아무리 우리가 힘이 약한 비정규직 하청여성노동자이고, 아무리 현대자동차가 법위에서 군림하는 힘을 가졌다 해도, 생산현장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해고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현대자동차라 해도 안 된다. 우리는 사람이니까, 성희롱 당하며 일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독하게 먹은 마음 외에 준비된 것이 없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양재동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고 싶었지만 본사 앞에는 집회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서초경찰서 앞에는 날마다 하루도 쉬지않고 현대자동차에서 고용한 용역 10여명이 3교대하며 줄을 서서 법적으로 집회신고가 가능한 미래, 한달 후까지의 집회신고를 내고 있었다. 3교대하는 용역30명의 일당을 물어보니 10만원이라고 했다. 하루 300만원, 한달 9천만원, 1년이면 10억8천만원의 돈으로 용역을 고용해 현대자동차는 본사 앞 집회신고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용역이 현자 본사 앞 집회신고를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서초서 앞에 10만원의 일당을 받고 줄서있다. 성희롱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여성노동자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며 서초서 앞에서 농성을 한 이유이다.

 

20여일을 서초서 앞에서 농성한 후 6월 22일 지금의 여성가족부 앞으로 농성장을 옮겼다. 비정규직 여성 하청노동자가 성희롱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것이 국가인권위에 의해 확인이 되었는데, 국가인권위는 판단을 했고 가해자들과 업체사장에게 권고를 했으니 그것으로 할 일 다했다고 한다. 그나마 권고조차 법적 강제력은 없다. 노동부는 업체가 폐업되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현대자동차와 동일한 입장이다. 현대자동차는 심지어 피해여성에게 집회할 수 있는 한 평의 땅조차 허락하지 않으니 이제 어찌할 것인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가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가족부 앞으로 농성장을 옮긴 이유이다. 국가기관에서 성희롱이 맞고 성희롱을 인지한 회사가 고용상의 불이익을 준 것이 맞다고 판단을 했는데 민간기업이 그것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공공의 권력이 나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최소한 국가기관이 성희롱 당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힘을 행사하는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여성가족부 앞에서 11월 15일 현재 167일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사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보자는 취지에 맞게 근로복지공단에 직장 내 성희롱을 근거로 산재신청을 냈고 마지막 절차인 질병판정위원회 회의가 11월 17일에 열린다. 여성가족부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가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건물 관리사무소에서는 용역깡패를 고용해 9월 3일 농성장을 폭력 침탈했다. 그것으로 모자라 건물 입주 상가들과 함께 ‘철거, 수거 단행 가처분’을 신청해 24일이 심문기일이다. 우리 농성장이 지저분해서 영업에 방해가 되고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사이 민사소송은 진행 중이고, 형사소송은 천안검찰에서 금양물류 임동철 사장에서 300만원의 벌금을 약식 기소했다. 그 사이 유난이 많은 비가 내리던 여름이 가고 단풍이 지고, 이제 다시 찬바람이 분다. 작년 아산공장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여가부 앞에서 겨울을 나야할 모양이다. 그사이, 포기하지 않고 11월 15일 현재 167일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 투쟁의 의미

 

1) 성폭력, 자본의 착취전략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로 생산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성폭력은 “또라이 같은 남성 관리자”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그 한사람이 또라이라면 사건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는 위계와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한다. 피해여성은 성폭력을 견디든지,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문제제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둘은 같다. 167일을 여가부앞에 농성하며 앉아 있으니 이 사회 온갖 성폭력,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우리 농성장으로 와서 고통을 호소하고 상담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다른장소, 다른 직종의 가해자와 회사의 대응이 누가 가르쳐줘 학습한듯이 똑같을수 있는 것인지 놀랐다. 비정규직이 아니라도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피해여성이 문제제기할 경우 가해자가 처벌되고 피해자가 보호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피해자가 문제제기 했다고 해고까지 된 경우는 없었지만 공무원도, 사무직도 정규직도 직장내 성희롱을 인지한 회사의 2차가해 양상은 모두 같았다. 위계와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회사는 가해자를 지지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그녀가 원래 나대는 여자였고, 이 남자 저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였으며, 헤펐다”, “이 사건을 계속 확대시키는 것은 우리 회사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 이쯤해서 그만두라”고 피해자를 공격하며 닥치고 살 것을 강요한다. 어떤 또라이 같은 가해자 한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이 드러났을 때 가해자와 그를 지지하는 자들, 사측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이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매뉴얼이다. 어떤 직장 내 성희롱도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성폭력에 노출되어 직장상사에게 느끼는 성적수치심을 말하지 못하고 인내하는 여성노동자는 임금인상도 다른 노동조건에 대한 정당한 주장도 못한다. 성적수치심을 견디는 여성은 저임금도 부당한 노동통제도 견딘다. 자본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보다 공격적으로 성희롱을 한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동의된 자본주의 착취전략 중 하나다. 직장 내 성희롱이 횡행하는 사업장의 피해여성은 한사람이 아니다. 그녀들은 다 그렇게 견딘다.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싫어도 불이익이 무서워 참는다. 결국 사업장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은 성적수치심을 견디는 것이 내면화 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분열된다. 그녀들은 참아왔기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제기하는 여성을 쉽게 지지하지도 못한다. 늘 그랬으니까, 그녀가 혼자 튀는 것이고, 뭘 그 정도로, 그녀가 헤프기 때문이라고 내몰며 침묵하거나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한다.

한편 직장내 성희롱이 횡행하는 사업장의 여성들만 성폭력을 이용한 노동통제의 피해자 될까? 남성노동자들은 동료여성노동자가 관리자에게 성희롱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것이 자연스럽고 아무런 생각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에게 탄압받는 것을 보며 정규직 노동자들이 즐기지 않는다. 당장 연대를 못하는 미안함까지 포함해 그들도 고통스럽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도 그럴것이다. 옆의 동료가 관리자에게 일상적으로 성희롱 당하는것을 지켜보고 살아야 할것을 강요받는 남성노동자 또한 피해자일 것이다. 이것은 가학적인 시스템이다.

 

사업장에서뿐 아니라,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은 2차가해하고, 검찰이 2차가해하고 법원에서는 판사가 2차가해 한다. 이것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다. 국가가 성폭력하는 자본의 시스템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국가 또한 공무원사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더 쉽게 착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생각이 없다.

 

이번 사건의 경우 직장 내 성희롱을 국가기관에서 인정했음에도 검찰이 금양물류 사장에게 혐의를 인정하여 처한 약식기소의 벌금은 겨우 300만원이다. 그나마 국가인권위는 900만원의 벌금을 권고했는데, 검찰은 왜 300만원이라는지 알 수가 없다. 하여튼 껌 값이다. 왜 그런가? 성희롱을 인지한 회사가 피해자를 해고한 것은 매우 악의적인 범죄이다. 그녀의 복직을 국가기관이 명령하면 왜 안 되는가? 최소한 벌금을 때린다면 지난 1년 동안 해고되어 못 받은 임금이라도 지급하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성희롱을 인정해도 사법부는 자본의 착취전략에 문제가 생길만한 벌금을 부과하지는 않는다. 검찰의 이런 결정을 보고 어떤 사장이 성폭력당한 여성노동자를 해고할 경우 자기가 오히려 처벌받는다고 무서워하겠는가. 그냥 300만원내고 또 성폭력 하고 말지. 이런 상황에서 또라이는 가해자가 아니라 문제제기한 여성노동자가 된다. 이것은 일관되게 관철되는 구조적인 시스템이다.

 

성폭력은 여성노동자를 통제하는 자본주의 착취전략이다. 여성노동자의 몸을 통해 현장을 관리한다. 이 착취전략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진영의 대응이 있어야 한다. 대공장 남성중심의 노동운동이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주요한 자본의 착취전략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가해자 한사람에 대한 처벌을 넘어서는 여성의 몸을 통제하며 착취하는 구조에 문제제기할 이론이 필요하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이지만 또한 노동의 문제다.

 

2) 파견법, 유연한 노동 통제의 폭력

 

그 다음이 파견법의 문제이다. 파견법 아래 ‘기간제 노동자’들은 입 닥치고 숨죽여 살아야 한다. 6개월 후, 혹은 1년 후에 재계약하기 위해서는 관리자들에게 찍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 파견법에 해당하는 기간제 노동자들은 단결해서 투쟁하지도 못한다. 원청회사가 파견업을 하는 회사를 통째로 날려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형식이 폐업이든 계약해지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해고의 효과가 있다. 파견법이 더욱 악랄한 것은 2년이 지났다고 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년이 되기 하루 전에 집단적으로 계약해지 되는 경우는 많이 봤다. 그리고 한달 쉬고 다시 기간제 노동자로 고용되길 기다리며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파견법이 합법이 되는 순간, 합법파견이든 불법파견이든, 파업이 허용되지 않는 사업장이든, 허용되는 사업장이든,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파견노동이 허용되지 않는 사업장에서도 파견노동자를 고용하여 일을 시키면서 합법적인 도급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노동자가 문제제기한다 해도 법적인 다툼으로 가서 대법원까지 끝나려면 최소한 5년이 걸린다. 심지어 5년 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이라고 판정이 나도 사업주는 그냥 쌩까면 그만이다. 현대자동차가 그렇다. 최00이 2004년 4월부터 정규직이었다는 판정이 났지만 그는 정규직으로 복직되지 않았다.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비정규직 기간제 파견노동자를 이용해서 더 많이 통제하고 더 쥐어짜서 쓸 만큼 쓰고 버리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이런 방식의 노동의 유연화가 일반적으로 관철되어 기업하기 매우 좋은 나라로 완성되어 있다.

 

파견법의 그늘아래, 불법파견 사업장에서 기간제로 고용되어 14년을 일한 한 여성노동자가 성희롱 당했다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더니 현대자동차는 그녀를 해고하고 업체를 폐업했다. 이제 그녀는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파견법의 그늘아래, 여성노동자는 생산현장에서 관리자가 몸을 달라하면 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합법적인 상식이다.

 

성폭력과 파견법이라는 자본의 두 가지 통제시스템이 만나 야만적인 현실을 그대로 폭로한 것이 이 사건의 의미다.

 

3) 연대, 풍요로운 농성장

 

167일 동안 단 한 사람의 여성노동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동지들의 마음이 풍요롭다. 물론 이미 이 투쟁은 단 한사람의 여성노동자의 투쟁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에 공감하고 헌신적으로 연대해온 동지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농성투쟁을 지지하는 지원대책위의 경우 여성단체와 진보정당들을 포함해 많은 단체들이 결합해 있고 실질적으로 이 농성장이 운영되고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촛불문화제를 포함해 여가부장관 그림자투쟁, 3차례 진행된 전국 현대자동차 영업소 앞 1인 시위, 해외 여성·노동단체들의 현대자동차에 항의하는 연서명 받기 등등의 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새로운 연대운동의 방식에 대한 실험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연대란 투쟁하는 자와 그 투쟁을 지지하는 자가 함께 책임지며 만들어갈 때 풍요롭다는 것을, 일방적인 지침에 갇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실을 확인한다.

 

4) 조직된 노동자, 풍요로운 농성장에 없는 단하나

 

유감스럽다. 15만 금속노조와 80만 민주노총이 큰 싸움은 큰 싸움대로 결의해서 하더라도 작은 싸움 또한 소홀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치되었다. 지난여름 한국 노동운동 진영은 85호 크레인의 김진숙 동지의 투쟁과 유성기업지회의 투쟁을 중심으로 흘러갔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3. 부족한 글을 마무리 하며

 

그녀가 바라는 것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현장으로 복직하는 것이다. 그녀는 한국사회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표해서 투쟁하길 바란 적이 없고, 최초로 공개하며 직장 내 성희롱으로 산재승인 받기를 원한 적이 없다. 심지어 더럽다는 말을 들으며 농성 하는 것을 그녀는 원하지 않는다.

이미 피해자와 대리인, 그리고 연대하는 동지들과 함께 한 농성투쟁은 많은 성과를 남겼다는 것이 그녀에게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 그녀는 다만 성희롱 한 가해자를 처벌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14년 동안 일했던 곳에서 일하고 싶을 뿐이다. 이 요구는 매우 소박다하고 할 수 있는데, 자본의 착취전략과 만나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을 들어야 할 정도의 완고한 시스템에 부딪혀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녀에게 성희롱의 상처를 반복해서 상기하며 고통스러운 것을 감당하라고 요구할 것인가. 빠른 시간 안에 그녀가 복직하길 바란다. 그것이 치유의 시작일 것이다. 또한 그녀 스스로 자신을 성희롱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자본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로 인식하길 바란다. 아직은 첩첩산중, 그녀가 밟아가는 길이 너무 좁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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