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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블 나의 일기장

처음에 이 블로그는

아무도 몰래 숨어서 일기같은 글이나 쓰려고 만들었더랬다.

 

그런데 어찌저찌하다보니, 주변 사람 몇이 이 블로그를 쓰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아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글이 잘 안써진다.

역시 나는 '일기' 정도나 쓸 수 있는 배짱인거다.

일기가 그 속성을 잃는 순간 내 미천한 글발도 증발하고 말았다.

 

앞으로도 가끔 이 블로그에 글을 쓰긴 하겠지만,

어딘가 푸념을 늘어놓을 새로운 공간을 찾아봐야겠다.

다시 종이와 펜으로 돌아갈지도, pc 에만 파일로 남겨놓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은, 약간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때

이 블로그를 찾았던 그 때를 떠올리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다보면,

상대방에게 직접 설명을 듣지 못하고, 그 사람의 말, 행동, 뿐만 아니라 말하지 않음, 행동하지 않음 등등으로부터 그 사람의 마음을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럴 땐 머리카락이 마구 빠질 것 같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추측과 해석을 한 후 그에 따라 나는 어떻게 해야 옳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 줄기차게 고민하기 때문이다.

나 인생 참 힘들게 산다.

 

하여간 최근에 또 그럴 일이 있었다.

머리카락. 빠지다 말다 빠지다 말다 하던 중,

오늘 나를 활활 불타도록 열받게 하는 일이 있어서 (벌금이 또 나왔다.)

그 분노를 연료삼아 운동 겸 마실을 나갔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감정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건 뭐 말 할 필요도 없다.

화는 가라앉았다. 몸이 피곤해진 대신 싸울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더구나 마실 나간 곳에서 나는 처음 만난 이에게 이유 없는 환대를 받았고,

그러한 경험은 작고 아주 개인적인 것일지라도 유토피아의 한 귀퉁이를 맛보게 해준다.

이것만큼 일상에서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것도 없다.

그렇게, 영혼의 산소 포화도를 한껏 높이고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내 양 옆으로는 물이,

왼쪽 끝은 엊그제 갔던 두물머리로

오른쪽은 지난 달 갔던 서해바다에

그렇게 이어져 있었고,

그는 인간이 조금이라도 아름다워지려고 발버둥이 치며 켜놓은 온갖 빛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인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보행자들에게 벨을 울려댈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20대 초반의 무리들은 '자전거온다 한줄로 붙자' 며 나에게 길을 터주었고

내가 지나가며 '고마워요' 하고 중얼거렸고

그들은 스쳐가는 내 등에다 대고 '안녕히 가세요!' 라고 외쳐주었다.

'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뭘 기다리는거야?

 

한강 다리 끝무렵에서 자전거를 세웠다.

전화를 걸어, 상대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던 말을 내가 먼저 입에서 꺼냈다.

내가 하는 말이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며

오랜만에 알 것 같았다.

내가 기다리던 것이 바로 이 목소리였다는 것을.

 

짧은 통화를 끝내고 먼 길을 달려 집에 왔다.

아주 피곤할 줄 알았는데 기운이 남아서

집을 지나쳐서 더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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