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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거리에 대해서

어김없이 그날이 왔다.

어차피 이 묵직한 괴로움과 쿡쿡 찌르듯 갑자기 엄습하는 통증을 무시할 수 없는 김에

달거리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실 난 달거리라는 말을 안쓴다. 생리한다 그러지. ㅎㅎ)

 

생리 기간에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은 개인차가 매우 크다.

어떤 사람은 사나흘, 가끔 생리대를 갈아야 하는 수고만 해주는 것으로 족한 반면,

중학교 때 내 친구처럼, 한달에 이틀은 조퇴나 결석을 해야 할 정도로

사람을 영 제정신이 아니게 될 지경으로 괴롭히는 그런 월경도 있다.

 

당연히 산부인과학에서는 이것을 병으로 정해놓고

병태생리니, 증상에 따른 치료법이니 하는 것들을 모색해놓았다.

그러나 어떤 것도 속 시원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에서 '참을 만할 정도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앞에서 예로 든 내 친구는 자궁을 들어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웬만한 약이나 치료에는 반응하지 않는

못돼먹은 월경곤란을 겪고 있었다.

 

내 것 같은 경우는, 매달 그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패턴을 가지고 찾아온다.

월경 전날은 기분이 매우 울적해진다.

그리고 비관적이 된다.

 

예전에는 이 심리상태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다음날이면 잠잠해질 우울감에 힘들어했었는데,

이제는 '이게 호르몬 때문이겠거니...' 하면서 슬~쩍 무시하고 피해주는 식으로

전술을 바꿨다. 주로, 자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우울이 덜 힘들어진 건 아니다.

 

신체적인 증상으로는 아주 다양한 것들이 있다.

소화기계증상- 복통, 복부팽만, 소화불량, 오심, 변비 또는 설사

신경계 증상- 어지러움, 실신전조증상, 심하면 실신도 한다.

전신부종, 다리로 방사되는(즉, 다리까지 아픈) 요통,

그 기전이 궁금한 항문통증...(대체 이건 왜생기는걸까? 짧고 강렬한 이 통증은 그 강도가 10점만점에 9점이다.)

 

그렇다. 장난 아니다. 남들보다 좀 심한편이긴 하지. 이걸 어떻게 견디냐구?

다행히 이제는 약을 먹으면 저것들 중 일부는 웬만큼 조절이 된다.(원래 생리통은 나이가 들면서 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기 때는 생리가 다가오는게 공포스러웠다. 양호실 신세도 꽤 많이 져봤다.

 

수업 중에 양호실에 가고싶다고 선생님께 말씀 드리면,

남자선생님들은 대체로 묻지 않고, 혹은 묻다가도 학생이 쭈뼛거리면 대충 눈치 채고 보내주셨다.

누가 가르쳤는지 몰라도, '생리통때문에요' 라는 답은 금기시되었다. 심지어 여선생님한테도.

 

우리는 그 말을 쓰는걸 언제부터 금지당했나?

 

생리, 생리대, 생리기간, 생리통.

 

이 말들은 여중 여고에서조차도 마치 암호같은 다른 말들로 대체되어 쓰여졌다.

 

생리는 '그거'

생리대도 '그거' 또는 엄지 검지 손가락을 직각으로 만들어 네모 모양을 흉내내며 '이거 있어?' 라고 하고,

생리기간은 '마법에 걸렸다'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생리통 때문에 하루종일 골골대며 엎어져 있는 친구를 가리키며,

'쟤 어디 아퍼?' 이러면 짝꿍이 대답해준다. '아... 있잖아... 그거땜에' 그럼 대충 아~ 하고 알아듣는다.

 

근데 그런 암묵적인 규칙들을 따르면서도, 문득 문득, 근데 왜 이말을 안쓰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금기를 깬 것은, 의외로 대학교 와서였다.

 

대학에서 워낙 인간의 신체와 생리(physiology)에 대해서 까놓고 배우다보니

생리를 포함한 온갖 생리현상에 대해 사회에서 습득한 관념과 부끄러움이 사라져버린거다.

이건 고정관념을 극복했다기보단 상실한 것에 가깝다.

남자 동기녀석하고 있을 때도, '야, 너 오늘 어디 아퍼?' 이러면

'응, 생리통' 이러면 '어... 고생한다.' 이런 대화가 오간다.

그러나 그런 대화 직후엔 우리가 얼마나 예외적인 상황에 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생리통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생리주기 그래프와 생리통의 치료가 뭐더라? 를 떠올리게 되는

특수한 환경 속에 있는 몇명하고나 나눌 수 있는 대화 아니겠는가. 다른데 가서 저런 버릇이 나와서 남들을 당황시키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나의 여자 동기들은 거의 다 그런 일화들을 몇가지씩 가지고 있다. 금기시 되는 생리현상들에 대한 자동 회피 기재를 상실한 바람에 겪는 '분위기 싸~해지는' 경험들.

 

앗... 또 정해놓은 시간이 지나서 컴퓨터 앞을 떠야한다.

ㅜ.ㅜ

셤만 끝나봐라

빠이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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