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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풀지못한 시간에 대한 해답

천지만물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물결에 휩쓸려,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이 시간에 대해 깨는 것은, 천지 자연과 생명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의 근본이다. 철학의 문제도, 종교의 문제도, 결국 시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간에 대한 인식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인생사 모든 게 시간의 문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우주는 왜 생겨나고, 인간은 왜 태어나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생의 참된 가치는 뭐냐? 이 모든 문제가 시간과 연결돼 있다. 그러면 시간이란 뭐냐? 진정 시간이란 있는 거냐?

『시간의 목소리 Voice of Time』라고, 시간에 대한 논문을 모아 놓은 20세기 명저가 있다.
거기 보면, 우리들이 쓰는 언어라는 게 전부 시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강의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한다.’고 시간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내일 보자", "나중에 만나자."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다." 등등, 인간 활동의 밑바탕에는 항상 시간 의식이 깔려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진화론에서 배운 건 직선 시간관이다. 약 3백만 년 전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있었다느니 하는 게, 전부 직선 시간관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직선적으로 흘러가 버리는 게 아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밀도를 한번 생각해 보자.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시간의 밀도가 다르다. 또 아주 바쁜 낮의 시간대와, 집에 돌아와서 다리 씻고, 편안한 마음으로 텔레비전 보면서 가족들과 대화하는 저녁 시간대의 밀도를 비교해 보라. 같은가? 다르다. 또 잠잘 때는 어떤가? 깊은 잠에 빠지면,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인식 못 한다. 카오스적이다. 이게 우주 내면 질서의 신비다.
 
이 세상 모든 진리의 핵심 명제는, 결국 이 시간이 무엇인지, 시간의 비밀을 푸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에 대해, 아주 성숙한 얘기를 한 사람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다. 그는 『확실성의 종말(La Fin des certitudes)』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시작이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최근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 이 우주는 이전에 측정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백억 년 전에 열린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폭발(Big bang)로 천지가 원시 개벽된 시점 이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곧 천지개벽도 우주가 탄생한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
 
"시간의 시작은 없다!" 이 말은 우리의 닫혀있던 의식을 참으로 시원스럽게 해방시켜 주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만일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을 것 아닌가. 끝은 죽음이다.
 
일찍이 동양사상사에서 그런 멍청한 말을 한 사람이 있는가? 일리야 프리고진의 말대로,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열려있다. 이 사람은 기존의 서구의 시간론을 다 뒤집는다.
 
우주에는 시간의 물결, 변화의 현상은 있으나, 시간의 실체는 없다.
과거는 흘러가서 없고, 현재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으며,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러니 시간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사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자연 변화의 속성은 순환이라는 걸 깨달았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자연에 대한 변화를 들여다보고 깨달은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곧 음양론이다. 한 번은 음(陰)운동을 하고, 한 번은 양(陽)운동을 하는 것!
그 가운데 가장 작은 음양의 변화는, 하루 낮과 밤[晝夜]이 바뀌는 것이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주기만 좀 다를 뿐이지, 낮과 밤은 어김없이 바뀐다. 일음일양지위도! 한 번 음 운동, 한 번 양 운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변화하는 게, 자연의 근원 질서[道]라는 말이다. 낮과 밤의 지속적인 반복, 그것이 순환(circulation)이다.
 
서양의 철인들도 하루 낮과 밤의 순환을 인식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우주 1년으로 확대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수천 년 된 고대 그리스문화를 보면, 그들도 우주의 큰봄, 큰여름, 큰가을, 큰겨울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로,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오는지를 몰랐다. 더욱이 중동의 사막문화에서는, 환경적으로 순환 체험을 전혀 못 한다. 그래서 그 곳 사람들은 직선 시간관 의식이 강하다.

지구 1년을 보라. 지구는 하루에 360도 자전한다. 하루의 주야 동정(動靜)은 모든 변화의 기본이다. 이 만물 생명의 기본 변화인 동정의 리듬을 만드는 어머니 지구가, 1년 동안 360회 자전을 지속하면서 태양을 안고 공전하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면 지구 1년 4계절 생장염장의 변화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구 1년 4계절이 열려서, 봄이 되면 초목에서 새싹이 나와[生], 여름이면 잎과 줄기가 자라서 하늘을 덮었다가[長],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거두고[斂], 겨울에는 쉰다[藏].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지구 1년이 열리고, 봄이 오는 것이다.
지구 1년의 순환도수는, 360도가 360일 순환 반복하므로 12만9천6백 도다. 우주 1년은 360년이 360회 반복된다. 따라서 12만9천6백 년이다.

 
인간의 몸도 음양으로 변화한다. 즉 맥[陰]이 뛰고 호흡[陽]을 한다. 맥이 뛰는 건 혈맥(血脈)이고, 호흡은 기맥(氣脈)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두 맥을 합치면, 하루에 12만9천6백 도수이다(하루의 혈맥 수:72×60×24=103,680, 하루의 기맥수:18×60×24=25,920, 도합 129,600).
 
이 12만9천6백 수는, 천지와 인간 생명 변화의 기본 사이클을 이루는 도수인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오묘한 생명의 창조 주기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천지와 만물의 생성 변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핵심 비밀이 이 우주 1년의 주기에 있기 때문이다.
 
12만9천6백 년!  이 수는 중국 송나라 때, 소강절(1011∼1077)이 하루[一日]라는 짧은 시간의 마디를 가지고 유추하여 찾아낸, 천지 변화의 기본 순환 주기이다.
 
소강절은 『주역』을 한평생 공부하고 "이 천지 밖에 또 천지가 있으면 모르려니와 차천지내사(此天地內事)는 내가 모르는 바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천지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를 깼다.
 
우주의 변화는 참으로 신묘하기 그지없다. 밤하늘을 보라. 별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일천억 개의 별이 모인 게 은하수다. 맑은 날 은하수를 보면, 마치 우유를 뿌려놓은 듯하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밀키 웨이(milky way)라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의 개천(天の川)이라고 한다.
 
천지의 변화운동으로, 끊임없이 만물이 생멸한다. 최근 화성 탐사 결과, 화성에 물줄기 흔적이 있고, 화성에도 생명이 살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데, 하늘은 하늘대로 생명체가 많고, 우주의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혹성인 지구에도, 수많은 생명의 종이 살고 있다. 인간만 해도 70억이다. 바다는 또 어떤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현란하게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생명계의 변화의 이법은 결국 단순한 네 글자인 것이다. 생장염장生長斂藏!
생장염장, 낳아서, 길러서, 거두고, 휴식한다. 그런데 세 번째의 ‘거둔다!’고 하는 염(斂), 여기서 모든 종교와 인간 역사의 총 결론이 나온다.
 
이 우주에서 인간의 삶을, 인간의 생명을, 인간의 역사를 거둔다! 이것이 우주의 가을 소식, 후천개벽 소식이다.
 
그런데 이걸 안 사람이 없었다. 우주 1년 선후천 소식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것은 선천 판안의 소식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 선천 봄여름의 기운을 받아서 나온 성자와 철인들, 그들의 가르침으로는 무엇도 알 수가 없었다. 선천 종교인들이 이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후천 가을 문화의 한소식을 들어보면 진리의 전체 틀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즉 우주는 봄여름을 넘어 가을이 있고 겨울(빙하기)이 있다. 이것이 우주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소식이요, 우주 1년 선후천 소식이다. 또한 이것이 소위 인간 농사짓는 우주 1년 소식이다.
 
이 우주는 인간을 낳아 길러서 가을에 성숙시킴으로써 우주의 이상을 실현한다. 즉 우주는 인간을 통해, 인간의 손을 빌어 천지의 꿈과 이상을 건설한다. 이것이 우주의 존재 목적이다.
 
이 선후천 우주 1년을 오늘날 과학 용어로 말하면 ‘시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주의 일년 12만9천6백년을 한 주기로 볼 때, 봄여름 선천 오만 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가을이 온다.
 
“우주 1년은 필연적인 우주의 법칙이다.” 필연이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꼭 그렇게 되는 이법, 우주의 법칙이다. 하루, 지구 1년, 우주 1년 사계절의 창조 법칙, 그것이 바로 생장염장의 이법이다.
 
 
이 우주 1년 4계절을 전기 후기로 나누어 봄여름을 선천(先天, the early heaven), 가을겨울을 후천(後天, the later heaven)이라고 한다.
 
우주 1년 12만9천6백 년에서, 선천개벽으로 처음 인간이 태어나 살 수 있는 기간이 선천 5만 년, 또 앞으로 가을개벽 후 천지가 폐장하여 생명 활동을 쉬는 겨울(빙하기)이 올 때까지, 인간의 생존기간(문명의 지속기간)이 후천 5만 년이다.
 
이 5수에는 참으로 절묘한 우주의 창조 섭리가 들어있다.
동방의 상수론(eastern numerology)으로 보면 5수는, 음양 변화를 구체적으로 일으키는 작용수(作用數)다. 그것을 5황극, 황극수라고 한다. 우리 몸에서 5수의 구조를 찾아보면, 오장(五臟)이 있고, 좌우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가 있다. 좌우 합하여 10수는 기능적으로 가장 완전한 수다.
 
인간이 탄생하여 성장하는 과정, 인간이 자기계발하는 영성의 성장 과정이 선천 5만 년이고, 인간이 완전한 깨달음의 진리를 통하여 성숙한 가을 인간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후천 5만 년이다. 선천과 후천!
 
흔히 인간의 삶의 과정을 인간이 생명으로 태어나기 이전과 이후의 시간으로 나누어, 선천 후천이라고 한다. 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재주를 타고났다."고 할 때, 또 어떤 환자에게 "이 병은 후천적으로 생긴 병입니다."라고 할 때, 그런 의미다.
 
한편, 인식론의 문제로 보면, 태초의 선천개벽은 경험 이전의 사태다. 예를 들어, 내가 태어나기 이전, 나라는 존재가 있기 이전,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 나무도 바다도 하늘의 별도 천상귀신도 아무 것도 없었던 인식 이전의 사태, 곧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이 선천이다. 그에 대해 생각한다거나, 거기에 어떤 개념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언어 이전의 근원적인 생명세계인 것이다.

 
우주 1년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봄의 시작인 선천개벽도, 인간이 알 수 없는 경험 이전의 사태다. 그런데 왜 우주 1년의 전후반 시간 과정을 ‘선천(先天, the early heaven), 후천(後天, the later heaven)’이라고 하여, 하늘[天]로 나타내는 거냐?
 
그것은 모든 시간의 변화, 진리의 근원이 하늘[天]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백화문을 보면, 일상생활에서 하늘이란 말을 시간 개념으로 쓰고 있다. ‘오늘(今天)’, ‘내일(明天)’을 말할 때, 하늘 천(天)자를 쓴다. 그것은 시간의 주재, 근원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 서양의 화이트헤드라는 사람이 서양철학의 뿌리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느냐 하는 것을 정리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앞으로 오는 세상에 대해 철학의 사명을 정리한 것이다.
 
■ 그는 첫째, 서양철학은 16세기로부터 시작해서 19세기 과학혁명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최대의 오류를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즉 과학적 유물론(Scientific Materialism)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물을 분석하고 측정하는 데 치우치다보니, 사물의 변화과정을 본래의 전체 목적과 단절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 저지른 절대적 모순(absolute contradiction)이라는 것이다. 워즈워드 같은 문학가들은 천지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모든 생명과의 하나됨 등 경탄할 만한 인간 삶의 미학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과학자들이 너무도 협소하게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과학에 대해 비판하는 걸 보면 "과학자들은 분석하기 위해 죽인다!"는 것이다. 실험을 하려면 날마다 죽이고 자르고 하지 않는가.
 
■ 이렇게 지적하며 화이트헤드는 "모든 만물은 살아있고 변화를 지속한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적 전진의 연속이다. 모든 것은 자기실현의 과정에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성숙되어 대자연과 하나가 되면 내가 생명의 실재 자체가 된다. 과정이 실재가 되고 실재가 과정이 되는 세계가 우리들의 생명세계다."이런 아주 기가 막힌 얘길 한다.
 
■ 그것을 유기체적인 세계관이라 한다. 우주 만유는 한 덩어리라는 것이다. 무엇 하나도 이 대우주생명체에서 분리될 수 없다. 작은 먼지 하나도 이 대우주라는 큰 몸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요소라는 것이다.
 
■ 그래서 자기의 역할은, 과학적 메커니즘(mechanism:기계주의), 즉 과학적 유물주의를 다 부수어 버리고 오거니즘(organism:유기체), 즉 생명의 참모습, 살아있는 생명의 본래 세계관을 서양 과학문명사에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 나는 화이트헤드를 서양의 김일부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앞으로 오는 후천 생명문화, 인존문화人尊文化, 신인합일神人合一 대통일 세계의 비전을 보여주고 후천 조화선경을 인식할 수 있는, 성숙한 철학적 안목을 틔워주는 하늘에서 내려보낸 철학자라고 본다.
 
중세, 근대, 현대 문명의 흐름
근대 문명이란 무엇인가?
중세 때의 인간의 자아自我와 근대의 자아(modern ego)는 어떻게 다르냐?
 
근대의 계몽주의啓蒙主義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인간이 자기 스스로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거다. 그런 역사의 지평을 연 사람이 데카르트(1596∼1650)다. 그가 말한 건 인간 생명의 중심에는 이성理性의 불이 타오른다는 것이다. 자기 홀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 그런 천부적인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너무너무 위대한 말이다. 바로 여기서 인간이 종교의 압제로부터, 신神 중심의 도그마로부터 완전히 풀려난 것이다.
데카르트야말로 인간을 해방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철학은 이원론적인 사고 때문에 또 새로운 종말을 맞이한다. 그게 과학의 유물주의唯物主義 때문인데. 그래서 그것을 뿌리뽑기 위해서 새로운 사변 철학의 도끼를 들고 나온 인물이 누군가? 바로 화이트헤드(1861∼1947)다.

근대 문명은 유물주의에 빠져서 인간 사유의 근본 자리, 진리의 뿌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신神을 부정해버린다. 형이상학形而上學을 다 무너뜨린다. 그래서 형이상학은 멍청한 철학자가 공부하는 분야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런 걸 선언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이 니체 같은 사람이다. “신은 죽었다.”고 그러나 니체가 말한 것은 사실은 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낡은 신, 잘못된 신에 대한 사고로부터 해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문명의 발전 과정을 보면,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3대 명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 게 불란서혁명부터다. 그런데 영국 같은 데는 일찍이 한 7, 8백 년 전 마그나카르타 대헌장부터 그게 태동되었다. 당시 왕권이 너무 독재로 흘러서, 그걸 견제한 것인데. 그러다가 결국 시민정부 수립을 통해 민주화로 가는 근대 문화의 기반이 형성되면서 왕도 문화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근대 역사에서는 대개 이런 주제들이 형성되면서, 근대의 자아(modern ego)라는 것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서양 기독교 중심으로 보면, 이런 과정에서 천주님에 대한 의식이 지식인들부터 점점 희박해져서 나중에는 전반적으로 신을 부정하게 된다. 동양에서도 상제 문화가 완전히 몰락했다. 
 
우주의 창조 이법, 이(理)
이(理)란 문자 그대로 이법(理法, principle)이다.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우주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 하는 만물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이치를 말한다.
 
리(理)는 이법, 섭리, 우주의 창조 법칙이다. 곧 자연과 인간이 태어나고 살다 죽는 대자연의 이법을 말한다. 우주는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인류의 기원과 인간의 삶의 목적, 인류의 미래 등 모든 것이 이 리 자 속에 들어 있다.
이 이법을 알아야 무지로부터 해방된다. 이법을 제대로 깨야 사람이 밝아진다. 자연 속에 있는 숱한 이치를 찾아내는 것, 이것이 역사의 과정이요 문명의 과정이다. 그렇게 해서 자꾸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인간은 밤이 되면 불을 켤 줄 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바로 그 이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는 두 가지 전류 변화가 있다. 양전기, 음전기, 이것이 음양의 이치다.
 
우주 만유, 사물에는 두 가지 변화의 얼굴이 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음적인 게 있으면 양적인 게 있다. 그 변화의 이치가 바로 음양의 원리다. 이 음양을 한마디로 태극이라고 한다. 이 태극은 무극에서 나왔다. 상제님 진리의 본체론을 보면 음양오행 원리가 있다. 음양이 구체적으로 오행이다.
 
리(理)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가 앞에서 말했듯이 이 우주에는 인간 농사짓는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다. 즉 우주가 인간을 낳아 길러서 그 뜻을 이루는 우주 1년 사계절의 순환 법칙이 그것이다.
 
우주 1년은 129,600년이며, 이 중에서 인간이 생명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선천 5만 년, 후천 5만 년이다. 그리고 나머지 29,600년은 우주의 겨울로, 과학에서 말하는 빙하기다.
 
지금 우리는 우주 1년의 봄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넘어가는 문앞에 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인간의 문제는 바로 이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의 문제이다.
 
 
둘째, 이번 우주 1년에서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천지의 이법이 상극相克이라는 것이다.
선천 봄여름에는 천체가 기울어져서 하늘과 땅의 관계가 삼천양지(三天兩地)로 되어 있다. 즉, 양(陽)인 하늘은 셋이고, 음(陰)인 땅은 둘이라고 하는 불균형 때문에 기울어진 지축을 중심으로 양기가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자연의 불균형 부조화, 음보다 양이 훨씬 강한 천지의 구조 속에서 상극의 운(運)이 조성된다.

원리적으로 상극의 현상을 이해를 할 때는 서로 상(相) 자 이길 극(克) 자, ‘두 사물 사이에 서로 극한다’는 의미로, 본래 뜻은 한쪽이 상대를 물리친다, 제압한다는 말이다. 순수한 자연의 봄여름의 법칙, 대자연의 이법으로서의 상극을 영어로는 조정한다, 제어한다는 의미인 뮤츄얼 리스트레인(mutual restrain)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
 
자연 속의 상극은 투쟁 전쟁 죽음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음양(陰陽)의 상극으로 ‘서로를 제어한다’는 의미다. 이 극의 이치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균형되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음과 양 상호간의 작용을 조정 제어하는 조화의 법칙이 된다.
이 상극의 이법적 환경속에서는 그 상극 기운의 영향을 받아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하는 등 상호투쟁을 하게 된다. 문명 속에서 일어나는 이 때의 상극은 영어로 뮤츄얼 컨플릭트(mutual conflict)로 번역을 해야 맞다.
이렇게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이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인간의 문명속에서 상극을 쓸 때는, ‘정말로 극이 너무 많아’ ‘장애가 너무 많아’ ‘넘어서야 될 장벽이 너무 많아’ 라는 의미로 쓸 때는, 인간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모든 비극과 수많은 재앙들, 자연재해, 하루도 쉬지 않고 터지는 교통사고, 수많은 인간들끼리의 분쟁과 같은 그러한 비극의 근원적 원인으로서 상극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순, 갈등, 죄악, 전쟁, 모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들이 여기에 다 들어간다.
 
이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 속에 서교의 원죄(原罪) 문제, 불가에서 말하는 인간의 무명(無明)과 업장의 문제가 다 들어간다. 선천문화권에서 인간론에 대해 언급한 숱한 문제들이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았다’는 그 한마디 말씀으로 다 풀어지는 것이다.
 
 
상극의 이치’란 자연의 이법으로서 하늘땅이 만물을 다스리고 길러내는 생성, 창조의 법칙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길러내므로 인간의 역사, 문명속에서는 이 상극이 하루도 싸움 그칠 날 없는 비극적 세상을 만들었다.
 
선천은 상극의 이법이 인간 역사속에서는 상쟁(相爭)이 돼서 피비린내 나는 상호투쟁, 대결, 생사를 판가름 짓는 전쟁 전란으로 화해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웠고, 어찌할 수 없는 상극의 자연이법, 상극의 운수로 인해 선천의 모든 인간과 만물은 원한을 맺고 사는 상극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극의 천리가 인사로는 원한으로 맺히기 때문에, 인간역사의 뿌리깊은 원한의 갈등은 인간의 도덕적 교화만으로는 전혀 풀릴 수 없는 문제다.
 
선천 봄여름에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비극의 원인은 단순히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극의 이치 때문에 조화와 균형이 깨져 있는 선천의 자연환경 자체가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금 지구에는 물, 마실 공기, 식량, 에너지 등이 부족하다. 언론에 공개된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를 보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선천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신들의 세계조차 상극의 지배를 받으며 태어나고 살아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우주의 전 역사과정은 선천 우주의 봄여름천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연출이었다.
 
선천개벽으로 봄여름이 열려서 인간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는 상극이 우주의 근본 질서가 되어 현실역사가 둥글어간다. 즉, 음과 양이 만물을 낳아 길러 분열하는 쪽으로 우주의 생명 질서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지구상에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상극이 인간역사의 경쟁원리가 되어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를 계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꺼꾸러트려야만 했다. 이것이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특히 종교전쟁의 역사를 보라. 얼마나 참혹한가. 거기에 무슨 신이 있고, 믿음이 있고, 정의가 있는가. 오직 독단과 죽음밖에 없다.
 
올바르게, 정의를 위해, 진리의 이름으로 행하려고 했으나 결국 서로 충돌하고 싸우고 죽였다. 여기서 세세연년 원과 한이 맺히고 쌓여온 것이다.
 
 
미국의 지성인 캔 윌버가 한 불교 승려에게 물었다. “중국의 불교 역사에서 깨진 자가 얼마나 됩니까?” 이에 대해 승려가 “크게 잡아도 천만 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캔 윌버가 다시 “그럼 일본 역사에서는 얼마나 됩니까?” 하자 “낫 모어 댄 어 더즌(Not more than a dozen).” 이라 했다. 기껏해야 한 여남은 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천종교 역사의 현주소다.
 
앞으로 오는 우주의 가을은 자연의 질서가 상생相生이요, 인간 역사의 질서도 상생이 바탕이 된다. 상생이란 무엇인가? 상생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도수(天度地數)다. 하늘땅을 중심으로 말하든, 남녀의 인권문제를 얘기하든, 아니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신의 관계가 됐든, 모든 음양의 부조화가 정正도수로 바로잡히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천지 이법에서 비롯된 것


인간은 왜 고통 속에 사는가?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다고 한다. 구렁이로 상징되는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처럼 똑똑해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대가로 세세토록 인간들이 원죄의 씨를 안고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의 깨달음과는 잘 안 맞는 얘기다. 본래 동양에서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그 신성과 덕성이 똑같다고 말한다.
 
불교도 십이인연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감각세계에서 근본무지인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근본무명fundamental ignorance’에 휩싸여, 온갖 죄를 짓고 악업을 받고 육도윤회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그 근본 틀이 같다. 또 이 죄업이니, 악업이니, 윤회니, 하는 것이 선천의 상극 판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가 없다.
 
모든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비극의 문제는 어디서 오는 거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선천이 상극의 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천에는 천지부모의 몸이 동북방, 양의 방향으로 기울어져서 만물을 쏟아냈다. 동과 서가 부조화하고, 남과 북이 부조화하고, 남자와 여자, 모든 사물들 사이에 조화가 깨져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하고 남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또 용서하면서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을 해 온 것이다.

선천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정복의 역사다. 16세기에 남미의 인디언들 8천만 명이 스페인 정복군들에 의해 참혹하게 죽어 인디언들이 거의 다 멸망을 당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런 전쟁사가 너무도 숱하다. 미국에 정착한 백인들이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흑인 5천만 명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고, 짐승처럼 부리고 학대하고 죽였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 이제 상극의 질서가 문 닫고 상생의 새 질서가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상생을 말한다. 정치인들은 상생의 정치를 해 보자고. 그런데 그들은 상생이 뭔지, 상생의 진짜 뜻은 모른다.
 
‘상생’은 하늘과 땅과 인간과 우주 만유가 가을천지 개벽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을 천지부모와 더불어 거듭 나지 못하는 생명은 어떻게 되는가? 영원히 소멸되어 버린다. 가을개벽은 인류사의 궁극의 마지막 심판이다. 천지에서 인간농사를 짓는데 하늘이 오늘의 우리를 내서 길렀다. 무얼 위해서인가? 바로 이 가을 천지의 천지 부모와 함께 거듭나라고 기르는 것이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천지의 질서가 봄여름은 분열, 가을철은 통일이다. 초목농사로 얘기를 하면, 봄에는 뿌리에서 기운이 발동해서 쫙 올라가 줄기를 향해서 뻗어나간다. 앞마당의 단풍나무를 보면 겨울철에는 이파리가 죽어서 아무것도 없었는데 3월이 돼서 봄비가 한번 딱 내리니까 며칠 사이에 요만한 버찌가 줄기마다 나온다. 그러다 며칠 뒤에 보니까 이파리가 쭉쭉 나와서 일주일 후에는 하늘을 다 덮어버렸다.
 
봄여름의 기운은 그렇게 발동하는 것이다. 기운이 천지를 향해서 뚫고 올라간다. 그렇게 분열 생장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성장이 딱 끝나면서 모든 기운이 뿌리로 내려가고 그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인간도 성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뿌리로 돌아가야 된다. 가을에는 근원으로 돌아가야 살아남는다. 상제님은 이 가을개벽의 정신을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고 하셨다. 뿌리로 돌아가야만 인간으로서 열매 맺는 천지의 기운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와 나의 뿌리가 뭐냐? 부모와 조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원시반본의 가을 정신 때문에 나의 뿌리인 부모와 조상을 잘 위하지 않으면 열매 맺는 기운을 못 받는다. 즉 상제님 진리를 못 만난다. 생명이란 뿌리로부터 모든 기운을 받는다. 뿌리로부터 큰 기운을 받아야 큰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인생은 나 홀로 사는 게 아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 아버지, 내 조상이 있다. 몇 십 대 몇 백 대 조상이 있다. 선천 봄여름, 내 조상의 모든 삶의 자취가 이번에 나에게 와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 조상이 나의 생명의 근원이고, 내 생명의 힘이고,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해주는 인생의 활력이다.

천지에서 인간을 내면, 인간은 자연 속에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건설한다. 즉, 자연이 변화하는 길과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의 과정, 즉 문명의 발전과정이 일치하는 것이다. “자연섭리라 하는 것은 천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성숙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 역사가들은 이것을 모른다. 그들은 천지의 이치를 모르니까, 인간의 역사라는 건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천지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그래서 상제님이 “이언俚言에 ‘짚으로 만든 계룡鷄龍’이라 하나니, 세상이 막 일러주는 걸 모른다” (2:33:6)고 하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때를 모르는 철부지 인생이라는 말씀이다. 천지의 계절이 지금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를 모른다. 천지의 때를 모른다!
하루 낮과 밤, 지구의 1년 사계절 변화 밖에 모른다. 이 우주에서 나를 내서 길러내는 천지부모의 손길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명문대학을 나오고, 무슨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높은 권좌에 있고, 어떤 분야의 대가라 해도 천시天時, 때를 알지를 못한다.
 
 
개벽(開闢)이란 무엇인가? 개벽이란 ‘열 개’ 자, ‘열 벽’ 자다. 연다, 개방한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열고 또 연다는 것인가?
천지의 질서가 새로운 차원으로 열린다는 뜻이다. 하늘도 열리고 땅도 열린다. 그리하여 천지의 새 질서가 열리는 과정에서 인간 문명의 틀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명개벽이다!
어떻게 해서 그것이 가능한가? 지구촌에 살고있는 모든 인간의 정신이 바뀐다. 곧 심법(心法)을 개벽한다는 것이다. 그럼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바꾸는가?
 
지난날 인류가 살아온 역사 과정은 선천세상이다. 쉬운 말로 봄여름 세상! 그런데 앞으로 오는 가을겨울 세상은 후천이라고 한다. 후천 세상에는 지금까지 인간이 살아온 자연환경이나 인간이 누리는 문명이 완전히 달라진다. 따라서 선천세상에서 교육받아 길들여진 것, 선천문화에 세뇌되어 요지부동으로 자기 것을 올바르게 비판할 줄도 모르는 맹목적 신앙, 이런 걸 전부 씻어내야 된다.
 
그것은 천지의 질서가 바뀌기 때문이다. 천리天理가 바뀌고 지리地理도 바뀐다!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는 게 무엇인가? 한 마디로 가을개벽, 철학적 종교적 언어로 후천개벽이 온다!  자기 나름대로 한 부분을 전하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에 많다. 서양 사람들이 전하는 대로 세계지도가 완전히 바뀐다. 상제님이 말씀하신 바, “서양은 큰 방죽이 된다. 일본은 물로 쑥 들어간다.” 여기에 종교나 이념, 철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파티마 제3의 비밀을 보면, 성직자나, 목자, 신자나, 비신자나 함께 다 멸망당한다. 그게 사실은 카톨릭의 종말을 얘기한 것이다. 그걸 뜯어본 바오로 6세(1897∼1978)가 실신할 뻔했었다는 것 아닌가. 그들이 머지않아 천지의 질서가 바뀌는 개벽에 대해 경고를 하지만, 개벽이 어떻게 해서 오게 되는 것인지, 원리적으로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거 석가, 공자, 예수, 노자 등 동서양의 성자나 철인들 가운데 누구도 체계적으로 전한 이가 없다. 그러면 개벽 이야기로 들어가기 위해 선천문화의 결론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불교의 결론, 기독교의 결론, 유교의 결론, 주역의 결론, 동서문화의 결론이 개벽이다, 개벽!  사실 그들은 개벽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얘기 못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가 보아도 그것이 ‘아~ 앞으로 오는 개벽을 말한 것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예수 성자가 “돌멩이 위에 돌 하나도 남김없이 다 넘어간다.”고 했다. 지구촌에 돌멩이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돌멩이가 다 넘어간다, 이 천지 간에 안 넘어가는 게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에서 전하는 새 하늘 새 땅도 개벽문제의 결론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사도 요한이 로마에 들어가 전도하다가, 밧모섬에 귀양가서 백 살이 넘도록 기도하던 중, 예수를 내려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이 직접 새 우주를 열어주시는 걸 본다. 그래서 그는 “나는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았습니다.” 하는 고백을 남겼다. 이것은 신천지新天地가 열린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는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 구원론의 최종 결론이다. 더 이상이 없다.
 
불교의 결론도 개벽이다. 석가모니가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법으로는 이 세상을 온전히 건져내지 못하고, 저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님이 오신다.”고. ‘미륵님의 법으로 지구촌 만백성의 마음을 열어주어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된다.’ 이것이 미륵님이 여시는 용화낙원의 실체다. “새 부처님이 새 진리를 가지고 오신다. 그 때는 우주의 별자리가 바뀐다.” 우주질서가 바뀐다! 이것이 불교의 최종 결론이다.
 
『주역』을 보면, 유가의 결론도 개벽이다. 즉 “성언호간(成言乎艮), 간방(艮方)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동북 간방 소식을 전하고 있다.
 
천지가 왜 뒤집어지는가?
이것을 이치적으로 처음 전한 분이, 바로 이 땅에 태어난 19세기 후반의 일부(一夫) 김항(金恒) 선생이다. 그는 앞으로 주역 세상이 끝나고 정역세상이 온다. 곧 “선천에서 후천으로 가면서 우주질서가 바뀐다. 타원형의 지구궤도가 정원형 궤도로 바뀐다.”고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연의 이법이 저절로 바뀌는 게 아니고, “상제조림(上帝照臨)이라.”, 상제님이 그 성령을 인간 세상에 밝게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천지의 질서를 바꿔놓으시는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지금 동양철학을 한다는 학자들이 ‘정역’을 제대로 모른다. 왜 그런 것일까? 도를 안 닦아서, 신도(神道) 체험을 못 해서다. 그러고는 자기들 머리로 납득 안 되는 건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근에 와서 몇몇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선천 성자들의 총결론
개벽이란, 지구촌의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우주질서로 들어가는 우주의 재탄생 문제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문제다. 이것은 어떤 철학자나 불가의 승려나 로마 교황이 말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3천년 전 석가모니의 깨달음의 총결론이 ‘새 부처님이 온다’는 것이다. 석가가 자기 아들 라훌라와 수석성도 가섭, 군도발탄, 빈두타 등 네 제자에게 “너희들은 내 법을 받아 열반에 들지 말고, 저 도솔천 천주님의 법을 받아 열반에 들라.”고 했다. 미륵불의 도법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라는 말이다.
 
예수의 결론도 “하늘에 아버지가 계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실존하신다, 그 아버지가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지상천국을 여신다.”는 것이다. 선천 성자들의 총결론이 “천지질서가 바뀌는 개벽을 한다. 우주가 재탄생한다. 그 속에서 모든 인간은 우주와 더불어 새롭게 탄생해야 한다.”는 개벽소식이다.
그것을 원리적으로 말하면, 선천세상이 끝나고 앞으로 후천 가을세상이 온다. 그 때가 되면 가을천지 기운을 받아, 그 누구도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인간 생명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때는 도솔천의 천주님인 미륵불, 하늘에 계신 아버지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다. 공자, 석가, 예수의 진리로는 그것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대우주 통치자 하나님이 직접 오시는 것이다.

우주1년으로 우주의 전 역사, 인류 문명의 전 역사,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선천 종교의 사명 등 모든 게 다 설명이 된다. 우주의 봄철에 신교에서 유불선 기독교가 갈라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상제님이 오셔서 뿌리와 줄거리의 진액을 다 모아서 열매 문화를 열어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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