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는 요즘 매주 금요일마다 세월호 촛불집회를 하는데요, 세월호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번 집회에서는 공룡이 밀양 송전탑 투쟁에 관한 발언을 요청받아서 하려고 했는데, 비 때문에 촛불집회가 취소됐습니다. 제가 어디 가서 발언 같은 걸 제대로 해 본 적도 없고 워낙에 말을 실시간으로 잘 하는 편도 아니라 발언 내용을 미리 적어 놨었는데 발언은 못했지만 블로그에 남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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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의 오재환입니다.

최근 밀양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에 관심가지고 걱정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난 6월 11일에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설치되었던 세 군데의 농성장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이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 한전, 공무원은 전부 한 통속이 되어 인권이든 법이든 온통 무시해 가면서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수녀님들, 연대하러 온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습니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목에 건 쇠사슬에다가 사람이 다치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절단기를 들이대고, 절실한 외침과 비명에는 귀를 닫은 채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사람을 짐짝처럼 들어서 날랐습니다. 경찰들은 이 분들에게 직접 몸으로 폭력을 가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상관없는 일을 구경하는 것처럼 실실 웃기도 했고, 심지어 단체로 브이자를 그리며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브이자는 뭔가에 대해 승리했다는 표시이기도 하죠. 실제로 경찰, 한전, 더 나아가서 정부와 그 밖에 핵발전으로 이들을 얻는 세력들은 이제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농성장까지 철거가 되고 공사가 재개되었으니, 이제 마지막까지 악을 쓰던 시골 노인들도 모두 포기하고 자기 살 길을 찾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물론 행정대집행이 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당하시고 조금 낙심하시긴 하셨지만, 아직 싸우겠다는 의지가 가득하십니다. 밀양에서는 여전히 촛불집회가 열리고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얼마 전에는 밀양 주민들이 서울의 경찰청에 가서 이번 행정대집행에 항의하고, 경찰들에게 보란 듯이 승리의 브이자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밀양의 주민들을 가지고 어떨 때는 보상금 좀 더 타 내보려고 쇼하는 이기주의자라고, 어떨 때는 외부 세력의 선동에 놀아나는 순진한 시골 노인네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행정대집행 이후 밀양 주민들은 자포자기 하거나 자기 몸 건사하려고 뿔뿔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밀양 송전탑의 문제를 넘어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고쳐야 한다고, 송전탑 한 개라도 못 세우면 핵발전도 안 되는 거니 우리가 캐 내 버리자고 얘기하고 계십니다.

이토록 끊임없이 솟아올라서 경이롭기까지 한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힘은, 이 분들의 삶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밀양을 살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하는 주민들이, 당신들 살아온 얘기를 하는 걸 받아 적어서 편집한 책인데요, 송전탑 투쟁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이분들이 살아온 삶과 그 태도가 주는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책이라 다른 분들도 많이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국가가 저지르는 폭력을 온 몸에 꾹꾹 눌러 담으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지금까지 자기 삶의 터전을 일궈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만 살기 위해 애쓴 게 아니라, 다른 이들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체득해 오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지금 겪고 있는 송전탑 문제도, 평온한 삶 가운데에 잠깐 벌어진 일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이어진 고난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전, 경찰, 정부와 싸울 때도, 물론 싸울 땐 정말 힘차게 싸우시지만, 저 잔인한 사람들마저 품고 '그렇게 살아선 안 된다'라고 설득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삶과 싸움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 싸움 자체가 삶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삶과 남의 삶이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 했으면 이제 그만 접고 내 인생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을 수 없고, 그래서 다시 저렇게 힘을 내실 수 있는 겁니다.

밀양의 주민들이 싸움을 끝내지 않았으니, 우리도 행정대집행이라는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충북에서는,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행정대집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일인시위를 진행했습니다. 밀양 송전탑에 문제에 대한 앞으로의 구체적인 투쟁 계획 같은 건 아직 안 나왔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밀양의 주민들과 연대자들도 흩어지지 않고 계속 힘을 모으고 있고, 밀양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사람 많은 거리에서 '밀양을 살다' 책을 함께 읽는 독서회를 개최하는 등 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앞으로도 주눅 들지 말고,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행동이라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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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행정대집행 규탄 충북지역 1인시위 / 한전 충북 본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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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행정대집행 규탄 충북지역 1인시위 / 한전 충북 본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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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행정대집행 규탄 충북지역 기자회견 / 청주 성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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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땡땡책협동조합의 행동 독서회 '밀양의 소리를 들어라' / 광화문 교보문고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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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땡땡책협동조합의 행동 독서회 '밀양의 소리를 들어라' / 광화문 교보문고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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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1 01:25 2014/06/2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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