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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 스탈린주의적 퇴행의 20년

  • 분류
    트로츠키
  • 등록일
    2008/12/23 04:13
  • 수정일
    2008/12/23 04:13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 응답 RSS
트로츠키 1938년 스탈린주의적 퇴행의 20년 이 글의 제목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10월 혁명의 기본적인 성취, 즉 국유화된 소유와 현재의 정부에 의해 추구되고 있는 정책 사이의 차이를 입증할 필요가 있다. 혁명적 소유양식과 테르미도르, 즉 반동적인 정책 사이에는 모순이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테르미도르적인 정책이 혁명적 소유양식을 아직까지는 타도하지 못했거나 감히 하려고 하지 않았거나 혹은 그렇게 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현 정부의 경향들은 볼셰비즘의 강령과는 정반대이다. 그러나 혁명에 의해 수립된 기관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한, 관료는 볼셰비즘의 오래된 원칙들에 자신의 경향들을 외견상 적응시키도록 강제된다. 관료는 계속해서 10월의 성스러운 약속으로 맹세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를 불러일으키며, 변함없이 소비에트 체제를 사회주의로 언급한다. 인류 역사상 현재의 소비에트 관료만큼의 거짓과 위선의 정부는 결코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계획경제의 도움으로 생산력의 급속한 발전을 획득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소유의 보존은 그 자체로, 그리고 그 자체 안에 거대한 진보적 중요성을 가진다. 참으로, 관료에 의해 발표된 경제 통계들은 전혀 신뢰할만 하지 않다. 이 통계들은 체계적으로 실패는 덮어가리는 반면 성공에 대해서는 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오늘날 소련의 생산력이 여전히 세계의 다른 어떤 나라들에서도 없었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누구라도 소비에트 정권을 파시즘과 동일시하면서, 예를 들면 막스 이스트만 처럼, 이러한 측면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자는 독일 속담 처럼 더러운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함께 던져버리는 자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힘을 증가시킴이 없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파괴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후진성과 빈곤에서 수립될 수 없다. 사회주의를 기술적인 전제는 지난 20년 동안 소련에서 거대하게 진보했다. 그러나 이것은 관료의 공적이 결코 아니다. 반대로, 지배 계층은 생산력 발전에 대한 가장 커다란 브레이크로 변형되었다.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경제는 생산자의 이해관계와 소비자들의 필요를 자신의 가이드로 삼아야만 한다. 이들 이해관계와 필요는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만개한 민주주의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완전한 표현을 찾을 수 있다. 이것만이 오직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준비하고 그것을 삶에서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메카니즘이다. 정치적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노동자들 현재의 지배 도당은 소비에트, 당, 노동조합, 그리고 협동조합의 민주주의를 관료의 지배로 대체해왔다. 그러나 천재들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관료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경제의 모든 부문 사이의 필요한 비율들, 즉 생산과 소비 사이의 필요한 조화를 확보할 수 없다. 스탈린의 정의의 사전이 "사보타지"로 정의하는 것은 실제로는 관료적 지배방식의 사악한 결과의 하나이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불균형, 낭비, 그리고 혼란에 대한 선언들이 계획경제의 기초 자체에 대한 잠식을 위협한다. 관료는 변함없이 "죄인"을 찾는다. 대부분의 경우, 사보타지하는 자들에 대한 소비에트 재판의 숨은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스탈린의 개인적인 "권력욕"에서 현재 정권에 대한 설명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피상적이다. 스탈린은 개인이 아니라 한 계층의 상징이다. 권력은 실체가 없는 어떤 것이 아니다. 권력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가치를 처분하고 전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당연히 완전한 평등은 한번의 도약으로 달성될 수 없다. 노동에 대한 지불에서의 특정한 차별화는 주어진 상황에서 노동 생산력을 증가시키려는 목적으로 이루어된다. 그러나, 사회가 평등의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특권의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사회의 성격을 분석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떠한 의구심을 위한 공간도 남겨두지 않는다. [소비에트] 사회의 차별화는 경제적 필요성의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관료의 물질적 특권이 빙하처럼 증가해왔다. 대중으로부터 엄청나게 고립되어 있는 관료는 스타카노비즘이라는 기치하에 새로운 노동귀족과 콜차크 귀족층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국민소득의 분배가 이번에는 정치적인 통치를 결정한다. 지배계층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민주주의를 허용할 수 없는데, 이것은 관료계층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무자비하게 약탈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관료가 당연히 거주장소, 식품, 의류, 수송과 통신 수단뿐만 아니라 교육기관, 언론, 문학, 스포츠, 영화, 라디오, 극장, 박물관 등까지 고려하여 전국적으로 소비되는 자금의 절반 이상을 삼켜버린다는 것을 확립된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록 관료가 여전히 10월 혁명의 기관들과 전통들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도록 강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관료의 정책이 인민의 이해관계, 그리고 사회주의의 이해관계와는 정반대라는 것을 완전히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소비에트 관료의 역할 똑같은 기본적인 모순이 국가, 군대, 가족, 학교, 문화, 과학, 예술 등과 같은 사회적 삶의 모든 영역에서 확인될 수 있다.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장치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노동인민들이 착취자들의 저항에 대처하고 착취를 분쇄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단지 일시적인 기구이다. 계급이 없는 사회에서 강제의 기구로서의 국가는 점차적으로 사라져야만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자기행정에 의해 대체되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혁명 이후의 20년만에 소비에트 국가는 가장 중앙집중화되고 독재적이고 잔인한 억압과 강제의 기구가 되었다. 따라서 소비에트 국가의 진화는 볼셰비키 강령의 원칙들과는 완전히 모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의 이유는 이미 말했었던 사회가 사회주의를 향하여 진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모순들을 부활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에서 발견된다. 만약 그 과정이 이런 방향으로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불가피하게 계급의 부활, 계획경제의 청산, 그리고 자본주의적 소유의 복구로 귀결될 것임에 틀림없다. 국가의 통치는 이 경우 필연적으로 파시스트가 될 것이다. 10월 혁명은 자신의 임무들 중의 하나로 군대의 인민속으로의 해체를 선포했다. 이것은 무장 군대들이 민병대의 원칙에 기초하여 건설됨을 가정했다. 오로지 인민들을 그들 자신의 운명의 무장한 주인으로 만들어내는 이런 유형의 군대 조직만이 사회주의의 성격에 조응한다. 첫 10년 동안에, 병영 군대의 민병대로의 이행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관료가 노동계급의 독립성에 대한 모든 표현을 분쇄하는데 성공하는 순간으로부터, 관료는 공공연하게 군대를 자기 자신의 지배 기구로 변형시켰다. 민병대 체계는 완전히 파기 되었다. 현재 2백만의 군대가 그 성격상 순수한 병영 군대이다. 장군과 사령관과 같은 장교 계층이 다시 만들어졌다. 군대는 사회주의적 방어의 기관에서 관료 특권에 대한 방어의 기관으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원래는 방어과 관련한 문제에 집중되었던, 소규모의 스탈린 도당과 보다 권위적이고 능력있는 군 지도자들 사이의 투쟁이 적군의 목을 자르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여성의 지위는 사회의 통치와 국가 정책을 평가하는 가장 극적이고 현저한 지표이다. 10월 혁명은 자신의 기치에 여성의 해방을 명시했고, 결혼과 가족에 관한 가장 진보적인 법률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것이 소비에트 여성들이 즉각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여성 해방은 경제와 문화의 성장없이, 소부르주아지적 경제의 가족이라는 단위의 파괴없이, 사회화된 식품 준비의 도입과 교육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한편, 자신의 보수적인 본능에 이끌리는 관료는 가족의 "분해"를 경계했다. 관료는 여성에게 노예적인 가사노동을 의미하는 가정에서의 저녁식사와 가정에서의 빨래에 대한 찬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에 쐐기를 박기 위하여 관료는 공식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짐 싣는 동물의 지위로 되돌리면서 낙태를 범죄로 처벌하는 것을 복구했다. 공산주의의 ABC와는 정반대로 지배 계층은 소부르주아지 가족과 같은 가장 반동적이고 악질적인 계급통치의 핵심을 복구했다. 생생한 지표 상황은 문화의 영역에서는 훨씬 더 좋지 않다. 생산력의 발전이 새로운 문화를 위한 물질적 전제를 창출했다. 그러나 문화의 발전은 비판없이, 더듬거림과 오류없이, 독립적인 창조적 활동없이, 즉 인간 개성의 자각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관료는 단 하나의 창조적 활동에서도 독립적인 생각을 용인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이것은 관료의 측면에서는 올바른 것인데, 예술이나 교육의 영역에서 비판이 살아난다면, 이것은 필연적으로 관료에 대한 반대로, 관료의 특권에 대한 반대로, 관료의 무지와 전횡적인 지배에 대한 반대로 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에서 시작되었던 "숙청"이 이후에 예외없이 모든 영역의 사회 생활 속으로 침투했던 사실에 대한 설명이 이 속에 있다. "트로츠키주의"라는 이유로 GPU는 시인, 천문학자, 교육학자, 그리고 음악가들을 숙청했고, 이와함께 최고의 두뇌들이 총구의 위협에 처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사회주의적"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는가? 일상적 문학의 영역에서 성공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수천만의 인민들이 읽고 쓰기를 배웠다. 그러나 이것과 동시에, 인민들은 자신의 관점을 표현할 권리와 출판된 글자라는 매개를 통하여 자신들의 관심을 표현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언론은 오로지 관료를 위해서만 복무했다. 소위 "사회주의적" 시인들은 스탈린에 대한 찬송만을 쓸 권리가 있었다. 산문 작가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만이 주어졌다. 인민들은 의무적으로 이것들을 읽어야 했다. 똑같은 일들이 영화, 라디오, 극장 등등에서 벌어졌다. 상을 받은 러시아 역사에 관한 새로운 교과서 하나가 최근 학교에 소개되었다. 이 교과서가 오로지 왜곡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도 과장은 아닐 것인데, 이 책의 목적은 관료의 폭정과 스탈린의 개인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바티칸의 허가를 받아 출판된 카톨릭 교회의 역사에 관한 교과서 조차 소련의 스탈린화된 교과서와 비교하면 과학적 양심성의 모델이 된다. 수천만의 어린이들의 머리가 이런 저속한 글에 영향을 받고 중독되고 있다. 10월 혁명은 모든 민족의 독립적인 문화적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의 분리에 관한 권리를 선포했다. 관료는 소련을 사실상 새로운 인민들의 감옥으로 변형시켰다. 개별 민족의 언어와 개별 민족의 학교들이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영역에서 가장 포악한 학정도 진화의 바퀴를 더 이상 뒤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다양한 민족들의 언어는 그들의 독립적인 발전의 기관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관료적 지배의 기관이다. 개별 민족 공화국 정부들이 자연스럽게 모스크바에 의해서 지명되거나 보다 정확하게는 스탈린에 의해서 지명되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50여개의 이들 정부가 갑자기 "인민의 적들"과 외국 정부의 앞잡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스탈린과 비쉰스키의 입술에서 무례하고 바보스럽게까지 지나치게 울려대는 이러한 비난의 뒤에는, 실제로 개별 민족의 공화국에서 관료들, 심지어 크레믈린에 의해 지명된 자들 조차 지역적 상황과 분위기에 의존하게 되고 점차적으로 짓누르는 모스크바의 중앙집중주의에 반대하는 반대파의 영감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지도자"를 대체할 것에 관하여, 그리고 강철같은 촉수를 느슨하게 할 것에 관하여 꿈을 꾸거나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련의 모든 개별 민족 공화국들이 최근에 목이 잘렸던 진짜 이유이다. 스탈린판 배외주의 반유태주의로 채색되지 않은 반동의 예를 역사 속에서 찾기란 많이 힘들다. 이 특이한 역사 법칙은 오늘날의 소련에서 완전하게 확인된다. 모스크바에서 여러 해를 보냈던 오이겐 리옹스[Eugene Lyons]는 그의 흥미롭지만 심오하지는 않은 책, 유토피아에서의 임무에서 관료가 자신의 지배를 굳히기 위하여 비록 은밀하게 일 지라도 어떻게 반유대적 편견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지에 관하여 말했다. 그리고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관료적 중앙집중주의는 배외주의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고, 한편 반유태주의는 언제나 배외주의와 관련해서는 저항을 최소화하는 노선이었다. 외교 정책의 영역에서, 지난 20년 동안, 국내 정책들에서 만큼이나 철저한 전환이 있었다. 오로지 타성에 빠진, 혹은 마음속에 감추어진 생각을 가진 부르주아지 반동만이 스탈린을 세계 혁명을 고취하는 자로서 계속해서 비난한다. 사실상, 크레믈린은 보수적 법과 질서의 기둥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모스크바 정부가 소비에트 공화국의 운명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명과, 그리고 동양의 억압받는 인민들의 운명과 결합시켰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인민전선"의 정책이 좋은가 혹은 나쁜가에 관한 문제와는 별도로, 이것은 공교롭게도 레닌이 평생을 바쳐 반대하여 투쟁했었던 멘셰비즘의 전통적인 정책이었다. 이것은 보수적인 부르주아지 민주주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폐기를 의미한다. 모스크바의 지배계층은 오늘날 하나, 오직 하나만을 추구하는데, 이것은 모든 지배계급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다. 10월 혁명과 테르미도르 관료 사이의 모순은 볼셰비키의 고참 세대를 절멸시킨 것에서 가장 극적인 표현을 찾았다. 비쉰스키, 예조프, 트로이야노프스키, 마이스키, 코민테른과 GPU의 앞잡이들, 드위안티-루이스 피셔 형태의 저널리스트들, 프리트 형태의 검사들은 세계 여론을 속이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진중한 사람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 수백명의 고참 혁명가들, [짜르주의] 비합법 상황 하에서의 볼셰비키 당 지도자들, 내전의 지도자들, 혁명적인 소비에트 외교관들, 적군의 군사 지도자들, 30개의 개별 민족 소비에트 공화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한꺼번에 파시즘의 고위 첩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비난의 여지가 없고 공평한 사람들로 구성된 뉴욕 조사위원회가 9개월의 활동 후에 모스크바 재판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조작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오늘날 문제는 지노비에프, 카메네프, 스미르노프, 피야타코프, 세레브리야코프, 소콜니코프, 라데크, 라코프스키, 크레스틴스키, 투카체프스키 그리고 다른 수백명이 흉계의 희생자로 전락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증명되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그리고 왜 크레믈린 도당이 그렇게도 엄청난 흉계를 자행할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는가이다. 이것에 대한 대답은 전술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나오게 된다. 해결할 수 없는 모순 권력과 수입을 위한 투쟁 속에서 관료는 과거와 관계되어 있는, 10월 혁명의 강령을 알고 기억하는,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임무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그룹들을 자르고 난타하도록 강요된다. 고참 볼셰비키들과 중간 나이와 가장 젊은 세대 사이에 있는 사회주의 인자들에 대한 계획적인 살인은 반 10월 혁명의 사슬에서 반드시 필요한 고리이다. 이것이 재판의 원고이면서 검사가 과거 백색 근위대 출신 비쉰스키의 사람들 안에서 나왔었던 이유이다. 이것이 워싱턴에서 소련이 과거 백색 근위대 트로이야노프스키에 의해 대표되고, 런던에서는 과거 콜챠크 장관인 마이스키에 의해 대표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기타 등등.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한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 최근의 모스크바 선거라는 연극에 속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히틀러와 괴벨이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짓을 한번 이상 했었다. 스탈린의 "성공"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히틀러의 국민투표들과 관련하여 소비에트 언론 스스로가 무엇을 썼던가를 읽을 필요가 있다. 전체주의적 의회 실험은 단지 일단 자기 자신의 당을 포함하여 모든 당들을 분쇄하고, 노동조합들을 목졸라 죽이고, 언론, 라디오, 그리고 영화를 게시타포나 혹은 GPU에 종속시키고, 빵과 직장은 유순하고 침묵하는 사람에게만 주는 반면, 모든 유권자들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나면, "만장일치의" 선거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만장일치는 영원하지도 안정된 것도 아니다. 10월 혁명의 전통들은 공식적인 영역에서는 사라졌지만, 이 전통들은 대중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다. 법률상의 그리고 선거를 통한 흉계들의 덮개 아래에, 모순들이 계속해서 깊어지고 있으며, 이 모순들은 폭발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 반동적 관료는 타도되어야만 하며, 타도될 것이다. 소련에서의 정치혁명은 불가피하다. 이 정치혁명은 권력을 찬탈하고 있는 관료의 멍에로부터 새로운 사회 요소들의 해방을 의미할 것이다. 오로지 이러한 조건이 주어질 때에만, 소련은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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