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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 - 다시 또다시 소련의 성격에 관하여

  • 분류
    트로츠키
  • 등록일
    2008/12/28 02:34
  • 수정일
    2008/12/28 02:34
  • 글쓴이
    얼치기 공산주의자
  • 응답 RSS
트로츠키 1939년 10월 18일 '맑스주의를 지키기 위하여'[In Defense of Marxism]의 일부분 다시 또다시 소련의 성격에 관하여 정신분석학과 맑스주의 과거의 토론들과 제4 인터내셔널의 결정들을 잊어오고 있는 어떤 동지들 혹은 브루노 알과 같은 과거의 동지들은 나의 소련 국가에 대한 평가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트로츠키가 러시아 혁명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가 노동자 국가에 관한 사상을 접는 것이 힘든데, 이것은 그가 그의 전체 인생의 대의를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매우 총명했던 노년의 프로이드였다면 이와 같은 종류의 정신분석학자들의 귀를 손바닥으로 살짝 때렸을 것이다. 천성적으로 나는 나 스스로 감히 그런 행동을 취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성과 감정주의는 내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쪽에 있다는 것을 나를 비판하는 자들 앞에 감히 확인한다. 비열함과 냉소의 모든 한계를 넘어선 모스크바의 행위는 모든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가들 내에서 쉽게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반감은 거부의 필요성을 발생시킨다. 즉각적인 행동을 위한 세력들이 존재하지 않을 때, 참을성 없는 혁명가들은 인위적인 수단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를 들면, 개인적 테러의 전술이 나타난다. 강력한 표현들, 모욕들, 그리고 저주에 더욱 자주 호소한다. 우리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 특정 동지들은 명백하게 "용어상의" 테러를 통한 보상을 추구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나 심지어 이런 관점으로부터도 관료를 하나의 계급으로 부른다는 단순한 사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만약 보나파르티스트 잡동사니가 하나의 계급이라면, 이것은 보나파르티스트 잡동사니가 역사의 죽어서 태어난 아기가 아니라 신생아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약 관료의 도적질과 같은 기생이 용어의 과학적 의미에서 "착취"라면, 이것은 관료가 주어진 경제 체제에 필수적인 지배계급으로서 역사적 미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참을성 없는 반감이 맑스주의 원칙과 관계를 끊게 될 때 그것이 어디로 귀결되는가를 알게되었다. 예를 들어 범죄집단이 거친 도로를 달려 경찰 추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이용했던 자동차에서 프레임이 휘어지고 바퀴 정렬에 문제가 있고 모터가 부분적으로 손상된 것을 본 격한 감정의 기술자가 있다고 치자. 이 기술자가 "이건 자동차가 아니다.... 악마는 이게 뭔지 알 것이다!"라고 말할지 모르는데,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가치는 부족하지만, 범죄집단이 했던 짓에 관해서는 정당한 반응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이 기술자가 자신이 "악마는 이게 뭔지 알 것이다"라고 했던 그 자동차를 수리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망가진 자동차라는 이해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일을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하여 어떤 부분은 여전히 괜찮고 어떤 부분은 수리할 수 없는지를 결정할 것이다. 계급 의식적 노동자는 소련에 대하여서도 똑같은 태도를 가질 것이다. 그는 관료 범죄집단이 노동자 국가를 "악마는 이게 뭔지 알 것이다"의 상태로 변형시켰다고 말할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런 격한 반응으로부터 정치적 문제의 해결로 넘어가게 될 때,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경제의 모터는 손상되었지만, 여전히 돌아가고 있으며 일부 부품의 교체로 완전히 수리될 수 있는 손상된 노동자 국가라는 것을 인정하도록 강제된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유추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반혁명적 노동자 국가" 일부에서 "만약 소련을 노동자 국가로서 계속 인정한다면, 우리는 반혁명적 노동자 국가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라고 외친다. 이런 주장은 훌륭한 강령적 규범을 비참하고, 궁핍하며, 모순적이기까지한 현실에 대치시킴으로써 우리의 상상에 충격을 주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1923년이래 매일 매일 소비에트 국가가 국제적 영역에서 점점 더 반혁명적인 역할을 해온 것을 바라보지 않았는가? 우리가 중국 혁명, 1926년 영국의 총파업,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페인 혁명이라는 최근의 경험에 대하여 잊고 있었는가? 세상에는 두 개의 완전히 반혁명적인 노동자 인터내셔널이 있다. 이들 비판자들은 명백하게 이 "범주"를 잊고 있었다. 프랑스, 영국, 미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노동조합들은 자가 자신들의 부르주아지의 반혁명적 정치들을 완전하게 지지한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노동조합으로 명명하는 것을 막지는 않으며, 그들의 진보적인 발걸음들을 지지하고 부르주아지에 맞서 그것들을 방어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왜 반혁명적 노동자 국가에 대해서는 똑같은 방식이 적용될 수 없는가? 결국 노동자 국가는 권력을 장악한 노동조합이다. 이 두 경우에서의 태도 차이는 노동조합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들을 현실로서 생각하지 단순히 우리 강령 속에 있는 "범주들"로서는 생각하지 않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단순한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 국가와 관련하여서는 스스로를 우리의 강령에 종속시켜오지 않은 실제의 역사적 사실로서 그것에 접근하는 것을 배우는데 있어서의 무능력이 증명되고 있다. 제국주의라고? 현재의 크레믈린의 팽창을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렇게 부르는데 있어서 사회적 내용을 포함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야만 한다. 역사 속에서는, 노예 노동에 기초를 두었던 로마 국가의 "제국주의", 봉건적 지주의 제국주의, 상품과 산업 자본의 제국주의 등이 알려져 있다. 모스크바 관료의 이면에 있는 추진력은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의 권력, 명성, 수입을 확대하려는 경향이다. 과거의 모든 군주들, 독재자들, 지배계층들, 중세의 신분들, 그리고 계급들의 소유가 가장 폭넓은 의미에서의 "제국주의"의 요소이다. 그러나 현재는, 적어도 맑스주의 문헌에서는, 제국주의는 매우 분명하게 제한된 경제적 내용을 가지는 금융자본의 팽창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것 없이, 크레믈린의 외교 정책에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양자 모두가 팽창을 위하여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것에 기초하여 단순히 보나파르티스트 관료의 정책을 독점 자본주의의 정책과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란만을 유포할 수 있을 뿐인 이러한 동일시는 맑스주의자들에게 보다는 소부르주아지 민주주의자들에게 훨씬 더 적절한 것이다. 짜르 제국주의 정책의 연속 크레믈린은 폴란드에 대한 새로운 분할에 참여하고, 발틱 국가들에 손을 뻗치고 있으며 발칸,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고 있다. 즉, 크레믈린은 짜르 제국주의의 정책을 계속하고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크레믈린의 정책 그 자체를 제국주의로 규정할 권리가 없는가? 이 역사적이고 지리학적인 주장도 다른 것들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다. 짜르 제국의 영토에서 발생했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바로 그 시작부터 발틱 국가들을 정복하려고 했고 한동안 정복했으며, 루마니아, 페르시아로 침투하려고 시도했으며 한때 바르샤바(1920년)를 공격하기도 했다. 혁명적 팽창의 노선은 짜리즘의 그것과 같은데, 이것은 혁명이 지리적인 조건들을 바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멘셰비키가 당시에 이미 짜르 외교 전통으로부터 차용된 것으로서의 볼셰비키 제국주의에 관하여 말했던 이유이다. 소부르주아지 민주주의는 심지어 현재에서조차 이런 주장에 기꺼이 기대고자 한다. 반복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그것들을 모방할 이유가 전혀 없다. 제국주의의 대행자? 그러나, 소련의 팽창정책을 평가하는 방식과는 별도로,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의 제국주의 정책에 제공하고 있는 도움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세계 제국주의 관계의 사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특정 조건하에서는 심지어 완전하게 건강한 노동자 국가라도 특정 정도까지는 그리고 특정한 형태로 이런 혹은 저런 제국주의를 지원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평화[조약]은 의심의 여지없이 독일을 프랑스와 영국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강화시켰다. 고립된 노동자 국가는 적대적인 제국주의 진영들 사이에서 책략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책략은 그들 중 하나에 반대하여 다른 하나를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두 진영 중 누구를 지원하는 것이 특정 순간에 더 도움이 되고 덜 위험한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인 계산과 예측의 문제이다. 하나의 부르주아지 국가에 반대하여 다른 하나의 부르주아지 국가를 제한적으로 지지하는 것의 결과로서 발생되는 불가피한 약점은 고립된 노동자 국가가 그렇게 해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가능성을 부여받는다는 사실에 의해 커버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책략에 또 책략이 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소비에트 정부는 노동자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독립을 희생시켰다. 아무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배반에 관하여 말할 수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 계급 의식적 노동자들이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이 희생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폴란드에 관해서는 완전히 다르다. 크레믈린은 결코 폴란드를 희생시키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처럼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반대로, 크레믈린은 세계 전역의 피억압계급과 인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감정들을 모욕하고, 그래서 소련의 국제적 상황을 극단적으로 약화시키는 언사만을 냉소적으로 떠벌였다. 피점령 지역들에서의 경제적 변형들은 이것을 10분의 1 만큼도 보상해주지 못한다! 크레믈린의 전체 외교정책은 일반적으로 "절친한" 제국주의라는 불한당 같은 장식에 기초하고 있고, 그래서 부차적이고 불안정한 이익들을 위하여 세계 노동자 운동의 근본적인 이해관계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5년동안 "민주주의의 방어"를 위한 슬로건으로 노동자들을 속인 후, 이제 모스크바는 히틀러의 약탈의 정책을 덮어가리는데 열중하고 있다. 이것 자체로는 여전히 소련을 제국주의 국가로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스탈린과 그의 코민테른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제국주의에게 최고로 가치있는 대행자이다. 만약 크레믈린의 외교 정책을 정확하게 정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제국주의 포위 속에 있는 퇴행화된 노동자 국가의 보나파르트 관료의 정책이라고 말해야만 한다. 이 정의는 "제국주의 정책" 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짧거나 부르기 좋은 것은 아니지만, 더욱 정확한 것이다. "차악" 적군에 의한 동부 폴란드의 점령은 나찌 군대에 의한 점령과 비교한다면 분명히 "차악"이다. 그러나 히틀러가 더 큰 악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차악이라는 성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집에 불을 지르거나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을 도와주고 나서, 그 집에 있던 10명 중 5명을 구해주고 자신의 준-노예로 만들었다면, 이것은 10명 전체를 불태우는 것보다는 덜한 악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방화범이 인명 구조 때문에 상을 받는 것은 의아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상을 받게 된다면, 그는 빅토르 휴고의 한 소설에 나오는 영웅의 경우에서처럼 그 이후 즉시 처형되어야 할 것이다. "무장한 선교사" 로베스피에르는 사람들은 총검으로 무장한 선교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으로 그는 군사적 폭력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혁명적 사상과 기구들을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 올바른 생각은 물론 혁명에 협력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들에 대하여 군사적 개입을 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혁명적 국제 정책의 일환으로서의 그러한 개입은 반드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이해를 구해야만 하며 혁명적 군대가 진입하는 나라의 노동 대중들의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이론이 유일하게 무장 개입을 준비할 수 있고 정당화 할 수 있는 실천적인 국제 연대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크레믈린은 다른 모든 자신의 정책과 관련된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제 노동 계급의 사상과 감정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독립적인 것으로서 군사개입의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한다. 이것 때문에, 크레믈린의 최근의 외교적 "성공"은 소련의 [명예를] 더럽히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오 속에 극심한 혼란을 야기한다. 두 개의 전선에서의 봉기 그러나 일부 동지들이 말하는 것처럼 만약 문제가 구체화된다면, 소련과 피점령지역에 대한 방어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적절한가? 구 폴란드의 양쪽 모두에 있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히틀러뿐만 아니라 스탈린에 대항해서도 일어설 것을 요구하는 것이 더 올바르지 않은가? 당연히 이것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만약 혁명이 새롭게 점령된 지역들을 포함하여 독일과 소련에서 동시에 발생한다면 이것은 한방에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은 가장 우호적이고 가장 행복한 환경에만 기초할 수 없다. 따라서 문제는 히틀러가 혁명에 의해 분쇄되기 전에 혁명이 스탈린을 분쇄하기 전의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경우 제4 인터내셔널의 투사들은 그들이 스페인에서 프랑코에 맞서 싸우던 공화당 군대의 대오에서 투쟁했던 것처럼, 히틀러의 군대에 맞서 투쟁 할 것인가? 우리는 완전히 그리고 충심으로 (히틀러뿐만 아니라 스탈린으로부터도 독립한) 독립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을 획득하기 전에 히틀러가 스탈린 관료의 지배하에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악을 시도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제4 인터내셔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는 히틀러에 반대하여 스탈린에 의해 노예화된 우크라이나를 방어할 것이다. "소련에 대한 무조건적인 방어" "소련에 대한 무조건적인 방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우리가 관료에 대한 어떠한 조건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만약 소련의 사회적 기초가 제국주의에 의해 위협받는다면, 전쟁의 동기와 대의와 무관하게 우리가 소련의 사회적 기초를 방어함을 의미한다. 일부 동지들은 "그리고 만약 적군이 내일 당장 인도를 침공하고 그곳에서 혁명적 운동을 억압하기 시작한다면, 이 경우 우리는 소련을 지지할 것인가?"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혀 일관성이 없다. 무엇보다도 왜 인도가 관련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만약 적군이 소련의 관료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농민들의 항의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지지할 것인가 아닌가? 라고 묻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은가? 외교 정책은 국내 정책의 연속이다. 우리는 보나파르티스트 관료의 수중에 있는 가구인 적군의 모든 행동을 지지한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로지 노동자 국가로서의 소련, 그리고 소련 내부에 있는 노동자 국가에 속해 있는 것들만을 방어한다고 약속해왔다. 교묘한 궤변론자는 적군이 수행하는 "역할"의 성격과 무관하게 만약 적군이 인도의 봉기에 나선 대중들에 의해 두들겨 맞는다면, 이것은 소련을 약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우리는 적군의 작전으로 인한 인도에서의 혁명적 운동의 분쇄는 인도에서의 적군의 반혁명적 부대들의 우연적 패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련의 사회적 기초에 대한 커다란 위험을 의미할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모든 경우에, 제4 인터내셔널은 언제 어디서 적군이 단지 보나파르티스트 반동의 기구로서만 행동하는지를, 그리고 어디에서 소련의 사회적 기초를 방어하는지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를 알 것이다. 반동적 협잡꾼들이 지도하는 노동조합은 흑인 노동자들이 특정 산업 영역에 등록하는 것에 반대하여 파업을 조직한다. 우리가 이러한 수치스러운 파업을 지지해야 할까? 물론 아니다. 그러나 사장들이 파업을 이용하여 노동조합을 분쇄하고 노동자들의 조직화된 자기 방어를 총체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시도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당연히 노동조합의 반동적 지도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조합을 방어할 것이다. 왜 똑같은 정책이 소련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는가? 근본적인 규칙 4제 인터내셔널은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그들이 소련과의 동맹에 있는가 아니면 소련에 적대적인 진영에 있는가와 무관하게, 프롤레타리아트 당들은 전쟁 기간 동안에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계급 투쟁을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굳게 확립했다.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들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소련에 대한 방어(혹은 식민지 혁명에 대한 방어)의 이해관계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하며 실제로 필요한 경우에는 예를 들면 파업, 사보타지 등과 같은 가장 결정적인 실천을 동원해야만 한다, 제4 인터내셔널이 이 공식을 정식화한 이후 열강들의 구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규칙 그 자체는 유효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만약 내일 당장 영국과 프랑스가 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를 위협한다면,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군대와 군수품을 보내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가장 결정적인 방책들을 취해야 한다. 만약 히틀러가 상황의 논리에 의해 스탈린에게 군수품을 보내야만 하게 된다면, 반대로 독일 노동자들은 이 구체적인 경우에 파업이나 사보타지를 조직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누구도 다른 어떠한 해결책도 제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맑스주의에 대한 수정"? 일부 동지들은 내가 나의 글(전쟁 중에 있는 소련)에서 "관료적 집산주의"를 이론적 가능성으로서 언급했던 것에 놀랐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이것에서 심지어 맑스주의에 대한 완전한 수정을 발견했다. 이것은 명백한 오해이다. 역사적 필연에 대한 맑스주의적 이해는 숙명론과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다. 사회주의는 "저절로"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세력들, 계급들, 그리고 그들의 정당들의 투쟁의 결과이다. 이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결정적인 잇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적 진보를 대변하는 반면 부르주아지는 반동과 쇠퇴를 대표한다는 사실에 있다. 정확하게 이 속에 우리의 승리에 대한 확신의 근원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만약 반동 세력이 정복한다면 사회는 어떤 성격을 띠게 될까""라고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완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맑스주의자들은 수도 없이 많이 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야만주의로의 복귀인가라는 양자택일을 정식화해왔다. 이탈리아에서의 "경험" 이후에, 우리는 공산주의인가 아니면 파시즘인가를 수천번 되풀이했다. 사회주의로 가는 진정한 경로는 일반적인 역사적 도식에서 예견되어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욱 복잡하며 이질적이고 모순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미래의 그것의 소멸에 관하여 말했지만 독재의 관료적 퇴행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으로 그런 퇴행의 경험을 관찰하고 분석해왔다. 이것이 맑스주의에 대한 수정인가? 사태의 진전이 사회주의 혁명의 지연이 고질적인 실업, 소부르주아지의 빈곤화, 파시즘, 최종적으로는 어떠한 새로운 길도 열지 못하는 학살전쟁과 같은 명백한 야만주의 현상들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성공해왔다. 만약 우리가 인류는 사회주의로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수용한다면, 새로운 "야만주의"는 어떤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형식을 취할까? 우리는 맑스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 주제에 관하여 우리 스스로를 표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에서 파시즘과 다른 한편에서 소비에트 국가의 퇴행이 새로운 야만주의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형식의 윤곽이다. 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전체주의적 노예상태인가라는 양자택일적 대안은 이론적 이해관계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선동에서도 역시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는데, 그것은 이것 자체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맑스에 대한 수정에 관하여 말한다면, 이 수정은 실제로는 "부르주아지가 아닌" 그리고 "노동자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제출하는 동지들 쪽에서의 수정이다. 내가 전개한 대안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논리적 귀결점까지 그들 자신의 생각을 끌어내도록 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론의 결론에 깜짝 놀란 일부 이들 비판자들은 내가 .... 맑스주의를 수정한다고 비난한다. 나는 이것을 그저 친근감 있는 농담으로 생각하련다. 혁명적 낙관주의의 권리 나는 나의 글 '전쟁 중에 있는 소련'에서 노동자도 부르주아지도 아닌 착취사회나 혹은 "관료적 집산주의"의 전망이 완전한 패배의 전망이며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를 몰락시키는 가장 심오한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의 전망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애썼다. 이런 전망을 위한 진짜 논거들이 있기는 한가? 우리의 계급 적들에게 이것에 관하여 물어보는 것도 필요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저명한 주간신문 파리 수아르[Paris-Soir] 1939년 8월 31일자에, 8월 25일에 있었던 프랑스 대사 쿨롱드르와 히틀러 사이의 마지막 인터뷰였던 굉장히 교훈적인 대화가 보도되었다. (정보의 출처는 의심의 여지없이 쿨롱드르 그 자신이다.) 히틀러는 자신이 스탈린과 맺은 ("현실주의적인 조약")에 관하여 침을 튀면서 큰소리로 지껼이고, 독일과 프랑스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며 "한탄했다". 쿨롱드르는 "그러나 스탈린은 표리부동함을 드러냈다. (전쟁의 경우에) 진정한 승자는 트로츠키가 될 것이다. 이것에 관하여 생각해보았는가?" 그 영도자[히틀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왜 프랑스와 영국은 폴란드에게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주었는가"라고 답한다. 등등. 이들 신사양반들은 혁명의 망령에게 개인적인 이름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물론 외교적 관계가 깨졌던 바로 그 순간에 이것은 이 극적인 대화의 본질은 아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혁명을 유발할 것이다"라면서 제국주의 민주주의의 대표 그 자신이 등꼴까지 오싹해지게 그의 적을 놀라게 한다. 히틀러는 마치 그것이 오래 전에 결정되었던 문제인 것처럼, "알고 있다"고 답한다. "알고 있다." 놀랄만한 대화. 쿨롱드르와 히틀러 모두가 유럽에 밀어닥친 야만주의를 대표한다. 동시에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의 야만주의가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 정복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현재 세계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의 지배계급들이 이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완전한 사기저하는 계급 역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가 짧고 여전히 유약한 혁명적 지도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지도부는 발끝에서부터 썩어 있다. 이들 신사양반들은 자신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시작과 함께 자신들의 통치가 붕괴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확신하고 있다. 이 사실 하나가 우리에게는 무적의 혁명적 낙관주의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1939년 10월 18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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