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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평등과 자유란 이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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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을 처음봤던 건 어릴적 tv에서였던 것 같다.
손에서 거미줄이 찍찍 나가면서 건물 사이를 누비고다니면서 범인을 잡는 영화였다.
재미있기는 했는데 슈퍼맨처럼 강하다는 느낌은 없었고, 600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처럼 쫄깃쫄깃하지도 않았다.
뭐 암튼, 나한테는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부터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더니 2~3년마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돼있었다.
당연히 케이블에서도 심심하면 틀어대기 시작했다.
그 정도면 한번은 볼수도 있으련만 쟁쟁한 슈퍼히어로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어서 스파이더맨에게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앉았다.


그러다가 올해 우연히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봤다.
익히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뻔한 스토리를 예상했는데 아주 멋있게 뒤통수를 때리는 영화였다.
철없는 10대가 갑자기 영웅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우당탕탕거리는데 그 정신없는 요란람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순수하고 자유로운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역시 우연히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봤다.
잘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서 호기심에 봤다.
철없는 10대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천방지축 날뛰는 건 ‘홈커밍’이랑 비슷했다.
그런데 그 10대 소년은 진짜 스파이더맨이 아니었고, 얼마 후 등장한 진짜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는 악당과 싸우다가 죽어버린다.
그렇게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이 바뀌는 거다.
게다가 진짜 스파이더맨은 백인 성인 남성이었는데 새로운 스파이더맨은 흑인 10대 소년인거다.


‘이건 뭐지?’ 하는 생각에 그 우당탕탕거리는 요란함을 따라가는데 스파이더맨이 또 있는 거다.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도, 날렵한 외모의 10대 소녀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코트의 옛날 아저씨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듯한 아시아계 소녀도, 심지어 돼지까지 모두 스파이더맨, 또는 스파이더우먼, 또는 스파이더피그였다.
더 이상 ‘진짜 스파이더맨’이라는 개념이 필요없어졌다.
그들이 모두 진짜였기 때문이다.
인종도, 성별도, 나이도, 심지어 종별도 다양한 그들은 리더도 없이 서로서로 힘을 모아 무지막지한 악당들과 용감하게 싸워나갔다.
서로의 다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 다름이 캐릭터의 어설픈 설정으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그냥 다를 뿐이었다.
아직 어설픈 신참이 실수를 하고 오버를 해도 가르치려 들거나 훈계하려 하지않고 그냥 그 자신이 알아서 깨우칠 수 있도록 놔둔다. 그런 가운데 상처를 입으면 그저 조금씩 배려할뿐.
전체를 누군가 지휘하고 함께 싸워가면서도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는 어벤져스군단과는 기본 철학이 다른 이들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슈퍼히어로물은 없었다.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건 이런거였다.


그림도 좋았다.
만화 속 캐릭터들이 진짜 살아움직이는 것 같이 만화의 분위기를 생동감있게 살리면서도 실사판 영화 못지않게 화려하고 다이나믹했다.
만화의 투박함과 CG영화의 현란함이 절절히 어우러져있었다.
실사영화에 만화적 기법을 도입해서 폼만 잡는 잭 스나이더의 영화보다는 몇배는 좋았다.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게 스파이더맨(우먼, 피그)들의 활약을 다 지켜보고나서 마지막에 감독이 화룡점정의 심정으로 문장을 날려주시는게 아닌가.
“의무감 때문이든 옳은 일이기 때문이든 다른 이들을 돕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는 진짜 슈퍼히어로다.”
“감사합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줘서.”
‘영화 재미있게 잘 만들어놓고 이 무슨 공익광고같은 시추에이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조차 나쁘지 않았다.
‘악당들과 우당탕탕 싸우는데 들인 공의 20% 정도만 서로 다른 그들의 일상과 삶에 할애를 했다면 이 마지막 문장이 힘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지만 헐리우드에서 이런 식의 슈퍼히어로물을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박수치기에 충분했다.


내가 슈퍼히어로가 될 생각도 능력도 없고
또한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슈퍼히어로들을 위해 박수를 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들과 평등하고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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