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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미제라블, 이런 게 명품뮤지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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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중에 최고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레미제라블을 얘기할 거다.

빅토르 위고가 잘난 척 주절주절 배경지식을 장황하게 떠드는 것만 빼면 다양한 인물들의 묘사, 심리가 변하는 과정, 역동적인 시대흐름, 이야기의 구조,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까지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한 소설이었다.

몇 년 전에 그걸 영화로 만들었다고 해서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봤다가 헛웃음만 지으며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엄청난 대작을 영화로 담아내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뮤지컬 버전이 공개됐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몇 년 전에 만들어졌던 영화의 오리지널 버전이 이번 뮤지컬이라는 것이다.

영화에 실망한 것도 있고 런닝타임이 세시간 가까이 되는 점도 있어서 볼까말까 망설여졌는데

요즘처럼 더운 날 웅장한 음악 속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속는 샘치고 봤다.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장발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영화의 장면과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장면이 주는 웅장함은 영화가 뛰어났지만 음악과 분위기가 안겨주는 힘은 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이후로도 영화와 비슷한 장면들과 노래들이 중간중간 나왔지만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는 초반부터 압도적이어서 이후부터 영화는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웅장함으로 무장한 노래들이 계속되면서 사람을 빨아들였다.

뮤지컬인지라 소설과 같은 치밀한 심리묘사나 상황전개는 생략하면서 굵직한 이야기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이야기의 포인트를 너무도 정확히 짚어내서 노래로 강조점을 찍어내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 요점정리 하듯이 풀어 가는데 포인트가 너무 정확하고 웅장해서 엉성하게 느껴지지 않는 거다.

 

 

그렇게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서 따라가다가 웅장하기만한 분위기에 조금 지쳐갈 즈음

이야기는 파리에서의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뮤지컬은 한층 고조되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웅장함과 비장함과 절절함과 안타까움이 거대하게 뒤섞여 타오르는데

그걸 지켜보고 있는 내 마음도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자칫 웅장함에 짓눌려서 피곤해지거나, 화려한 퍼포먼스로 본말이 전도되거나, 여러 가지 요소가 어색하게 섞여서 따로 놀 수 있는데

그런 거 전혀 없이, 중간에 가볍게 완급조절하면서, 원작의 엄청난 에너지를 살려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푹 빠져들고 말았다.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의 마지막 대결, 혁명 속에 이뤄진 코제트의 사랑, 그리고 모든 운명의 짐을 내려놓고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발장의 최후까지

거대한 강물 위를 떠가는 배에 탄 사람의 기분으로 그 이야기와 음악에 녹아든 것이었다.

그리고 엔딩과 25주년 기념 축하인사와 마지막 공연까지 다 보게 되는데 내가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뮤지컬이 주는 힘이라는 어떤 건지를 실감했다.

원작이 갖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그대로 살려내면서

음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웅장함과 비장함이 극대화된

명품뮤지컬이었다.

소설이 갖고 있는 깊이와 넓이까지 요구되는 건 무리지만

마음 속 가득 풍부한 감성을 채워내기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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