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군사기술 : 현황과 문제
손상열 평화인권연대
1. 들어가며
오래된 통계지만, 이미 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세계적으로 무기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과학자가 50만 명을 넘었으며, 모든 연구와 개발비용의 무려 50%가 무기개발에 투자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같은 사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현대사회에서 군사부문과 과학기술은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발전해왔다. 사실 전쟁으로 얼룩진 20세기는 항상 적보다 우월한 무기를 갖추려고 하는 격렬한 무기개발경쟁을 함께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 같은 무기체계의 부단한 개발과 혁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해온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애니악'은 2차 대전당시 미사일의 항로를 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며, 오늘날 정보통신의 총아로 각광받는 인터넷도 미국방부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한 ARPANET을 모태로 하여 확립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냉전시기 군에 의한 레이더 및 정보위성의 개발은 극소전자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주기도 하였는데, 오늘날 거대한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IBM은 군의 레이더기지 건설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통신네트워크 구성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축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과학기술이 군사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만큼 현대과학이 가지고 있는 양면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류의 삶이 유래없이 편리해진 이면에서, 우리는 또한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유래없이 참혹해진 파괴와 살상의 여러 모습들을 발견하곤 하기 때문이다. 사실 과학기술이 군사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은 인류의 자산인 여러 지식과 정보가 '어떻게 사람을 더욱 효과적으로 죽이거나 제압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활용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일컫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살상수단들 때문에 2차 대전이후 5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어야 했고, 이제 인류는 자신을 몇 번이고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살상수단의 혁신을 위한 연구 및 개발에 막대한 자원이 투자되고 있는 현실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자원이 교육, 환경, 보건 등과 같이 인간에게 응당 필요한 부분에 투자되지 못하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풍요로운 인류의 미래를 기획했던 과학기술의 잠재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무시한 채 특정한 힘과 권력에 의해 왜곡되면서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무기개발비를 포함한 군사비에 세계적으로 연간 7,80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이 투자되고 있는 반면 기초적인 보건이나 영양, 주택건설 등 인간개발에 사용되는 돈은 130억 달러로 군사비의 2%밖에 안되는 충격적인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군사부문의 상호침투로 인한 문제들은 단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즉 '과학기술이 무기생산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 혹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자원이 살상수단의 개발이라는 백해무익한 곳으로 흘러나가고 있는 문제'이외에도 과학기술은 사회전체의 군사화에 또 다른 방식으로 일조한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신화화에 관련된 것으로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첨단과학의 발전은 종종 군사기술에 얽힌 여러 신화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곧잘 군사기술개발에 막대한 재원이 투자되는 현실을 정당화하는 여러 군사주의적 담론의 형성으로 연결되어 버리곤 한다. 나중에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과학은 군사기술발전에 대한 대중들의 맹신을 낳고 있는데,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깨끗한 전쟁이 가능하다' 혹은 '군사과학의 지속적인 혁신만이 평화와 안보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신념은 오늘날 사회의 군사화에 일조하며 널리 확산된 대표적인 담론이다. 이런 견지에서 이 글은 현대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그에 결부된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와 함께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군사기술의 현황과 문제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겠다.
2. '과학기술의 신화화'가 빚어낸 '깨끗한 전쟁'이라는 환상 전쟁양식에도 제3의 물결이? 보화되는 21세기는 인류를 전쟁가? 미국의 대표적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전쟁양식에도 제3의 물결'이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세기의 전쟁이 수반했던 대량살상은 산업화시대의 경제질서에 조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대량생산경제체제가 대량살상무기와 함께 대량학살의 전쟁양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는 산업화시대를 지나 제3의 질서인 첨단정보와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이기에 전쟁도 대량살상무기에 바탕한 대량학살의 양상보다는 첨단정보체제에 바탕한 정확한 첨단무기체계들이 중심을 이루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기초해 미래의 전쟁은 민간인을 포함해 무차별 대량학살을 특징으로 하는 20세기 산업화시대의 전쟁과는 달리 공격필요대상만을 파괴하는 '깨끗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앨빈 토플러, 1994)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명살상 없는 깨끗한 전쟁'이 가능해졌다는 이러한 담론은 흔히 미래전의 단초를 보여주었다는 걸프전을 계기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걸프전 당시 세계인들은 미국 CNN방송을 통해 미국군의 이라크 공습을 마치 스포츠 중계방송 보듯 관람했다. 텔레비젼 화면에는 이라크가 쏜 스커드 미사일들이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의해 공중에서 정확하게 폭파되는 모습과 미국이 발사한 공격용 미사일들이 이라크의 중요시설들을 깨끗하게 폭파시키는 장면들이 방영됐다. 그 결과 과거 미국이 개입했던 베트남전이 '전쟁의 비인도성'에 반대하는 대규모의 대중여론과 시민행동을 불러일으켰던 것과는 정반대로 걸프전은 '전쟁의 비인도성'에 대한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TV를 통해 걸프전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첨단군사무기가 보여준 위력에 도취되었으며 피흘리지 않고도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빗나간 가능성에 매료되었다.
과학기술의 신화화와 조작된 전쟁이미지 분명 걸프전이 '첨단과학에 바탕한 정밀군사무기의 위력'을 확인시켜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전쟁으로 상징되는 걸프전의 신화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조작된 진실이 감춰져 있다. 당시 미디어와 결탁한 군산복합체는 첨단군사무기의 위력을 은근히 과장하면서 전쟁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조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걸프전에서 시시각각으로 CNN을 통해 미국 첨단군사무기체계의 위력을 효과적으로 과시한 것은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발사한 스커드 미사일을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쏘아 맞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나중의 전문적인 재조사와 평가에 의해 드러난 진실은 매우 다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한번도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한 일이 없었다. 미군부가 걸프전 초기에 연일 내보낸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스커드 요격장면은 사실 스커드 미사일은 발사되지 않았는데, 패트리어트를 쏘아서 그것이 공중에서 폭발하는 장면에 불과한 것이었다. 또한 미국은 걸프전이 첨단전쟁이었으며 그래서 깨끗한 전쟁이었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군사목표물을 정확하기 폭파하는 스마트 폭탄(smart bombs)만을 방송에 내보냈다. 그러나 이라크의 전력을 파괴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러한 첨단 스마트 폭탄이 아니라 낡은 재래식 폭탄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이 걸프전에서 사용한 폭탄의 90%가 평범한 재래식 폭탄들이었던 것이다.(이삼성, 1998) 이와 같은 과학기술의 신화화와 전쟁 이미지의 조작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의 군사주의적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첨단과학의 발전으로 깨끗한 전쟁이 가능해졌다는 발상은 평화와 안보에 대한 기술과학주의적인 접근태도를 낳게 된다. 다시 말해 '세계의 평화와 자국의 안보는 첨단과학과 정밀무기의 힘으로 그리고 그것의 부단한 혁신과 그 혁신에서의 우위를 장악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혹은 '첨단군사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대량살상 없는 전쟁이 가능해졌고, 군사기술의 발전만이 그나마 전쟁의 얼굴을 인간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관념들이 이것의 대표적인 예들일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군사주의적 담론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실제로 걸프전이 끝난 후 미 국방부와 군수산업들은 의회와 언론을 상대로 자신들이 개발하고자 하는 첨단무기 연구사업에 대해 집중적인 로비를 벌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군사기술의 혁신이 가져올 수 있는 '깨끗한 전쟁'론에 힘입어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안보에 대한 기술과학주의적 담론의 등장은 그 동안 보류돼왔던 여러 군사기술 개발계획을 다시 현실화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TMD(Theater Missile Defence : 전역미사일방어)구상인데, 과거 레이건 행정부 당시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문제 때문에 유보되었던 SDI(Strategic Defence Initiative :전략방위구상) - 이른바 스타워즈 계획이 걸프전이후 널리 확산된 군사기술에 대한 대중들의 맹신을 바탕으로 하여 TMD구성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과학주의적 안보관의 등장과 TMD TMD는 전쟁의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무기체계의 감축및 상호신뢰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존하여 그로부터 효과적인 방어를 구축하는 것에서 찾는 기술과학주의적 안보관의 결정판이다. TMD란 상대방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일종의 '미사일 방어체계'이다. 그 과정은 3단계로 구성되는데, ①적의 미사일 발사초기에 레이저 등으로 요격하는 발사단계 요격(BTI) ②대기권밖 고공에서 요격하는 THAAD(전역고고도 방위체계) ③대기권내에 진입한 적국의 미사일을 페트리어트 미사일로 요격하는 저층요격단계로 이루어져있다. 이 가운데 저층요격단계는 파괴된 미사일 잔해에 의한 피해를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TMD구축을 위해 핵심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기술은 BTI와 THAAD이며, 이 분야에 앞으로 천문학적인 재원이 연구개발비로 투자될 예정이다. 그러나 TMD구상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우선 이와 같은 방어체제의 건설은 기술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레이저를 통해 적의 미사일 기지를 요격한다는 BTI는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설사 미사일요격이 가능해지는 수준이 되더라도 수백 기의 미사일이 동시에 발사되었을 때 과연 초기에 정확히 판단하고 요격할 수 있는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는 THAAD도 마찬가지이다. THAAD는 비유하자면, 빠르게 날아오는 수백 개의 적의 총알을 다른 총알을 발사해 명중시키는 것과 같은 기술이다. 그러나 현재 성공했다는 실험은 느리게 날아오는 농구공 하나를 다른 농구공으로 명중시킨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이런 수준의 실험도 8번 중에서 단 한번밖에 성공하지 못한 단계이다. TMD가 발생시키는 또 다른 문제는 이중적인 군비경쟁을 유발하면서 막대한 자원의 낭비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즉 TMD구축은 상대방 나라로 하여금 TMD를 파괴할 수 있는 다른 무기의 개발을 촉진시킨다. 예를 들어, 현재 동북아시아에서도 미-일이 TMD를 현실화시키고 있음에 따라 중국 및 러시아의 군사력 또한 증강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TMD계획은 극복하기 어려운 기술적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첨단군사기술의 위력에 대한 과대포장과 안보에 대한 기술과학적 담론을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의 결과는 무한적인 군비증강과 자원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민간경제와 결합하고 있는 첨단군사기술 : Dual-Use 패러다임의 등장 전후의 군사기술개발전략 : Spin-Off에서 Dual-Use로 2차대전후 지속되어온 군사기술개발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Spin-Off(전체 치환)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있다. Spin-Off란 원래 군사용도로 개발된 기술이 후에 민수용으로 전환되는 것을 일컫는다. Spin-Off패러다임은 군사기술의 민수전환과정이 별다른 관리와 비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적인 과정이라고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단선적 인 인식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군사력이 국가전 략의 중요한 자산으로 간주되던 시절 군사기술의 개발 을 국가기술 개발정책의 중심에 올려놓으려는 군산복합체의 특정한 의도이기도 했다. Spin-Off패러다임에 따라 기술개발에 투자되는 대부분의 재원이 군사기술개발에 할당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전후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넘볼만한 나라들이 없었 다는 점에서 기인했다. 즉 실질적 인 경쟁상대가 없음으로 인해 미국은 타국과의 경제경쟁에 크게 우려하지 않은 채 사회주의와의 대결을 목표로 군사기술개발을 최우선순위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애초에 군사적 용도로 개발된 몇몇 기술들이 컴퓨터 산업 같은 민간기술의 발전을 파생시키는 듯 보이자 Spin-Off패러다임은 군사기술의 개발이 민간과학기술의 발전을 선도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키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군은 군사기술개발에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실상 군사기술과 민간기술의 상이함으로 인해 군사기술의 민간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는 그다지 크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Spin-Off패러다임을 정당화시켰던 이 같은 상황은 1970년대 초를 기점으로 근본적으로 변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일본과 유럽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미국 경제를 추격하기 시작하는 반면, 미국은 바로 이 시기부터 과중한 군비증강의 부담이 경제를 구조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해 산업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 막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냉전체제 종식에 따른 국제관계의 변화는 미국의 국가기술개발정책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탈냉전이라는 시대적 흐름은 곧바로 '냉전시기의 군사예산과 군사력이 계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이다. 결국 Spin-Off패러다임은 이 같은 미국경제의 지속적 약화와 냉전의 해체라는 국내외적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확산되게 되었으며, 이러한 논의의 연장에서 기술의 민군양용적 가능성을 현실화하여 자원활용을 효율적으로 극대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기술개발전략의 새로운 방향과 관련한 이같은 주장은 종래의 Spin-Off패러다임에 대한 면밀한 비판을 함축하는 것이었는데, 비판의 핵심은 Spin-Off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며, 군사기술의 민수전환에는 또 다른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데에 있었다. 이에 따라 결국 군사기술을 민수용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민군겸용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게 되었으며, 이 주장의 타당성이 널리 수용되면서 Dual-Use 패러다임이 새로운 군사기술개발 패러다임으로 대두되게 된 것이다.
민간경제에 살상산업을 접속하라! Dual-Use 패러다임은 군사부문과 민수부문에 동시에 응용될 수 있는 기술(민군겸용기술)·공정(민군겸용공정)·제품(민군겸용제품)의 3가지 차원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하에서 겸용기술이란 흔히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즉 '향후 군사력 및 산업경쟁력 증대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현재 민·군 모두 보유하지 못한 기술을 사전계획 하에 공동연구 개발하여 창출하는 것' 혹은 '국가의 정책개입에 따라 민과 군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의 기술을 서로 이전 받아 활용하는 시도' 등을 의미한다. 현재 민군겸용기술에 대한 연구는 주로 3가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방식은 공통의 기술에 입각해 민군겸용제품을 동시에 개발하는 경우로, 과거에 제네럴일렉트닉사가 개발한 제트엔진이 군용비행기와 민간여객기에 동시적으로 사용된 경험이 이에 해당한다. 두번째 방식은 군수산업과 민간산업의 인프라스트럭처를 공유하기 위한 시도들로서, 우주개발을 통해 확립시킨 여러 인프라스트럭쳐들 - 우주선, 발사체 관련 장비들 - 이 민간부분의 상업위성통신사업에 이용됐던 사례를 상기해볼 수 있다. 세번째 방식은 기초기술연구를 지원하면서 민·군 산업기술의 기반을 확충하는 경우인데, 이는 주로 대학 및 민간연구소와 군이 연계를 맺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군겸용기술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방부는 98년 4월 민군겸용기술사업 촉진법을 제정하면서 "민군 규격의 통일화를 범정부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국가차원의 다양한 우수인력과 기술정보, 연구장비 등의 자원을 중복 투자함이 없이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98년엔 민군겸용기술 14대 과제를 선정하여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 예산은 현재 군사비가 아닌 과학기술부의 선도기술개발예산에서 지출되고 있다. Dual-Use 패러다임의 핵심은 간단하다. '첨단과학기술의 겸용적 성격을 극대화한다면, 군사기술개발이 국가안보뿐만이 아니라 민간경제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는 현대첨단기술의 발전이 더 이상 군사용과 민수용의 선험적 경계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Dual-Use 패러다임에 따라 군위주의 기술개발정책이 민·군 합동의 기술총력화체계로 나아간다는 이야기는 살상기술연구가 과학기술연구에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며 나아가 살상산업이 우리의 일상경제에 더욱 무서운 속도로 결합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상상일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동일한 생산라인에서 군수품과 민수품이 동시에 생산될 수 있고, 민군겸용제품으로 생산된 가전제품이 버튼 하나의 조작으로 군사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미래가 기다릴 지도 모를 일이다.
4. 미지의 대륙으로 확산되고 있는 군사화 : 비치명상 무기·우주공간의 핵기지화 사회적 통제를 심화시키는 비치명상무기의 개발 최근 나토의 유고공습에 '흑연거미탄'이라고 불리는 신형무기가 등장했다. 미 국방부의 조지 펜튼 대령은 흑연거미탄이 유고전역에 공급되는 전기의 70%를 차단하는 큰 효과를 거두었지만, 별다른 시설피해나 인명살상은 없었다면서 '우리는 무기개발과 관련해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자평했다. 근래 들어 과학에 잠재된 상상력은 우리가 그동안 만화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 같은 새로운 무기들을 탄생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무기들은 인명살상이나 시설피해는 줄이면서도 군사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비치명상무기' 혹은 '비살상무기'로 불리고 있다. 현재 개발중이거나 사용중인 비치명상무기의 종류는 다양하다. '거품그물탄'이라는 무기는 거품 같은 고무성분을 뿌려 차량의 운행을 막고 사람의 호흡을 곤란케 한다. '섬광탄'은 터지면서 강한 섬광을 내 주변사람들의 시각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킨다. 이외에도 시체 썩는 냄새를 퍼뜨려 이를 호흡한 사람이 구토를 하게 하면서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악취탄' , 강력한 접착력으로 사람 몸에 달라붙어 상당기간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거미줄탄'이라는 무기도 개발되고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에서는 특정한 인종의 DNA만을 골라 파괴하는 '유전자 무기'까지 개발되고 있다고 하니, 가히 과학기술에 대한 인류의 오만이 어디에 다다르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비치명상무기는 군사용 무기로 분류되지 않는 까닭에 어떠한 국제적 규제조치 없이 날로 개발이 확산되는 추세에 있으며, '인명살상을 피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인해 그 시장 또한 확산되고 있다. 비치명상무기의 개발 및 시장확산이 가지고 있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무기들이 주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보다는 사회적 통제를 목적으로 평상시에 더욱 자주 이용된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현재 코소보에 진주하고 있는 나토군 또한 일상적인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이런 종류의 무기를 더욱 빈번히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사회적 통제수단으로서 빈번히 이용되리라 예상되는 비치명상무기의 시장확산은 이러한 무기들이 인권탄압국에 대량으로 흘러갈 경우 더욱 강도 높은 인권탄압과 민주주의의 억압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공간의 핵기지화가 예고하는 재앙 지난 97년 미국방부와 나사는 '태양계의 탄생과 진화를 이해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면서, 앞으로 7년동안 토성탐사임무를 맡게 될 카시니호를 발사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방부와 나사가 현재 우주공간에서의 핵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OST(Outer Space Treaty)조약을 무시하고, 카시니호를 발진시키기 위해 무려 32.8kg에 달하는 방사능 플루토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카니니호의 플루토늄탑재는 심각한 재앙을 일으킬 가능성을 안고 있다. 오는 99년 8월 18일 나사는 지구중력장을 이용해 카시니호의 속력을 가속시킬 계획을 잡고 있으며, 이때 카시니호는 10mile/s의 속도로 소위 '지구근접비행'을 시작하게 된다. 나사는 이 과정에서 카시니호가 비참한 재난을 일으킬 가능성, 다시 말해 우주선이 대기권과 충돌할 가능성이 100만분의 1도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지구 근접비행 도중 예상치 못했던 돌발사태나 기체의 기능부전로 인해 플루토늄이 누출된다면, 이로 인한 인류의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나사는 카시니호의 플루토늄 운반체가 대기권재돌입과정에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이 운반체는 카시니호의 재돌입 예정속도인 64,000km에서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나사는 돌발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유출된 플루토늄이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풍매형태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즉 돌발사태가 일어난다면, 32.8kg중 9kg에 달하는 플루토늄이 풍매형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심각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플루토늄 1kg에는 방사성 원자 1조개가 함유되어 있는데, 이 입자를 단 하나만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암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나사는 카시니호에 돌발사태가 일어날 확율이 100만분의 1밖에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수치는 우주공간에서 카시니호가 운석에 충돌했을 경우만을 상정해 계산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비행과정에서 기체결함이나 로켓의 점화불발 혹은 통신시스템장애 등 여러 요인들에 의해 여러 크고 작은 위험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저명한 물리학자 미치코 카쿠는 지구근접비행이 실패할 확률이 약 10%에 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주공간에서의 핵활동은 지구와 인류전체를 대상으로 심각한 재난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주공간의 군사기지화를 추진하면서, 핵의 사용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어 카시니호와 비슷한 여러 재앙의 가능성을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우주공간의 군사기지화는 최근 공개된 미 국방부의 보고서 '전쟁의 미래: 권력, 과학기술, 그리고 미국의 세계지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미국방부는 "우주공간에 군사기지를 배치함으로써 미국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을 것"라며, "마치 유럽이 해상을 장악하면서 반세기동안 세계를 지배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또한 우주를 장악했을 때 적어도 그만큼의 시간동안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그들은 건설될 "우주군사기지의 에너지원으로서 핵전력의 사용을 증대시켜야한다"면서, 앞으로 우주공간에서 핵과 관련된 활동을 확대시키겠다는 점을 공공연히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우주공간의 핵기지화계획은 앞에서 언급한 OST조약을 또 한번 무시하는 것이다. 미국자신이 주도했고 현재 91개국이 조인한 OST조약에 따르면, "우주공간에 대량살상무기를 배치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으며, 우주개발 또한 오로지 "평화적인 목적에 한해서, 다시 말해 인류전체의 이해에 기반에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진행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미국방부와 군산복합체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군사·경제적 이해를 위해 인류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5. 나가며 이 글을 통해 살펴봤듯이, 오늘날 과학기술과 군사부문의 상호침투는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무기연구에서부터 군비증강 및 과학기술의 군사적 이용을 정당화하는 여러 이데올로기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증대된 역할은 군사부문에 뿌리깊게 각인되어 있다. 기술과학주의적 안보관이나 Dual-Use 패러다임의 등장은 국가가 주도하는 군사력 중심의 안보담론를 더욱 활성화하고 있으며, 이것의 결과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군비의 무한적인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군사화의 새로운 영역이 확산되는 상황은 인류전체의 안전과 권리를 더욱 교묘하게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결국 평화운동의 핵심적 의제인 대안안보를 위한 노력, 다시 말해 군사중심의 안보담론을 뛰어넘어 여러 생태적·인권적 가치를 포함하는 민중중심의 대안안보담론을 확산시킴에 있어 커다란 장애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이 지시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극히 미약한 결론이지만, 그것은 평화를 정착함에 있어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문제를 결코 우회할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평화운동과 과학기술운동의 연대를 소박하게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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