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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9회)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9회)

 

 

 

1

 

연달아 계속 터지는 묻지마 범죄 뉴스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지하철에서 침을 뱉었다고 따지니까 욱하는 기분에 칼로 찔러 버리고, 술 취한 자신에게 장난치는 것 같으니까 칼 들고 와서는 엄한데서 화풀이하고, 회사에서 뒷다마 까면서 잘리게 만든 동료들을 찾아가 앙갚음하려다가 도심 활극을 벌이기도 합니다.

무서운 세상이지요?

이런 뉴스들이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뉴스들은 차원이 조금 다릅니다.

그동안 뉴스에 나왔던 흉악범들은 정신병자이거나 사이코 페스이거나 동종 전과자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우리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성질 더러운 인생 낙오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흉악범들이 평준화되고 있습니다. 흐흐흐

이 방송을 진해하는 저도 그렇게 평준화된 흉악범들의 잠재적 위험군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 뉴스들이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 뉴스들을 접하면서 처음에는 살이 떨렸습니다.

나도 한 순간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면 저렇게 뉴스에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하루 이틀 지나니까 잘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성질을 부려야 우리 같은 것들이 사회 곳곳에 시한폭탄처럼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잠시라도 알아주니까요.

하지만 다시 내 일로 받아들여보면 세상이 너무도 무섭습니다.

한순간에 이유 없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삶은 너무 허망하고, 성질 한 번 제대로 부려본 인생 낙오자들은 혐오스러운 인생 쓰레기가 되 버렸을 뿐, 세상은 그 누구도 안아주지 않습니다.

 

 

열아홉 번 째 방송의 원고를 쓰기 시작한 지금은 8월 27일 낮 12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초대형 태풍이 제주도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이곳 제주에는 낮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고, 바람은 어지럽게 불어오고, 높은 기온에 습도도 높습니다.

이 방송의 원고를 다 마칠 때쯤이면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겠지요?

 

자우림의 노래 듣겠습니다.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해놓은 것 없이

가진 것 하나 없이

그럭저럭 되는대로

그런 하루 하루

 

나도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나도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뜻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믿는 사람 없이

진짜 사랑 한 번 없이

그럭저럭 되는대로 그런 하루 하루

 

나도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나도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뜻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

보다시피 볼 것 없이 살았어

 

간절하게 바랬던 게 있어

맘을 다해 했던 일이 있어

내 맘대로 되 준 일은 없어

결국 아무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아

 

 

2

 

제가 아주 예민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큰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큰 딸은 고등학교 1학년, 둘째 딸은 중학교 2학년, 막내 딸은 국민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 전에도 빚이 있던 집이었는데, 네 명의 자식들 교육만으로도 한참 돈이 들어갈 일이 많을 집의 가장이 실업자가 됐으니 오죽 막막했겠습니까.

아버지는 결국 돈을 벌러 일본으로 갔습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 아주 흔하게 보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된 것이지요.

 

아버지는 일본에서 오래 있지를 못하고 다섯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를 마중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공항으로 나간 나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흥행했던 미국영화 ET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저씨가 나와 엄마를 향해서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다가왔습니다.

그 아저씨가 가까이 와서야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ET같이 생긴 아저씨는 나를 꽉 껴안았고, 엄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는 일본에서 사온 선물을 풀어놓았다.

일본 커피와 초콜릿, 아놀드 파머 상표가 있는 옷, 코끼리 상표가 있는 밥통과 보온병, 마일드 세븐 담배, 그리고 면세점에서 싸게 샀다는 양주 한 병.

나는 아버지에게 양주를 따라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갈빗집에서 일했다는 얘기만 할 뿐 왜 ET가 돼서 돌아왔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차를 운전하는 기술 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보러 돌아다녔습니다.

일본에서 벌어온 돈이 있어서 몇 달은 거뜬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일자리가 나타나지 않자 아버지는 다시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이 지나도 일자리가 나타나지 않자 거의 매일 술을 먹었고, 엄마를 패기 시작했습니다.

세 달이 지나도 일자리가 나타나지 않자 밤낮 없이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행사 때문에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들어오던 날, 아버지와 엄마의 고함소리가 집밖으로 들려왔습니다.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돌아서는 순간, 엄마는 맨발로 뛰쳐나오고 있었고, 아버지는 손에 칼을 들고 그 뒤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파출소로 달려가 강도가 들었다고 신고를 했고, 경찰은 우리 집으로 왔습니다.

술에 취해있던 아버지는 “나 좀 잡아가세요”라면서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경찰은 아버지에게 그러지 말라고만 하고 돌아갔고, 나는 밤늦게까지 친구 집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집에 들어왔습니다.

무섭도록 조용한 집이 정말 싫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술을 먹었고, 엄마는 계속 매를 맞았고, 나는 그 후에도 두 번이나 더 경찰을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자칫 잘못했다가는 홧김에 칼로 마누라를 찔러 죽인 흉악범이 될 뻔 했고, 저는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한 폐륜아가 될 뻔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이제 제가 그 나이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아버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저를 경찰에 신고할 자식이 없습니다.

 

 

3

 

매우 추웠던 지난 겨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TV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따뜻한 봄이 와서 숨을 돌리려니 비가 오지 않는 메마른 날씨로 마음이 바짝바짝 말랐습니다.

긴 가뭄 끝에 짧은 장마가 끝나고 찾아온 더위는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미쳐버린 날씨 때문에 극도로 민감해진 저도 서서히 미쳐가고 있습니다.

 

똥이 마렵군요.

똥이나 싸야겠습니다.

 

 

4

 

흉악범들이 날뛰면 덩달아 날뛰는 것들이 지식인입니다.

 

물 만난 기자들은 평소에는 찾지 않던 인생 낙오자들의 주변을 샅샅이 뒤집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흉악범의 평소 행동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쓰레기통까지 뒤져서 쌓여 있는 술병들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진지한 얼굴로 한마디 멋있게 지껄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집니다.

베트맨에 나오는 조커처럼 평생 웃는 얼굴로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기자들과 함께 물을 만나서 설쳐대는 분들이 전문가들입니다.

심리적 상태가 어쩌느니, 사회적 환경이 어쩌느니 하면서 무미건조한 진단을 하고는

사회적 안정망이 필요하다면서 공자왈 맹자왈 할뿐입니다.

부동산투기도 하지 않고, 룸싸롱이나 골프장도 가지 않을 그 분들은

평소에도 사회적 안정망을 만들기 위해 무진장 노력하리가 믿고 싶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뭔지는 잘 모르는 게 분명합니다.

 

사회의 철저한 관리와 감시도 필요하겠고

사회적 안정망도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 이 순간 정말 필요한 것은 단 한 명의 사람입니다.

 

두세 달에 한 번만이라도 문자를 보내며 살아 있는지 물어봐주는 사람

서너 달에 한 번만이라도 술 한 잔 같이 먹어 줄 수 있는 사람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영화 보러 가자고 전화해 줄 수 있는 사람

애써 위로하거나 동정하지 말고 더러운 성질만 좀 받아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단 한 명이 있다면 꽉 막힌 세상에서 숨은 쉴 수 있지 않을까요?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께

네가 만약 음~음~음~음~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오~오~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친구가 될께

네가 만약 음~음~음~음~ 기쁠 때면

내가 웃음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오~오~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만약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여러분

 

 

5

 

방송을 마쳐야 하는 지금

세상은 캄캄해졌고

비바람은 무섭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마음이 더 뒤숭숭해지는 이 밤

제가 내뱉은 말들이 다시 저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흉악범도

피해자의 가족들도

저도

편한 잠을 자기는 어렵겠군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이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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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성민이 mk102938@hanmail.net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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