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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병역거부자 〓 '여호와의 증인' - '잡범방'에서의 하루들.

엘리베이터에서 6층에 문이 열리고 전 그동안 같은 곳에 있었던 분들과 작별의 손짓을 내고 6층 1사로 가게 됩니다. 그리더니 거기에 상주하는 직원(교도관)이 어떻게 왔냐고 하더니 전 ' 신입입니다 ' 라고 답했지요.



그리더니 그 직원은 직원이 머무는 공간에 잠시 대기를 하라고 하네요. 그래서 그 자리에 서더니 그 공간에 있었던 한 눈에 보아도 '여호와의 증인(이하, 증인)'스러운 사동청소(소위 '소지'라고 부르는)가 절 여러 가지로 묻더니 노트에 적더라고요.

 

물론 잠시 후에 알았지만, 그 직원 나름대로 수용자레 대한 파악 좀 하려다보니 이름이나 죄명 정도 물어보는 것이었죠. 그러던 중 제가 죄명을 물어보더니 그 들의 선에 따라 '병역법위반'이라고 답했는데 그 사동청소의 말은 역시나 '증인'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전 증인이 아니다고 답하면서 비슷한 까닭으로 구속을 하였다고 말했고, 혹시 이런 경우를 처음 보신 것 아냐고 물어보더니 그 사동청소의 반응이 저에게 오히려 놀라웠어요. 바로 그러한 분들 만나봤다고 그 분이 말을 하더라고요.

 

전 처음엔 무슨 소리이냐고 되물어 보았지만, 제가 지정당한 방에 들어서면서 그 궁금함은 일거에 풀려버렸지요. 바로 구치소의 경우 죄명별이나 범법 횟수 등에 따라 분류를 하는데 제가 들어갈 방이 바로 '기타방' 즉 잡범방이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병역법 위반의 경우 바로 '기타방'으로 가게 된 것인데, 아무리 개방적인 사고를 가져도 어떠한 사안에 대한 당사자를 만나지 않는다면 알 수가 없듯이 이 병역법 위반의 경우에도 저를 포함한 병역거부자의 경우에는 88조 '입영의 기피'으로 적용을 당하는 분류가 있지만, 이와 다른 분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공익근무요원 등의 대체복무로 근무를 하다가 여기서도 재수없는 표현인 '정당한 사유없이'-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그 분들의 시선에게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는 것처럼 - 통산 8일 이상 근무를 하지 않는 경우, 즉 현역병에게는 '근무이탈'과 비슷한 범법을 하게 된다면 89조의2 '공익근무요원 등의 복무이탈'에 위반하게 되어 구속당하는 분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경우에는 재판정에서 복무의사가 있다는 의사를 밝히기에 집행유예로 석방을 해주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나중에 말하겠지만 참 이 것도 사람 미치게 만드네요. 하여튼 이러한 기존의 선에서 벗어난 위인(?)이 나타난 것에 대하여 놀라운 표정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다 그 직원이 절 불렸고 드디어 입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더니 그 방의 대표(이하, 봉사원)이 누군가에게 식기 세척이나 자기 짐 안내 등의 이런저런 걸 시키면서 절 불렸지요. 그리더니 편안한 방에 왔다는 일종의 자랑을 하면서 처음이나까 이 방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살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면서 제 소개를 하더니 역시 '병역법위반'에 대하여 '증인'이냐고 물어보는데 전 아니다고 말했죠. 그런데 또 다른 분이 저에게 혹시 '양심적 병역거부'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단어로서 물어보는데 정말 이 운동권(?)의 세계 바깥에서 이런 단어가 제 귓가를 스친 것에 정말 놀라웠지요. 물론 전 맞다고 답했지요.

 

그리고 본인으로선 혜택을 받았지만, 국가권력이 재소자에 대한 당근 중에 하나인 '가석방'에 대하여 내년(2006년) 9월 말이나 10월 말에 나올꺼라는 희망을 봉사원이 제시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면서 이 징역살이에서 영치금이 없으면 살아가기가 어럽다고 말을 하면서 영치금이 있는대로 쓰라고 하더군요. 전 솔직히 이런 말을 듣으면서 무슨 소리인지 되울어 보고 싶었고, 심지어 속물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 감옥에서도 자본주의의 광풍이 미치고 있다는 걸 느겄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최소한의 생필품까지 구입을 해야 할 정도이라서 이 영치금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럽고, 직설적인 표현으로서 인간적인 삶까지 포기할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 '또 다른 분'이 제가 '다산인권센터'에서 일한다고 하더니 법무법인 '다산'이나 김칠준 변호사를 들먹더니 (오산)세교지구를 알고 있냐고 물어보면서(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고 말했지요.), 작년 철거용역 한 사람의 죽음으로서 알려진 '오산 수청동 철거투쟁' 와중에 구속을 당한 이들(26명) 중에 한 사람이다라고 말을 하였지요.

 

그리고 민가협에서 출간하는 '민주가족'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 같았습니다. 물론 '양심수'로 지정하여서 방에는 우송한 '민족21'이 꽂혀져 있었지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민족21'을 내용상에서 좋아하지 않았는데 참 징역살이에서 읽을 것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 약간의 오버이지만 조만간 저도 '양심수'가 된다고 말하면서 양심수 명단 속에 적혀있던 병역거부자들 대다수가 잘 알고 있다고 말을 하였지요. (좀 미안한 소리이네요...)

 

그럼에도 그 분이 소위 활동가가 아닌 소박하게 살았던 주민이어서 내면에서는 '한국인'스러운 보통사람이어서 그렇게 대화를 할 이가 아니었지만, 지금 출소를 하였다고 알게 되었고 이후 모 잡지에서 나온 사진 중에서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는데, 어떻게 사시고 있는지 궁금하고 신세 지은 것들이 많아서 답례라도 해주고 싶네요. 물론 전철연 쪽을 통해 알 수는 있겠지만...

 

그러다 상의를 벗더니 봉사원 눈에서 꽤죄죄한 면티를 보더니(물론 수감을 당하면서 미리 옷가지를 준비하지 않았지만) 속옷을 빌려(!) 주었고, 앞서 말했지만 또 다른 '병역법위반'자 두 명과 함께 3.92평에서 자게 되었고 2005년 8월 4일은 저물어 가게 됩니다.

 

그 후 저녁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한 후 제가 먼저 샤워를 하라고 하여서, 더운물이 필요하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찬물로 샤워를 하더니 진한 녹색 매트리스 깔고 법무부마크 모포 깔면서 밍크담요를 까는 잘 준비를 하더라고요. 그 다음 콜라 한잔씩 돌리면서 TV를 시청하는데 개인적으로 TV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바로 잤지요.

 

시간은 흘러 아침 6시가 되니 봉사원이 다들 깨우면서 밖에선 한 여성이 뭐라고 소리를 치면서(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소리의 내용은 투쟁구호이고 수청동 관련 '공범'이다고 하네요. 그런데 대단한 건 제가 이 방에서 있는 동안 거의 쉼 없이 투쟁구호를 내지더라고요.) 이불을 개는데 뭘 보여 줄 것이 있다고 봉사원이 각 접고 순서대로 하라는데... 참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습네요.

 

그러면서 언제나 상호존중이 아닌 상명하복이란 군사주의적 시스템이 깔려저 있는 짜증스러운 인원점검을 하면서 또 하루가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중한 운동시간과 접견, 편지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게 됩니다.

 

그러다 날 법의 이름으로 처단할 것을 요구하는 '공소장'이 도착하게 되고 그 처단을 준비하는 날 즉 심리공판을 8월 17일 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변호사 선임을 요청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법무법인 다산'이 해주는 걸 공소장에서 써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공소사실을 담은 내용이 반 페이지 분량인 것이 좀 실망했지요. 단지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한 것을 담은 것 이외에는 언제쯤 입영사실을 알면서도 입소하지 않았다는 등의 국가권력의 눈으로는 앞선 병역거부자와 똑같다는 것이지요.

 

전 이렇게 재판기일을 기약하면서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하루들'을 살아가면서 이따금 아침 9시경에 찾아오신 어머니나 다산 등의 4층 사람들 등이 찾아와 이 짧은 7분의 면회하면서 그나마 있으만 해도 이 좁은 방에서 사생활이 없이 집단생활을 하는 고역이나 그동안 지냈던 이들과의 해여진 것에 대한 외로움에서 작으나마 '마취제'를 맞고 다녔지요.

 

그러다 어느 날 다산에서 제가 않는 자리 옆에 자리하는 분이(누굴까요?) 면회를 하면서 앞서 빌린(?) 속옷을 갚아야 하고 제 스스로 필요하게에 속옷 좀 차입하라고 하였고, 그 다음 날 아침 그 언약대로 구치소에서 판매하는 속옷들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면서 구매담당 재소자가 본인이 수령하였음을 확인하는 절차에 따라 명부에 지문날인(무인)을 요청하였고 전 당연히 지문날인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의 반응에서 저와 제가 있던 방 사람들 모두 놀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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