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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석방기간이 한 달 남짓 남았건만...

오늘 사무실에 도착하니 옆자리에 편지 뭉치가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봉투를 보니 '~우체국 사서함 ○호-○○○○'...
이른바 징역편지 즉 행형시설에서 수감 당한 재소자에서 보내는 편지이지요.

 

그런데 제 추측이지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매년 출감하는 '감옥인권' 시리즈를
보고 여기로 보내는 것 같은데, 아직도 옛 주소로 되어 있어서
소인에 찍힌 날짜가 거의 두 달 되는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이러한 '민원'에 어떻게든 답해보려고 다른 분이
하나씩 뜯어보았는데 대부분이 참 제가 있는 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이라는
명칭과 혼동이 되어선지 무슨 진정서 같은 내용이더군요.

 

그러던 중 그 다른 이가 저에게 한 편지를 보는데
글을 읽으니 보내는 이가 과거에 삼청교육대에 끌고 가버려
상당한 장애를 입혀 지금도 고통스럽게 지냈는데
다행히 이와 관련한 보상위원회에서 보상금이 나왔는데
본인으로선 그동안 의료비용으로 들은 금액과는 텃 없이 모자란 것이더군요.

 

그래서 국가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요구하며 행정소송을 하였다고 하였는데
1심에서 각하(기각도 아닌...) 결정이 나와 항소중이다고 하면서
장황스럽지만 이 소송에 좀 도와달라는 듯한 글이었고,
제가 그 편지에 있는 사건번호를 통해 조회하니 지금도 계류중인 것 같았어요.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 요청에 쉽게 받을 수는 없는 듯하고
결국 삼청교육대과 관련하는 활동가에게 전달하자는 결론을 하였은데...
이 알 수 없는 씁쓸함이라...

 

그러선지 '사람' 이달호를 보니
광주교도소에 있는 어느 분이 박래군 씨 이름으로 보낸 편지를 실렸는데
감정적인 판단으로 내린 징벌이나 부당한 처우 등에 대하여
구제를 해야 하건만 그저 본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형식적인 반응뿐이며,
'재소자'(법정용어는 '수용자/收容者'이지만 이 용어가 시혜적인 어감이 있어서
저로선 싫어함)에게는 엄연한 시민임에도 소측에선
이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 이런 구절에는 나도 대단히 동감!
특히 내가 있는 교도소가 대상이 만 20~25세이다보니 공식석상에도
교도관이 반말로 대하니까... -

 

또한 행형시설 내 최대의 악법인 '집필사전허가제'로 인한
원하지 않던 낙인찍힌 것(문제수), 언제나 골치아픈 의료권까지
종합적으로 지금이야 권리구제가 확대되어 인권침해의 정도가
약해졌다고 반문하여도 교정이 아닌 관리에 치중하는 당국의 현실에
'아직 멀었다'다는 답뿐인 듯 느껐습니다.

 

참 제가 지난주 앞선 글의 주인공인 용석씨와
영등포교도소에 있는 김성환 위원장과 병역거부자인 영진 씨까지
아주 행형시설을 왔다 갔다 왔습니다.

 

그 중 이후에 구속당하는 노동자 등의 양심수를 위해
이따금 단식투쟁을 하며 교도소측과 지속적인 사보타주를 하는 김 위원장을
보며 제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음에도 현실에서 여러
어러움이 느낀다는 것에 미안함이 들었고 이 삼성에 치졸한 법정 탄압으로
억울하게 약 2년간 징역살이에 있다는 것에 화가 났었지요.

 

그럼에도 '바쁜데 왜 왔어?'라는 첫 물음에도 반가움이 들었고
현 시국에서 소외 된 듯하다고 보았건만 매달 면회 횟수가 채워지면서
지율 스님도 찾아 왔다고 말을 하였지요.

 

그리고 제가 있는 단체 사람들이나 문정현 신분님, 김지태 이장님의
안부를 여쭙기도 하였지요. 참 직접 안부를 묻지 못하고 한 사람 걸쳐서
안부를 전해야 하는 그 심정... 저도 그러 했기에 만날 수 있다면
전해드리 겠다고 답했지요.

 

또한 영진 씨의 경우 어머니와 전쟁없는세상에 있는 모 님과 함께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나눴는데, 저로선 그 시간동안
모자간의 '깨소금' 냄새가 진하게 나니 눈부터 시작해서 허리 통증
그리고 공황장애까지 있다는 병을 다 당했던 영진 씨가 모습이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 아무리 외부용이더라도 이런건 쉽지가 않는데... -
안심이 들고 모자 사이에 나는 이 '깨소금' 냄새에 왠지 부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첫 대면이라 시간상 다른 분과 대화하다 몇 마디 나눈 정도이지만
하여튼 두 번의 좌절 끝에 성사가 되어서 좋았는데...
지금 출역을 하며 적응을 하고 있는데 앞서 공황장애 때문에
소측에서 수시로 작업취소를 시도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서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다 내면의 선을 넘어 버렸던 이에게
아니 또다시 간섭을 하는 저 행정을 보며 악 화가 났고 어떻게든 버티라고
전하였지요.

 

물론 시간이 끝났다는 방송이 나오면서 마이크가 꺼지는 그
안타까움은 느껐음에도 수시로 손짓을 하는 저 모자의 애잔함이...

 

그리면서 이제 2007년이 되었는데 참 제 자신은
아직 경찰의 부름 없이 무사히 보내고 있지만 참 여러 갇힌 벗들 때문에
원하지 않는 동거는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다시 말해 전 아직도 '갇혀저 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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