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제25장: 전반적 집산화의 전제 조건

경제학 교정: 사회주의 생산양식 (16) 총명한 유물론 2 겨울


AA AB AC AD AE AF AG AH AI AJ AK AL AM AN AO AP AQ

 전반적 집산화의 전제 조건

 

수백만의 소규모 농가를 집산화하는 이 거대하고 역사적인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필요했다. 자본주의의 발전 자체가 산업의 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물질적 조건을 마련해 준 데 반해, 농업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이행기에 상당 부분 그 조건이 조성되어야만 했다.

 

공산당과 소비에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전반적 집산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농촌의 빈민층과 중산층을 지원하고, 농촌 부르주아의 착취 경향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전 농민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빈농은 세금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사회주의 정부는 노동법을 통해 빈농과 농업 노동자의 이익을 세심하게 보호하였다. 간난(艱難)한 중농의 토지 개량은 국가의 비용으로 무상 제공되었다. 정부 조직은 농기계 임대소를 조직하여 우선적으로 가난한 농가에 생산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빈농과 중농에게는 신용 대출이 제공되었는데, 종자와 생필품 대출은 우대 조건으로 배분되었다. 정부 조직의 과학적 지원 체계 구축, 광물 비료 공급, 가뭄 퇴치, 대규모 관개 사업 시행 등은 농촌 경제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동시에 공산당과 소비에트 정부는 부농에의 고과세, 임대 토지 면적 축소 및 고용 노동력의 사용 제한, 토지 매매 금지 등을 통해 농촌 자본주의의 요소를 억제·구축(驅逐)하였다.

 

농촌에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근본적 과제는 노동계급의 지도력 아래 대규모 사회주의 공업을 기반으로 다수 농민을 기존 사유재산 제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이들의 경영을] 새로운 사회주의 집단농장(Collective farm) 제도로 조직하는 것이었다.

 

소련에서 토지 국유화는 소농을 사유재산제 얽매이지 않게 하여 소규모 농업에서 대규모 집산농업으로의 이행을 촉진하였다. 토지 국유화는 토지 매입과 임대료 지불에 드는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지출을 없애주었으므로, 농업 부문에서 대규모 사회주의 농장을 조직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였다.

 

사회주의 공업의 전면적 발전은 농업의 사회주의 변혁의 열쇠로서, 집산화를 위한 길을 닦는 데 결정적 중요성을 지녔다. 소련에서 산업화의 초기 몇 년 동안 트랙터, 콤바인 수확기 및 기타 복합 농기계 생산을 위한 공장이 건설되었다. 제1차 5개년 경제 계획 기간만 하더라도 농업 부문에 16만 대의 트랙터(15마력 기준)가 공급되었다.

 

농촌 지역에 트랙터, 콤바인 수확기 및 기타 농기계를 공급하기 위한 공업 기반이 조성되었다.

 

농업 협동조합(agricultural co-operation)에 의해 농민의 집단농장으로의 대규모 이행을 위한 길이 열렸다. 농업 협동조합의 첫 단계는 농산물 공동 판매와 농촌 지역에의 공산품 공급, 그리고 신용 제공이었다. 낙농업, 아마 재배, 사탕무 생산 등의 전문화된 농업 협동조합 양식, 신용 제도 등과 더불어 공업 수공예 협동조합은 매우 중요하다. 이 협동조합 양식은 개개 농민에서 대규모 사회적 농업으로의 이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농민 계층 전반이 경제 활동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이 단계에서는 사회주의 공업과 농민 경제 사이에 주로 거래 유대(trade bond)가 존재하는데, 이는 정부 및 협동조합 거래의 확대와 거래에서 사적 자본을 배제함으로써 달성된다. 이를 통해 농민은 상인과 투기꾼의 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농촌 지역의 소비재 거래 협동조합(consumer co-operatives)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규모화된 거래 회전(organised trade turnover)으로서의 계약 제도는 정부와 협동조합 사이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도시와 농촌 간 생산 연계를 나타내는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이 제도는 정부가 협동조합 생산자 및 개개 농가에 특정 수량의 농산물 생산을 주문하고, 정부는 이들에게 종자와 농기구를 공급하며, 최적의 농업 방식(줄뿌리기, 선별된 종자 이용, 비료 사용 등에서)을 채택해야 한다는 조건을 부과하는 계약에 입각해 있다. 이 제도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구매하여 인구에 식량을 공급하고 공업에 원자재를 제공한다; 또한 이 시스템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며, 사설 중개업자의 개입 없이 협동조합과 개개 농가를 공업과 직접 연결한다.

 

농업 협동조합의 최고 양식은 집산화된 사업 조직, 즉 집단농장이며, 이는 소규모 사적 생산의 대규모로 사회화된 생산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집단농장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집단 노동에 기반한 농민들의 자발적 생산 협동조합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일소한다.

 

전반적 집산화 전, 지배적인 집단농장의 유형은 토지공동경작협회(T.O.Z.)였다. 이 제도에서는 토지 이용과 노동은 사회화되었었으나, 사역용 소와 농기구는 농민의 사유재산으로 남아 있었다. 대규모 집산화가 진행됨에 따라 T.O.Z.는 일찍이 과거 단계에 속했음이 증명되었다. 여러 지역에는 농업 코뮌(agricultural communes)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생산수단만이 아니라 집단 농민의 개인-가족 경작지까지도 사회화되었다. 코뮌들은 기술이 열악하고 생산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농업의 사회주의 변혁에서 핵심 매개로의] 그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들은 소비재를 평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을 실천하였다. 농민들의 결정에 따라 코뮌들은 이후 농업 아르텔(agricultural artels)로 이행되었다.

 

농업 아르텔은 집단농장의 기반이자 주요 양식이 되었다. 이는 농민의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집단 노동에 기반을 둔 집산화된 사업의 한 형태인데, 집단 농민은 농업 아르텔의 규정에 명시된 규모의 부속 사업을 개인 재산으로 할당받는다.

 

집산화 도정에서 대규모 사회주의 공업의 지도적 역할은 기계·트랙터 기지(M.T.S.)를 통해 구현된다. 이 기지들은 농업 부문의 정부 사회주의 기업이고, 이 기업은 트랙터, 콤바인 수확기 및 기타 복합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으며, 계약을 통해 집단농장에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M.T.S.는 대규모로 집산화된 농업의 공업 기반이다. M.T.S.는 또한 집단농장 건설 및 그 발전에서 집단농장 주민의 자발적 노력과 사회주의 정부의 지도 및 지원의 적절한 배합을 보장한다.

 

M.T.S.는 농업의 사회주의적 재건을 위한 강력한, 그리고 공업과 농업 간 생산 협력을 확립하는 주요 수단이다. 이 협력은 대규모 사회주의 공업이 농업에 기계 및 기타 생산수단을 공급하고, [농업 생산이] 현대적으로 완성된 기술을 갖추도록 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사회주의 정부가 구 지주의 영지 일부와 정부 소유 토지에 조직한 대규모 국영 농업 기업은 농업의 사회주의 변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국영 농장(sovkhozy)은 사회주의 혁명의 벽두부터 소련에 설립되기 시작했다. 국영 농장(State farm)은 생산수단과 모든 생산물이 국가에 속하는 대규모 사회주의 농업 기업이다. 국영 농장은 정부가 보유한 식량과 원자재의 가장 중요한 공급원의 하나였다. 고도로 기계화되고 생산성이 높은 사회주의 기업으로서, 국영 농장은 농민들에게 트랙터, 등급이 매겨진 종자, 우수한 품종의 소 등을 제공함으로써 대규모 사회주의 농업의 이점을 확신시켜 주었다. 이는 집산화를 통해 농민 대중이 사회주의로 향하도록 하는 데 공헌하였다.

 

집단농장 제도는 노동계급의 재정적·조직적 지원에 힘입어 생겨났다. 소비에트 정부는 집단농장과 국영 농장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였다. 대규모 집단농장 건설 운동 초기에는 가장 우수한 당원과 수만 명의 지도적인 노동자가 농촌으로 파견되어 농민들이 집단농장을 조직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공산당이 농민 대중에 실시한 정치 교육은 농민이 집산화의 이행을 준비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다수 농민의 집산화로의 전환은 부농에 맞서는 냉혹한 계급투쟁을 요구하였다. 소비에트 정부의 농촌 정책에 대한 부농의 반발은 소련이 곡물 부족을 겪었던 1927-8년에 특히 거세졌다. 부농들은 국가의 곡물 매매를 방해하는 사보타주를 조직하고, 집단농장의 농민, 당원 및 소련의 노동자들에 대해 테러 행위를 자행했으며, 집단농장과 국영 곡물창고에 방화를 저질렀다. 부농에 대한 단호한 투쟁과 노동자·농민의 이익 수호 시책은 빈농과 중농 대중을 공산당과 소비에트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6년 2월 25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