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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밤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 하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떠오른다. 애절한 이별 노래. TV고 라디오고 얼마나 틀어댔으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노래. 이용은 이 노래 하나로 한 때 조용필을 위협하기도 했었지...

 

쓸쓸한 가을도 다 가버릴 듯한 시월의 마지막 밤은 뭔가 애절하면서도 외로운 밤일 것 같지만 말걸기에게는 독특한 경험이 있어 파란꼬리와 회상을 한다. 어제 저녁엔, 5년만에 제대로 기념을 하기 위해 명동으로 나섰다.

 

 

2000년도에 정보통신부가 인터넷의 '질서'를 '확립'하겠다면 들고 나온 법이 현행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에관한법률>이다. 이게 첨에는 아주 '퐝당한' 법률안이었는데 그.나.마. 쬐.끔. 나아진(?) 게 요모양이다.

 

쬐끔 나아지게 하려고 운동판 일각에서 아주 지랄를 했었다. 2000년도 하반기에 [정보통신검열반대공동행동]이 꾸려졌고 1년 반동안 별짓을 다 했었다. 그리고 2002년에 [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했고,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조직했던 그 작자들 조금 뒤에 죄다 프라이버시 운동으로 '전향'했었다. 그 때 그 '지랄'과 '전향'을 일삼았던 자들 중에 진보네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인사들이 들레꽃(진경맘), 다섯병, 네오스크럼 등이다. 이들 이외에도 표현의 자유 투쟁에 열성적으로 동참했던 사람들 여럿 있다.

 

최고의 '지랄'은 2001년 10월 22일부터 12월 20일까지 진행했던 60일간 단식릴레이 농성이었다. 일주일에 하루씩 민주노동당 인사들 단식시키려고 말걸기는 당 안에서까지 지랄하는라 힘들었다. 게중에는 낮에만 살짝 하는 척하다가 도망가는 것들이 있었는데 말걸기가 다 땜빵했다. 지역에서 힘들게 활동하는 간부들은 충실히 추운 하루를 단식했는데 상집위원이란 것들은 하여간...

 

 

말걸기도 하루는 온전히 지새웠어야 하는 입장에서 낙찰된 날이 2001년 10월 31일. 바로 시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낮에는 별로 비가 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밤이 되자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올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적당히 비를 피하며 밤을 새우는 방법을 고안했다. 명동성당측에서 천막을 치지 못하게 해서 계단 바닥에 스티로롬을 깔고 그 위에서 침낭 깔고 잤는데 그날은 비를 피하기 위해서 여러장의 피켓을 계단과 스티로폼 사이에 직각으로 세워서 기둥벽을 만든 다음 큰 비닐로 둘러싸 삼각형 모양의 텐트를 만들었다. 머리쪽으로는 아무래도 막을 수 없으니 큰 우산으로 바치고.

 

쓸쓸함과 외로움의 상징인 그날 밤새 굶어가며 명동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지내야 했다. 하지만 낭만이란 게 찾아왔다. 저녁 늦게 파란꼬리의 등장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그 조그마한 삼각 비닐 텐트 안에 파란꼬리와 들어가 찰싹 붙어서 잠을 청했다. 조금 지나자 비가 세차게 내려서 꼼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꿈틀대면 온통 비에 젖어 어디 비를 피할 곳도 없어질 상황이었다. 그렇게 퍼붇는 빗소리를 들으며 깜빡깜빡 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 2시였나 3시였나, 펭귄이 나타났다. 큰 우산에도 불구하고 온통 비에 젖은 펭귄은 너무 비가 많이 와서 걱정스러워 찾아왔단다. 말걸기와 파란꼬리는 꼼짝도 못하고 눈만 치켜든 채, "여기 들어올 자리도 없으니 돌아가쇼." 펭귄 입장에서는 허무했을 듯. 집도 멀어서 택시비도 왕창 들여 왔을 텐데. 펭귄더러 명동성당엘 가보라고 쑤신 건 간장공장. 자기가 걱정되면 자기가 올 것이지 펭귄만 보내버렸다. 아직도 펭귄은 너무 착하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해서 시월의 마지막 밤에도 크게 춥지는 않았지만 2001년의 비가 쏟아지던 그날은 밤공기가 무척 찼다. 파란꼬리는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부터 가슴까지를 긁어대는 것 같았다고 했다. 힘들게 지샌 밤이었다.

 

 

외롭고 쓸쓸할 뻔한 시월의 마지막 밤을 말걸기는 파란꼬리와 명동성당 앞 계단 바닥에서 함께 지냈다. 어제 저녁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5년만에 함께 명동엘 갔다. 저녁으로 요리를 먹고 성당계단에서 노닥거리다 왔다. 이젠 농성장도 사라져 버린 명동성당이었다. 그 자리에는 100년도 전에 찍은 명동성당 사진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