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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린 게 싫다' 문화

 

행인님의 [어잌후... 뒌장...]에 관련된 글.

 

 

거창 농민회장 출신의 김상택이란 자가 민주노동당 군의원 후보로 나서더니 돈을 뿌렸단다. 화들짝 놀라버린 경남도당은 당기위를 통해 후보자격 박탈과 제명 처분을, 중앙당은 거창군위원회의 다른 후보들의 출마 자격 박탈과 해당 위원회 사고처리를 재빨리 시행했다.

 

(기겁한 이들이 꽤 많은 듯하다.  나는 돈봉투 사건에 놀라지 않았다. 나는 변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어이가 없다거나 화가 나거나 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서서히 민주노동당을 나와 내밀하고 깊은 끈을 공유한 그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가 보다. 즉, 내면의 일부를 차지한 또 하나의 자아가 아닌 것이다. 나는 내 상태가 좋아지는 걸로 이해한다.)

 

어쨌든 내가 이번 사건에서 깜짝 놀란 건 당이 어쩜 저렇게 잽싸게도 사건을 처리할까다. 이 놀라운 순발력! 선거시기이기는 한가보다. 그렇지만 당이 전력을 다해 예민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시기라는 걸 가만하더라도 하루 만에 당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모든 걸 처리했다는 건 분명 '다른' 요소가 작용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기본적으로 '쪽팔린 게 싫다'가 정치 활동의 기준이다. 민주노동당이 출발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 정치문화는 민주노동당이 소위 '현실정치'에 길들여지면서 확대되고 안착되었다. 그 과정에서 '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적지 않은 지부급 인사와 중간간부들이 쪽팔린 것만은 피하고자 했던 자세가 크게 기여했다.

 

김상택이 같은 인간들은 민주노동당에 아주 많다. 적지 않은 수의 후보자들과 그들의 운동원들, 당 간부들은, "어쩜 저런 짓을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하면서도 내심, 혹은 지들끼리는, "왜 재수없게 걸려서 똥물 튀기고 그래? 돈 뿌리는 것도 능력이래니까."라며 분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노동당 후보 중 누군가 돈뿌리니까 쯕팔린 것 뿐이다. 중앙당이건 경남도당이건 나뒀다간 더 쪽팔릴 것 같으니까 하루만에 일처리를 마친 것이다.

 

정치도의적 차원에서 수치심을 갖추는 건 미덕이다. 쪽팔린 게 뭔 줄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민주노동당의 정치문화는 '쪽팔리지만 않으면 된다'이니까 문제다. 즉, 유권자, 국민 눈치보기다. 이로써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당 내부의 문제, 또 하나는 당의 공개적 주장과 활동의 문제이다.

 

 

유권자, 국민에게 쪽팔린 게 싫어서 쪽팔린 건만 피하고자 한다면 결국, 유권자나 국민이 관심을 갖지 않을 문제는 해결하고 싶어하질 않는다. 당 내부 문제일 터이다.

 

농민회는 철저히 이익집단이다. 자기들의 농산물 생산 방식을 유지하면서 소득을 확대하고 싶어하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국의 농업과 농촌이 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할까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이런 입장때문에 지난 주요 선거 때 민주노동당과 전농의 합작 과정은 너무나 지저분했다. 농민회 몇몇 핵심 간부들은 민주노동당 강령에는 농민과 관련한 게 없고 농촌 정책도 한 줄 없다고 전국의 농민회에 소문을 냈다. 그 새빨간 거짓 모략질에 대해 제대로 사과도 안했다. 게다가 환경농업 정책이 주요 공약화되는 걸 노골적으로 싫어했는데, 그렇다면 무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으면 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농민회가 심히 이기적이라 실질적인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소위 '운동의 윤리'라는 측면에서는 비판해도 정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은 비록 정치 논리 때문에 농민회에게 러브콜을 하더라도 이념적 일관성과 다양한 계급.계층 간 이해 조절을 위해 당의 시스템을 갖추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농민회 끌어들이면 쪽수 늘어날 정파의 이해와 한국 정치 제도 상 과대대표된 농촌에 조직을 심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 민주노동당은 비굴하게 농민회와 합작을 한 것이다.

 

농민회 예를 들어서 그렇지 다양한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에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은 이들에게 이념적 지표나 정책적 이해, 연대의 정신을 체계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이 짓 하자면 힘도 들고 귀찮다. 그리고 이 짓 안한다고 쪽팔릴 일 없으니 그냥 안한다. 소위 유권자나 국민이라 불리는 집단은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떻게 자기 관리를 하는 지에 관심 없다. '쪽팔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정치문화는 스스로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다듬는 데에는 힘을 쏟지 않는다.

 

 

쪽팔리는 자기 모습을 보이기 싫은 대상이 유권자, 내지는 국민이라는 것도 문제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의 계급도 계층도 아니다. 너무나 다양할 뿐만 아니라 서로 갈등하는 이해 당사자들이다. 다수에게 쪽팔리기 싫으면 계급적 이해관계를 떠난 폼나는 주장이나 여론 주도층의 주장을 수용해야 한다. 불평등으로 고통을 주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정책/주장을 펼치는 것도 폼나지 않으면 쪽팔리니 안하고 만다.

 

민주노동당의 많은 공직자들은 소위 지역사업의 상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울산 북구와 동구는 2002년 지방선거 대표 공약이었던 참여예산제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가 나름대로 개혁적이라는 타당 공직자가 먼저 시행하니 나중에야 그거 한다고 부산했다. 경기도 기초의원들 다수는 재산세율 인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면서도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며 조례를 발의했거나 찬성했다.

 

탈계급의 상징인 유권자와 국민이라는 개념은 사실 보수 언론의 시각을 대변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유권자와 국민의 눈치를 보며 쪽팔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적인 보수파들의 눈치를 보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 강령정신에 동의하지도 않는 이들이 지역위원회에서 대장노릇하고 공직후보자가 되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권자와 국민은 한 정당의 구성원이 당 강령에 동의하는지 안하는지에는 관심도 없으니까.

 

 

김상택이와 같은 불한당이 민주노동당에서 활개칠 수 있는 건 당의 정치문화가 몰계급적인 주체에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이러다가 쪽팔릴 일만 생긴다는 것이다. 쪽팔리기 싫어서, 쪽팔리지만 않으면 되니 미루어 두거나 외면했던 그 무엇때문에 쪽팔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고가 터지자 덜 쪽팔리려고 하루만에 제명 따위의 조치를 취하며 당원 교육 어쩌고 주저린 민주노동당의 지도부는 앞으로 지들이 뭘 해야 하는지 알고나 있을까 싶다. 선거 후 경남도당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경남도당의 대장은 문성현 대표다. 문성현은 선거 후에 당대표로서 더 이상 바지 사장 노릇 하지 않기 위해 뭔가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셈셈 바꾸지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