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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안좋은 일이 너무 많아서
원래는 1월 1일에 퇴원할 계획이었다.
그냥 병원에 조용히 숨어있으면
재앙이 나를 피해갈 것같아서.
하지만 애들이 너무 나를 보고 싶어했고
나도 애들이 보고 싶었으며
병원에서 감기에 걸려 기침이 너무 심한데
주치의는 "빨리 좋아지는 약이 있지만 그건 명치에 뭔가가 얹히는 느낌"이라면서
별 효과가 없는(주치의 말씀으로는 서서히 좋아지는) 약을 줘서
기침이 너무 심해져버린거다.
그래서 금요일에 퇴원을 했는데
토요일 아침에 노트북을 켰더니
띡 하는 소리가 나더니 하드가 나가버렸다.
하드는 완전히 나가버린 거다.
최근 몇 년간의 글들, 교육자료들, 메모들이 몽땅 다 들어있는 하드가
그냥 띡 하고 돌아가심.
19살때 알게된 나의 고난 대처법: 잠자기.
나는 그래서 계속 잤다.
마침 방송도 연말이라 쉬었고
할 일이 전혀 없으므로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먹고 30분 걷고 약을 먹고 아이들을 공부방과 학원에 데려다주고 잤다.
12시가 되면 둘째가 데리러오라는 전화를 했고 그 전화를 받으면
둘째를 태워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 점심을 같이 먹고 30분 걷고 약을 먹고 잤다.
자고 있으면 5시쯤에 막내가 또 데리러오라고 전화를 해서
막내를 데려오고 같이 저녁을 차려서 먹고 30분을 걷고 약을 먹고 밥을 하고 잤다.
이렇게 계속 시간을 보냄.
퇴원 후에 통원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럴 힘이 나지 않아서 그냥 게속 잤다
그러다가 목요일엔가 보험사에서 전화를 해서 합의를 보자고 했고
그래서 어쩔 수없이 병원에 갔다 왔고
한의원 선생님 얘기를 듣고 힘을 내려 노력하는 중.
내일 방송 준비를 하고
방송원고들을 저장소에 올리려다보니
아, 원고가 다 날아갔지, 하고
미뤄둔,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내 처지가 각인이 된다.
노트북을 맡겨야겠지.
또 돈이 많이 들겠지.
돈이 많이 들더라도 살릴 수만 있다면 좋겠지.
그렇게 내가 대면해야할 현실이
내 앞에 펼쳐짐.
그냥 공기처럼 사라지고 싶다.
댓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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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구 아팠군요. 오늘은 업무중에 복잡한 일들을 좀 정리해보려고 블로그에 모처럼 들렀다가 알게 되었어요. 하루님이 병원에 계시는 동안 저는 마음이 좀 아팠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 번쩍 차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지 며칠되어요. 얼른 낫기를 빌어요. 아니면 덜 아프던가. 제가 한 번 안아드릴께요!부가 정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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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아주세요^^병원은 괜찮나요? 뉴스 볼 때마다 뻐꾸기님 생각을 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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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탁^^.병원은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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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 노력이 좋은 성과로 귀결되길 바래요. 섭섭선생님 책이 아주 화제여요. 그 옛날 등산가신 뻐꾸기님, 산오리님, 섭섭이님, 아즈라엘 님을산밑에서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말이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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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반갑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 데, 오랜만이란 표현을 쓰기에도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쑥스러우네.
많이 아팠나 보네. 좀 괜찮아 진 건 지 모르겠다.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지만, 네 덕분에 이 땅의 날씨가 조금 씩 나아 지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중년, 아참 놀라운 사실을 알려줄까? 내가 게임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먹고 살고 있지. 문득 너라면 내가 이런 직업을 가질 거라고 상상도 못하지 않을까 해서 농담처럼 말해본다. 조금 웃기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면서.. 그렇게 잘 지내고는 있어.
마치 얼마 전에 본 것 처럼 이렇게 살갑게 얘기하는 나도 좀 웃긴 듯 ^^.
어서 기운차리길 바래. 그리고 여전히 응원하고 있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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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반가워. 완전 많이. ^^ 어떤 시간은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니다, 어떤 음악은 늘 그 시간으로 데려가는데 덕분에 매일 네 생각을 한단다. 그러니 얼마 전에 본 것처럼 살갑게 얘기하는 니가 전혀 웃기지 않아. 자연스럽고 당연한 걸. 20년이 넘었지만 그러네 ^^'tenafter가 게임회사 프로그래머라니. 놀랍다!'라고 생각할 것같지만 사실 내가 아는 것같아. 저번에 검색하다가 너랑 같은 이름의 사람이 게임회사 프로그래머로 나왔었어. 그런데 처음엔 얼굴이 달라서 동명이인인가 했다가 그런데 니 이름은 내 이름만큼이나 독특해서(!) 그럴리는... 하다가 ^^ 그래서 나의 결론. 너는 프로그래머라 니 이름을 꼭꼭 숨기는 방법을 아는 것같은데 백만분의 일만큼의 확률로 너랑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프로그래머였던 거지! 근데 론도가 뭐니? 너를 검색하면 첫 줄에 그게 뜨더라.
그래도 생각했단다. tenafter 가 게임회사 프로그래머가 됐구나...그런데 그 길은 당연한 듯하기도 했었어.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때 너가 그런 비슷한 일을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니? 앞에 게임회사라는 말만 없었지 프로그래머라고.
니가 만들어주었던 'tenafter 컴필레이션 테입'이 여전히 아깝고 안타깝다. Fragile이 첫 곡이었지. Just the two of us. Wild world. 까만치마를 입고. Open arms....차차 더 목록을 채워갈거야.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나는 오래 살 거니까 오래 사는 동안 그 목록을 채울 수는 있겠지?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니 우연히 멜로디를 만나고 음악을 찾고 찾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거야. 그러면 그 시간이 생각나. 처음 만나던 날의 대학로. 색이 변해가던 가을 초입의 광명의 거리. 까페에서 같이 쓰던 천자문.
그리고.... 개봉역에서 학원가는 마을버스를 타면 늘 만나던 가죽쟈켓을 입은 잘생긴 버스 기사. 나는 그 남자를 볼 때마다 아,잘생긴 사람은 그냥 예쁜 꽃처럼 그냥 사람 기분을 좋아지게 하네, 이런 생각을 했었고. 마을버스가 영등포 구치소를 지날 때면 대학시절 선배 면회오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시는 학교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된 막막한 내 시간을 생각했고, 그리고 홍대입구....
그 모든 시간은 늘 니가 골라준 음악과 함께였다. 언젠가 니가 그랬었지. "내가 이런 음악을 듣는 건 마치 니가 부르조아라는 욕을 듣는 거하고 비슷한 일이야" 그런 니가 rmlist를 위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어줬는데 나는 그걸 잃어버리고 말았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학생 병문안을 갔는데 그 애가 내 테잎을 잠깐 빌려달랬고 그리고 3-4일 후면 퇴원한다는 애가, 곧 볼 줄 알았던 그 애가, 학원을 끊고 다시 못 만나게 되면서 다시는 니가 골라준 음악을 듣지 못하게 되어버렸는데. 나는 몇 번이나 왜 그걸 카피해두지 않았을까 후회하고. 근데 너는 화도 내지 않았지.(그런데 화났을 것같아. 미안)
요즘 차에서 듣는 CD 첫번째 노래가 가을방학 노래거든. 너는 나한테 그런 사람이었단다. 너는 내 삶에서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더라. 근데 내가 너한테 못되게 굴었어.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단다. 사랑도 사람 사이의 관계인데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이유로 너무 예의가 없었다는 걸. 미안해.
......
내 삶에 깃들어줘서 고마워.
고맙다 ten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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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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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을 기억하다니, 빵 터졌다. 부끄럽네. 여전히 지각쟁이인 나는.론도가 뭐지? 라고 나도 의아했지만, 어렵게 기억해 냈다. 내가 잠시 오디오 덕질하던 때에 공구로 구입했던 스피커의 이름이고 현재도 우리집 거실을 지키고 있는 그것 일 거다. 스피커를 손 볼 일이 있어서, 제작자에게 회로도를 물어 보는 글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그런게 검색에 나오는 구나... 구글이 신이던 시절에는 사라진 글까지 검색되어 잊혀질 권리를 논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검색이 많이 제한된 것 같다. 2010년 쯤에는 내이름이나 tenafter라는 검색어가 흔하지 앉아서 구글 검색에 몇 개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젠 나와 상관없는 내용들이 아주 많이 눈에 뜨이네. 싸이월드에서 잠깐 활동하던 것 말고는 공개된 게시물을 올린 적이 없었어. 이것도 은신술이라면 은신술일까나. 지금 검색되는 기사는 2009년 전후에 볼츠앤블립이라는 게임을 만들고 있을 때, 게임잡지에서 취재온 적이 있었지. 니가 본 게 그 기사가 맞다면 아마 네가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건 내 체중이 스물다섯을 기준으로 20키로나 불었기 때문일지도.. 나의 태만이 불러 온 대참사.
시간이 참 많이 흘렀는데도 너의 댓글이 마치 20대의 rmlist와 주고 받던 메일처럼 읽혀져서 깜짝 놀란다. 그 테이프를 잃어버렸을 때 다시 만들어 줄 걸, 그 때는 그 생각을 미처 못했었다. 그랬더라면 너의 미안함을 덜 수 있었을텐데, 나도 미안해..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내 기억이 상상 위에 쌓은 빈집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어. 그래서 인지 너의 또렸한 기억과 “깃들어 있다”는 말에 너무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 네 말에도 겨울방학의 노래에도 덧붙일 게 없을 정도로 공감해서 너도 내게 그런 사람이어서 나도 많이 벅차올랐다. 나도 고맙다, rmlist.
요즘 연일 지독한 추위다. 너처럼 치열하게 사는 사람도 조금 쉬어 가도 될 만큼. 언제 날이 풀리고 여유가 생기면 동창회하듯 그렇게 만나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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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 tenafter.우리는 서로의 글에 먼저 반하지 않았니? 나만 반했나....다시 네 글을 보니 정말 반갑다. 은신술은 언제까지 쓸거냐...^^ 그때처럼 연극번개, 아니면 영화번개를 기약해보자~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