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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다섯 개의 죽음 2-1

죽음 둘: 누구를 위한 눈물이었을까?(1)

 

감기는 늘 목으로부터 온다. 몸이 안좋다. 밀양에서는 노숙을 하고 있는데 나는 목이, 몸이 너무 아파서 반신욕을 했다. 남편은 매일 하는 그 일을, 나는 처음 해보는 거라 시간을 많이 썼다. 난로로 데운 물을 부었는데 너무 뜨거워서 찬 물을 부었다가 또 너무 차가워서 물을 끓였다가 하면서 반나절을 보내고 만 것이다. 빨리 작업실을 정리해야 일을 시작할텐데 몸이 이 모양이니...생활의 무능. 내 이름 앞에 별명으로 붙여야할까보다.  

 

올해에는 집안에서도 나라에서도 힘든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나도 덩달아 힘들었다. 집안일에 대해서는 일의 내용보다는 결과가 나기 전까지의 극도의 긴장 상태가 지치게 만들었던 것같다. 올해 후반기에 맞닥뜨렸던 몇 개의 죽음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10월부터였다. 그러지 말아야함에도 나는 자꾸 그 죽음들이 어떤 암시가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시달렸다. 불행이 내 삶을 덮치는 건가, 그렇게 예민해진 채로 나는 올 가을을 보냈다. 암시든 복선이든 그런 건 다 잊고 그냥 투명하게 기록하고싶다. 올해가 가기 전에 두번째 글까지 쓸 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두번째 죽음을 기록한다.

 

미요가 작은 새를 죽인 후 이틀이 지났다. 그 날 나는 바빴다. 서울에서 회의가 있었고 하은이네 학교 축제가 있었고 친한 신부님네 가족이 놀러오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강화로 오는 길에 남편에게 삼각대를 좀 가져다 달라고 전화를 했다. 남편은 학교 사람들과 밥을 먹는 중이라고 했는데 그 목소리는 평온했다. 다행히 행사 시작 전에 도착해서 삼각대는 내가 가져올 수 있었다. 축제는 끝난 후, 남편은 회의가 있다고 다른 데로 가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고나서 얼마 안 있다가 신부님 가족이 도착했다. 밭과 토끼장을 보여드리고 개, 고양이, 거위와 인사를 시켜드리는 동안 날은 어둑해졌다. 바깥 평상에 앉아있다가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남편이 돌아왔다.

 

신부님네 가족과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남편이 내게 "할 말이 있다"라고 했다. 늘 그랬다. 작년 10월 이후 "할 말이 있다"는 남편의 말은 또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집어삼킬까라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할 말이 있다,라고 운을 뗀 후, 남편이 "미요가 죽었다"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한 나를 데리고, 평상에 앉아있는 신부님네 가족을 두고, 남편은 집 뒤쪽으로 돌아갔다. 거기 감나무 아래, 아까 낮에 내놓았던 포도상자 안에 미요가 누워있었다. 미요의 몸은 차가웠고 딱딱했다. 미요의 몸을, 얼굴을 만지며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소리내어 울어본 건 몇십년 만이었다. 평상에서 기다리던 신부님이 들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 번 터진 울음이 그쳐지지가 않았다. 이틀 전에 미요를 때려주었는데. 자꾸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미요에게 안된다고 말했었는데. 마당에 나가면 만져달라고 발라당 누운 미요에게 예쁘다는 말만 해주고 말았는데. 얼굴을 만져주면 눈을 감고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냈던 미요. 창고작업실에 들어가있으면 문을 열라고 자꾸 울다가 발로 문을 쳤던 미요. 늘 나와 함께 하고 싶어했고, 밤에 집에 들어오면 늘 문 앞에서 맞아주었던 미요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우는 동안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며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울다가, 어째서 이 남자는 나한테 미요를 위해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는가 원망스러웠다. 울면서 물었고 울면서 들었다. 점심 때 집 앞 도로에 미요가 누워있었다고 한다. 그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일단 종이상자에 미요를 눕혀두고 울면서 기도를 한 후에 혼자서 장례를 치를까 생각했지만 나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감밭에 놓아두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너는 미요를 그렇게 감밭에 버려둔 채로 점심밥을 잘 먹고 아까 나와 그렇게 평온한 소리로 삼각대에 대한 대화를 했다는 거지? 너는 은별이가 죽어도 그렇게 밥을 먹겠지? 근데 왜 지금 말을 한 거냐? 하은이 축제 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람들과 웃고 얘기하고 그렇게 긴 시간동안 내게 말을 하지 않았으면서 이제 집에 오신 손님을 맞아야하는 이 때에 왜 내게 말을 한 거냐? 나는 저 손님들을 맞기 위해 서둘러 눈물을 닦고 밖에 나가야 한다. 아까 손님들이 여전히 약속이 유효한거냐고 묻는 전화를 했을 때, 너는 우리가 미요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도록 되도록 외부인의 방문은 미뤘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지금 이렇게 눈물방울을 달고 가서 쌀을 씻고, 밥을 하고, 손님 접대를 해야 하는 거냐? 멀리서 온 저 분들을 돌려보내지도 못할 상황에서, 왜 내게 지금 죽음을 알린 거냐? 도대체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가 닿을 데가 없는 원망과 비난을 하면서도 마당에 서있는 손님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쌀을 앉혔다. 밥이 탔다. 하은에게 전화를 했다. 하은은 친구들과 있어서 지금 즉시는 못온다고 했다. 공부방에서 돌아온 한별과 은별이 식탁에 말없이 앉아 있다가 엄마 많이 울었어? 엄마 괜찮아? 물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더 추워질 것같아서 담요를 가져가서 차가워진 미요의 몸에 덮어주었다. 내 귀에 자꾸 미요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부엌에 돌아와서 밥을 차리는데 화장실에 들어가있던 한별이가 "엄마, 자꾸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미요같애"라고 했다. 미요, 진이, 연이의 울음소리는 다 다르다. 아이들도 구분할 수가 있다. 그런데 한별이는 자꾸 미요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마당에 나가봤더니 어둠 속에 미요가 있었다. 내가 이제 헛것까지 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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