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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농활/ 새만금갯벌

지난 주말 3일동안 농활을 다녀왔다.

아울러 가까운 새만금 갯벌도 다녀오게 되었다.

생각나는대로 써 보았는데.... 조금 길게 되었다.



들녘농활/ 새만금갯벌

 

서울에서 김제는 거리상으로 너무 멀기에 도농자매결연을 맺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라고 했다. 그냥, 사진이나 한번 찍고 결성식 정도 하고 말려고 하면 몰라도 그런대로 해 볼려고 하면 도시에서 농촌으로 농사체험이나 봉사활동을 비롯하여 잦은 왕래가 있어야할 터이고 농촌에서도 서울에 생산된 농산물을 전달해 주고 주민들도 서울에 오기도 하는 자매의 연을 맺을려면 거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말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십수년동안 자매의 관계를 유지해 오게 되고, 더욱 확대되어 가는것에 대한 것은 스스로 대단하다고 자만하지 않을수 없다. 듣는 소식에 따르면 우리와 같은 형태의 자매결연을 시작해서 지금껏 유지해 오고 있지 못함에 대해 안까움과 함께 더욱 우리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음도 느끼게 되지만, 또 새로이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함에 연대의 틀을 마련해 나갈수도 있을 것 같은 희망도 함께 가져본다.

 

자매결연 활동으로 농촌의 농산물 구매와 농민들께 의료봉사, 도시나들이, 공부방 지원과 결식아동 지원, 자매교회 건축 지원과 농활 등등의 일을 진행해 오게 되었다. 그 일환으로 농사철인 여름에 한 해 한 두번씩 농활을 가게 되는데 올해에는 좀 늦게 7 1일과 7 13일에 23일씩 다녀오게 되었는데, 나는 두 번째 팀인 13일에 합류하게 되었다.

 

도시의 직장인들이라 시간 내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기에 20여명 정도 참석을 하게 되었고, 그 출발도 금요일날 일을 마치고 밤중에 차를 타고 12 다 되어서야 현장에 도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늦은밤 도착이라 잠깐의 상견례와 친교와 더불어서 앞으로 일정의 협의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서울에서는 잠 잘 시간이겠지만 일찍 일어나 우리가 일을 해야 할 논으로 향한다. 1,600평의 논의 피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되면은 논두렁의 풀도 베어야 하고, 그래도 여유가 되면은 동네 이웃의 일도 도와 줄 수는 있을텐데 말이다.


 

논에 들어가니 이전 농활팀과 주민들이 피사리(뽑기)를 했다고 그렇게 피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에 왔을때에는 물반고기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피가 너무 많아서 고생을 많이 한 셈인데 올 해에는 그러지는 않을 모양이다. 마침 청명한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 다니고 들판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어 벼가 넘실대는 모습이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피와 벼을 구별하기 힘들어 벼를 뽑기도 하고 피를 뽑기도 하면서 피를 구별하는 방법들을 터득하게 된다. 논에는 쌀을 찧는 과정에서 나오는 쌀겨와 우렁이를 넣었는데 쌀겨는 잡풀이 올라 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우렁이는 올라온 여린 풀들을 먹어 치운다는데 군데군데 우렁이가 보인다. 그 중에서 암수의 두 우렁이가 사랑을 하는 놈들을 포착하여 사진을 찍어 보았다.

 

 

 

 

이렇게 사랑을 하여 후에 알을 낳아서 번식하게 될 터인데 이 놈들이 열대산이라 겨울을 날 수가 없어 한해 농사로 그 역할을 끝내고, 다음해에 모심은후 다시 분양을 받아서 논에다가 투입을 한다고 한다.(지난 겨울에 실상사 농장에 가 보았을때에는 그 곳에서는 그 지역에서 벼 농사에 사용할 우렁이를 온도와 먹이(배추잎)등의 환경을 조성해 주면서 키우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산딸기 같이 생긴 것이 우렁이 알이다. 이것을 한 두개 터트려 보니 피같이 붉은색을 띄우고 있었다.


 

아침 7 작업시작(사실은 5~6 새벽일을 해야 하는데 일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해서 새벽일을 하지 않고 아침을 일찍 먹고 논으로 갔다.) 일을 하다가 10 정도에 새참이 배달되어 왔다. 제사보다는 젯밥이라고 더러는 새참에 더 관심이 있는줄도 모른다. 비빔국수와 음료 막걸리 그리고 과일을 가져와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맛있게 먹으면서도 식사조에게 논에서 일은 안하고 편한일을 한다고 구박을 하면서도 즐겁게 먹었다.


 

논에 거머리는 없고 가끔 미꾸라지 같지만 길다랗게 생겨 뱀 비슷한 웅어라고 하는 물고기가 있었고, 벼가 크게 자라 우리의 연한 살갗을 스치고,  태양에 노출된 피부는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약간의 따가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를 즐겁게 해 줄려고 하는듯 한 시원하게 불어주는 들녘바람과 저 멀리 나르는 황새들을 쳐다보면서 피사리는 계속 된다. 노동에는 소리가 빠질 수 없겠다. 민요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동요도 부르고, 투쟁가가 흘러 나오기도 하며 다달이 오만원씩 주고 배운 노래소리가 나오는데 이것 모두가 이때에는 농요라고 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오후에는 새만금 갯벌이다.

23일간 동안중 약간의 여유가 있을듯 하여 토요일 오후시간에는 지난 5월에 부안지역을 생태기행처로 정하고 준비를 하다가 너무 무리일것 같아서 미루기로 한 새만금지역을 가기로 하고 계화도의 은식형께 이야기를 하였더니 기꺼이 오라고 하였고,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선 그레에서 벽에 붙여진 사진들을 둘러 보고, 잠깐동안이나마 은식형의 이야기들 듣게 되었다.

 

마침 규현 신부님께서 안내해온 상주성당 식구들과 함께 트랙터에 두개의 짐실이를 연결한 이른바 갯벌열차를 타고 갯벌로 들어 가게 되었다. 모두들 예전 어릴 때 소 달구지는 타 본 기억들은 있을 터이지만, 갯벌열차를 타고 들어간 것은 처음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신기해 하고, 특히나 어린애들은 더욱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갯벌로 들어사면서 사막화가 된 뻘에는 염생초가 자라고 있으며, 말라 붙은 흙에는 소금기가 허옇게 보이고, 적지만 작은 게구멍도 보인다. 황폐화 되어 척박한 그 속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종들이 있음에 놀라움이다. 뻘 깊숙히 들어가서 은식형은 우리들에게 방조제가 막힌후의 변화상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망가진 갯벌 한가운데에는 그간 말둑으로 쓰여졌을법한 작은 기둥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장승같이 서 있었고, 갯벌에서 나올때에 갯골에 물이 들어 오면서 함께 따라 들어온 숭어떼들이 은빛을 발하면서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보고는 모두들 아쉬움으로 남기게 되었다.

 

 

계화도를 뒤로 하고 다음에 간 해창갯벌에는 사람들이 새만금을 외면하고 있는 지금도 장승들이 대신해서 수호신인양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날 이 나라의 단체라는 단체는 모두들 새만금을 지키겠다고 와서는 연대의 변을 토하고, 장승을 갯벌에 심어 놓았지만, 지금 새만금을 지킬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손길들은 그 길다란 연대의 대오 중에서 저 끄트머리에 서 있었거나, 보이지 않게 활동을 하던 사람들만 그 자리에서 지금도 잊지않고 애쓰는 모습으로 보임에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살살페스티벌를 기화로 풀뿌리의 힘으로 새만금을 생명으로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배를 타고 싸움을 하면서 방조제에 들어 가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던 방조제에는 시원하게 차들이 달린다. 그리고는 방조제 둑에 올라가서 모두들 안팎의 바다를 쳐다보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새만금을 가지고 오늘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기상천외한 별의별것들을 다 하겠다고 무책임하게 큰 소리를 치고 있다. 단지 표가 나온다. 라는 것 때문에(늦었지만 부안에서도 새만금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뒤 늦게 알게 되기는 했다고)

 

이른 휴가철이라 변산해수욕장이나 채석강에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바다 속에 들어가서 뛰어 노는 모습이 보인다. 채석강에 모래는 별로 보이지를 않고 자갈이 수북하다. 해수욕장으로는 좋지를 못하다. 그래도 기묘한 채석강의 바위들은 변하지 않고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으며, 바위 위 언덕베기에서는 윈추리들이 노랗게 꽃을 피워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으며, 물이 빠진 바위틈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갖혀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노닐고 있었다. 변산반도!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새만금으로, 방폐장으로 아름다운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주민들도 그 곳에서 많은 어려움을 격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언덕베기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본 저녁 노을은 그렇게 아름다운데도 말이다.

 

저녁에 지역 농민들과 하기로 한 간담회 시간에 미처 도착을 하지 못하여 농민들께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오신분들이 도시에서 살다가 8 10 18년 전에 농촌에 들어와서 살면서, 소몰이 싸움을 비롯하여 농민회 활동을 하고 계시고 더 나은 농촌으로 나아 갈려고 발버둥을 쳐 보지만 어려움점이 많다고 한다. 특히나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가 막연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 소비자들과 연계하여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껏 해 오는 농산물 판매를 더 확산하여 이들의 농산물도 소비를 해 주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쉬이 해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테면 생산자와 소비자 쪽에서 하나의 창구를 마련하여 중계를 해 보는 방식이 있을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어럼풋이 드는 정도이고 풀어 보아야 할 숙제이다.

 

다음날도 아침 일찍 논에 가서 어제 다 하지 못한 피 뽑기를 하고, 오전예배에 참석을 해야 하기에 일찍 돌아 왔다. 들에서는 벼가 바람을 받으며 푸른물결은 이루면서 지금도 우리들에게 생명을 이어주지만 인간들은 자연환경을 자꾸만 파괴하는 배은망적함으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길에 동네 밭에서는 고추가 읽어가고, 들깨와 참깨가 열매를 맺고 결명자 배추 무우들이 커가고 있으며, 고구마 오이 호박넝쿨이 무성하게 뻗어 나가고 있었으며, 사과 복숭아 나무에서는 과일들이 붉그스럼하게 읽어 가고 있었고,  하우스 속에는 담배잎이 마르면서 담배향을 내고 있으며, 도시에 있는 개망초는 향을 못 느끼지만, 시골의 개망초에서는 향기가 그득하다. 이제 갓 씨를 뿌린 배추는 귀엽게 싹을 틔우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시골 교회지만 예배 때에는 고운 옷들을 입고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이 아주머님들이 모이신다. 서울에서 왔다고 우리를 소개를 하고 인사를 드리고, 노래도 하나 하게 되었다. 농사꾼들은 매일 노동을 하지만, 잠깐동안 노동을 했다고 조는 이들이 있었다. 예배당은 흙벽돌로 지었고, 넓은 들녘을 바라보게 지었기에 채광성이 좋아서 전깃불을 하나도 켜지 않고서도 자연조명으로 충분하게 활용할 수 있게 지어졌다. 더 첨가해서 지붕에다가 햇빛발전소를 설치하게 되면 더욱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전 환경단체로부터 녹색공간, 활동으로 인정되어 상을 받은적도 있다.


 

점심에는 꽁보리밥에 된장과 고추장에 호박잎 호박나물 가지나물 열무김치 매실장아찌 등등 식욕 당기는 식사를 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복숭아 호박 옥수수 떡 고추 가지 오이 등등 바리바리 싸 주셨다. 우리가 가서 한 것은 농사꾼들이 보기에는 아주 미미함이 분명하다. 농사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약간의 노동이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건강에 큰 보탬이 된다고 볼 수 있다고 보면서, 농민들에게도 함께 하고 있는 도시민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반가운 손길들을 뒤로 하면서 내년에 다시 만날 날도 기약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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