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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중만세

 

지난 2월 둘째 주말에 겨울 지리산을 다녀왔다. 이곳 진보네 식구들도 다녀와서 사진과 후기글을 이미 올렸지만, 한참 지나서 그냥 지나칠려고 하니 섭섭하기도 하여 지금이라도 적어 본다.


그날 낮에는 운하를 반대하며 운하길 순례에 나선 종교인들과 함께 순례길을 함께 걷고, 시청앞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떠나게 되었다. 지리산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 버스 두 대로 다소 많은 인원이 동행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걸어서인지 좀 피곤하여 버스에서 잠을 자다가 캄캄한 밤중에 차가운 하늘아래 동네에 내리게 되는데, 이곳이 산행의 출발지점인 음정마을이란다. 몇 년전 처음 지리산 산행때 어두운 새벽녘에 성삼재에 내려서 난감해 했듯이, 캄캄한 밤에 추운날씨를 헤치고 지금부터 얼마동안 올라야 벽소령을 오를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추운 날씨에 걱정이 되어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산을 오르기 시작을 하는데, 마을을 지나게 되고 그 다음은 넓은 길을 따라 산길을 오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과 얼굴을 가리고 어두움 속에서 눈 앞 밖에 보이지 않는 길을 전등불에 의지하여 걷는길이라 얼마지 않아 숨을 몰아 쉬게 된다. 예전 체력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되며, 여름에는 종주를 한다고 하는데 함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걷다보니 날이 밝아지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벽소령대피소에 다다르게 된다. 이제는 한시름 놓인다. 취사장에서 모두들 싸가지고 보따리를 풀고 아침식사를 하는데, 싸가지고 온 김밥과 라면을 끓여서 맛있는 아침을 먹게 된다. 두 끼분을 생각하고 싸가지고 간 깁밥과 밥을 나누고 얻어 먹다 보니, 다 먹지를 못하고 남게 된다.


지난날 벽소령대피소에서 하루밤을 숙박을 했을때에는 바람이 워낙 세게 불어서 날아갈듯 하였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는 바람은 없으나 눈산으로 우리를 맞아 준다. 식사를 하고 한숨들을 돌리고는 지리산을 27년동안 올랐다고 하는 밀양의 산 사나이로부터 지리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제 산을 내려가게 된다. 어떤이는 벌써 내려가게 되어 싱겁다고 하지만, 나에게 하산은 쉽기에 안도의 숨을 쉬면서 마음을 놓을수 있게된다.


내려오다 빗점골 이현상비트가 있다는곳 근방에 와서 박준성 선생님으로부터 빨치산 이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구슬프기도 하고 힘찬 빨치산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잠시동안 겨울산을 오르면서 힘들어 했었는데 변변하게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면서 수년동안 그들은 이 넓은 지리산을 날라 다니듯 헤집고 다녔으며,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 땅의 민중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이어 이현상비트에 가고 싶었고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왔지만, 자연안식년이라고 하면서 막아 놓았기에 가볼수가 없었다. 다만 저 앞에 있을 곳을 처다만 보고 상상을 하면서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몇사람들의 평전을 읽은 소감과 발언들이 있었고, 지리산을 노래 하고 다시 산을 내려오게 된다.

(주) 저쪽으로 가면 이현상의 흔적을 찾을수 있다고 했다.

 

하늘아래 첫 마을에 다다르니 그 높은 산 속 마을에도 차들이 빼곡이 세워져 있고, 도랑에는 고드럼이 얼어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도 하고, 의신마을에 다다르니 마침 보름명절 전이라 일년동안 안녕을 비는 법회(굿)을 하고 있었다. 마치는 시간이면 음식도 얻어먹고 재미나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올 수 있었을터인데, 그냥 사진 한 장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의 막바지에 내려오니 왼쪽 무릎이 시큰거린다. 지난번 지리산 종주를 할때에도 마지막에 오른 무릎이 약간 시큰거린적이 있었는데 신경을 써서 걸어야 할까 보다.

의신 마을에 다다르니 이현상평전의 저자이신 안제성님께서 미리 와서 가디라고 계신다. 건강도 여의치 않은데 오셨다고 하는데, 우선 가지고 간 책에 사인을 받고는 저자께서 평전을 쓰고 난 후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평전에서 너무 미화한 것이 아니냐? 하는 물음에는 사실에 근거를 할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쓰여진 이야기는 모두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다. 단지 주석을 달까 하다가 그러지 아니했다. 이현상의 죽음에 대해서도 많은 말이 있는데, 그 중에 북에서 암살을 했을것이라는 설도 유력하다고 한다. 최근 과거사 진상조사를 하면서 대전형무소에서 처형당한 이관술이 ‘조선민중만세’를 외치고 죽어 갔다고 하는 진술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남쪽이나 북쪽 모두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조국과 민중해방을 위해서 살다가 죽으면서 그들이 선택한 만세는 ‘조신민중만세’ 일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관심이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은 이 땅의 민중들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론이나 이념 정파나 파벌 이 아니고 아 땅에 오늘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들 말이다.

다시 차를 타고 쌍계사 앞을 거쳐서 연곡사 동부도를 보러 가는데 국보 53호로서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나도 처음 보는 부도인데 이전에 보아오던  부도와는 다르게 아주 정교하게 목조탑과 같이 잘 만들어져 있다. 그 옆에는 후에 이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부도가 두 개 더 있다.


문화재의 변화도 새로운 세력이 나오면 그에 따라 새로운 문화현상이 나오게 되고, 그 세력이 쇄하게 되면 또 다른 세력이 나오게 되고, 그에 따른 문화가 건설되게 마련인데 이 부도도 마찬가지로 그에 따라서 서로 다르게 만들어 져 있다고 설명을 하신다.(제대로된 기억인지...?)


그러면서 오늘날의 이 땅에 살아가는 주체가 누구냐? 그리고 그것, 문화는 어떤것인가? 묻지 않을수 없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이 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쓰는 글들이 오늘의 문화를 일구어 나갈것이라고 하시면서 작은책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것이 소중하다고 하신다.


그렇다. 우리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재주가 많은것도 아니다. 그러나, 적은 재주라도 모아서 있는 그대로 글을 써서 나누면 이것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세상을 바꾸어 나갈수 있는 힘이 될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소통과 접근이 쉬워졌기에 이를 잘 활용하여 우리의 문화,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절 주변에는 할머니들이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각종 마른 나물과 차나무 마른 차잎, 물감으로 쓰여지는 치자 등등 여러 산나물을 팔고 계셔서 찻잎으로 한 됫박 사 왔다.


이번 지리산에서는 체력의 문제를 느끼기도  하였지만....

‘조선민중만세’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이 두가지 말을 남기는것 같다.

 

지난해 여름 지리산을 올랐을때

http://blog.jinbo.net/dolpari/?m=2007-07#day-time:27-00:08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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