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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산책

다시 토요일이다. 일 하는게 힘들거나 지루하진 않지만, 오히려 가끔은 일중독은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면서 주중을 지내곤 하지만 그래도 주말이 오면 즐겁다. 생각해보면 학원에서 일 할 때에는 주말이 늘 일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때의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이 놈의 자전거가 자꾸 말썽을 부려서 오늘 결국 자전거 포에 끌고 찾아갔다. 사실 공짜로 자전거를 얻은 주제에 이 불만 저 불만을 말하는 게 웃기지만, 자전거가 여기 저기 부실한 게 이거 원 자전거 탄 날은 별로 없는데 여기 저기 손질하느라 돈이 더 들어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_- 그냥 이대로 놔뒀다가 그냥 갔다줘버릴까 생각도 든다. 흑흑

내일은 마틴 아저씨를 따라 쥴리안과 함께 다시 런던 투어를 하기로 했고, 다음 주말엔 통째로 헤이스팅스에서 시간을 보낼 것 같아서 그럼 오늘은 어디를 또 돌아다녀볼까 하다가 Archway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음 주말엔 자본 강독 모임에서 맑스 묘를 같이 가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난 함께 못 할 것 같아서 런던 떠나는 인사라 생각하고 오늘 찾아나섰다. 지난 여름에 이곳을 찾아갔을 때에  런던 어디가 어딘 지도 모르고 비도 추적추적 내려서 여기저기 헤메다가 막상 도착했을 땐 문이 닫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너무나 여유롭게 예전 기억들을 곱씹으며 Archway 역에서 내린 다음 산책삼아 묘가 있는 Highgate Cemetery까지 슬슬 걸었다.






하이게이트 묘지는 동묘가 있고 서묘가 있는데 맑스 묘가 있는 곳은 동묘이다. 럭셔리한 서묘에 비해 동묘는 상대적으로 초라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근데 그 초라하다던 동묘에서 무려 3파운드나 하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입장료라 뜨악했지만, 뭐 어쩔 수 있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꽤나 컸다. 들어가면 바로 어딘가에 맑스 묘가 보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들어간 게 3시 반쯤이었는데 문 닫는 시간이 4시라고 써있는 걸 보아서 마음이 살짝 조급해지기 시작했다.-_-





요 며칠 날씨가 좋았었는데, 오늘은 구름이 끼어서 날이 쌀쌀했다. 묘지에 있어서 그런지 스산한 느낌도 들고. 지난 여름 체스터에서 우연히 들어갔던 cemetery 생각이 났다.





맑스 묘가 어디에 있을까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발견한 묘. 우리 말로 소방대원들?정도 되는 사람들의 묘인가보다. fire brigade란 단어를 보니 난 워털루 역에 있는 예전 소방서 자리를 개조한 펍 생각이 먼저 나서 여기 묻힌 사람들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 조용한 변두리에 묻혀 있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은 여왕이 직접 방문하여 추모하는 The Cenotaph에 묻힌 '참전 용사'들 급은 안 되나 보다.





공원을 쭈욱 한바퀴를 다 돌아가다 보니 다른 묘에 비해 우뚝 솟아 있는 맑스의 묘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서경식 선생님 글만 읽었을 때는 맑스 묘가 무지 허름하게 있을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정반대다. 다른 묘들에 비해 무척이나 도드라진다. 그새 누가 묘를 새로 세운건지도 모르겠다.





Workers of All Lands Unite. 이게 그 공산당선언에 나온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의 영어 버전인건가. 공원 문 닫기 전에 이 묘를 못 보면 오늘 헛걸음 한 셈인데 하며 조마조마 하다 마주쳐서 그런지 더 반갑다. 지나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고 그랬다.






누군가 장미꽃 한송이를 올려놨고, 그 아래에는 맑스랑 같이 묻혀 있는 가족들 이름들이 나와있다. 그 아래에는 그 유명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공원의 조용한 분위기가 그냥 맘에 들었다. 어느 무덤이나 이렇게 조용하긴 하겠지만.. 여기저기 느긋하게 걷다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묘가 있어서 다가가 봤더니 혀를 귀엽게 내밀고 있는 여자 아이의 사진이 있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귀엽게 생긴 친구가 여기 묻혀있다니. 문구를 보니 6살쯤에 죽었나보다. 가족들이 얼마나 슬펐을지 공감이 되어버렸다. 사진이 너무나 발랄해서 도저히 무덤에 어울려 보이지가 않았다. 이 귀엽게 생긴 아이는 저 세상에서도 그렇게 웃고 있을까





다시 되돌아 출구로 나가는 길에 노랗게 피려고 하는 꽃이 있길래 한 컷. 봄이 오는게지..





하이게이트 묘와 바로 붙어 있는 Waterlow Park. 나중에 지도를 보니 이 곳은 헴스테드와 바로 붙어있는 곳이었다. 날이 좀 좋았으면 했는데, 아쉬움을 달래며. 참 평화로운 공원이다.





헴스테드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저 멀리 런던 시내가 보인다. 내 일생에 앞으로 런던에서 또 살게 될 일이 있다면 다음엔 꼭 이 동네에 집을 구해서 주말마다 놀러와야지 싶다.





이 동네는 공공 벤치에다가 죽은 사람 이름을 새겨넣는게 문화인 것 같다.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던 누구를 추억하며..이런 식으로. 오늘 지나가다 우연히 날 사로잡은 문구를 보았다.
이 공원에서 시간을 즐기던 xx를 기억하며...
나에겐 다른 어느 문구보다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멘트였다. 안 그래도 묘를 한바퀴 돌고 나서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며 걷고 있었는데.
죽음이란 건 평소엔 생각할 일이 거의 없다가도 막상 죽음이란 걸 떠올리게 되면 일단 허망한 기분도 들고..죽을 때 내 모습은 어떨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 자연스레 내 삶에 대해서도 반추해보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 열린 교실이나 공부방 이런 걸 하면 가끔씩 학생들과 자기 묘비명을 생각해보는 활동을 하기도 했었는데, 위 벤치의 문구를 만나고 나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갔다.
난 머리가 크고부턴 가족과 관련된 모든 가치를 과도할 정도로 부정을 했기에 남들이 흔히 말하는 고향이란 것에 대한 감각도 없고, 또한 계속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기에 내가 발붙이고 있는 마을, 지역 이런 걸 가져본 적이 없다. 앞으로 내 삶을 떠올려 봐도 적어도 한 10년 간은 어디 맘 놓고 발붙이며 진득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병역거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붙잡고 있던 가치들을 다 놓아버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저당잡혀서 살기보단 삼미 슈퍼스타즈 소설에 나오는 인생처럼 그때 그때 즐기며 사는 삶을 너무 강박적으로 추구하느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지금 내가 자각하는 내 삶은 부평초처럼 어디로 떠나갈지 모르는 삶처럼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어디 정착해서 자리 잡고 '평생' 직장을 구해서 결혼도 하는 그런 삶을 원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죽을 즈음에는 저 사진의 벤치에 새겨진 사람처럼 사는 곳 근처의 공원에서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센치해진 것 같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아직 나에겐 버거운 고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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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EcoFair

토요일엔 얀셀이 초대한 에코페어에 놀러갔다. 내가 사는 곳이랑 그리 멀지 않아 보여서 걸어갔더니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뭔지 잘 알지도 못하고 그냥 안셀이 오라고 해서 간 이유가 컸는데 한국으로 치면 마을 운동하는 사람들이랄까. 공공 도서관 뒤에 있는 빈건물을 스콰팅해서 2층엔 사람들이 살고 1층과 정원은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으로 활용을 하고 있었다. 많은 책과 비디오 옷가지 등등을 그냥 널어놓고 공짜로 다 가져가도 된다길래 책을 한 권 챙겼다. 런던 와서 수집한 책들을 다 한국에 어떻게 들고 갈지 생각하면 슬슬 난감해지려고 한다. 나 떠날 때 여기서 버릴게 있으면 다 여기 'library house'에 가져다 줘야겠다. 마침 지난 토요일엔 자전거로 전기를 생산하는 법에 관한 워크숍이 있어서 재밌게 지켜보았다.

오늘은 쥴리안이 같이 놀자고 전화가 왔는데 결국은 같이 못 놀고 나 혼자 산책을 나섰다. 쥴리안이 요 며칠 나랑 친해지려고 이런 저런 제스춰들을 취하는데 오늘 그렇게 약속을 빵구내고 나니 퍽이나 미안했다. 한국 오면 잘 놀아줘야지.
브릭 레인과 그 근처에 있는 아나키 서점인 freedom press를 찾아나섰는데 전철 공사 때문에 이리 저리 갈아타고 허둥대다가 결국 서점은 찾지도 못했다. 브릭 레인은 별 기대를 안 하고 나섰는데 분위기가 무척 맘에 들었다. 홍대 상수역 쪽 분위기 살짝 도쿄 코엔지 공원 삘도 살짝. 일요일에만 열린다는 장들이 꽤나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저런 다양한 숍들. 이 지역 저 지역 먹거리들도 팔고. 스시 파는 가게만 서너개 본 것 같다. 음반 가게가 꽤 크게 있었는데 안에서 라이브로 공연을 하면서 그 음악을 음반 가게 안에 틀어놓은 것이 참 신선했다. 사회에 별로 적응할 의지가 없다는 포스들을 풍기는 젊은 친구들도 많고. 한국에 들고 갈 선물이나 한번 찾아볼까 했는데 역시나 부담스러운 가격 때문에 결국 다 포기했다. 흑. 앞으로 몇번 안 남은 일요일 중에 한번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아래 문구는 에 에코페어 홍보 포스팅에 있는 것을 가져온거임

http://thelibraryhouse.wordpress.com/

Because there is enough for everyone
Because sharing is more fulfilling than owning
Because scarcity is a myth constructed to keep us at the mercy of the economy
Because “free trade” is a contradiction of terms

Because corporations would rather see landfills overflow than anyone get anything for free
Because no one should have to do without food, shelter, entertainment, and community
Because life should be a picnic, but it only will be if we make it happen
Have you ever picked up something you found on the sidewalk? Or saved your neighbor from throwing away something useful?
A Really Really Free Market is like a potluck for whatever you want to give or take away. Have you ever brought one dish to a potluck and gone away with a full belly and a balanced meal? Everybody brings something and goes away with more.
We all have skills, ideas, objects, smiles, talents, friendship, excitement, discussions, and many other things to share. If we bring them all together at the Really Really Free Market, we can provide more balanced and full lives for everyone.
As a community we have many more resources than we do as individuals.
If we share our resources we won’t need to buy as many new ones. This uses fewer of the Earth’s resources, and fewer of our working hours, leaving us more time to devote to ourselves and our communities.
Would we all work forty hours a week at one job if we didn’t feel we had to? What if instead we worked at improving our individual skills and talents and shared them with each other? We would all spend more time doing things we enjoyed.
The Really Really Free Market is an attempt to put these ideas into prac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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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 Boine

이번엔 스칸디나비아 북쪽 러시아 연안 부근에 걸쳐 존재한다는 원주민(indigenous) 사미족(Sámi people,http://en.wikipedia.org/wiki/Sami_people) 출신 보컬 Mari Boine 의 앨범을 소개받았다. 그냥 목소리가 애절한게, 가사를 알아듣긴 불가능하지만 암튼 유튜브에서 쭈욱 들어보았다. 이 동네 음반가게에서 세일로 나온게 있으면 하나 사들고 돌아가야겠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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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Larsen - Jutlandia

마틴 아저씨 집에 놀러가서 이런 저런 음악도 많이 듣고 흥미로운 책들도 많이 보았다. 마틴 아저씨가 소개해 준 음악 책들을 사람들과 공유를 하고 싶은데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씩 올려봐야겠다. 아래 노래는 덴마크 그룹이 부른 노래인데 한국 전쟁에 hospital ship으로 참전을 했다는 jultlandia 라는 배가 소재가 된 노래이다. 친히 마틴아저씨가 영어로 번역까지 해서 가사를 보내줬다. 씨익



  Jutlandia


It was in 1949 or circa there abouts
there was a war in Korea
a ship called Jutlandia came there abouts
for there was a war in Korea
taken from the cellar to sail
now a hospital

Hay ho for Jutlandia
she comes to the slaughter when called
home is the hunter
home from the hunt
and the seamen went home from the ocean


Where boys sail to the war
for women are banned
upon the red cross painted ship
and Lilli Marleen sings, Auf Wiedersehn
where they fell on the line
cannons play first violin
come on soldiers, sing with melody

Hay ho ......


She sails through the night with all her babes
alive and dead
white as a virgin and like an eagle brave
she goes to meet the war
nurses at 16 years old
look to the soldiers wounds

Hay ho.......


                                            words and Music:  Kim Larsen
                                             Translation:  Martyn Lo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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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나간 critical mass

정말 우연히 EM님의 블로그에서 <자본> 강독  모임을 알게 되어 지난 화요일에 사무실 일도 일찍 마치고 참석을 했다. 모임에 나가서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 모임에 나간 건 <자본>을 읽고 싶은 욕구도 분명 있었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면도 컸던 것 같다. 런던에서 <자본>을 읽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라니 그냥 왠지 괜히 반가운 기분이었다랄까.-_-  내 깜냥엔 그냥 한글본을 봐도 독해가 잘 안되는데 그걸 영어본으로 본다니 역시나 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 같긴 하다. 사실 EM님이 소개해준 bbc 동영상을 더 재밌게 본 것 같다. The Victorians: Home Sweet Home 정작 런던에 와서 못 듣던 유창한 여왕 영어도 듣고 나오는 그림들과 설명도 재밌고 일타쌍피하는 기분이랄까. 암튼...지난 강독 모임이 끝난 뒤 뒤풀이 때 정신줄 놓고 놀아버려서 심지어 외박을 해버렸다. 다음 날 아침 낯선 곳에서 눈을 뜨는 기분이 참 거시기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허허. 이래저래 민폐를 끼친 것 같아 그 날을 생각하면 약간 뒤가 구린 기분이다. 암튼 다음 날 아침 사무실로 바로 출근을 했는데 하루 종일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반쯤 졸며 일을 했다. 이러고 보면 나도 정말 한국 자본주의에 적합한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면 그냥 집에 가서 쉰다고 하고 다음에 메꾸면 될 것을..굳이 꾸역꾸역 참아가며 남들 퇴근할 때까지 버티다니..나도 참... 남들이 상사 눈치 보며 그냥 시간 때우다 퇴근하는 거 뭐라 할 처지가 못 되지 않나..      

평일에 하루 그렇게 막 논게 여파가 컸는지 계속 몸이 찌뿌둥한게.. 오늘도 critical mass를 갈까 말까 살짝 고민을 했었다. 그래도 나름 내 자전거도 생겼고..이제 한달밖에 안 남았는데 의무감에서라도 나가보자는 심정으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사실 지난 번처럼 또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약간은 있었다.

카메라를 부러 챙기진 않았는데, 챙겨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행진이었다. 역시나 워털루에서 출발했는데 이번엔 워털루 다리를 바로 건너지 않고 웨스트 민스터 다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웨스트 민스터 다리를 오르는데 전방에 펼쳐진 웨스트 민스터의 야경과 손톱 모양으로 웨스트 민스터 바로 위에 떠오른 초승달과 초승달 바로 또 위에 반짝 빛나는 별 하나(아마 금성? 아님 말고..)의 모습이 마치 기념 엽서에 찍힌 모습처럼 보였다. 그냥 멋져 보였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고립되어 그 순간을 기억에 담으려고 뚫어져라 쳐다보며 패달을 밟았다.

화이트홀 거리를 따라 트라팔가 광장으로 고고씽. 내셔널 갤러리의 야경이 그새 바뀐건지 아님 내가 그동안 눈치를 못 챘던 거였는지 오늘따라 내셔널 갤러리 외벽에 켜진 조명등 색깔이 너무나 황홀해보였다. 이것도 한컷 남겨야 하는데 한줌 아쉬움이.. 그 다음엔 어디로 향했지? 벌써 기억이 가물하다. 아마도 스트랜드 길을 따라 쭈욱 가다가...아니네 다시 템스강쪽으로 내려가서 그 다음부턴 블랙프라이어 다리까지 강을 따라 쭈욱 패달을 밟았다. 차가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니 나사가 풀린 내 자전거의 짐받이의 달가락 달가락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자전거 탄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굵직굵직한 지리는 파악이 되어서 오늘 행진하는 길은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구나 하는게 대충 파악이 되었다. 지리 감각에 민감한 나는 또 이에 므흣. 패링던 로드를 따라 쭈욱 올라가다 킹스크로스를 앞두고 앤젤 쪽으로 방향을 틀어 쭈욱 행진을 계속. 결국은 다시 킹스크로스쪽으로 넘어와서 유스턴에서 턴, 러셀 스퀘어 홀본을 지나 드디어(!) 옥스포드 스트릿으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안드레아스 남친 얀센을 만났다. 오늘은 음악 스피터를 단 자전거가 세대 정도 있었는데 그 중에 한대가 얀센 자전거였다. 그걸 행징 시작하고 한 시간 남짓이 지나서야 알아채다니.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옥스포드 서커스에서 사람들이 삘 받았는지 더 행진을 안 하고 교차로 한 가운데를 점거해버렸다. 괴성과 환호를 질러대며. 오늘 따라 유난히 힘자랑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들 자전거를 두 손 높이 올려 들고 흔들어 댄다. 음악 스피커에서 나오는 리듬에 따라 사람들은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 댄스를 시작했다. 푸하하. 이것도 가슴에 깊이 담아둬야지. 그냥 왠지 모를 해방감이랄까. 그 바쁜 거리를 장악(!)했다는.

저번 행진 때는 발견을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보니 뒷 안장과 패니어 혹은 등에 맨 가방 혹은 자신의 헬멧에 꽃으로 장식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 은근히 있었다. 어떤 사람은 크리스 마스 트리에 다는 조명을 메단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장미꽃을 자전거에 매달은 모습이 그냥 감동적으로 보이더라. 얍실한 싸이클-보통은 브레이크가 없거나 앞 바퀴에만 있는-에 댄디한 차림으로 나온 미소년들도 있고 짧은 치마에 자전거를 타고 나온 이쁜 언니들도 눈에 띄었다. 접때도 느꼈지만 다들 나랑 똑같은 생활인(?)처럼 보여서 맘이 참 편했다.

오늘은 맨 앞에 있는 대열의 성향 탓인지 자꾸 외곽으로 코스를 잡았다. 심지어 한 밤 한적한 하이드 파크를 가로질러 사우스 켄싱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간에 그야말로 조용한 곳으로 접어들길래 어딘가 물어봤더니 대사관들이 쭈욱 들어선 곳이라 한다. 어쩐지..조용하니 다들 호리호리한 저택들이었다. 대사관 거리를 지키는 경찰 한명이 처음엔 우리 행진을 막으려다가 다들 야유를 보내니 그냥 보내줬다. 꼴랑 세명이서 지키는 대사관 거리였다. 다들 총을 들고 있긴 했지만.. 서울 덕수궁 돌담길 따라 돌아가면 늘 전경버스와 전경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모습이 또 떠올라버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200-300 명 혹은 그 이상 되는 사람들이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난장판을 만드는 데도 경찰 한명을 못 본 것 같다. 평소에 싸이렌 울려대는 빽차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건지. 암튼 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나니 꼭 이동네 중산층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대변인이 된 건가 싶은 자기검열 의식이 작동을 하지만..근데 이게 이 동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분위기인걸..

얀센이 내일 eco fair 에 같이 가볼테냐고 하니, 은근히 기대했던 예상치 못한 만남과 새로운 할 거리가 생긴 셈이다. 나에게 자전거를 빌려준 칠레 친구를 못 봐서 아쉽긴 했지만 2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을 즐겁게 보낸 것 같아 마음이 그저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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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vitation to the South Korean Military

http://rahu.dk/martynlowe/?p=123

내가 한국 군대에선 진보넷 접속이 막혀있다고 얘기를 했더니 그 얘기를 들은 마틴 아저씨가 매우 관심을 보였다.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분이니 어이가 없을 만도 했겠지. 그래서 나에게 이것 저것 정보를 더 물어보더니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나 하셨다. 이 포스팅의 마지막 멘트는 자신의 블로그도 금지 목록에 올려봐란 식으로 끝을 맺고 있으시다.ㅎㅎ  마틴 아저씨한테 국방부 지정 금서 목록 영문 기사는 찾아줬는데, 웹사이트 접속 금지 목록은 도무지 인터넷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군대에 있는 내 친구 말이 분명 접속 금지된 사이트들이 존재하긴 하는데 공식 문서를 찾을 길이 없으니, 하나 건지기만 하면 마틴 아저씨한테 바로 보여주는 건데,,쩝

내 블로그에 놀러와도 한글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을 마틴 아저씨를 위해서..

Thank you Mart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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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기의 진수

금요일 저녁, 서울에선 친구들이 생일 잔치 한다고 모여서 논다는 얘기에 새삼스레 부러운 마음과 묘한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그러고 보면 내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선택해서 비행기를 탔고 여기서 나름대로 즐기고 있으면서 막상 또 사람들 소식을 듣고 그 곳에 같이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으니 이건 앉아서 두 가지 욕구를 다 충족시키려는 거 아닌가. 아무튼 안드레아스 쥴리안 모두 각자의 집으로 퇴근을 하고 혼자 금요일 저녁의 사무실에 앉아있으려니 집중도 안 되고 나도 바로 집으로 향했다. 혼자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하나 보고, 거나해진 술기운에 일찍 잠을 청했다.

토요일 아침, 바깥 날씨가 너무 좋아 보인다. 봄이 벌써 다 온 것처럼만 느껴졌다. 여기에도 꽃샘추위 이런게 있는진 모르겠다. 이리저리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다가 카메라와 장바구니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테이트 브리튼을 향해. 템스강변을 따라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걷는 것도 좋았고, 테이트 브리튼의 작품들도 기억에 남는다. 저녁에 돌아와선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김치전을 혼자 붙여먹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붙여본 지짐이 중에 가장 맛있게 붙여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이런 기분에 와인이 아쉬워 또 홀짝홀짝. 저녁을 만들기 전에 혼자 거울을 보고 머리를 잘랐는데 썩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므흣하다. 시작부터 무대뽀로 막 자르긴 했지만  자르다 보니 좌우 균형 맞추느라 계속 조금씩 짧아지는 악순환이.. 다 맘에 드는데 다만 뒷머리는 마땅한 거울이 없어서 보지 못하고 그냥 감으로만 뚝딱뚝딱 잘라서 어떨지 모르겠다. 느낌에 윗머리 옆머리에 비해 뒷 기장이 기이하게 긴 것 같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다음에 또 한번 도전해 보지 뭐... 암튼 오늘 하루를 정리하자면..혼자 자기 만족 하며 잘 논 하루인 것 같다.





집에서 걸어나가면 있는 버스 정류장. 2번은 빅토리아 역 방향으로 88번은 테이트 브리튼을 거쳐 웨스트민스터 방향으로..





런던 버스정류장의 표식. 이 정도면 무지 잘 갖추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를 알면 어떻게든 직접 찾아서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어 있다.





테이트 브리튼 뒷 길 정류장에서 내렸다. 바로 앞에 있는 가든의 모습. 이름을 까먹었네.. 날도 따땃하니..한가한 정원의 분위기. 너무 좋았다. 책이라도 있었음 나도 벤치에 앉아 책이나 좀 읽는건데..





테이트 브리튼 바로 앞에 있는 템스강의 모습.. 날씨가 좋으니 모든게 다 이뻐보인다..





기분이 마냥 좋아져서 테이트 브리튼 바로 안 들어가고 강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웨스트 민스터도 바로 보이고..런던 아이도 보이고..햇살이 너무 하얘서 런던아이는 심지어 사진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앞 다리쪽으론 멀리서 봐도 관광객들이 한움큼씩 보였다





다리를 건너 강 맞은편으로.. 이 길 따라 쭈욱 걸으면 런던 아이도 나오고 사우스 뱅크가 펼쳐진다. 늘 뭔가가 있는 곳. 쭈욱 걸으면 워털루 역 더 가면 런던 브리지 더 가면 타워브리지까지. 자전거가 있었으면 한번 타고 쭈욱 따라가도 좋았겠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한두시간 정도 보고 나와 집 방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한 컷.. 여행객 신분으로 뮤지엄들을 돌다가 이제는 동네 주민처럼 슬슬 나와서 대애충 한번 보고 돌아갈 수 있어서 기분이 므흣하다. 세미나 2시간 넘어가면 힘들어듯 뮤지엄도 2시간 넘어가면 힘들어지는 기분이다.





정처없이 발가는 대로 돌아보다가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림. 이 그림이 전시된 곳 컨셉이 그런 거였다. 예전의 그림들에서 수줍은 듯 묘사되던 여성들이 어느 시점 부터 좀 더 자신감있게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그런 그림들을 모아놓은 방이었다. 이 그림 설명이 흥미로웠다. 울타리는 다름 아닌 인간 문명의 경계를 상징하는데 여성이 서있는 자리가 바로 문명의 경계인 울타리라고..

Augustus John OM , Dorelia Standing before a Fence, 1903-4





오늘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작가 세실 콜린스의 그림 중 하나. 상상력이나 표현들이 4차원틱하면서도 은근히 이해가 되는 그림들이었는데..샵에서 엽서를 사려고 봤더니 안타깝게도 하나도 없었다..흑
이 작가의 문제의식이, 우리 인간은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 여정을 떠나는 순례자들인데 예술은 그 여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다른 때 이런 멘트를 들었다면 종교 냄새가 난다며 거부감부터 들었을 것 같은데 이 사람 그림들을 먼저 보고 설명을 읽고 나니 이상하게 공감이 되었다. 나무가 소재로 그려진 그림이 많아서 ㅁㅅ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더 엽서를 찾고 싶었는데..

Cecil Collins,
The Sleeping Fool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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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생활 후반전을 맞이하며

한 일주일 정도 블로그에 글 올리는 걸 쉰 것 같다.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공간의 괴리가 불러올 고립감을 좀 벗어나고자 함이었는데, 그래서 더 열심히 이 곳에서 무얼 하며 지내는지를 마치 일기처럼 기록으로 남겼던 건데,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최근 일주일은 무지 바빴던 한 주였던 것 같다.

일단 지난 주 수요일? 응 수요일엔 지난 번 critical mass 에서 만났던 칠레 친구 집에 찾아가서 자전거를 받아왔다. 이 친구가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버린 자전거들에서 뜯어 모은 것들을 다시 재조립해서 새로운 자전거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걸 나에게 빌려 주었다. 덕분에 프레임부터 브레이크 기어 핸들바 등등 기본적인 것들부터 다 다시 맞추는 작업을 했다. 빨간색 프레임에 싸이클 핸들바, 얍실한 바퀴. 생긴 것에 비해 그렇게 속도는 안 나지만(내 엔진이 부실해서 속도가 안 나는 것일지도ㅎ) 나름 페니어를 메달수 있는 짐받이까지 있어서 이것 저것 갖출 건 다 갖췄다.

막상 자전거가 하나 생겼지만 사무실까지 왔다갔다 한건 일주일 중에 한 이틀밖에 안 된 것 같다. 지난 주말에 공교롭게도 이런 저런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반년 넘게 스케줄 없이 혼자 띵가띵가 하던 주말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달에 한 번 있는 퀘이커 비폭력 트레이닝 워크샵부터 wri 비폭력 핸드북 출판기념파티, 그리고 정현이가 마침 같은 주말에 런던에 놀러오게 되어서 이리 저리 내가 가진 에너지를 잘 분배하느라 애를 먹었다. 마치 예전 서울 생활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하루에도 스케줄이 여러 개씩 있는 생활 패턴 말이다.

주말의 마지막 일요일 저녁엔 헤이스팅스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어서 월요일엔 정말 하루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막상 추근하고 나니 어느 새 또 몸이 적응을 한다. 살짝 놀랍기도 하다.  지난 주엔 1년에 세번 있다는 wri 운영위원들 미팅이 있어서 이 사람 저 사람들이 런던으로 왔다. 주요 의제들 얘기에 별 관심이 없어도 사무실 분위기 상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직접 듣거나 건너건너 듣거나 하게 되는데 알면 알수록 피곤한 주제들도 많아서 결국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데 갈등 양상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마틴 아저씨가 3월 초에 자기 집에 한번 놀러오라고 초대를 했다. 4월 초에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고 했더니 나 가기 전에 한번 자기 집에 놀러오라면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한 것도 아니고 이런 분위기라면 나 혼자 놀러가게 될 것만 같지만, 전철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새삼 마틴 아저씨의 호의가 고맙기만 했다. 사실 아빠보다 더 많은 니이를 가진 분인데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다니, 난 그렇게 나이 먹으면 나보다 새까맣게 어린 20대 친구들과 이렇게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틴 아저씨나 하워드 얘기를 듣다보면 그들이 20대였던 70년대의 운동에 대한 얘기도 듣게 되고, 그러고 보면 한국 평화 운동이 여기보다 적어도 30년은 늦나보다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들이 사실은 오래 전에 다른 사람들도 했던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는데 적어도 여기에는 문서로 남겨둔 역사들과는 별개로 직접 과거의 경험, 고민,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는 살아있는 창구들이 있으니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스러운 사실은 여기에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죄다 남자라는 거다. 연령대가 올라가면 올라갈 수록 남성의 비율은 거의 절대적인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새삼 질문이 제기된다.

2월은 늘 그렇듯 너무나 짧아서 어느 새 또 2월 말이다. 서울에 돌아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슬슬 이런 생각들도 들고.. 여기서 남은 하루하루가 점점 더 아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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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투어

이번 일요일은 다시 마틴 아저씨와 함께 런던 투어를 했다. 이번에 둘러본 곳은 사우스 켄싱턴에 모여 있는 박물관들이었다. 이 동네가 부촌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부동산에 뜬 광고들을 직접 보니 얼핏 봐선 쉽사리 한번에 계산이 안 되는 액수들이었다. 6백만 파운드면 한국돈 120억 정도? 집값이 무슨 장난감 이름도 아니고 원 참..
오늘 돌아본 national history museum, victoria & albert museum, science museum 셋 모두 다 하루에 하나만 둘러보기에도 벅찬 규모의 박물관들이었다. 관광객들이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또다시 '평생교육'에 대한 화두가 떠올랐다. 이러한 문화적 인프라를 어려서부터 즐기는 사람들은 같은 자본주의를 살아도 왠지 덜 천박할 것 같은 환상이랄까.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은 역사가 150년이 됐다는데 안에 전시된 내용들을 보니 온갖 전문분야 박사들이 오더라도 뭔가 배워 돌아갈 게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드는 곳이었다. 마틴 아저씨만 해도 잊을만 할 때마다 여기 박물관들 와서 조금씩 둘러보고 하다보면 온갖 잡지식들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런던에서 지루함을 느끼면 삶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거라는 어느 멘트를 떠올리게 한다.





자연사 박물관 안 건물. 건축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감흥을 불러일으킨 내부의 모습





자연사 박물관 전시 중에 공룡들을 모아놓은 곳이 있었는데 그럴 듯 하게 전시된 것들이 꽤나 흥미로웠다. 공룡을 재현해 놓은 곳 앞에서 웃고 있는 마틴 아저씨^^





자연사 박물관을 나오니 어느새 어둠이..다시, 뭔가 그럴 듯 해보이는 외부 벽면의 모습. 이게 무슨 양식이라라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싸이언스 뮤지엄엔 어린 친구들이 유독 많았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전시들이 많았다. 난 여기서 왠지 모르게 눈이 침침해져서 힘들었다. 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이라는 컨셉으로 전시된 공간의 입구에 있는 모습을 한 컷.





세 박물관 중에 첫 방문지이기도 했고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이야말로 온갖 잡다한 것들을 모아다 놓은, 하루 이틀로는 다 둘러보기 힘들 것 같은 규모의 박물관이었다. 여기 저기 보수 작업 등으로 문이 닫힌 관들도 많았는데 작업하는 모습을 이렇게 개방해놓은 곳도 있었다. 직접 봤을 땐 다비드 상이 무지 높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마치 보통 사람 크기처럼 보인다.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선 마지막 코스로 맥주 한잔을 하러 런던브리지로 이동을.. borough market 이란 곳 뒷편에 오롯히 자리잡은 펍이었는데 적당히 조용하니 괜찮았다. 이제 다시 일터의 공간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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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Portrait Gallery



*Hendrik Kerstens BAG, November 2007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 산책 삼아 다녀왔다.

머리에 씌워진 저 하얀 것이 다름 아닌 비닐봉지라는 것을 사진 설명을 보고 알았다.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이라던데..

구글에서 이 작가 이름을 쳐서 다음의 싸이트를 찾았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다.
http://www.witzenhausengallery.nl/artwork.php?idxArtist=12&idxWork=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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