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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눈 내린 날

어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밤새 내려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눈이 제대로 왔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뉴스에선 어제 오늘 눈이 18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폭설이었다고 한다. 눈이 와서 지하철이 많이 붐비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한산했다. 다시, 뉴스에선 오늘 눈으로 600만명이 일을 못(안) 나갔다고 한다. 이 600만명이란 숫자가 런던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숫자라는데, 버스 서비스는 아예 중단됐고 런던에 있는 공항들도 비행기가 못 떴다고 하네. 나에게 한국은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대중교통이 막히든 심지어 세상이 무너져도 아침에 출근을 해서 상사에게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하는 곳인데, 이 동네는 눈 한번 왔다고 맘 편히 쉬는구나 싶었다. 학교도 다 쉬고 가게들도 문 닫고 그랬단다. 심지어 오늘 예정됐었던 bbc 반대 집회도 취소됐다고.. 오늘 학교 안 가고 아침에 밖에 나와 눈싸움을 하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나 학교 다닐 땐 폭설이 와도 휴교되는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참, 이 폭설에 대한 뉴스 중에 병원 수술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내가 들은 게 맞다면 병원에 출근해서 수술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 제 시간에 오지 못해서 수술이 다 취소되고 덕분에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정확히 분석은 안 되지만 이런 보도내용을 보면 이 동네가 확실히 한국보다는 일하는 노동자들의 관점이 많이 녹아 있다는 막연한 감이 든다. 
비비씨 뉴스 왈 이 눈 덕분에 노동자들이 주말에 이어 월요일 하루를 잘 쉬었다는,, 학생들도 폭설 덕분에 'permitted truancy'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 멘트가 왠지 모르게 재밌게 들렸다. 이 멘트에 이어서는 이 눈으로 인해 초래된 경제적 손실은 얼마였다는 말도 들린다.





저기 보이는 네 개의 창문 중에 하나는 내 방의 창문..어떤 창문일까..ㅎㅎ





집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 길..





반대 방향의 길. Sainsbury에서 장보고 돌아올 때 이용하는 길..





모든 버스가 멈춰버렸다. 순식간에 눈을 녹여버리는 서울의 제설기술을 떠올려보면 런던에서 눈 때문에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건 얼핏 잘 이해가 안 되기도...한국 제설차들이 독한 유해물질들을 써서 제설작업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버스가 멈추니 버스 운전기사들도 하루 쉴 수 있었겠다. 버스 차고 앞에서 기사들이 눈싸움을 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어느 뉴스에서 서울 버스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연봉을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듣고 나면 실제론 그렇게 큰 돈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단지 워낙 비정규직이 많은 사회이기에 그런 보도가 나오는 것도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여기는 특히나 버스노동자 중에는 백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 유색인종들이다. 버스들마다  '주 500파운드+@'라는 문구와 함께 운전기사를 모집하는 광고들이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킹스크로스역에 내려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 참 한적했다.





사무실 건물 1층에 있는 하우스만 북숍..이 책방도 오늘은 문을 안 열었다..





2층 사무실 바깥엔 밤새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게 하비엘이 혼자 쓰는 조그만 가건물이다. 가건물이라고 하기엔 참 잘 만들어진..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하다. 난 오늘 하루 종일 부르르 떨었는데..;;ㅎ  주말에 라디에이터를 꺼놓기에 월요일은 다시 실내 공기가 달궈지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사무실에서 킹스크로스쪽으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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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2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려는 마음을 다 잡고 hamstead heath 공원으로 향했다. 대책없이 전철역에 내려 공원쪽이겠다 싶은 곳을 찾아 걸었는데 막상 가니 생각보다 훨씬 넓어서 그냥 길따라 쭈욱 걷다 돌아왔다. 날 따뜻할 때 다시 오면 참 좋을 것 같은 공원이다. 혼자라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다음 주말엔 자전거가 생길테니 그 자전거로 돌아다닐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다. 주말에 잘 놀았으니 다시 또 열심히 일을 시작해야지..





공원에서 바라본, 멀리 보이는 런던 시내의 모습.. 날이 무쟈게 추웠다. 내복 입고 가길 참 잘했다 싶은..





어쩐지 날이 춥다 싶더니 결국 저녁엔 제대로 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2월이 되어서야 이런 눈이 처음 내린 것 같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일 아침에 지난 주에 만난 칠레 친구네 집에 가서 자전거 받아오려고 했는데 눈길에 자전거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내 방 창문을 통해 찍은 플랏 앞 거리. 마틴 아저씨가 빌려준 <메리크리스마스> dvd를 보며 혼자 또 맥주를 홀짝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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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al mass

매월 마지막 금요일은 'criticalmass'가 있는 날이라고 한다. 하비엘이 자기 집주인 자전거를 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보고 그거라도 타고 같이 가보겠냐고 해서 옳다구나 하고 쫓아나섰다. 금요일 저녁 7시에 워털루에서 출발하여 두시간 혹은 세시간 삘받는 대로 시내 곳곳을 휘저으며 다니는, 그래서 정해진 코스도 없고 언제 어디서 끝날지도 모르는 그런 행사였다. 이게 시작된지는 10년 정도 되었다는데 초창기에는 경찰차가 같이 호위를 해주곤 했단다. 그러다가 경찰차가 빠지면서  경찰쪽에선 이 행진이 있을 때마다 코스를 미리 신고해달라고 요구했다는데, 사실 주최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맘 가는 대로 페달을 밟는 거라 경찰도 어쩌지 못했다고..

정말 다양한 자전거들을 봤다. 이번에는 사람 많을 때는 얼추 300대는 될 듯한 자전거들이 모였는데 이 동네는 역시나 하이브리드 자전거가 대세다. 페니어는 다들 하나씩 달고 있고. 심지어 골격은 완전 싸이클인데 거기에 바퀴 펜더(물받이?)와 페니어를 단 자전거들도 많다. 앞으로 자전거 사게 되면 그런 걸로 사야지 싶게 만드는 자전거였다.ㅎ  엠티비는 거의 보기 힘들고 프레임이 엠티비 처럼 굵더라도 타이어는 다 보통 주행용 바퀴들이었다. 미니 벨로도 은근히 많지만 그렇게 많진 않은 것 같고..

몇몇 라이더들은 전쟁반대나 티벳 해방 등등과 같은 슬로건을 붙이고 다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정말 평범한 복장에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처럼 무슨 동호회 이래서 다들 달라붙는 옷 맞춰입고 그런 모습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짐받이에 웬만한 작은 집회는 충분히 커버할 만한 빠방한 엠프를 메달고 음악을 틀고 가는 라이더를 봤다. 그 음악에 맞춰 사람들도 들썩들썩,,

또 느낀 건... 난 이 동네 운전하는 사람들은 한국보단 더 젠틀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자전거를 많이 존중해주는 편이다-, 이번에 떼거리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마다 차량의 통행을 막거나 방해하거나 하니까 온갖 욕과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도 꽤나 많았다. 재밌는건 라이더들 중에는 그런 무례한 운전자들을 향해 똑같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많았다는 거다.  일부러 시비걸고 싸우려고 자전거를 타고 나온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하는.. 요즘에 매일 비폭력 핸드북을 붙잡고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문득 저렇게 욕을 하는게 자전거 타는 행위가 표방하는 평화로운 삶과 모순되는 건 아닌가 혼자 또 잠시 고민을 했었다..-_-

트라팔가 광장에서 다들 자연스레 해산한 후에는 하비엘이 예전 행진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칠레 친구까지 해서 셋이 같이 펍으로 향했다. 하비엘은 싸이클, 그 친구는 아예 브레이크도 없는 경륜 싸이클이어서 동네 자전거로 걔네 둘 자전거 쫓아간다고 피똥을 쌌다.,;; 암튼 칠레 그 친구가 자기 남는 자전거 하나 있다고 나보고 쓰고 싶으면 쓰라길래 담 주에 자전거를 받으러 갈 예정이다. 만나서 대화를 나눈지 5분도 채 안되어서 서로 이름도 아직 모르는데 대뜸 자전거를 빌려준다니,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더 같이 놀다보니 허풍이 좀 심한 사람처럼도 보이긴 하지만..




사진을 좀 남기고 싶었는데, 제대로 나온게 하나도 없다...흑
그나마 우리가 뭘하고 있는지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사진. 가장 붐볐던 피카딜리 서커스 앞에서.

critical mass를 구글에서 쳐보니 아래와 같은 사이트가 있었다.
http://www.criticalmasslondon.org.uk/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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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mans Park

지난 주말에 마틴 아저씨와 함께 시내 투어를 하면서 여기 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마지막에 타워브리지 앞에 있는 펍에서 맥주 한잔으로 마무리한게 기억에 많이 남았던.. 근데 아쉽게도 지난 주엔 카메라를 챙긴다고 챙겼는데 메모리카드는 노트북에 달랑 남겨두고 와서 사진을 한장도 못 찍었다.

마틴 아저씨가 데려가준 곳 중 한 곳이 포스트만 공원이었는데 왠지 익숙하다 싶어서 기억을 떠올리다가 불현듯 영화 <클로저>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자신의 이름(앨리스)을 빌려온 바로 그 공원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찌나 반가웠던지..ㅎ 오늘 그래서 다시 이 공원에 가서 사진도 찍고 온 김에 근처에 있는 Museum of London도 구경을..





이참에 <클로저>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땐 음악과 나탈리 포트만의 외모에 빠져들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 주드로와 다른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 찌질한 막장 남자들의 심리를 지켜보는게 너무 힘들었다. .앨리스가 떠나고 주드로가 이 공원에 다시 찾아와 앨리스의 이름이 거짓이었다는 걸 깨달았을때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사무실들과 높은 빌딩이 즐비한 곳 사이에 자리잡은 공원..참 아담하고 적막하다. 지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앨리스.. 여기에는 남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예컨대 탬스강에서 자기보다 두살 어린 동생을 구하려다 물에 빠져 죽은 10살 소년(소녀였나?)의 경우처럼..





Museum of London 방향으로 나가는 문쪽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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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aign Against Arms Trade

마틴 아저씨가 오늘 또 새로운 자극거리를 던져주었다. 여기 런던에 사무실이 있는 '무기거래반대운동'(CAAT, http://www.caat.org.uk/)의  최근 소식지에서 한국 무기거래 관련 소식을 찾아서 주신 거다. 이 단체 홈페이지에는 아직 그 기사가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어서(마치 전쟁없는세상 소식지가 홈페이지에 늦게 업데이트 되는 것처럼^^;;;;;) 그 기사에 적힌 인용 신문 싸이트(Defense News, http://www.defensenews.com/story.php?i=3884643)를 쫓아가서 한국 검색을 했더니 꽤나 많은 뉴스가 나온다. 시간이 날진 모르겠지만 담에 한번 쭈욱 뒤져봐야겠다. 마틴 아저씨가 보여준 기사는 한국의 작년 무기 수출액이 10달러를 돌파하며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터키와의 계약이 큰 몫을 했다는 기사였다. 한동안 무기거래 이런 문제의식과 거리를 두고 있다가 본 기사여서 그런지 솔깃했다.

CAAT 소식지에도 흥미로운 제목들이 많아서 거기 나온 인용 소스들만 찾아가도 '착한무기' 팀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오지랖 넓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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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에 대한 오해들

비폭력에 대한 오해들

Published in Gandhi Marg, volume 30, number 2, July-September 2008, pp. 235-257

브라이언 마틴

 

피터 겔덜루는 그의 '비폭력이 국가를 보호하는 방식'에서 비폭력이 무력하고, 인종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고, 방법론면으로 뒤쳐지며 제도적 측면에만 의존하는 하나의 망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비폭력에 대한 이와 같은 그의 공격은 매우 강렬하며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겔덜루의 관점을 평가하기 위하여, 먼저 나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사례들을 조망하고 이를 겔덜루의 주장을 분석하는 토대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폭력이 언제나 비폭력에 승리를 거두었다는 그의 논쟁적인 주장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 판단으론 겔덜루의 주장들이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있는 비폭력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어떤 수준의 그리고 어떤 종류의 폭력까지 받아들일 있는 지에 대한 그의 기준을 말하고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논리를 약화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나키즘과 폭력/비폭력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자 한다.

나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오랫동안 옹호해온 사람이기에 내가 겔덜루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것이다. 나는 비판적인 분석과 접근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비폭력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현실에서 실험을 해보는 과정에서 더욱 강해질 있을 것이다.

비폭력 행동의 사례들


많은 사람들은 역사 수업이나 헐리우드 영화 그리고 뉴스 등을 통해서 폭력에 대한 가지 믿음을 갖게 된다. 하나는 군대와 무기, 군수산업과 같은 잔혹한 폭력의 상징물들을 많이 가진 집단이 대부분의 경우 들보다 폭력적인 집단을 압도할 있다는 믿음이다. 이와 같은 전제는 비폭력에 대한 논쟁에서 자주 제기되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드러난다. “당신은 나치를 끝장내기 위해서 무엇을 것인가?” 번째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폭력에 대한 생각 하나는, 폭력은 단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자체로는 선악을 평가할 없다는 것이다. , 폭력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혹은 적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악이 되지만, 폭력이우리 의해 사용이 된다면 선이라는 것이다. 유혈혁명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전제를 받아들인다. 그들이 믿기에 혁명은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이고 따라서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무장투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폭력 행동은 위의 가지 주장 모두에 도전한다. 비폭력 행동의 성공적인 사례들은 우월한 폭력이 언제나 승리한다는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한편, 비폭력 행동이 가지는 속성은 비폭력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간디가 주창했던 비폭력 행동들은 사회 변혁에 있어 비폭력 행동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1906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하여 1940년대까지 인도에서 펼쳐진 비폭력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비폭력 행동은 간디 이전에도 수세기동안 존재해온 것이다. 예컨대, 헝가리에서는 1850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의 통치에 반대하며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비협조 운동을 벌어졌었다. 간디의 업적 중의 하나는 사회 변혁의 전략에 있어 비폭력 행동을 하나의 접근법으로 여겨지게끔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간디의 운동들은 비폭력 운동의 원리와 방법론들이 세계 전역으로 퍼지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회 운동들에서 이제 비폭력 행동은 하나의 중요한 접근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비폭력 행동은 정치적인 의사소통과 갈등해결의 주요한 도구 중의 하나로서 기존의 진부한 행동들이나 폭력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행위는 투표나 로비 그리고 기존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운동을 의미한다. 한편 전통적인 경제활동은 노동과 재화 용역의 판매와 소비활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사회 활동은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 이웃을 만나는 , 자선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폭력 행동은 앞서 기술한 일상적인 상식과 행동체계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심지어 비폭력 행동은 기존의 가치체계들을 전복하기도 한다. 광대 복장을 하고서 정부 회의를 방해하는 시위, 국가 시스템과는 별개로 지역공동체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 전쟁에 반대하여 전쟁세 납부를 거부하는 , 소액 계좌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함으로써 은행 업무를 마비시키는 소비자 운동, 버스 노동자가 승차요금 받는 것을 거부하는 , 사무실 노동자가 용량의 파일을 전송함으로써 이메일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 지역화폐를 쓰는 , 이러한 행동들이 바로 비폭력 행동의 사례에 해당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행동들과 비폭력 행동을 구분하는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정부의 탄압이 심한 상황의 경우에는 리플렛 장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비폭력 행동의 범주에 수가 있겠지만, 파업이 일상적인 곳에서는 파업에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은 단지 기존의 운동의 하나에 불과하다.

  1. 폭력은 보통 잠재적인 지지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맞서 싸우는 상대편들은 완강하게 버티며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이유는 '반응 추론 이론'(correspondent inference theory)이라고 불리우는 심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할 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행동의 결과를 근거로 행동의 동기를 추론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행동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있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려고 작정을 했기 때문에 결국 죽게 것이라고 여긴다. 실제로는 죽음이 아니라 자유롭게 생존하는 것이 행동의 동기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론은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들의 동기를 오인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작동한다.


폭력은 개인에 대한 상해를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특정한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억압적인 시스템을 바꿔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인 한명을 죽이더라고 자리에는 재수없는 정치인이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 정치인은 한편으론 누군가의 부모이며 친구이고 음악가였을 수도 있는데, 폭력은 그런 다양성을 간과함으로써 시스템의 전반적인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고한 개인의 죽음만을 불러오게 된다.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로 하여금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명분을 제공하게 되며, 심지어 국가가 시위대들의 폭력보다 심한 폭력을 쓴다 할지라도 앞서 급한 '정치적인 유술' 효과는 반감하게 된다.

  1. 폭력은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단다. 젊고 건장한 남성들만이 공권력 그리고 시위대 양쪽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무력을 동반한 비밀시위 역시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한다.

폭력은 폭력을 사용하는 당사자들은 고무시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제한된 참여는 결국 폭력의 사용하는 당사자들의 능력도 저하시킨다.

4. 방법론으로서의 폭력이 내포하는 속성들은 운동의 목표인 비폭력적인 사회의 모습과 충돌한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다만 폭력의 연습과 경험 그리고 정당성을 부여할 따름이다. 폭력은 즉각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참여자들이 원래 목표했던 길에서 벗어나 지배권력과 닮아가는 결과가 발생하기 쉽다.

비폭력의 관점에서 봤을 위에서 지적한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지적들은 폭력의 사용을 반박하는 핵심적인 논리들이다.

물론 여기서 지적한 비폭력의 논리와 폭력에 대한 반박 논리들은 다만 경향적으로 타당할 , 언제 어디서나 진실인 보편타당한 명제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비폭력 행동이 폭력적 행동보다 많은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비폭력 행동의 방식에서는 사람들의 참여가 제한적일 있으며 반대로 폭력을 수반한 운동들에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수단적 비폭력의 관점을 취할 때에는 상황과 맥락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비폭력 운동들은 사람들의 자발성에 기대고 있으며, 특별한 준비과정이나 계획 혹은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폭력을 수반한 운동들은 무기와 훈련 그리고 많은 계획을 필요로 하며 이것들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적일 없을 것이다. 군사적 훈련과 작전에 투여되는 엄청난 재원과 노력들을 생각해본다면, 비폭력 행동은 다양한 수단을 사용할 있는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동인 셈이다.

삶의 원리로써 비폭력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앞서 언급된 원리적 비폭력주의자를 의미함, 옮긴이 )에게 특정한 상황이나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명의 독재자를 암살하는 것이 수백만의 고통을 경감시킬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암살과 같은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비폭력 행동이 보통의 경우에 나은 선택이라고 한다면, 원리적 차원에서의 비폭력을 수행하는 것이 (실용적 관점에서도) 현명하다고 있는데, 이는 참여자들이 비폭력에 대한 오해할 가능성을 줄일 있고, 상대편으로부터 부당하게 폭력의 딱지를 받는 것도 피할 있으며, 행동의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을 피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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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마틴 글의 사분의 일정도 번역을 같다. 용어를 선택하는 것도 어렵고, 맥락을 따라가는 것도 어렵고 생각보다 밑천을 많이 요구하는 작업인 같다. Principled nonviolence pragmatic nonviolence 구분을 처음 접했고, 어떤 단어로 번역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물어봐얄 같다. 지금 올리는 부분은 주석 처리도 하고 편집도 안했지만(ㅜㅜ), 번역 잡업에 나름의 성취감을 맛보고자 이렇게 거칠게나마 포스팅을.. 전체 원문의 주소는

http://www.uow.edu.au/arts/sts/bmartin/pubs/08gm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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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마틴의 글을 볼 수 있는 곳

http://www.uow.edu.au/arts/sts/bmartin/pubs/peace.html

이런 곳들을 발견할 때마다 괜히 기분이 므흣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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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에 대하여

금요일 밤. 이번 주 내내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꼬박 용산 관련 기사를 읽은 것 같다. 주로 다음 아고라나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기사들을 보았다.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기사를 읽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에 대한 환멸과 회의가 강하게 들었다. 전철연이라는 외부세력이 문제라느니 불법시위를 쳑결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보면서 그런 말들을 하는 인간들에 대한 분노에서부터 두려움, 냉소, 환멸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의 감정이 스친다.

 

I dont know anything about korea.

벨기에 겐트에 사는 하비엘 여자친구가 어제 밤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에 왔다. 금요일 저녁, 일 마치고 셋이서 함께 펍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을. 겐트에서 나름 열심히 일하는 활동가이기에, 보통 활동가에게 기대되는 어느 정도의 넓은 시야가 있을텐데도 그녀는 나에게 아시아 사람의 3분의 2이상이 알콜 분해 능력이 떨어져서 술 마시면 금방 취해버린다는 말이 사실이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연속콤보로 자기는 한국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면서 하지만 일본 문화에는 정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뭐 이런 반응들이야 여기와서 늘 들어왔기에 이젠 별 감흥도 없다. 더군다나 내가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국수 애국주의자도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서 한국에 대한 정보를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한국을 소개를 해야할지 늘 곤혹스럽기만 하다. 영어로 말해야하는 기술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이 동네 보통의 상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걸 납득시키기는 너무나 어렵다. 병역거부자에게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한다는 얘기도,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처벌을 받는 얘기도, 인터넷에서 자기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여기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다른 세상 얘기처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인데,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되려 경찰진압에 불타 죽었고 국가는 그에 대해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이는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조차도 뉴스를 보고 있자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싶어지는데 말이다.

 

501번 혹은 750번을 타고 늘 지나가던 그 길이었는데. 그 길가에서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갔다니 그저 민망하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문득 이번에 철거민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간 특공대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들이 뻗쳤다. 이번에 수도 없이 회자된 경찰청장 내정자 김석기가 특공대원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보면서 예전에 봤던 <공공의 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몇 번째 시리즈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검찰청에서 열심히 일하던 한 명이 업무 수행 중에 (아마도) 사립학교 재단에서 고용한 용역깡패들에 의해 운명을 달리했고, (그런데) 그 장례식 장면에서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훌쩍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나도 영화에 몰입했다가 그 장면에서 눈물이 찔금나려고 하는데 머리로는 내가 여기서 눈물을 흘리면 안 되지 하며 애써 참던 기억이 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억울하게’ 혹은 ‘아름답게’ 희생된 검사. 그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동료들. 이번에 죽은 어느 특공대원의 죽음을 모욕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역시 불의세력에 맞서다 용감하게 죽은, 국가에 의해 추앙받는 한 명의 이름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적어도 국가와 언론에 의해 다뤄지는 그의 죽음의 의미에 한해서는 말이다. 그 어디에서도 국가의 부당한 명령으로 죽음을 초래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나, 어이없이 죽어간 한 개인 자체에 대한 의미부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희생은 오로지 국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규정된 ‘공공’의 이익 하에서만 기억될 뿐이었다. 그럼으로써 강화되는 법과 질서의 중요성.


같은 특공대원이었다는 동료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난 더 이상 할 말이 잃었다. 촛불집회가 잦아드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의 법질서가 확립되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니. 새삼, 경찰 전체가 집단적으로 마약을 했거나 아니면 그와 동일한 효과의 최면에 걸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경찰은 항소심에서 2년을 선고 받았다. 상고를 해도 이젠 형기를 단축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그럼 차라리 항소를 안 하고 1심에서 받은 1년 6월로 재판을 마쳤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든다. 과연 인간은 어느 누구나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10만이라는 경찰 집단, 48만이라는 공무원 집단, 68만 군인집단 그리고 사법부, 국회, 강부자 등등. 도저히 나와 같은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들을 추동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촛불시민들로 하여금 마침내는 짱돌을 들게 만들고 그들을 다시 폭력사범으로 몰아가는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악랄함을 배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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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병역거부자의 병역거부 이유서

Maya Yechieli Wind
Maya Yechieli Wind


처음에는 다른 보통 이스라엘 시민들과 다를 바 없이 저도 이스라엘의 반윤리적인 군사행동에 대해 단지 침묵을 지켰을 뿐 그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생각건데 저와 비슷한 나이 대에 있는, 어쩌면 제가 만났을지도 모르는 군인들에 대한 저의 자기규정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자각이 듭니다. 이 자각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저로 하여금 군복무를 거부하도록 만드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느 쪽에서도 인간성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 피의 악순환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제가 자라온 커뮤니티에 대한 헌신과 책임감에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이스라엘)의 군대를 '방위군'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영토를 정복하는 것, 그들의 땅에 건물을 세우는 것을 방해하는 것,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들의 땅과 삶을 위한 자원들에 접근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은 '방위군'의 역할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들입니다.

팔레스타인 점령은 방어적 차원의 이익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점령은 단지 위험한 주장들과 증오심 그리고 폭력성을 더 심회시킬 뿐입니다. 폭력은 자기 자신에게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악순환의 고리를 낳습니다. 이 악순환은 누군가 일어나서 그 폭력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한 계속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오늘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저의 생각은 당장 지금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 쪽의 폭력이 다른 한 쪽의 폭력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폭력은 그 동안 있었던 가자에 대한 점령과 억압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 동안 어처구니 없이 죽어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표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전쟁을 택했습니다.


Maya Yechieli Wind, 이스라엘 병역거부자, 114일 병역거부 선언, 징역 14일을 선고받고 119일 수감됨.


*출처

CO-alert, ISRAEL: Two conscientious objectors sentenced to 14 days in prison, http://wri-irg.org/node/6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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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erial War Museum

오랜만에 올리는 사진들인 것 같다. 금요일 밤 안드레아스, 안드레아스 남친 안센, 하비엘 그리고 쥴리앙과 예정에 없던 술자리를 가지고 나서 토요일 하루 종일 뻗어버렸다. 원래는 토요일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하는 계획들이 있었는데 침대에 누워있다보니 온갖 핑계들로 애초의 계획들은 그냥 다음 토요일로 미루어버렸다.-_- 금요일 밤 마지막으로 들른 펍은 내 기억이 맞다면  st peters 라는 오르가닉 펍이었는데 메뉴판에 자신들이 어떠한 점에서 언제부터 오르가닉 정책을 펴왔는지를 자잘하게 설명해놓은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허나 그 중에 자신들이 동물의 모든 부위를 낭비하지 않고 소비한다는 멘트에는 약간의 메스꺼움도 들었다. 암튼 금요일 밤의 마지막 잔은 데낄라로 마무리를.. 안주 없이 먹는 이 동네 술값이 먹다보면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불어나곤 하는데 요즘은 보통 한번 펍에 가면 10파운드씩은 꼭 쓰게 되는 것 같다.





토요일 오후, 이스라엘 전쟁에 반대하는 데모가 트라팔가 광장에서 있었는데 갈거냐는 안센의 문자를 받고나서 좀 고민하다가 그냥 집에 있겠다고 했다. 후회가 살짝 되기도 하지만 대신에 친구들하고 통화를 많이 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시차때문에 친구들하고 맘놓고 편히 통화를 하려면 여기선 오후 한나절을 그냥 포기해야하는 것 같다.

암튼 일요일인 오늘은 미리 약속이 되어있던 이 동네 전쟁박물관으로 향했다. 위 사진은 뮤지엄 앞에 놓여있는 영국 해군 미사일을 옮겨다 놓은 모습. 날씨가 참 좋았다~





해군 미사일 세워진 곳에 써있는 문구. 뭔가 코믹해보인다. '신성한' 전쟁의 도구에 붙어있는 '올라타지 마시오'라는 문구라니. 함께 있던 마틴 아저씨가 연신 웃어제끼며 이거 사진찍어서 5.15에 어떻게든 써먹으라고 하길래 한컷..ㅎㅎ





시내 한복판이더라도 어딜가나 녹지가 있는 런던의 풍경이 나중엔 살짝 그리워질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뮤지엄 앞 정원의 모습들,,





1차 대전 즈음에 런던에 다니던 버스의 모습이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버스가 프랑스로 군인을 수송하는 데에 쓰여서 여기 박물관에 있는 거라고..





내가 맞게 들었다면, 영국은 다른 나라보다 늦은 시점인 1차대전 도중에 징병제가 도입됐는데, 징병제가 시작되기 직전인 1차대전 중 영국 전역에 뿌려지던 모병 포스터들이 많이 전시되어있었다. 이러한 모병광고에 대한 호응이 높은 편이었다는데, 나중에 징집된 군인까지 해서 총 1차 대전에 참여(혹은 동원)된 군인이 무려 370만명이란다..





딱 보고 반가웠던 섹션.. 1차 대전 중의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설명도 되어 있었다. 이걸 보고 나니 괜히,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엔 가보지 못했지만, 왠지 한국보단 전쟁에 대한 기억 방식이 그래도 여기가 조금은 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_- 총 16,000 쯤이었나, 그 중의 병역거부자중에 대부분은 비전투 부대에서 종사를 했고, 'absolute objectors' 1500여명 정도는 결국 다 감옥에 보내졌다고.. 병역거부자들의 편지나 친필로 남아있는 주장 혹은 병역거부 신청서들이 같이 전시 되어있었는데, 그 중에는 WRI 초창기 멤버의 편지도 있었다. 4.3이나 5.18의 기억이 국가에 의해 전유되는 부작용도 크지만, 한국의 평화운동이 역사가 쌓이면 언젠가는 이처럼 대중에게도 기억될 수 있는 날이 오려나 싶었다.. 바로 엊그제 군의문사위에서 발표한, 70년대 국가폭력에 의한 여호와의 증인들의 사례가 나오던데 그들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국가에 의해 오히려 추앙 혹은 기억이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아직은 너무나 먼 얘기같지만..





2차 대전 종료 후 냉전 시대 펼쳐졌던 반전운동에 대한 소개들도 있었다. 핵무기 반대 운동들이 많이 보였다.한국은 한국수자력원자력과 같은 기관이 앞장서서 핵발전소 캠페인을 하고 그에 대한 시민 사회의 반응은 거의 없는 편인데, 예컨대 여기서 핵발전소의 경우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자리 잡혀 있는 듯하다. 그래서 여기가 '선진국'인건가..





예전에 헤이스팅스에 있던 어학원 선생 한분에게 들을 얘기였지만 2차 대전 이후 공식적으로 영국 군인이 각종 분쟁에 연루 되지 않은 적이 단 1년에 불과하단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박물관에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여했던 영국군의 역사가 쭈욱 자열이 되어있다. 그 중에는 한국전에 대한 파트도 있었다.





안드레아스는 박물관 미술관 이런 걸 질색을 해서 오늘 함깨 하지 않았다. 2시간 생각하고 둘러봤는데 공습 체험도 해보고 여기 저기 보다 보니 둘러보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예전에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의 소재였던,  1차 대전 중 첫번째 크리스마스 기간중에 있었던 영국 독일 군인 사이의 비공식적인 휴전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어서 재밌게 보았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워털루역 철로 아래 있는 펍으로 갔다. 예전에 소방서였던 자리인데 지금은 펍 겸 레스토랑겸 쓰이는 곳이라고. 분위기도 좋고 괜찮았다.^^ 다음 주엔 마틴 아저씨가 런던 브리지를 보며 술한잔 할수 있는 펍에 데려가준다고,,ㅎㅎ





오늘 함께한 마틴 아저씨, 하비엘, 쥴리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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