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목산장

2008/02/12 20:46

설날 앞두고 입춘이라던 날,

혼자 지리산에 올랐다.

차를 가지고 시골집에 내려가는 길인지라,

출발지로 다시 내려오려고 하니, 코스가 마땅치 않아

재미는 조금 없지만 백무동쪽을 택했다.

장터목산장으로 가는 길.

산행을 하면 좀 이상한 게 있는데,

산에 오를 때는 자꾸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스쳐 지나가도 꼭 되돌아서 그들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런데, 하산할 때는 뒤가 돌아봐지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고 스쳐 지나가도 뒤돌아서 그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게 되지는 않는다.

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혼자 산행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 별 의미없는 생각...

 

산장에 도착해서는 우연히 아는 사람들 둘을 만났다.

오랜만에 보는 동지들인데다가, 혼자 나선 산행에서 만난 터라 어찌나 반갑던지...

서로 가져온 술을 다 먹으며 수다를 떨었는데도 저녁7시가 갓 지났다. 아, 긴긴 밤을 어쩌나...

1년 전, 선배가 장터목산장에 소주 댓병을 묻어두고 왔다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났다.

득달같이 그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소주 댓병을 어디 묻었냐고 다그치고,

장터목에서 연하천가는 길 옆 바위가 둘러있는 고사목 세개 가운데 맨 끝 나무 밑둥이라는 답을 얻어내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와중에 무릎높이까지 쌓인 눈속으로 퐁퐁 들어가, 땅을 파서

소주 댓병을 찾아냈다. 그 감격이라니,,,

1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지 않게 소주통에 묻은 흙은 덩어리가 져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셋이서 결국 그 댓병을 몽땅 비우고, 언제 잠든지도 알 수 없게 편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내려다본 세상은 또 기가 막히게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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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2 20:46 2008/02/12 20:46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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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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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술 사진이라도 찍어두지.... 그 맛난 것을... 내 오길 꽁꽁 얼며 기다렸을 것을.. 나 한테 뵈주지도 않고... 아~~~ 쩝~~~~~~~~
    그리고 신생아 선물은 뭐니뭐니해도 현찰이나 내복이 최고다.... 형편됨 언니 보약해줌 더 좋지... 사실 애보단 애 엄마가 더 고생한거니까....
  2. 2008/02/1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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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무신... 묵기 바빴지. ㅋ 암튼 은혜는 뼛속 깊이 새기겠나이다~
    산모 보약은 산후조리원에서 해준다더만~
  3. 2008/02/1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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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영화같은 이야기...여태껏 눈팅만 해왔는데...이번 만큼은 댓글없이 지나칠 수 없군요.그 아름다운(?) 집착에 무한한 존경을 보내며..새해 복 만빵 받으시길..캐피탈의 덜렁거리는 백밀러와 하루만에 딱지 4개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부터..
  4. 2008/02/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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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신 조카님과 위대한 어머니로 태어나신 언니분께도 축하인사 새해인사 드려요...^^
  5. 2008/02/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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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너무 멋있어요 와 일년 된 술이라니>ㅅ< 낭만적이다'ㅅ' 산에서 아는 사람들이랑 맞닥뜨리고... 와아
  6. 2008/02/14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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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해요^^/그 딱지! 캐피탈 폐차할 때 속 많이 쓰렸슴다...
    덩야핑/멋?! 맛도 있었담다.ㅋㅋㅋ
  7. 2008/02/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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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그 술을 기어코 동지가 '냉큼' 마시고 말았구려. 부럽소!
  8. 2008/02/1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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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1병이 더 묻혀있다는 풍문이 있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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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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