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 단편소설 <신천옹> 中에 이런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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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사물 혹은 오랫동안 살아온 장소까지도 그것들이 품어내는 어떤 기운과 정서가 몸 속에 스며들어 나 자신의 한 부분을 형성해버리는 것 같다.
나도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환경을 쉬 바꾸지 못하는 천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래된 인연이라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익숙해지다가 지겨워질 때쯤이면 사람이건 사물이건 대상의 뱃속까지 훤히 꿰뚫는 마당이어서 그리 큰 감흥이 없을 때도 많다.
다만, 그것들마저 없다면 절해고도의 수인신세로, 내가 더 답답할 줄 뻔히 알기 때문에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편이다.
그렇게 사람이든 직장이든 쉬 떠나지도 못하고, 새 사람을 제대로 사귀지도 못하면서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지나왔다. 이제는 새장의 문을 열어놓아도 밖으로 날아갈 줄 모르는, 퇴화된 날개 근육을 지닌 가여운 늙은 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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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이 나온다.
너무 많은 것을 지레 포기하고 살아온 게 아닐까.
늘 늦었다고만 생각했다.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