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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었던 3년과 20대 초반까지 매년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기 위해 1월 1일자 발행되는 신문을 샀다. 부산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부산일보를 제외하고 대개 여섯 개 정도 서울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소위 중앙지를 샀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소설이 한 편 있는데, 어느 해 어느 신문인지 모르고, 작가의 이름도 모른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아프락사스'라는 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록키 산맥(혹은 히말라야 산맥) 꼭대기에 아프락사스라는 새가 살고 있는데, 이 새는 집이 없다. 그래서 눈보라가 치는 추운 밤 이 새는 집이 없어 바위 틈에 머리를 처박고 "내일은 집을 지어야지"라고 속삭이면서 아침을 기다린다. 그러나 아침에 해가 뜨면 어젯밤 바위 틈에서 한 자신의 다짐을 잊어버리고 따듯한 햇살이 비치는 높은 창공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다시 추운 밤이 되면 집이 없어 또 바위 틈에 머리를 처박고 "내일은 반드시 집을 지어야지" 하고 다짐을 하는 것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이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는데, 아마 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을 아프락사스에 비유한 것처럼 나 역시 나를 아프락사스와 같다고 생각했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프락사스는 <데미안>에서 고통스럽게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이름이다. 그런데 나는 나이가 들어 작가가 "아프락사스"를 'Praxis'에 접두사 a를 붙여 'apraxas'로 변형하여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말하자면 '실천하지 않는' 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최근 계속 아프락사스라는 새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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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4 15:46 2023/12/14 15:46

일기든 블로그든 글을 쓰지 않으면 계속 쓰지 않게 된다.
마치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멀어지는 것과 같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매일 조금이라도 계속 써야 끝을 볼 수 있다.
글을 쓰면 생각이 떠오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생각을 연결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화초에 물을 주고 언제나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아 화분을 옮기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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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7 15:40 2023/11/27 15:40

연애의 본질은 이별의 서사에서 찾을 수 있다.
연애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을 이별은 근본적으로 헤어짐이 아니라 만남을 지향한다.

이 블로그와 나는 마치 연애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 헤어지자.
그러고 또 다시 만난다.
이제 우리 진짜 헤어지자.
그러고 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만난다.

일기도 아니고 굳이 블로그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블로그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무엇이든 줄 수 있어야 사람들이 찾는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위 페친이 많고, 팔로워가 많은 계정은 뭔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준다. 그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원하는 것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블로그를 하지만/하겠지만 사람들에게 무얼 줄 수 있는 게 없다.
나는 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나 뭔가 유용한 정보를 찾는 사람들과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와 연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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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9 16:17 2023/11/19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