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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도발

침략과 거대한 힘의 과시는 평화에대한 도전이 아닌 평화 자체를 상징하고 여기에 대항하는 행위는 '도발' 또는 테러라고 규정짖는 것이 21세기초 부터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하와이를 비롯하여 카리비안의 작은 섬들이 거대한 미군함들에게 도전하지도 못하고 '평화'를 맞이하였다. 이중에 뿌에토리꼬의 민권을 들어보자. 그들은 미국인 행세를 하지만 투표권이 없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하다 붙잡히면 미 본토에서100년 이상의 형을 받는다. 합방이후 40여년이 지난 지금, 생활의욕은 뚝 떨어져서 독립할 수 있는 인재들도 사라졌고 원하지도 않는 자포자기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남한에서는 미국놈의 뒤를 할트는  김동길과 조중동이 쮀치는 소리 같은 것이 가득히 남아있다. 남한의 문화 콘텐쯔는 미국의 흑인들의 원숭이 춤을 흉내낸 것과 콤퓨터를 이용한 번쩍이고 발광하는 만화적 행동과 불빛속의 쑈 외에 볼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겐 자주적 동족 북조국이 있어왔다. 외세를  부분적이나마 물리쳤기에 남쪽이 쀼에뜨리꼬화 하지 않았고  전태일 열사가 나타났고 민주화와 경제발전도 뒤따른  것이다.

그러면 근거리 힘의 과시와 침략을 도발로 보고 여기에 대항하는 영구한 도전을 평화로 보는 시대가 찾아 올 것인가?  도발적이기에 충분한 일본에게 손을 내밀어 '합방'을 자초한 경상도 출신 민비일파에게 베푼 일본의 '협조'와는 대조적으로 2차대전 후에 미국의 남한접수는 조선인들에게는 이미 도발이었다.
도발자에게의 대항은 영구한 평화를 목적으로하는 수단이며 평화를 위한 전쟁이기에 도전자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럼 왜 북조국은 핵으로 도전하여야 했는가를 알아보자. 중국이 90년대 말에 이미 경제부흥을 이루기 시작하여 북조국에게는 또 다른 도발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 중국은 미국과 비교할 만한 힘이 아니었다. 이때에 북조국은 이미 핵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고구려-고려-코리아를 위함이었다.  이것을 가장 혜택받는 나라는 지금 남한인이 된 것이다. 북조국이 강한 것 만큼 미국의 혜택과 중국을 막는 이중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강감찬 장군과 같은 북의 영장들이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계신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박정희군사독재가 우리를 먹여 살리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동족의 반미 도전의 혜택속에서 미래를 개척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부쉬보다 더 사악한  전쟁광 미행정부가 이제 노벨평화상의 탈을 쓰고 떠들고 있다.  우리는 누가 평화에대한 도발자이고 누가 지금과 앞으로의 도발에대한  평화적 도전자인가를 알아야 민족의 알찬 일원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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