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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의 모습과 성격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과 미제로부터 압제되든 해인 내 나이 5살 때에 대전으로부터 충북 주덕면으로 이사하였다.  아름다운 능선을 가진 언덕들과  이와 어울려 탁 트이면서 굽이쳐 흐르든 내천들은 지금도 나의 눈에 훤하다.  정말 나는 이 내천들 위로 나르는 것이 70나이인 꿈으로 아직도 가능하다. 한말로 평화스런 전경인 것이다.  이런 곳의 아이들은 온화한 품성을 갖게되는 반면 충북 제천과 같은 골짝이 움푹파여 계곡 밑으로 흐르는 강을 갖인 고장 아이들은 탈영자나 깡패들이 더 많이 나오고 거친 사람으로 자랄 가능성이 더 많은 것으로 들었고 그렇게 믿는다.  우리 조상들이 만든 여자 한복의 저고리는 쉬어 갈 줄 아는 강산을 닮았지 않은가? 옛날 초가집을 박정희가 없앤후 지금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도시들은 모든 언덕의 능선을 아파트 숲으로 없애버렸고 수도 서울의 한강 백사장들은 모두 사라져 없어진지 오래다.  지금4대강도 이렇게 운하적 강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불도저 맹박이가 온 강산을 파헤치고 있다.  즉 강은 작은 산과 부드럽게 만나야  많은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고 인간도 필요할 때 낮은 물로 건너 이웃을 방문 할 수도 있게 된다. 고기들은 장마때에 더 높은 작은 하천으로 올라 알을 까고 힘 있는 고기로 자랄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충북 청주시엔 운하적으로 바뀐 무심천 변으로 풀밭 대신에 무심천과 나란히 달리는 도로가 생겨 이 도로 위엔 또 다른 다리들이 보기 싫게 건너가고 있다.  만약에 대동강을 이렇게 하였었다면 지금 우리들은 서해바다에서 꽃게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생태계의 가장 많은 인연들을 끊는 것은 죄악중에 제일 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성의 제일 큰 것은 평화와 사랑스럼이다. 일제가 건드리지 않은 능선을 미제의 깡패적 똘만이들이 없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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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하와이 방문을 마치고

네번째 방문한 중에서 이번이 가장 긴 여행이었다.  오아후섬을 한바퀴 돌아보았고 세번 Surfing을 실컨 해보았고 두번 Lagoon해수영을 했고 등산도 두번 했고 거의 매일 산책과 운동을 하였다.  아내가 이사간  Pearl City는 섬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기에, 그리고 더 열대적 기후로 인한 아름다운 나무들과 하늘 특히 자주 보이는 무지개는 인간이 없이도 지상 천국의 환경이었다.
사람들은 군인들이 많아서인지 일반적으로 무식해 보이는 거구들이 많았고 한인들은 미국 전역중에서 가장 이승만시대에 살고 있는 친미 돌대가리들로 꽉 차 있었다. 방문중인 밥통 해군 장교들이 한인회에 들려 천안함 사건 거짓 홍보를 하도록 돕는 것 외에, 지역 사회의 혼혈및 입양 한인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 인권단체와 예술인 들과 함께 준비한 잊혀진6.25전쟁과 평화 예술 전시회는 '빨갱이"가 한다고 단체장들이 긴급회동을 하는 꼴과 하와이의 오랜 유산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제일 큰 Bishop뮤지움에서 3개월간에 걸쳐 수 만명이 다녀갈 전시회와 시사회의 참석을 거부한 언론인들은 도대체 어느나라 사람들인지 궁굼하지 않을 수 없었다.  'The Still Present Pasts'는 영상 미디아와 살아있는 미주 한인들의 입에서 나온 구술 증언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줄 참여 무대예술 설치물들이 있고 이미 미 9개 대도시에서 성공적으로 전시한  역사적의의에대한 상세한 보도 의뢰 마져도 대부분 깔개뭉기고  개전 며칠후에야 몇줄의 보도로 마치 전시회가 이미 있었던 것 같은 기사를 올려놓은 한국일보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 뮤지움은 여러 민속행사및 축제가 자주 열리는 곳이기에 이미 수 많은 인파가 다녀갔고 다녀 갈 것이라고 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다녀가고 있다. 우리나라와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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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된 손자의 사진과 아내에게 그려준 그림들

위의 그림들은 고 화가 이세덕씨가 남기고 간 붓들로 그린 그림들로 바로 위의 그림은 오일 가로 32인치 세로 16인치 용의 얼굴들이다. 그위의 꽃은 가로 24인치 세로 12인치의 오일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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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태평양함대의 본거지 하와이에서 나의 휴가사진

첫째사진은 잃어버린 하와이 왕국의 하늘, 그리고 나의 휴가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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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바쁠 때에 오는 전화

옛 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내가 홀로 할 일과 계획들을 '친구'때문에 못한다는 말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나는 시카고에서 인권운동을 효율적으로 하기위하여 시작했든 목사공부를 버리고 대신 자영업을 10여년간 하였다. 그런데 내가 똥이 빠지게 바쁠 때에는 영락없이 전화가 오곤 하였다. 자영업을 그만 둔 그 이후에도 이 사실은 하나의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답답한 '친구'들이 나에겐 수 없이 많았다. 이것들은 운동 차원에서 보면 적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또 답답한 내용들은 곧 공동 관심사이기에 나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주고 하나의 결론을 얻는데 중요한 시간이 되곤 하였다. 나의 주변에는 물론 중정의 물을 먹거나 이들의 하수인이 통일운동에 관심이 있는 척 하며 수시로 만나자는 자들도 여럿 있었다.  이들은 전화로 오래 말하지 않는다.  즉 큰 일이 있는 것 처럼 자꾸 말씀 드릴 것이 있다는 것이다. 즉 비밀적인 내용이 있고 바쁜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른 아침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이들을 만나 주었다. 이들에게서도 답답함과 궁굼함은 매 마찬가지 였다.  내가 바뻤기에 접근 하는 시간 도둑들이었다. 아니면 나의 바쁨의 척도를 아는 귀신님들이었다. 하지만 인권과 통일운동 행사 때에는 내가 여러 부탁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내가 바쁘다는 사실을 숨기고 여유있게 대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일정상 정말로 피해야 할 때에는 전화기를 내려놓든가  휴대하지 않거나  걸려오는 이름을 보고도 답을 피하는 법을 배웠다. 계획서나 휴대물을 신발과 함께 놓거나  손전화기에 울림시각들을 입력한대로 나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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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와 나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이 돼서야 내가 줄을 서야 했던 것으로 내가 지금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나이 70이  된 지금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익숙하여 있다.  왜정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정치가가 누구든지 간에 줄을 서라면 곧 잘 스곤 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덕분에 미 군정하의 남한 꼭두각시 정치가 이승만은  누구든지 줄을 스면 쉽게 끌고가서 빨갱이라고 학살 하곤 하였다. 30년전 광주에서 군인들이 젊은이들을 포승으로 묶어서 한줄로 끌고갔고 종착역은 학살지였다.  지금까지 남한의 투표자의 대부분은 노인들이었고 이 노인들은 포승을 하지도 않아도 줄을 서서 투표를 하는 것을 하나의 자기 인식의 커다란 하나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아니면 줄을 서야 자기가 되는 군중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들 대부분은 서로 물어보고 난후에 모르는 척하고 투표한다. 그저 투표를 위한 투표인 것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남한의 '민주주의' 였다. 이번 선거에 젊은 20대가 참여하면, 앞으로의 남한의 민주주의는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광주사태와 같은 울분을 또 겪을 필요가 없어진다. 천안함사건이나 대한항공 격추물화 사건(이것은 미 CIA 작전으로 그들은 회의참여차 모르고 탔던 미 전 대통령 닉슨을  그 비행기로 부터 도중 하차 시킴) 같은 것으로 북풍 정치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요지음 미 민간단체들이 북을 인도적 차원에서 돕는 척하면서 6자회담마저 기피하는 미국의 늑대의 얼굴을 양의 얼굴로 둔갑해 보려고 하고 있다. 이들 중에 가장 순수해 보이는 척하는 이곳 쌘프란시스코의 결핵퇴치의료진 마저도 제국주의의 선교사 노릇하기에 바빠서 1919년 3월 1일에 최남선이 말한 '도덕은 버리고 오로지 새길을 모색하자'는 써먹든 슬로건을 우리 해외 한인들이 받어주었으면 하고 선전하고 다니고 있다. 나는 이제 혼자 스스로 서는 한국의 젊은 20대를 바라보고 있다. 줄을 스는 것과 혼자 서는 것이 병행하는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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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콤퓨터

나는 20년 전  IBM286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여러 하드웨어와 많은 소프트 프로그램을 사용하였고  네트워크 엔지니어 및 수리공으로도 오랫동안 일하였다. 한말로 전문인이었다. 유색인이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는 남자일 중에 하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거의 모든 것을 나는 자습으로 스스로 배웠다. 다행이 내가 만나거나 소유하게 된 하드웨어나 프로그램들은 나에게 좋은 것들을 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특히 요즘 내가 모니터로 사용하는 대형 46인치 삼성TV는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열어 놓고 작업하는데  편리하다.(사진참조)  TV뒤 벽과 사이에 콤퓨터 두 대를 동시에 연결하여  vista와  xp를  각각 설치하여 여러 버전의 다른 종류의 프로그램을 올려 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앞으로 악보로 작곡을 하여 보려고 한다. 동영상도 제작하며 배우기 시작하였다. 첨부된  또 다른 사진 하나는 내가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작곡한 것을 악보로 만든 것의 일부이다.  컨닝으로는 배우기 힘든 것이다. 요즘 미국놈의 자작극을 컨닝으로 배워 외우는 놈들이 꽤 많아지고 있다. 이길 수 없는 6월 선거를 북풍 (공안) 분위기에서 치루어 보겠다는 것일 것이다.  북침 훈련 도중 배의 이상을 미군에게 보고하지 않고 달려 도망 나오다 이것을 예상하지 않았던 미 잠수함이 부상하면서 갈라놓은 배를 북의 소행이라고 억지를 쓰는 꼴을 보니 참 애처로울 따름이다 . 자국 졸병들은 죽게하면서 미군을 구하려다 죽은 해군준위를 위해 국민과 대기업이 영웅화하도록 하는 꼴은 더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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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지 아버지라고 부르는 쌔끼들

나는 일반적으로  교육을 믿는다. 제자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은 자신과 동등한 인격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대하며 사랑으로 가르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예수를 선생님으로 대하지 않고 울고 짜대도 되는 생리적인 아버지와 같게 대하는데에 문제가 있다.  자기는 형님이니까 더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하며 지는 고려대를 졸업하였으니 혼자 먹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제 맹꽁이 명박이가 2년을 죽어라고 행패를 부렸다. 아니 지금부터라고 울면서 더 행패를 하게 맞겨달라고 애꿎게 죽은 젊은이들의 이름을 이용하며 지 아버지 예수에게 매어 달려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국민을 공평한 아버지로 섬겨야 할 사람이지 아버지를 무시하는 격으로 바라는데에 만 있는 것이 문제다.  지 아버지는 자기처럼 공평성이 없는 줄로 안다. 옛 말에 '그 아버지에 그 새끼'란 말을 들었는데 지금 그들 뉴라이트놈들과 맹박이를 보면 '그 새끼에 그 아버지'란 말을 붙여보고 싶다.  제국주의자의 압잡이 노릇을 하며 지들만 콘테이너 벽을 넘나들며 꺼덜대고 법을 어기며 잘 먹겠다는 것이다. 나라와 이웃을 섬기기 보다는 나라와 이웃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인 나라와 이웃을 다 먹어치우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이런 놈들은 지 아버지도 말아 먹을게 틀림없다. 그리니 기독교를 만든 사람들의 두뇌가 한참 모자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새끼들을 집단적으로 만들어 내었고 또 내오고 있지 않은가.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그러나 부드럽고 진해야 하지 않을까? 사진은 사위가 사온 장미꽃을 내가 대신 꽃꼬지 해 준 것이다. 최근 제국주의자들의 자작극의 희생물이 되어 안

겨진 참눈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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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 '양념'에 관하여

인간도 음식물 섭취에 관한한 다른 동식물과 차이가 거의 없다. 음식과 수분을 수시로 섭취하지 않고 세 식사때에 한번에 취하는 차이가 있다고 할까. 나는 두 종류의 싼 중국산 차 두 봉지로 하루 종일 수시로 뜨거운 물을 넣어 마신다. 물론 보리와 쌀밥을 좋아하는 나는 '국보'이므로 점심과 저녁에 두 사발 정도의 물을 더  섭취한다. 서양 음식은 주 음식물에 기름을 발라 구워 다시 다른 음식과 물기를 넣어 더 익힌 후에 또 다시 물기를 말려 먹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음은 지난 두어달간에 발전시킨 '양념'이론이다.
나의 '양념'들은 언젠가 잊게 될 습관이나 외우기 어려운 공식을 깨고 가장 빠르게 간단히 해먹을 사람들을 위함이다. 가장 맛 있고 아름답게 요리하는 나의 아내의 음식과는 대조적이지만, 내가 어릴 때에 나의 어머니를 도웁던 것을 기억하면 웬만한 음식을 만들 줄 알면서도, 간단한 국(찌개) 하나로 때우면서 이것을 소개하겠다.  나의 '양념'이란 것은 주 육류 음식 재료 외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즉석으로 쓸 수 있는 양념으로는 빈 짜먹은 꿀병에 일본 된장(흰것과 조금 진한 것을 섞음)을 꾸겨 넣은 후에 물을 부어 흔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을 물 된장이라고 한다면 물꼬추장도 만들어 놓는다.  깐 마늘을 큰 봉지로 사서 끝이 넓직한 찝게로 부셔서 큰 비닐 봉지에 얇게 넣어 후리저에 얼려 놓는다. 또 다른 익혀 먹는 양념은 생선과 같은 비린내를 내는 것인데 나는 절단된 꽃게를 다량으로 구입하여 넓직한 찝게로 살을 짜내어 역시 얼린후 부셔서 조금씩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고추장보다 흰 된장을 거의 항상 사용한다.  나는 감기를 다른 방법으로 예방하기에 김치나 고추장이 거의 필요없다. 기름이 골고루 들어간 부드러운 소고기는 익혀도 비림기가 있으므로 소금과 파외에 생선 같은 것을 조금 넣어 비린내를 상쇄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고기를 덜 사용할 수록 물과 채소를 더 넣어야 하고 소금 외에 마늘과 국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이 필요 함은 말 할 것도 없다. 마늘을 많이 넣을 수록 된장이나 고추장을 더 넣어야 한다. 익혀진 마늘도 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찌게처럼 짜게 먹지 않으려면 마늘을 덜 넣어야 한다. 그리고 시원한 국을 원할 수록 물보다 주륙과 다른 계육수 같은 것을 넣으면 더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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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집을 방문하고 그린 그림

작은 부엌과 거실을 연결하여주는 그림

고래의 해뜸 물놀이

16인치 가로 20인치 아크릴릭 "고래의 해뜸 물놀이"  작은 나무가지 막대기와 손고락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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