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00주년 3.8 여성의 날 후기

100주년 3.8 여성의 날 후기
 


어제는 3.8 여성의 날.

2년 만에 참석하는 만큼 부푼기대를 안고 일찍 일어나

3.8 여성의 날을 맞이할 태세(?)를 갖추고 집회 장소로 향했다.

 


 

첫 행사인 세종문화회관 앞 서울지역 여성노동자 한마당은 400여명의 대오로 진행되었다. 사회진보연대가 주축으로 행사를 준비했는데 예년에 비해 이런 집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했다. 조직된 여성 노동자들의 발언은 세상의 그 어떤 발언보다 적나라했고 구체적이었으며 설득력이 있었다. 벌써 3번째 3.8 여성의 날을 거리에서 보내고 있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노동자 운동만큼 값지고 자랑스럽고 즐거운 일이 없다며 올 해 1만을 조직하겠다는 서울대간병인노조의 여성 노동자의 발언은 심금을 울렸다. 따스한 봄 햇살은 그녀들의 발언이 주는 감동처럼 따스했다. 

 

 위험했던 장면이 한 번 있었는데, 우측의 엠프가 갑자기 뒤로 넘어갔던 일이다. 엠프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친구가 여성의 날 하마터면 열사(?)가 될 뻔했다. 다행히 운이 정말 좋았다.(앞으로는 무겁고 쓰러질만한 것 근처에 앉지 말고 조심하삼!!)

 


 

 그 다음으로 간 곳은 민주노총이 주최한 시청 앞 여성의 날 행사였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별로'였다. 무대 뒤에 걸린 걸개의 문구부터 초를 쳤다. 그렇게 역설했건만 아직도 민주노총에게 여성의 날은 '축제'로 인식되는 날인가보다. 진정한 여성의 권리를 밝혀내기 위해서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현장에서 장기투쟁을 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과 (주최측의 표현대로)지역구 돌파를 결의한 민주노동당의 여성 후보들을 2열로 세우고 발언을 들었던 순서다. 장기투쟁 사업장 여성 노동자들이 앞에 서고 여성 후보들이 뒷 줄에 섰다. 발언도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먼저 하고 이후에 여성 후보들이 했다. 서있는 곳의 배치와 발언의 순서는 장기투쟁 사업장 여성 노동자들의 절절한 이야기들이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정책대안을 이야기하는 여성 후보들에게로 수렴되는 '몹쓸 구도'를 만들어냈다. 역사적으로 이미 실패한 당-노조 양날개론의 악몽이 100주년 3.8 여성의 날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순간이었다.

 

 한 가지 감정이 상했던 부분은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성차별 철폐에 공헌했다며 민주노총 위원장 명의의 표창을 수여하는 순서였다. 들불처럼 피어오르던 이랜드-뉴코아 여성 노동자들에게 말로만 이랜드 투쟁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실제로는 그녀들에게서 민주노총을 앗아간 장본인이 무슨 자격으로 성차별 철폐에 공헌한 표창을 감히 여성 노동자들에게 수여하겠다는 건가? 민주노총 스스로에 대한 혁신적인 자기 비판을 찾아볼 수 없는 아쉬운 '축제'의 자리였다.

(글을 쓰면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외부자적 비판이 아닌, 자기비판에서부터 시작하는 내부자적 비판임을 염두해두길!)

 

 (그래도 이 사회의 정통 민주노조의 계보를 잇고 있는 민주노총의 대표인데 자꾸 남 탓하는듯 욕해서 뭐하긴 하지만)한 가지 우스꽝스러웠던 모습은 사진의 망토를 모자까지 걸치고 발언을 했던 이석행 위원장의 모습이었다. 여기 저기서 여성들은 '변태'라고 귀여운(?) 위원장을 비웃기도 했었다. 그렇게 반쪽짜리 '축제'를 마치고 진짜 투쟁의 현장으로 향했다.

 

 

 정말 오래 간만에 찾은 상암 홈에버였다. 일찍 와서 김성만 동지의 음향 설치를 도와드리면서 '존재의 의미(?)'를 27세, 28세의 '젊은이'들과 함께 느꼈다. 앞으로 운동 판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도 잘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영 어색하다. 뭐 하여튼 여연이 주최하는 공연 장소에 가지 않고 기층의 여성들이 투쟁하는 현장으로 왔다.

 

 벌써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거쳐 봄을 맞이했다. 그 긴 시간 만큼이나 사건, 사고도 많이 있었고 여성 노동자들의 절절한 사연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 중에서 여성 노동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은 발언과 김경욱 위원장의 총선 비례대표 발언에 가슴이 메이고 심각한 고민이 들었다.

 

 먼서 여성 조합원의 발언. 이 분은 5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데 유치원에 발표회 같은 것이 있어서 바쁜 일정에도 잠시 들렀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는 가야 하는 엄마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가려면 같이 가자고 놓아주지 않았다. 집회 일정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아이를 떼어놓고 가야 했기에 떨어지지 않는 아이에게 엄마는 거짓말을 했다. 저기있는 너의 가방을 가지고 오라고. 그럼 함께 가겠다고. 아이는 가방을 가지러 유치원으로 다시 들어갔고, 그 순간 이 분은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지하철 한 정거장이 되지 않는 거리를 뛰면서 참 많이 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역에서 동지들을 만나고 더 많이 우셨다고 한다.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감히 상상조차 힘들다.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의 행동이 가슴은 아프지만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동지들과 투쟁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 분은 이랜드-뉴코아 노동조합 뿐만 아니라 연대단위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여성에게 주어지는 육아의 굴레를 자식을 몸에서 찢어내는 고통 속에서 버티며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의 질책은 나를 아프게 때렸다. 닭장차에 입구를 봉쇄당해 동지들, 가족 친지들과 애절하게 안부를 주고받던 상암 홈에버 2층 창문을 보면서 느슨했던, 이기적이었던, 자조적이었던 나를 반성했다. 하지만 이런 반성은 충분치 않을 것이 확실하다.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의 절절한 사연이 어디 그 뿐이랴!

 

 또 한 가지인 김경욱 위원장의 발언. 3.8 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이랜드일반노조의 위원장은 앞에 나와 현재 이랜드일반노조의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현안에 대한 심정을 토로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를 못 믿게 된지는 오래 전이고 그 동안 이만큼 판을 벌이는데 큰 역할을 해왔던 연대단위의 힘마져 떨어져 가는 상황,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해결될 수 있다고 열과 성을 다해 설득해도 생활고에 못 이겨 눈물을 머금고 복귀해도 노조탈퇴는 절대 안 하겠다며 사업장으로 돌아가는 동지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벼랑 끝 상황. 이랜드-뉴코아노조에게 들어온 총선비례 대표의 출마 제안은 김경욱 위원장의 말 대로 물에 빠져 지푸라기를 바라보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사안은 정말 심각했다. 남한 비정규직 투쟁의 표상을 가지고 있는 이랜드 투쟁이 정말 큰 기로에 선 것이다. 이 투쟁의 결말은 분명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후과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노동자 운동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큰 사안일 것 같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실적인 부분과 원칙적인 부분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나마 희망적이었던 것은 지금까지 이어져온 안좋은 관습인 노조의 폐쇄성을 버린 것이다. 연대단위들에게 이번 사안에 대해서 전망을 제시해 달라고, 임시총회에 와서 이야기 해달라고 호소하는 김경욱 위원장의 발언에서 각 단위 간 수평적인 연대와 개방성의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과 의문을 머리에 가득 담은 채 이랜드-뉴코아노조에서 준비해주신 라면(새우탕)을 먹고 집회는 끝이 났다.

 

 뒷풀이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간단한 토론을 진행한 결과 입장은 이렇다. 우선 오늘 있었던 3시 임시 총회에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다함께나 미래연대 같은 트로츠키 그룹은 출마 반대 유인물을 돌릴 예정이란다. 괜한 소란으로 연대단위에 대한 반감만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떤 결정이 나든 앞으로 이 투쟁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한 결의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입수한 정보로는 진보신당의 비례대표로 출마가 통과되었다. 이 출마가 그 동안 역사적으로 오류가 검증된 당-노조 양날개론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투쟁하는 총선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건 정말 사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3월 8일 11시에 시작한 여성의 날은 3월 9일 새벽 3시에 막을 내렸다. 오래 간만에 전일정을 사수하고, 집회에 참가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뒷풀이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