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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산업은행 앞 집회

 

 

GM CEO 프리츠 핸더슨이 지엠대우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산업은행을 방문했다.

노동자의 피와 땀을 환투기로 빼돌린 GM과 그것을 묵인하고 이제와서 난리법석인 산업은행에 대한 규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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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엘론 머스크

[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엘론 머스크

  • 박상원 자동차 칼럼니스트
  • 입력 : 2009.10.15 16:12

매연 없고 가속 뛰어난 '로드스터' 개발
테슬라, 전기차로 제2의 GM 꿈꾼다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백악관 비서실장의 동생이자 할리우드 에이전트인 아리 임마뉴엘의 공통점은? 미국 신생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Teslar motors)의 로드스터(Roadster) 소유주라는 점이다. GM 부회장인 밥 루츠(Bob Lutz)조차 테슬라의 로드스터를 보고 자신의 연구진에 전기차인 볼트(Volt) 개발을 지시하게 할 만큼 성공을 거두고 있는 테슬라 뒤에는 회사를 '제2의 GM'으로 키우려는 엘론 머스크(Elon Musk·사진)가 있다.

1971년 남아공 출신으로 17살에 홀로 미국으로 이민 온 머스크는 고학 후 아이비 리그인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을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다. 일찍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두각을 나타내 12살에 블라스터라는 자신의 게임을 판매한 적도 있다. 1995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공학박사 과정을 이틀 만에 포기하고 실리콘 밸리에 뛰어든다. 1999년 컴팩(Compaq)과 2002년 이베이(ebay)에 자기 회사인 집투(Zip2)와 페이팔(Paypal)을 매각, 자신의 자산을 1억9000만달러(약 2400억원)까지 불렸다. 이후 그는 IT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의 뒤를 이어 전기차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 2004년 이후 테슬라를 이끌어 오고 있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운영하면서 전기차산업에 유리해진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테슬라의 전원은 6831개의 리튬이온 배터리. 전기모터로 구동되는 로드스터는 차체를 스포츠카 전문 메이커 로터스(Lotus), 트랜스미션(변속기)은 보그워너(Borg Warner)로부터 공급받는 등 부품과 제조를 아웃소싱(외주)으로 해결했다. 배터리팩을 비롯한 각종 전기 부품들은 매년 원가가 떨어져 창업 6년째인 2009년 6월에는 대당 마진 30%를 달성,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하게 됐다. 매연이 전혀 없는 로드스터는 성능도 뛰어나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7초 만에 도달한다.
테슬라의 전기차 '로드스터'.
테슬라는 한때 경영진끼리의 불협화음에다 파산 루머까지 나도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2009년 초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에서 4억7000만달러(약 5600억원)의 기술자금을 지원받아 재정 상태가 호전됐다. 다만 테슬라 로드스터의 성공을 통해 전기차 대중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GM 등 기존의 자동차 대기업과 피스커(Fisker)라는 전기차 경쟁 메이커로부터 거센 추격을 받고 있는 것이 불안요인이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성공이 전기차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동기가 됐다면 우선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라고 말한다. 10년 이내로 현재 판매량보다 1000배인 100만대의 전기차 판매를 꿈꾸는 머스크. 테슬라가 그의 말처럼 제2의 GM이 될지 무너진 하나의 도전자로 사라질지, 할리우드에서부터 디트로이트 3(GM·포드·크라이슬러), 워싱턴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테슬라와 머스크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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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페르디난트 피에히

[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페르디난트 피에히

  • 박상원 자동차 칼럼니스트
  • 입력 : 2009.09.17 16:15 / 수정 : 2009.09.17 16:16

폴크스바겐·포르쉐·람보르기니·아우디… 10개 브랜드 거느린 그… 세계 1위를 꿈꾼다

지난 7월 23일, 전 세계 언론은 포르쉐에서 17년간 근무했던 벤델린 비데킹 사장의 사퇴를 비중 있게 다뤘다. 비데킹 사장은 포르쉐를 만년 군소 스포츠카 메이커에서 업계에서 가장 수익률 높은 회사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었다.

비데킹이 몰락한 이유에는 폴크스바겐 그룹 이사회 의장인 페르디난트 피에히(Ferdinand Piech) 박사가 있었다. 비데킹은 포르쉐가 2005년부터 쌓아온 3조원 넘는 이익을 바탕으로 생산규모가 60배가 넘는 폴크스바겐을 인수하려 했지만, 결국 피에히 앞에 무너졌고 포르쉐는 폴크스바겐에 흡수됐다. 이로써 60년 넘는 두 회사 간의 인연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폴크스바겐, 가족, 그리고 돈' 순으로 인생의 우선순위를 꼽는 피에히는 193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였던 아버지 안톤 피에히는 당시 독일의 저명 엔지니어였던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의 법률자문을 맡다가 1928년 포르쉐 박사의 딸인 루이제와 결혼했다. 이 같은 집안 내력 덕분에 피에히는 일찍부터 자동차 마니아가 됐다. 1962년 취리히 연방공대를 졸업하고 포르쉐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천부적 엔지니어 소질을 바탕으로 미래 CEO감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1971년, 포르쉐의 주식을 절반씩 가진 포르쉐 가문과 피에히 가문이 경영권 다툼을 벌였고, 양쪽 모두 포르쉐 경영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 때문에 피에히는 1972년 아우디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아우디가 속한 폴크스바겐 그룹에서 36년에 걸친 화려한 경력을 시작한다. 그는 디젤 직분사엔진인 'TDI'와 4륜 구동시스템 '콰트로'를 성공적으로 개발, 개발담당 임원까지 오른다. 그러나 독선적 성격으로 상사와 갈등을 빚게 됐고, 이후 일본으로 이주해 혼다에서 근무하는 것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타고난 승부사였던 그는 1988년 아우디 최고경영자, 1993년에는 경영난에 빠진 모기업 폴크스바겐의 최고경영자까지 오른다. 피에히는 뛰어난 정치력으로 노조, 그리고 폴크스바겐의 대주주이기도 한 니더작센주를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제품, 제품 그리고 제품만이 살 길이다'라며 제품군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부가티, 람보르기니, 벤틀리 같은 고급 차 브랜드를 인수했다. 2002년 나이 제한에 걸려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이사회 의장을 맡았지만, 심복들을 그룹 내 요직에 심어 실권을 장악했다.

포르쉐 엔지니어 시절의 피에히(사진 오른쪽)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그룹이 되고자 했던 그에게 최대 위기는 친정인 포르쉐에서 나왔다. 포르쉐 CEO인 비데킹은 폴크스바겐과 SUV를 공동개발(이후 포르쉐에서는 카이엔, 폴크스바겐에서는 투아렉, 아우디에서는 Q7로 출시)하면서 폴크스바겐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당시 저평가돼 있던 폴크스바겐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최대주주 등극을 시도한다. 비데킹은 포르쉐 이사회 의장이자 피에히의 사촌인 볼프강 포르쉐의 지원 아래 2005년부터 폴크스바겐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 결국 2008년 말 33% 이상을 인수했다. 연산 10만대의 포르쉐가 연산 600만대의 폴크스바겐 그룹을 자회사로 편입하게 되는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궁지에 몰린 피에히에게 2008년의 경제위기는 '천우신조'였다. 포르쉐는 무리하게 빌려온 자금(총 12조원)이 경제위기로 회수당할 처지에 놓이자, 어쩔 수 없이 자본금이 많은 폴크스바겐에 도움을 청했고, 피에히는 궁지에 몰린 볼프강 포르쉐를 압박해 비데킹을 쫓아내는 동시에 포르쉐를 폴크스바겐 그룹의 10번째 브랜드로 편입한다. 그가 도요타를 제치고 폴크스바겐 그룹을 세계 1위 자리에 올려놓을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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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가타야마 유타카

[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가타야마 유타카

  • 자동차 칼럼니스트

입력 : 2009.08.28 03:01

닛산의 쇠락은 그가 해고되면서 시작됐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가타야마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작고 무능한 일본 닛산을 가차 없이 몰아붙여 결국 뛰어난 회사로 변모시켰다."

1980년대 말 MIT 신입생들의 필독서 중 하나였던 '심판(The Reckoning)'에서 저자 데이비드 핼버스탐(David Halberstam)이 닛산의 미국 진출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가타야마 유타카를 평한 대목이다. 가타야마가 미국 닛산 사장으로 취임했던 1960년대 미국 소비자들은 덩치가 큰 GM·포드 차량에 빠져 있었다. 경제적인 소형 일본차가 미국에서 호응을 얻을 가능성은 요원해 보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였던 일본차의 미국 진출을 성공시킨 사람이 바로 가타야마였다.

가타야마가 닛산 Z카 앞에 섰다. / 닛산의 초대 미국법인 사장으로‘Z카 신화’를 일궈낸 가타야마.
1909년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난 그는 1935년 게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닛산에 입사한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에서 처음 자동차 동호회를 조직했을 만큼 차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노조가 장악한 닛산의 사내 문화에 심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 노조원 선거에 나가라는 권유를 무시한 이후, 사내에 많은 적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마케팅 능력이 매우 탁월한 그는 사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인재였다. 그는 1958년 1만6000㎞를 달리는 호주 랠리경주 참가를 주도했는데, '기술도 없는 닛산이 이미지만 구기는 것은 아니냐'라는 사내 반대를 무릅쓰고 우승, 전후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살리면서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를 시기한 사내 정적(政敵)들은 그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맡겼는데, 바로 닛산의 미국 진출 임무를 책임질 미국 닛산 초대 사장직이었다. 가타야마는 그 도전을 즐겼다. 당시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독일 폴크스바겐의 경영을 벤치마킹하고, 고객과 딜러 요구사항을 정확히 파악해 이를 반영했다.

미국시장을 뚫기 위해 틈새시장을 노린 그는 일본 시장에만 치중하려는 본사와 수많은 논쟁 끝에 당시 BMW 1600을 벤치마킹한 510(일본명 블루버드)을 미국에 출시, 2년 만에 미국 내 판매를 3배로 늘리는 대성공을 거둔다.

가타야마에게 최고 영광의 순간은 세계적인 명차 중 하나로 평가받는 닛산 페어레이디(미국명 Datsun 240Z)의 개발과 출시였다.

그는 회사가 주저해 하던 고성능 스포츠카를 미국에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보수적 디자인을 강요하는 사내 분위기에 밀려 의기소침해 있던 수석 디자이너 마쓰오 요시히코에게 "싸고 경제적인 차만 만들어서는 해외시장에서 이기기 어려우니, 해외업체들이 우리를 주시할 만큼 놀랍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며 힘을 실어 줬다.

페어레이디는 일본 내수차를 개조해 수출하던 당시 관행을 깨고, 처음으로 해외용으로 따로 개발한 차량으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510과 240Z의 성공으로 닛산은 북미에서 선도적인 외국 자동차 회사로 우뚝 솟았지만, 가타야마는 그간의 놀라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1975년 사내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해고당한다. 이후 닛산의 혁신성은 빛을 잃어간다. 1983년 미국 자동차 전문지인 '카&드라이버'는 기사에서 "당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가타야마씨?"라고 쓰며 쇠락해 가는 닛산을 개탄했다.

가타야마는 1998년과 2008년 각각 미국·일본의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명예를 회복한다. 그러나 파벌과 현상유지에 집착하던 닛산은 이후 미국에서의 심각한 판매악화를 겪으면서, 1998년 프랑스 르노에게 매각되는 비극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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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존 드로리언

조선일보 기사지만 교양 차원에서 펌

 

[박상원의 자동차 인물열전] 존 드로리언

  • 박상원 자동차 칼럼니스트

혁신 없는 GM 몰락… 30년 전 그는 예견했다
 

2009년 6월 1일, 한때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였던 GM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다음 날 지역 일간지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의 칼럼니스트 탐 월시는 디트로이트 인근 트로이(Troy)시에 있는 한 묘지를 찾아 존 재커리 드로리언(John Zachary DeLorean)이라고 적힌 묘비 앞에 섰다. "존, 누군가가 당신에게 말해줘야 할 것 같아 왔소."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갑자기 빠른 속도로 말했다. "GM이 어제 파산 신청을 했소."

월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30여년 전, GM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드로리언이 이런 날이 올 것임을 누구보다도 먼저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1982년 10월 26일, LA 국제공항 인근 셰러턴 호텔 501호에서 한 남자가 약 2400만달러(약 312억원)어치 코카인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의 이름이 언론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GM의 최연소 브랜드 부문장과 총괄 부사장을 역임한 천재 자동차 엔지니어로, 유력한 사장 후보로 평가받다 갑자기 회사를 나온 인물. 1985년 영화 '백 투더 퓨처'에 선보였던 '드로리언 DMC-12'의 개발자 존 드로리언이었기 때문이다.

존 드로리언과 그가 GM에서 나간 뒤 개발한 자동차 '드로리언 DMC-12'.
영화 백투더퓨처의 드로리언.

그는 1925년 디트로이트에서 루마니아 이민자 아버지와 헝가리 이민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포드 노조간부로 일했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주 싸웠고, 드로리언이 17세 때 이혼했다. 가정환경은 불우했지만 학교에선 뛰어났다. 공학석사와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패커드 자동차회사에 취직한 뒤 그의 경력은 탄탄대로였다. 4년 만에 개발 책임자가 됐고, GM에 스카우트돼 폰티액(Pontiac)의 차석 엔지니어가 됐다. 수많은 특허를 출원했고, 36세에 수석 엔지니어가 됐다. 미국인들이 그를 기억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미국의 첫 머슬카(muscle car·출력을 중시하는 근육질 스포츠카)인 폰티액 GTO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이미지였던 폰티액 브랜드는 이후 돈 있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여 성공했다.

드로리언은 폰티액 총괄 책임자가 된 이후에도 실력을 발휘했다. 파이어버드·그랑프리 등 성공작을 내놓았고, GM 브랜드 중 가장 큰 시보레(Chevrolet) 부문장으로 영전한 뒤에도 히트작을 쏟아냈다. 이후엔 GM 그룹의 자동차·트럭 생산총괄 부사장까지 올랐다. 사장도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1973년 48세 나이로 "사회적인 일에 더 신경 쓰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GM을 떠난다.

1979년 그는 비즈니스위크 전직 기자와 함께 자서전 '맑은 날에는 GM의 본사를 볼 수 있다(On a Clear Day You Can See General Motors)'를 출간, 그가 20년간 경험했던 GM의 무능한 관료체제를 신랄히 비판했다. "GM의 경직된 시스템이 독창력을 질식시킨다" "이대로는 혁신이 불가능하다" "GM은 오랫동안 누구보다 차를 많이 팔아 어느 자동차 회사보다도 돈을 많이 벌었지만, 자기들 길만 옳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며 GM 파산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기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GM에 밉보였기 때문인지, GM에서 나온 이후 그의 진로는 순탄치 못했다. 1975년 자신이 세운 자동차 회사 DMC(Delorean Motor Company)가 개발한 'DMC-12'라는 스테인리스 스틸 차체로 된 2도어 스포츠카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크게 호평받았지만, 1981~1982년 심각한 판매난에 빠졌다. 그는 회생 자금을 급히 구하는 과정에서 FBI의 마약 함정수사에 빠지게 됐고, 그는 이것이 GM을 비판한 데에 따른 보복이라고 믿게 됐다. 이후 연방법원에서는 함정수사의 불법성을 들어 그에게 무죄선고를 내렸지만, 결국 그는 DMC 투자가들의 투자금 반환 소송 때문에 1999년 개인파산을 했다. 노년에 재기를 꾀했지만, 2005년 80세 나이로 굵고 화려한 인생을 마쳤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성서 구절처럼 드로리언의 GM 파산 예견은 그의 사망 4년 뒤 현실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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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손실의 세계화 전략에 맞서는 노동자 운동의 대응

2009.04.17 | 제 428 호
GM 손실의 세계화 전략에 맞서는 노동자 운동의 대응
지엠대우 구조조정 전망과 노동자의 대응 방향
정책위원회
GM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추가 지원 보류: 대규모 구조조정의 서곡

3월 29일 오바마 정부는 GM과 크라이슬러의 216억 달러 추가 지원 요청을 보류했다. 2008년 결산 결과 300억 달러와 80억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한 두 자동차 회사가 주가 폭락, 채무상환 연장 실패로 더 이상 자본 조달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양사는 174 억 달러(약 22조 6천억 원)를 지원받았지만 현금 보유량이 바닥난 상황에서 이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AIG, 시티은행 등에 수천억 달러를 지원한 오바마 정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구제 금융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고려해 정부 지원에 대한 단서 조항을 달았다. GM에 대해서는 더욱 큰 비용 절감 대책을, 크라이슬러에 대해서는 피아트사와의 M&A 방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정부 요구에 부응하지 않은 GM 회장 릭 웨고너를 사임시킴으로서 경영진 및 주주들에게 특단의 결단을 할 것을 간접 주문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GM의 미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파산보호신청을 통해 GM을 회생할 수 있는 부분과 청산할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GM 중 수익성 있는 사업만을 분리해 별도 법인을 만들어 각종 채무 관계에서 자유롭게 만들고, 기존 GM은 채권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청산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상환을 요구하는 280억 달러 규모의 채권자들이 자신들의 채권을 자본으로 전환하는 부채-주식 스왑을 체결하고, 정부가 추가 지원을 하여 현재 GM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파산보호신청을 할 경우 오바마 정부는 UAW(전미자동차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단체와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있다. 또 GM을 비롯한 납품 업체의 대규모 해고로 인한 퇴직 연금도 중요한 문제다. 부채-주식 스왑의 경우 GM의 중장기적 수익성이 관건이다.

어떠한 경우든 GM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파산보호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 사업 중 시보레, 캐딜락, 지엠시, 뷰익 등 일부 브랜드만 유지한다는 것이 GM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현재 GM은 상기 브랜드 외에도 사브, 험머, 오펠, 폰티악, 세턴, 홀덴, 지엠대우 등 12개 이상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GM 구조조정의 쟁점: 국제적 노동자 해고와 채무

GM 구조조정 시 당면하는 명시적 문제 중 하나는 해고로 인한 국제적 고용불안이다. 2008년 말 GM은 미국에서 약 9만 6천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약 25만 2천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한국의 지엠대우에는 비정규직 포함 1만 8천여 명). 그리고 이보다 10배에 가까운 노동자가 자동차 판매점, 부품사 등에 간접적으로 고용되어 있다.

GM은 이미 미국 정부에 대한 추가구제금융 요청 이전부터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각국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태국 공장의 경우 1천여 명의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1억 4천만 달러를, 캐나다 공장에서는 전 직원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48억 달러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3만 5천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33억 유로를, 8천 5백 명을 고용하고 있는 스웨덴에서는 5억 7천만 달러를 요청했다.

추가구제금융 요청 이전에 나온 2008년 12월 자체 구조조정안에서 GM은 2012년까지 자국 내 노동자 수를 7만 5천 명 수준으로 감축(2만 1천 명 감원)하고, 해외공장에서도 약 1만여 명을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두 달 후 나온 추가구제금융 요청을 위한 자체 구조조정안에서는 이전보다 커진 감원 계획을 제시했는데, 미국 내에서는 2012년까지 실행하기로 한 감원 계획을 2009년까지 완료하는 것을, 해외에서는 2만 6천 명을 2010년까지 감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보다 큰 비용 절감을 조건으로 정부가 추가구제금융안을 보류한 만큼 GM은 더욱 강도 높은 인원 감축 및 사업 정리 계획을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매각 혹은 청산할 브랜드 중 하나인 오펠을 생산하고 있는 독일의 노동자들, 사브를 생산하고 있는 스웨덴 노동자들, GM의 납품 생산 공장을 여럿 가지고 있는 멕시코, 베네주엘라, 칠레, 타이, 인도 등의 남미와 아시아 노동자들이 해고 위험에 직면해있다. 미국 자동차 노조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오바마 정부는 추가구제금융을 지원 하며 국내 고용 비율을 높이라고 요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해외 공장들의 고용 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GM이 파산보호를 결정할 경우 대규모 해고와 더불어 GM 위기 과정에서 급격하게 늘어난 GM의 계열사들에 대한 채무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 GM은 계열사들에게 220억 달러(약 29조 원) 규모의 매입채무(물품을 납품 받고 지불하지 않은 대금)를 가지고 있다. 지엠대우의 경우도 현재 GM 계열사들에 약 2조 2천억 원의 매출채권을 가지고 있다. GM이 파산보호 상태로 들어서며 이들 채무를 청산 대상 회사로 모두 이전할 경우 지엠대우를 비롯한 채권자들 대부분이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어려운 조건에 있는 해외 공장들의 재무 상태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공장 유지를 위해서는 해당 정부들이 GM의 빚을 국민 세금으로 대신 갚아주어야 할 것이다.


GM의 구조조정과 지엠대우: 시장 기반의 계열사와 생산 기반의 계열사의 양극화

그렇다면 GM의 구조조정으로 지엠대우는 어떠한 영향을 받을까? 국내 언론들은 GM 내에서 지엠대우가 매우 뛰어난 수익을 올렸다는 점을 근거로 에서 지엠대우가 새로운 GM의 계열사로 귀속되거나 혹은 최소한 청산대상에서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실재 경제 위기가 심화되기 이전인 2008년 초에 작성된 GM의 2007년 사업보고서는 지엠대우를 중국의 상하이GM과 함께 아시아 태평양 시장의 핵심으로 평가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소형차를 생산하고 있는 지엠대우와 중국 시장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는 상하이 GM에 대해 해외 법인 중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사실 국내 언론들의 보도처럼 지엠대우가 GM 구조조정의 사정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이후 상황은 180도 변화했다. 세계 자동차 시장 침체와 에너지 효율적 차종으로 제품 품목을 변화하려는 GM의 글로벌 생산 전략 변화로 인해 지엠대우의 위치가 매우 위태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엠대우는 현재 생산량의 90% 가까이를 GM계열사에 수출하고 있는데, 이 중 시보레 브랜드로 약 40%를, 그리고 GM 및 기타 브랜드로 나머지를 수출하고 있다. 또한 전체 수출의 약 30% 정도는 완제품이 아닌 KD(부품 또는 반제품)로 GM 계열사에 수출하고 있다. 한국 내수 비중이 거의 없는 지엠대우는 GM의 세계 네트워크에서 ‘시장’으로서의 의미보다는 GM이 지금까지 갖추고 있지 않은 소형차 제조 라인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그런데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급증하던 2007년과 달리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은 끝을 알 수 없는 침체에 빠졌다. 미국 판매량은 2월 현재 전년 동월 대비 41%가 감소했으며, 유럽 판매량은 18%가 감소했다. 그리고 3월에도 미국 자동차 판매는 36% 하락하였다. 지엠대우가 GM 내 중요한 생산 공장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한 2000년대 초중반(2000-2007)은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매년 276만대 씩 늘어나던 시기로 1990년대 중후반(1995-2000)에 비해 연 판매량이 평균 55% 가까이 상승한 유래 없는 호황 시기였다. 다시 말하면 자동차 시장이 크게 성장하던 상황에서의 지엠대우 지위와 침체의 기간도 폭도 전망하기 힘든 현재의 지위가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시장 침체 조건 속에서 GM의 글로벌 계열사들이 지위는 철저하게 ‘지역 시장’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시장의 상하이GM, 북미시장의 GMCL, 유럽 시장의 GM Europe 등이 시장을 기반으로 한 계열사들이며, 판매량 등락과 상관없이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공장들이다. 나머지 공장들의 경우 이들 지역에 납품하는 생산공장 성격이 강한만큼 언제든지 매각 또는 청산이 가능하다.

또한 GM의 고효율 차량 중심의 사업 재편 역시 지엠대우에 매우 불리한 조건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GM은 작년 말부터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등의 고효율 자동차 중심으로 제품 개발 및 판매에 나설 것임을 누차 강조해 왔는데, 이들 제품의 개발과 생산은 우선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암묵적으로 이야기해왔다. 오바마 정부의 보호무역 경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에너지 효율적 제품으로 소형차를 생산해 왔던 지엠대우 생산라인의 세계 생산 공장에서의 지위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8년 지엠대우의 손실: 미국 경영진들의 대규모 자본 유출

위와 같은 생산 공장의 지위 하락은 미국 경영진들이 지엠대우를 사실상 빈사상태로 만들고 있는 대규모 자본 유출 움직임을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지엠대우는 2008년 8천 7백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막대한 손실의 원인이 매출 감소가 아니라 파생상품거래였다. 지엠대우의 미국 경영진들은 타 자동차 업계와 금융 시장업계에서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파생상품거래를 통해 약 2조 원의 손실을 만들었다. 상장 기업이 아니라 자세한 내역은 공개되지 않지만, 2008년 감사보고서(재무제표)를 통해서도 미국 경영진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수출 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거래 은행과 미래의 환율을 정해 달러 및 원화를 교환하는 통화선도 혹은 통화스왑계약을 한다. 예를 들면 계약 당시 1달러 1,000원으로 100달러(10만원)를 수출했는데, 한 달 후 수출대금을 받을 당시 1달러 900원이 되면 100달러를 받아도 90만원이 되어 10만원을 손해 보게 된다. 이러한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은행과 한 달 후에 1달러를 1,000원에 교환하는 계약이 일종의 파생상품거래다. 그런데 은행 역시 환율을 예상하고 상품을 설계하기 때문에 투기적 목적이 아니라면 일방적으로 은행이나 수출기업이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다.

그런데 지엠대우의 경우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지엠대우는 2008년 이전에 체결한 것으로 보이는 파생상품처분으로 8천 3백억 원을 손해 본 것은 물론, 2008년 이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평가액 기준(즉 아직 손실이 실현되지는 않았으나, 미래에 실현될 것으로 추정되는 액수 기준) 1조 1천억 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2008년의 처분 손실은 백번 양보하여 2008년 경제가 이렇게까지 추락할 지 예측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경제 위기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2008년에 환율 하락 포지션을 취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경영진이 손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 세계 20여 개국에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GM이 환율 변동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지엠대우의 경영진의 목표는 지엠대우의 자산을 GM으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2008년 수많은 중소기업을 울렸던 키코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엠대우가 파생상품을 거래한 은행에 GM 역시 파생상품을 계약하는데 지엠대우와 반대 포지션, 즉 환율 상승에 이득을 얻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주 합법적인 금융거래로, 표시나지 않게 지엠대우가 잃은 돈만큼을 GM이 취하게 된다.

파생상품거래로 인한 손해만이 아니라 지엠대우가 GM 계열사들과 거래한 매출채권(수출하고 받지 못한 대금) 역시 일종의 간접적 자본유출이다. 지엠대우는 전체 수출 대부분을 GM 계열사들에게 하고 있는데, 다른 자동차 업체에 비해 매출채권 비중이 매우 높다. 일종의 특혜성 거래로, 2008년 이 규모가 2조 2천억 원에 이른다. 이 금액은 2007년과 비교하여 거의 줄지 않았는데, 매출감소와 세계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의도적으로 GM에게서 채권을 회수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2008년 거래된 매출 채권 상당수가 장기 채권일 것이라는 뉴스 보도도 있다.


노동조합의 대응: 양보교섭이 아니라 공세적 대응이 필요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지엠대우는 글로벌 GM에서의 위치 하락과 지엠대우 미국 경영진들의 자본유출로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위기로 인한 GM의 지엠대우에 대한 구조조정 시나리오는 아래와 같이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태국이나 스웨덴과 같이 정부의 지원 여부에 따라 청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2009년 2월에 발표한 GM의 자체 구조조정안을 보면 GM은 태국, 스웨덴, 독일에 대해서 정부 지원 여부에 따라 공장 유지를 선택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심지어 공장 유지를 결정한 호주의 경우도 호주 정부의 지원을 이유로 들고 있다. 현재 지엠대우는 이미 2008년 하반기에 8천억 원을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하였는데, 기존 대출금의 만기 연장 및 1조원 이상의 추가 지원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설사 정부가 지엠대우에 대해 지원을 하더라고 GM이 지엠대우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둘째, GM이 세계 생산공장으로서의 지위가 낮아진 지엠대우를 분할 매각할 수도 있다. 벌써 미국 최대 부품 업체인 델파이를 비롯하여 자동차 업체 지분 획득에 들어간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그 첫 번째 대상이 될 것이다. 지엠대우의 소형차 생산 공장(부평 일부)과 변속기 생산 공장(창원)이 매각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노동자 입장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고용 불안을 가져올 것임은 자명하다. 정부 지원 이후 단기간의 고용 유지는 이루어지겠지만, 결국 지엠대우 자산 수탈에만 열을 올리는 GM 경영진에 의해 지엠대우는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을 것이며, 최종적으로 대규모 해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엠대우를 분할 매각하는 경우 대규모 해고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현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첫째, 사측에 대한 양보교섭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금속노조 지엠대우자동차 지부정규직 전환배치 비정규직 순환휴직을 이미 사측과 합의한 상황이며, 기본급 10% 인하를 비롯하여 각종 복지 수당 삭감 등에 관해 사측과 협의 중에 있다. 경영 위기를 명분으로 노조에 임금 삭감 및 해고를 요구하는 사측에 일일이 응해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다. 이미 지엠대우 경영진이 GM을 위한 지엠대우의 수탈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엠대우의 위기가 정규직은 고용이 유지되고 비정규직은 해고되는 정도에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 지엠대우 살리기와 같은 캠페인은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엠대우가 매출이 약간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GM의 수탈량이 늘어날 뿐이다.

둘째, 초국적 자본에 의한 노동자 수탈을 막고 고용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최소조건으로 노동조합은 지엠대우와 GM의 수상한 거래에 대한 진상규명, GM의 한국 자산 동결, GM과의 부당한 거래에 대한 GM본사에 배상 요청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지엠대우가 앞으로 부족하게나마 영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파생금융상품 거래, 장기매출채권 등으로 유출된 자본을 다시 찾아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엠대우는 GM 계열사들이 62%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며, 산업은행이 28%,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10%를 소유하고 있다. 지엠대우는 2008년 말 자본이 1조 원이며, 부채가 7조 8천억 원이다. 부채비율이 780%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성장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GM은 이대로 지엠대우에서 손을 놓아도 전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반드시 2조원이 넘는 매출채권과 2조원 대의 파생상품거래 등에 대한 환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 추궁과 퇴진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셋째, 금속노조와 사회단체들은 고용안정 위한 정부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지엠대우는 현재 경영진의 자본 유출로 인해 현금 보유량이 1천억 원 이하로 떨어지는 등 기본적 운영 자금조차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엠대우의 파산은 2만여 직원의 고용만이 아니라 부평, 창원, 군산 등 지역 경제에도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 산정 기준을 차용한다면, 약 20만 명의 노동자가 직간접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또한 정부는 2001년 정부가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의 해외매각반대 요구를 묵살하고 GM에 대우자동차를 매각한 현재 사태의 원인 제공자다. 투자 유치(해외매각)를 통해 경제를 상승시키겠다고 약속한 정부가 현재 사태의 주범 중 하나라는 점에서 현 사태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공적자금 지원의 경험을 생각해 볼 때 정부는 언제나 대규모 해고를 동반하는 구조조정을 요구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법정관리상태에서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으로 2천 명이 넘는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강행하고 있는 쌍용자동차의 예를 보아도 그러하다. 따라서 금속노조와 사회단체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고용안정’을 전제로 한 지원을 약속받아야 한다. 이러한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투쟁이 필요함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 그리고 금속노조와 지역사회단체의 연대가 굳건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정규직이 잠시 동안의 고용을 약속받을 수는 있겠으나 현재 GM이 원하는 것은 1만 6천여 (정규직)노동자의 고용이 아니다. 지엠대우의 직고용 노동자에 대한 급여비용은 1,700억 원 수준이며,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비용은 200억 원도 되지 않는다. 총 노동자에 대한 비용을 GM 측에서 받지 못한 매출대금 2조 원과 비교하면 10%에 불과하다. 즉 GM 혹은 지엠대우 경영진에게 고용유지로 인한 비용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고용, 임금 위협은 GM의 지엠대우에 대한 매각절차이거나 고용을 무기로 한 정부에 대한 협박 성격이 더욱 강하다. 따라서 현재 임금삭감과 해고를 위한 사전 수순에 다름 아닌 전화배치를 요구받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삭감 반대, 전환배치 거부를 내걸고 당장 투쟁에 나서야 하며, 무급순환 휴직과 해고를 강요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 반대, 무급 휴직 거부를 내걸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 둘은 다른 투쟁이 아니라, GM과 지엠대우 경영진들의 노동자 수탈에 맞선 공동 투쟁임은 물론이다. 함께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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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대량해고 하는 GM대우 고용특대위 합의를 규탄한다!!

비정규직 대량해고 하는 GM대우 고용특대위 합의
-원하청 공동투쟁으로 총고용을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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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부 
고용특대위 합의서에 숨은 노동자를 향한 비수

지난 3월 20일 GM대우 노사는 2009년 고용안정특별위원회 합의서(이하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세계적 경제위기와 물량변동으로 인한 공장운영 및 중장기적 제조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 “직원들의 고용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호의적 문구로 포장된 합의서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노동자를 위협하고 있다.



합의서가 공개되자 GM대우 내외부에서는 ‘비정규직 8-900명 무급순환휴직, 정규직 전환배치 및 노동강도강화를 용인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GM대우자동차지부(이하 대자지부)는 이에 대해 “합의한 내용으로 인해 비정규직 고용에 영향이 있을 경우 조합과 지부가 책임있게 관장하여 고용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3월 24일 6차 금속투본 회의에서 ‘총고용 보장’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자지부와 사측은 구체적 합의와 집행을 개별 부서협의회로 넘기면서 대량해고의 책임을 피해갔다. 결국 비정규직 무급순환휴직, 정규직 전환배치, 노동강도강화는 4월 2일 현재 소수의 부서를 제외하고 대부분 합의가 도출된 상황이고, 대자지부가 공언한 ‘총고용 보장’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다른 한 축으로 3월 27일 경영설명회를 열어 2008년 1조원으로 시작한 현금보유량이 3월 현재 660억으로 급격히 줄어든 상황이기 때문에 ‘5월 현금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위협하는 등 구조조정의 명분을 강변하고 있다.



 
  고용특대위 합의서  
 
2009년 고용안정특별위원회


회사와 노동조합은 세계적 경제위기와 물량변동으로 인한 공장운영 및 중장기적 제조 경쟁력 제고를 위한 방안들을 상호 논의하고 다음과 같이 합의 한다.

-다 음-


1. 노사는 생산물량 감소에 따른 공장운영계획 변경(JPH 조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가. 각 공장은 변경 물량에 따라 라인운영 속도를 적절하게 변경한다.
나. 인력 전환배치와 관련하여서는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며, 공정 특성 및 변경 인원 등을 고려하여, 해당부서에서 성실하게 협의하고 원만하게 처리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다. 일부 공정은 현 운영방식을 유지함을 원칙으로 하며, 세부사항은 부서에서 논의한다.

2. 노사는 현 JPH 조정과 관련하여, 직원들의 고용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3. 노사는 제조 경쟁력 향상이 종업원들의 고용 및 근로조건 유지, 개선에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제조경쟁력 개선, 정착해 나아가기 위하여 상호 협조한다.

2009. 3. 20
 
 




고용형태와 작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노동자계급 전체를 공격하는 합의서

합의서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무급순환휴직은 비정규직 대량해고를 의미한다. 라인 운영속도 조정, 편성효율조정 등으로 창출되는 정규직 잉여인력이 전환배치 되고, 그 자리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배치, 휴업에 들어가는 비정규직에 대한 휴업 급여 및 고용 보장 등을 합의했지만. 일주일 만에 사측의 일방적 파기로 350명의 비정규직이 길거리로 쫓겨난 쌍용자동차의 사례는 GM대우 비정규직의 암울한 미래를 말해준다. 하지만 합의서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 해 비정규직 임금의 총액은 약 600억 정도인데 경영설명회에서 나온 GM대우 자금 규모에 비춰볼 때 몇 백 명 비정규직 무급순환휴직이 GM대우 위기의 근본적이 대책이 아님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이 언제 회복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저임금으로 ‘고용안전판’ 역할을 하던 비정규직을 잘라가고 있는 GM대우 구조조정의 칼날은 결국 누구를 향할 것인가. 나사못 박히듯 조립공정에서 도아라인공정으로 강제 전환배치 되는 정규직이 공장 ‘안’에서 공장 ‘밖’으로 전환배치 된 사례는 이미 2001년 뼈아픈 경험으로 증명된 바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합의서의 파장이 공장을 넘어 생산현장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GM대우에 납품하고 있는 인천지역 자품사 구조조정의 명분이 될 것이고, 간접적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죽이기를 통해 노동자에게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보수언론, 자본, 정권의 면죄부가 될 것이다. 뿐 만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투쟁의 선봉에 있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GM자본의 비열한 본질

2001년 김대중 정권은 ‘외자유치’를 빌미로 80년대 민주노조의 상징이었던 대우자동차노동조합을 온갖 협박과 공권력 행사로 기를 꺾어놓고 대우자동차를 헐값으로 GM에 매각했다. 또한 법인세와 소득세를 10년간 감면(7년간 100%, 3년간 50%)해주는 공짜 선물을 GM에 안겨줬다. 파격적인 혜택 속에 승승장구하던 GM대우는 경제위기가 덮쳐오자 비열한 본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현재 유동성 위기의 원인인 GM대우의 경영 실패(GM본사 유출 의혹)로 보유현금 1조원이 증발했지만 경영진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반면 정규직과 사무직에게 경제위기를 빌미로 10% 임금삭감과 복지후퇴를 강요하고 있다. 더군다나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던 비정규직은 생존권 박탈과 다름없는 ‘무급순환휴직’과 ‘정리해고’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사지로 내몰고 있다. 한국 노동자의 혈세(감면된 법인세, 소득세)로 호가호위하던 GM자본은 경제위기가 닥치자 노동자들에 대한 무한 착취와 수탈로 일관하고 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GM자본의 비열한 본질이 결정적인 시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고용특대위 합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단결을 통한 원․하청 공동투쟁만이 살 길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위기는 지금 대불황 초입에 서있다. 그리고 위기의 중심에 GM대우가 있다. 노동자들은 ‘이정도 양보하면 회사가 고용과 생존권을 보장해주겠지’라며 한 걸음씩 물러섰지만 이러한 수세적인 후퇴가 계속된다면 GM대우는 비정규직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노동자들에게 ‘목숨’을 요구할 것이다. 자본의 위기 전가를 분쇄하고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부평공장의 구심인 대자지부의 전면적 인식 전화가 필요하다. 대자지부는 자본의 독사과인 ‘GM대우 살리기’가 ‘노동자 살리기’를 억압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GM대우 자본의 비열한 본질을 폭로하여 침체된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또한 부평공장 노동자들의 단결에 ‘약한 고리’로 노출된 사무직, 비정규직을 포괄하여 원․하청 공동투쟁본부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대자지부는 고용특대위 합의 거부를, 사무직은 10%임금 삭감 반대를, 비정규직은 무급순환휴직 반대를 걸고 빈틈 없는 견고한 투쟁전선을 구축할 때 끝 모르는 GM대우 자본의 노동자 죽이기를 멈출 수 있다.

2009년04월02일 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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