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 2022/07/25 11:36

2022/07/25_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44쪽. 자존감이란 무엇인가 자존감에 대한 정의는 심리학자들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다수가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저마다 자존감을 다른 의미로 정의하고 사용한다. 이것은 자존감 연구 분야에서 제기되는 주요한 걸림돌 가운데 하나이다. 자존감의 개념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의견 차이나 논쟁을 모두 다루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날 것이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57쪽. 덴마크의 경우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직업의 귀천이 있었으나 직업 간 소득 격차를 줄이자 불과 한 세대 만에 직업의 귀천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을 언급하겠다.

69쪽. 청소년기의 자존감과 관련해서 꼭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청소년기에 도달하면 아이들은 사회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명확하게 알게 되는데,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자기의 암묵적인 신념과 과치관, 심리 상태를 기초로 일부 변형하여 수용 또는 거부하여 자기만의 가치 평가 기준을 확립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의 중고등학교는 경쟁교육, 입시 위주 교육이 지배하는 아수라장과 같다. 이것은 당연히 청소년들이 가치 평가 기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자존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73쪽. 결국 십대들은 자기의 결단과 노력으로 심리 치료를 받거나 자기 분석 등을 통해 자준감의 기초를 복원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77쪽. 우리는 청년기에 정립한 인생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속 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인생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며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런데 청년기에 건강한 인생목표를 정립하지 못하면 자존감이 손상될 가능성도 커진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 없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에 취직해서 돈 버느라 바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면? 결국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자신이 아닌 타인이 정한 기준을 따랐기 때문이다.

83쪽. 은퇴 이후의 중녀들이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 목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인들의 인생 목표는 죽는 순간에 맞춰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목표가 길게 잡아야 직장 생활 혹은 경제 활동을 마감하는 50대 정도까지만 유효하다. 따라서 직장에서 은퇴하거나 돈을 벌지 못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인생 목표를 상실한 상태에 놓인다. 이미 평균 수명이 80세 이상을 돌파한 고령 사회에서 인생 목표가 없는 상태로 수십 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끔찍한 일일 수밖에 없다. 중장년이라는 나이라도 인생 목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88쪽. 한국인들은 80년대를 지나면서 이웃과의 연대를 통한 사회 개혁이 아니라 철저한 각개약진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의 한국인들, 특히 노인들은 유사 이래 최고 수준으로 고독해져 있다. 한국 사회가 관계와 공동체의 복원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현재의 노인들보다 훨씬 더 끔찍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91쪽. 너새니얼 브랜든. 자존감이 가치와 능력의 두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기가치에 대한 믿음은 자기존중을 가져오고 자기능력에 대한 믿음인 자기 효능감은 자기 신뢰를 가져온다. 사람의 가치와 능력은 분리될 수 없으며, 서로 상호작용하여 자존감을 상승시킨다는 브랜든의 주장은 훗날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93쪽. 어렸을 때부터 반복적으로 성취를 경험했던 사람은 현재의 능력이 다소 부족한 경우에도 자신감이나 자기 효능감이 강한 편이다. 반면 현재 상당히 우수한 기술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과거에 성취 경험이 적은 경우, 자신감이나 자기 효능감이 부족할 수 있다. 상당수의 심리학자들이 어렸을 때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해본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117쪽. 병적인 인정 욕구는 착한 아이가 되려는 욕구, 권력욕이나 명예욕, 돈에 대한 욕망 등으로 다양하게 모습을 바꿔 나타날 수 있다.

116쪽.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나에게는 능력이 없다’는 신념, 쉽게 말해 ‘나에게는 힘이 없다’는 확신을 갖는다. 자신의 힘을 불신하는 사람은 스스로 삶이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런 상황을 아주 두려워한다. 그 결과 강한 의존욕구가 유발된다. 강한 힘에 적극적으로 의존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생존을 위해 누군가에게 의존하기 쉬운데, 대인불신이 심한 만큼 의존대상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123쪽. 미국의 주류 심리학에서는 자존감 낮은 이들의 자기 파괴 욕규와 불행을 자초하는 경향을 ‘자기 충적적 예언’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내가 나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믿으면 불행해지는 일만 골라서 하게 되어 실제로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136쪽. 사람이 수치감을 체험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도덕적이지 못할 때이다.

둘째, 학대를 경험할 때이다. 예를 들어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대부분이 수치심에 시달린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인데, 어째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사회가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고 사회적 제도와 관습이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으로 상대에게 성적 대상, 성적 놀이감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에 수용되지 못할 거라는 기분에 빠지게 하는 이유가 크다.

139쪽. 자기 혐오 “내가 맞을 짓을 해서 맞는 거야” ... 상대에게 분출하는 통로를 차단하면 분노는 스스로를 공격하게 된다. 그 결과 깡패가 아니라 계속 매를 맞고 있는 한심한 자기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피학대 심리가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경로이다.

141쪽.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얼굴이 빨개지면 울음을 터뜨리거나 언성을 높이기 전에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령 수치감이라고 판단되면,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에 대해 언어로 표현해보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부정적인 감정을 체험하는 원인을 파악하여 그것을 제거할 필요 역시 있다.

143쪽. 자존감 낮은 사람이 집착하는 것.

연애중독자의 사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연애는 친구 관계에 매달리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쪽에 일방적으로 맞춰주는 관계가 되기 쉽다. 이런 식의 연애가 지속되면 아픔과 상처만 남기고 매번 실패로 끝나며, 결국 더 절박해져서 또 다른 사람을 찾아 새로운 연애로 달려가게 된다. 하지만 상대가 바뀌어도 같은 패턴의 관계가 반복되다 보면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릴 수 있다.

145쪽. 또한 사랑받기라는 유아적 욕구에서 벗어나 사랑하기라는 성숙한 욕구를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관계 중독은 타인을 사랑하지는 못하면서 사랑받으려고만 하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심리 치료나 상담 등을 통해 사랑받기라는 유아적 욕구와 과감히 결별해야 비로소 관계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다. 한두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하고 매달리기보다 여러 사람들과 두루 관계를 맺고 건강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건강한 대인 관계를 경험할 필요도 있다. 이로써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147쪽.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남드한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킬까 봐 노심초사한다. 나들이 아무리 좋게 평가하고 반복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해도, 상대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 분명히 자기를 싫어하고 버릴 거라고 두려워한다. 또한 자기확신이 부족하고 실수를 매우 두려워한다. 때문에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항상 무언가를 감추려 하며 위장이나 포장을 하는 데 익숙해져있다.

153쪽. 자존감 낮은 사람이 소속된 모임이나 조직에는 분란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다. 악성 루머와 이간질의 명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직은 침체와 답보를 면할 수 없다.

179쪽. 윌리엄 제임스. 자존감의 본질과 관련한 세가지 중요사항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에 의존한다.

-자기 개념과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다른 사람들의 관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인정이든 비난이든 가치 판단에는 감정적 반응이 수반된다.

182쪽. 자존감을 논하면서 연대의 필요성을 말하면 일부 심리학자들은 거부감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 존중해주는 소속 집단의 존재는 잘못된 사회가 강요하는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선한 이웃과의 연대와 건강한 소속집단은 자존감의 수호자이자 중요한 원천이다.

185쪽.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지면 기본 욕구가 아니라 의존 욕구, 지배 욕구, 과시 욕구 같은 병적인 욕구를 실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무가치함, 무력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당사자가 의식하건 의삭히자 못하건,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겠다는 인생 목표는 과시 욕구의 실현이나 무가치감의 방어를 위해 설정된 병리적인 목표일 수 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행복할 가능성은 낮다. 자존감이 낮은 경우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185쪽. 건강한 인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살아간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기쁨과 만족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서울에 사는 누군가가 부산이 너무 좋아서 그곳에 가기를 바란다면, 그는 수원에 도착해서도 기쁘고, 대전에 도착해서도 기쁘며, 대구에 도착해서는 더더욱 기쁠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에 쫓기는 삶, 고통을 피하기 위한 삶을 산다면 기쁨과 만족을 맛볼 여유가 없다. 그는 서울이 무서워서 수원으로 달려가고, 수원에 도착해서도 무서워서 부산까지 달려갈 것이다. 끝없이 도망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언제가 되든 행복해질 수 없다.

187쪽. 인간의 삶의 방식이란 본질적으로 세계를 변혁하면서 사는 것이지, 단지 적응하는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세계를 변혁하려는 욕구와 능력을 상실한 인간은 진정한 인간의 조건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88쪽. 일시적으로는 어려움을 겪더라도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신뢰하며,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불신하며,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을 경우 어려움을 겪으면 크게 낙담하여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역경에 직면했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해주는 회복 탄력성이 약해지는 것이다.

189쪽. 건강한 자존심을 지닌 사람에게서 항상 ‘당당함’이 풍겨져 나오는 이유를 알겠는가. 올바른 인생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달려가고, 불의한 세상에 적응하기보다 바꿔보려 애쓰며, 시련과 난관에 부딪혀도 거침없이 질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멋지며, 이 과정에서 자존감은 계속 높아진다.

190쪽. 자기존중의 욕구란 풀어서 설명하면 사회적 가치가 높은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 사회 기여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사회적 쓸모가 있는 가치 있는 존재이고 사회 기여 활동을 하고 있는 존재라고 확신하게 되면,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되므로 자기 존중이 가능해진다.

192쪽.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을 비판하는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외지인은 애초부터 마을에 수용되고 사랑받을 뿐만 아니라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당장에는 마을에 들어가서 정착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수용에 집중할 뿐이다.

193쪽. 그런데 정신 건강이 양호하지 않다는 것은 어린 시절 살아받기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고,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며,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받기에 집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런 사람은 사랑의 욕구를 원만히 충족시키기가 힘들다. 타인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 결과 건강한 사회 집단에 소속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존중의 욕구가 전면화될 가능성이 낮다. 즉 사랑하기가 아닌 사랑받기에 몰두하느라 사회에 기여하려는 자기존중의 욕구에 눈을 돌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195쪽. 어떤 것이 기본적인 욕구인가 아니면 부차적인 욕구인가는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인가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욕구가 실현되지 않았을 때,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난다면 그 욕구는 기본적인 욕구일 가능성이 높다.

196쪽. 기본소득제의 바탕이 되는 철학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현 시점에서 사회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수용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들은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마땅한 존엄한 존재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존중해주면 자식의 자존감의 기초가 튼튼히 닦인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사회 구성원들을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존중해주면 모두의 자존감은 그 기초가 복구되거나 튼튼해질 것이다.

199쪽. 사회적 비교를 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비교는 세계를 인식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방법이다. 사람들은 여러 사물현상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각각의 본질과 특성을 더 정확히 파악하며, 사물 현상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연필을 다른 연필들과 비교해봐야 내가 사용하고 있는 연필의 특성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다. 즉 비교란 사람의 인식 과정에서 필수적인 수단이자 방법이다. 따라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억지로 비교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 오히려 인식 능력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는 것이다.

201쪽. 사회적 비교가 본의 아니게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잘못된 기준으로 사회적 비교를 한 결과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무시하고 학대하는 문화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그의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직업이나 돈 같은 잘못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곧 그 사회가 불의한 사회이자 병든 사회임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아주 낮은 평가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오히려 떵떵거리며 큰소리를 치는 본말전도, 가치역전의 사회라 할 수 있다.

205쪽. 또다른 이유는 실험 참가자들이 자기 혼자만 일탈자가 되는 것에 대해 커다란 심리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회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 사회 혹은 집단으로부터 고립되거나 버림받는 것을 아주 두려워한다. 또한 자기 존중의 욕구때문에 타인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거나 바보취급을 당하는 것도 싫어한다.

207쪽. 자존감을 정상화시키는 첫걸음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거듭 강조했듯이, 사람의 가치는 사회적 쓸모, 사회에 대한 기여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평가할 수 없다. 따라서 일단 자신을 올바른 사회적 가치로 평가할 수 있어야 자존감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210쪽. 자기가 원하는 이을 하면서 사는 것이 악행이나 어리석은 방황이 아닌 의미가 있는 삶, 행복한 삶이 되려면 최소한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다라서 젊은이들을 위한 올바른 조언은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부터 치열하게 탐구하라. 그 다음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하라”가 되어야 한다.

212쪽. 자기사랑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기존중 뿐만 아니라 타인 사랑과 존중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인간으로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 따라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와 똑같은 인간인 타인들, 나아가 인류도 사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나를 포함하는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 있지만, 인간 사랑의 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랑의 무능력자라는 것이다.... 그와 달리 자기사랑(자기애)을 이기주의와 혼동했던 프로이트같은 심리학자들은 자기사랑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프롬은 이런 견해를 비판하면서 자기사랑이 이기주의와 명백히 다른 것임을 밝혔다.

“이기심과 자기사랑(자기애)은 동일한 것이기는 커녕 사실상 정반대 되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

214쪽. 자기사랑을 방해하는 요인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죄의식 혹은 죄책감을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 부도덕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남들한테 제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자기를 사랑할 수 없고 존중할 수도 없다. 이런 사람은 잠자리가 편치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자기를 혐오하고 미워하게 되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기공격과 파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일부러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거나 알코올을 절제하지 않는 것,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215쪽. 어떤 이들은 ‘사람의 가치를 사회적 쓸모로 평가하자’는 생각을 신념화하기가 그렇게 어렵나고, 이런저런 공부를 해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해야만 그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현재의 한국상황을 고려하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어지간한 신념 없이는 사람을 부당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회의 잘못된 통념과 가치관에 맞서기가 대단히 힘들기 때문이다.

216쪽.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심리학적 처방이 자존감의 기초를 복구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 정작 자존감을 확립하거나 높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데 있다.

221쪽. 자존감을 논하면서 선한 이웃과의 연대나 건강한 소속 집단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 일부 심리학자들은 거부감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존감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존감은 오직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주장에 동의할 수 ㅇ벗다. 자존감 확립에는 반드시 타인들이 필요하다. 단지 무차별적인 다수의 타인들이 아니라 소수일지라도 건강한 타인들이 필요할 뿐이다. 자존감은 타인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나의 내면에서 조작되는 주관적 심리가 아니다. 객관적인 자기개념과 자기가치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 타인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내가 나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거울을 필요로 하듯이 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에는 타인이라는 거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자존감 확립과 향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건강한 타인들 혹은 사회 집단이다. 우리에게는 나를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존중해주며 건강한 신념과 가치관을 나와 공유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동료나 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고 그것을 더 높이기 위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또한 목표 달성에 필요한 능력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 속에서 성취를 경험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227쪽. 심리학자 윌리엄 데이먼은 “현실세계를 무시한 전형적인 자존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하여 아이들이 이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229쪽. 고대 로마 제국에서 검투 노예였던 스파르다쿠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의 동료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먼 곳으로 도망가서 자유롭게 살자고 권유했다. 스파르타쿠스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동료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노예 해방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불의한 세상에서 도망치면,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을 미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병적인 사회, 불의한 사회만큼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유린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나 하나만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고 있는 사회악을 타파하거나 개혁하기 위한 실천은 최상의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실천 최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듯이, 오늘날에는 병든 한국을 개혁하기 위한 실천이 최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실천에서 발을 빼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도록 만든다.

231쪽. 물론 나도 다른 심리학자들처럼 열심히 심리 치료를 하고 마음 수양을 하면 자존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설파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크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말은 가능한한 하지 말고, 듣기 좋은 위로의 말을 많이 해야 책이 잘 팔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과는 타협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무엇보다 내 자존감부터 손상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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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5 11:36 2022/07/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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