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러므로 당신들의 대안은?

누차 이야기하는 거지만, "닥치고 대동단결"이라는 구호는 이제 누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애초에 "민주대연합"론이라는 것이 "반MB연합"의 다른 말일 뿐이고, 궁극적으로는 전선확보라는 것에 목매다는 생존전략차원의 함의밖에는 없으며, 기필코 그 종국의 결과는 "미워도 다시 한 번" 내지는 "될 놈 밀어주자" 식의 "비판적 지지"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행인의 지론이었더랬다.

 

따라서 지금은 대 각개약진이 필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 각 집단은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색깔을 갖추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력갱생의 의지를 다듬어 전략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각오보다는, 당면전선에 대한 충성도 높은 복무자세를 갖춤으로써 "저놈이 미우니 이놈이라도"라는 알량한 관심을 받고자 노력한 것이 지금까지 소위 반 MB 운동진영의 한계였다.

 

자민당의 반세기 아성을 무너트리고 집권을 하게 된 일본 민주당에 대해 우려에 가까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아닌말로 민주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자민당이 싫어서라는, 그래서 대안이 가지고 있는 적실성의 확인보다는 대안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라는 회의적 기대를 통해 집권한 민주당이 과연 전후 일본체계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관료집단과의 진검승부라던가 당면한 경제위기상황을 효과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의문시되는 거다.

 

적어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한맺힌 절규가 선거운동의 중심구호가 되었던 한나라당의 지난 대선, 총선의 전략전술은, 자유주의 우파세력이 집권했던 기간에 만족하지 못했던 대중들로 하여금 돈이라도 벌 수 있게 해주려니 하는 얄팍한 기대를 갖도록 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문제는 이명박정권의 집권과정 및 한나라당의 압승에서 보여졌던 대중들의 선택형태가 이번 일본 총선에서도 비슷하게 보여졌다는 것.

 

그렇다면 반대로, 앞으로 3년 반이나 지난 후에 있을 대선에서 대중들은 또다시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싫으니 그 반대진영에 있던 집단에게 집권의 선물을 들려줄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딜레마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람들이 지금 정권이 싫으니 이넘들 말고 딴 넘이라면 아무나 오케이 한 덕분에 민주당 혹은 반 MB의 누군가가 대권을 차지한다고 한들, 거기엔 미래를 위한 대안의 선택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싫은 넘 중에 덜 싫은 넘 뽑아준다는 심리 이외에 남는 것이 없게 된다. 그렇지 않고, 이 정권이 개판을 치던 개념을 뽀개던 딴 넘이나 이넘이나 똑같다는 심정으로 계속 현 정권을 지지하게 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이제나 저제나 요모양 요꼴이 나게 된다.

 

즉, 대안이 제시되고 그 대안이 선택되는 내용과 형식을 갖추지 못하는 한, 한국 정치의 답보상태는 여전히 누가 자리에 앉고 또 누가 그 반대편에서 "반대투쟁"을 할 것이냐로 고착될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닥치고 대동단결"을 이야기할 시간에 과연 우리는 각개약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의 발흥 가운데 주고 받는 것이 생길 수 있어야만 대안의 공유와 연대가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거 없이, 상황논리에 치중해서 일단은 뭉쳐보자고 덤벼봐야 수류탄 한 방에 공멸일 뿐이다.

 

최근 이러한 취지와 거의 같은 수준에서 여러 사람들이 말문을 트고 있다. 물론 이 사람들이 예전엔 안 그랬다가 이제와서 갑자기 이 말들을 쏟아놓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시기상의 문제가 있어서인지 제법 묘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대박으로 터트린 사람은 최장집 교수. 최장집은 9월 1일 있었던 진보개혁입법연대 초청강연에서 민주대연합론은 "억압적 담론"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말이 이렇게 적실하게 조합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그 내공에서 나오는 힘이겠지만, 어쨌든 저 용어에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행인이 가지고 있었던 그동안의 생각을 간명하게 함축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장집은 DJ와 노무현 정권을 거친 대중이 왜 이명박에게 정권을 돌려줬는지부터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 더불어 이 요청은 성찰이 전제되지 않은 이명박반대투쟁이나 전직 대통령 추종은 정치체제의 왜곡만을 가져올 것임을 부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의 이대근 에디터는 어제 칼럼에서 민주대연합론을 "젖을 보채는 철부지의 울음"이라고 힐난한다. 동시에 이대근은 민주당이 전직계승이라는 80년대판 흑백필름을 돌리며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오늘자 프레시안에서는 하승창 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역시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들려준다. 즉 하승창은 '단일한 흐름'이 가지는 한계를 인정하고 연대와 통합의 틀을 새롭게 구상할 것을 넌즈시 제시한다. 돌려말하는 것은 단지 외부에 대한 언술일 뿐, 내부를 향한 직설적 언어로 전환하자면 하승창의 우려는 최장집이나 이대근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보다 관심을 두고 바라봐야할 것은 이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첫째, 전직(DJ, 노무현)의 계승이라는 것으로 자기 색깔을 노출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과 추종보다는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현 정권의 성격을 단정적으로 반민주나 파시즘이라는 형태로 규정할 수 없으며 최근들어 이명박 정권은 오히려 집권 1년차에서 보여줬던 어리버리함을 벗어나 본격적인 자기궤도를 밟고 있다는 것, 셋째, 민주대연합론 등 실질적인 "닥치고 대동단결"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명박 및 한나라당과 반대 진영에 서 있는 사람 혹은 집단은) 스스로 내세울 수 있는 대안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응이다. 특히 아직까지는 최장집의 발언에 대한 반응만 확인했는데, 아마도 최장집교수가 가지고 있는 비중때문인지 모르겠다. 최장집, 이대근, 하승창의 발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중에서도 특히 전직에 대한 비판과 전 정권에 대한 성찰이라는 측면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은 주로 '노빠'라 통칭되던 부류의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오마이뉴스의 김갑수. 아무리 읽어봐도 최장집이 짚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김갑수의 이상한 독해를 전부 들여다볼 필요는 없는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거다. 전직이 죽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뒷통수치기를 하느냐는 불만, 그리고 민주당을 비롯한 "민주세력"에 대한 비판은 하면서 왜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느냐는 항의.

 

이보다 더 직설적으로 최장집을 비난하는 케이스는 서프라이즈 논객하면서 인터넷 노빠 지존을 달리고 있는 마케터. 마케터는 아주 간략하게 최장집의 논리를 요약 정리하고 있는데, 최장집의 견해는 "김대중-노무현 계승하지 말라, 그리고 MB 비판하지 말라. 그 시간에 자기 성찰해라. 그럼 이긴다. 끝"이란다.


장차 이대근이나 하승창의 발언에 대한 비판도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든 지금까지 나오는 최장집에 대한 비판 혹은 비난은 기본적으로 이해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거나 혹은 전직에 대한 추앙에 겨워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거나 둘 중 하나인 듯 싶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가 특히 친노진영을 중심으로 서서히 확산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분위기는 얼마든지 더 넓게 퍼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최근 조사당과 함께 반일항쟁의 기치를 높이 내건 성명을 발표한 민노당 내 일부 세력들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세력들이 반발할 것이다. 왜냐하면 최장집 등의 이야기는 "닥치고 대동단결"의 논리에서 봤을 때 분명히 전선의 교란이고 이적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논란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행인의 입장에서는 이 세 사람의 말들이 전혀 낯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산재해 있는 여러 정치세력들이 내놓는 아이디어를 이들이 검토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아이디어들을 대안으로서 채용할 의향이 있는지 등에 대해선 지금까지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단느 것이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매우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경마장 관전평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는 이렇게 대중에 대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보다 구체적인 집단, 보다 구체적인 대안을 자신들의 입으로 선전해줄 필요가 있다. 훌륭한 이야기는 이제 많이 들어왔으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9/03 13:23 2009/09/03 13:23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hi/trackback/1234
  1. 백퍼센트 동의에요! 그러고보니. 최장집 선샘의 강연에서 무턱대고 mb가 독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라는 언술에 대해서, 최장집 선샘이 mb는 독재가 아냐! 니들 그렇게 말하면 안돼! 라고 "두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음... 그냥 진정성 차원에서 그렇게 생각하는거라고 받아 들여졌지만서도 @_@ 음... 차라리 저도 강연을 들으러 갈 걸 그랬어요 @_@;;

    • "지적수준"이 모자라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 그 모자란 "지적수준"이 일정하게 편향된 형태로 나타나더라구요. 노란물이 덜 빠진 분들 중에서 주로 이런 말이 나오는데, 이분들은 변대표에게 "지적수준"에 대한 강의를 좀 들으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렇게되면... 후유증은 개인들이 해결해야겠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