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뒤집어야 정치쇄신 시작된다(2013년 6월 말경)

“정치권은 이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라…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도의 존폐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조선일보는 이 제도의 폐지가 위헌일 수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냈다.
 
간단한 연혁을 말하자면, 구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는 기초의원의 정당공천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3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연거푸 위헌결정이 내려졌고, 이로 인해 현행 공직선거법에 기초의원의 정당공천규정이 삽입되었다. 따라서 현재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자칫 또 다시 위헌적 입법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조선일보 기사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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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조선일보, “與野 대선공약 '기초의원 공천 폐지' 違憲(위헌) 논란”, 인터넷판 2013년 6월 6일자 기사에서 가져옴.

 
그런데 이 기사에서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기사는 “정치권은 이 사실을 뒤늦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하느냐 마느냐 갑론을박 하는 가운데 정작 이 규정이 삽입되게 된 헌법적 배경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헌법에 따른 입법을 의무로 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정작 헌법에 대한 고려 없이 논쟁을 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모자라 의원입법이 6개나 발의되어 있다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헌법에 대한 소양이 매우 부족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국회의원들이 무식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 기초지방의원선거에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위헌이었다는 사실을 국회의원들이 몰라서 지금까지 헛소리를 해가며 정쟁을 해왔던 것일까?
 
물론 일부 헌법학자는 헌법이 선거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광범위하게 법률에 위임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당공천제를 없앤다고 하더라도 위헌이 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기왕에 정당공천을 없앨 바에야 국회의원이나 대통령도 정당공천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도 상관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그 어느 누구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정당공천을 폐지하자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급’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아래 그림을 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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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어딘가? 또 나는 누군가?

 
국회의원들이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이나 정당공천의 전반적 문제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고 볼 여지는 없다. 왜냐하면,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렸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입법을 통한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제정에 가까울 정도로 구조를 일신하면서 등장한 공직선거법에 정당공천제가 일반화될 수 있었던 것은 국회가 그렇게 입법을 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논의하고 국회에서 입법했다, 그런데
 
게다가 그 과정에서 국회 내외에서 정당공천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05년 공직선거법이 전면개정되는 과정에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도입을 반대했던 세력들이 현재 이 제도를 폐지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세력들이라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이 사람들은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도 반대했고 도입된 후에도 폐지를 주장하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국회는 자신들이 입법을 해놓고 이제는 폐지를 하니 마니 하는 혼란에 빠진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고 있다. 그러더니 결국 언론으로부터 위헌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그동안 설레발을 떨었다는 핀잔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았고, 그래서 국회에서 논의를 했고, 이를 통해 국회에서 입법을 한 것이 현행법의 정당공천제도다. 따라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법안으로 발의한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쇄신특위의 위원들, 혹은 지난 2012년 총선이나 대선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던 현직 대통령이나 유력 대통령 후보자들 역시 이의 폐지가 위헌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기사가 나올 정도로 국회가 삐걱거리는가? 국회의원이 몰랐거나 무식해서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문제는 당리당략에 따라 원칙 없이 흔들리는 국회의 몰지각이다.
 
내 머리는 내가 깎는다는 '패기'
 
현재 국회 운영위원회는 산하에 정치쇄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각종 정치쇄신안을 검토하고 있다. 매번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정치쇄신에 관한 특위가 구성되었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난장판으로 끝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정당공천제 논란 하나만 보더라도 과연 국회가 정치쇄신이라는 제 머리 깎기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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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가 바라는 국민의 모습?
사실 쇄신의 대상이 스스로를 쇄신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신뢰를 만들기 어렵다. 예컨대 검찰이 나서서 검찰개혁을 하겠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회의 정치쇄신논의는 언제나 그렇듯이 자신들끼리 특위를 만들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의제를 설정하고, 자기들끼리 논의하다가, 대충 공청회나 간담회 정도의 절차를 통해 일하고 있다는 티만 좀 내다가, 회기 말에 들어가면 기껏 선거구획정 가지고 치고 박다가 끝나왔다.
 
처음부터 공론의 장을 만들고, 각계각층의 참여를 통해 의제를 만들고 논의를 진행하면서 사회구성원 전반으로부터 동의를 받을 수 있는 합의구조에 대해서 국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바로 여기서 정치개혁의 출발이 어디여야 하는지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바로 국회 그 자체,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국회의원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 곧바로 정치개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치개혁은 국회의원들이 주권자인 국민의 종복임을 각성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선거 때만 ‘머슴’ 노릇을 하고, 당선이 되면 주인행세를 하는 국회의원들의 자세가 뒤집어지지 않는 한 정치개혁은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될 뿐이다.
 
정치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기 전에 국회부터 갈아엎자는 연재를 시작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향후 5차에 걸쳐 주로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폐지하고자 하는 내용의 글을 연재한다. 연재의 과정은 ▲ 국회의원 수당 현실화 ▲ 국회의원 특권 폐지 ▲ 국회의원 겸직 전면 금지 ▲ 국회의원 공동보좌관제 도입 ▲ 국회의원 연금폐지로 이어질 것이다.
 
국회를 뒤집는 건 정치개혁의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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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해서 낚일라는가…
 
 
거듭 말하지만, 이 5가지 주제는 정치개혁을 위한 전제조건을 마련하자는 것이지 그 자체가 정치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정도를 가지고 개혁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각 주제는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일 뿐이다.
 
정치개혁이 단지 국회의원들의 말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젠 사회 전체가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너무 오래 참았다. 유권자도 '애프터 서비스'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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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0 16:43 2016/10/2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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