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3.노동정치논평-현 정부의 성격을 명확히 봐야
원문은 http://laborpolitic.red/?p=2034
최저임금 위원회가 2019년 최저임금을 두고 마지막 회의를 하고 있다. 노동자위원들이 10,790원을 들고 나왔고, 사용자 위원들은 올해 7,530원을 그대로 제시했다. 막판 회의는 민주노총 측 노동자위원 4명이 불참했고, 사용자위원 측에서는 9명 전원이 불참했다. 그러나 공익위원 9명과 한국노총 측 노동자위원 5명이 참석해 전체 27명 중 14명이 참석함으로써 성원을 이룬 상황이다. 형식적으로는 성원이 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파행이나 다름이 없다. 양측이 제시한 금액의 폭이 상당해서 쉽게 결론이 나올 수 없겠지만 법정시한을 넘기지는 않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회의장 바깥의 움직임 심상치 않다. 먼저 한국은행은 올 성장률 전망을 3%에서 2.9%로 낮춘다는 조정안을 12일 발표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국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고용지표의 개선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예측의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국내적 요인으로는 지적한 고용 부진과 함께 자본의 투자정체가 함께 거론되었다. 그러자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현재의 상황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엄중한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한은과 유사한 상황인식을 통해 이러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한은과 정부의 판단이 현재 진행 중인 2019년 최저임금 논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영향을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고용부진은 최저임금 인상에 의한 것이며, 정부차원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예산을 쏟아붓고 공공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고용율 개선을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가 감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함께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또한 최저임금으로 인하여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을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정부뿐만이 아니다. 이미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관련하여 사용자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데 조력했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김동연 부총리와 함께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논의를 개시했다. 이 와중에 청와대는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의 인도방문 당시 이재용 삼성부회장과 관계개선의 신호를 던진 상황임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거나 혹은 그러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경제정책의 핵심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의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거듭 실패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 원과 노동시간 단축, 고용증대가 핵심 정책이었는데, 지난 기간 동안 이들 정책은 실질적으로 후퇴해왔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산입범위확대로 무색해졌고, 고용증대는 자본의 비협조로 진척이 없는 상황이며, 노동시간 단축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 그치고 말았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2019년도 최저임금을 정하는 마지막 회의를 앞두고 정부관료와 집권여당에서 보인 일련의 행태는 단지 최저임금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가 노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더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차라리 임금을 안 올릴 테니 처벌을 하라고 외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진짜 갑(甲)질을 하는 거대자본이나 건물주들과 싸우는데 써야 할 힘을 을(乙)들끼리 싸우는데 쓰고 있다는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더불어 바라보아야 할 지점은 현 정부가 거대자본이나 건물주의 갑질을 막는데 유효한 대책은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에서는 자본이 설비투자와 고용증진에 자본투하를 하지 않는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지만, 현재처럼 금융이익이나 기타 투기상품의 이윤을 보장하는 한편 재분배를 위한 조세의 불균형 해소가 미진한 구조를 방치하고 있는 것은 역시 정부와 집권여당임이 분명하다.
결국 현재 최저임금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은 현 정부가 노동친화적인 정부가 될 수 없으며, 현재의 집권여당이 노동친화적 정치세력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노동중심 진보정치세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보다 엄격히 해야 할 것이며, 향후 대정부 입장과 실천노선을 면밀하게 구성해야만 한다. 최저임금을 넘어서서 자본과 어떻게 맞닥뜨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