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투쟁

천성산 도롱뇽 소송이 있은지 벌써 15년이 후딱 지나갔다. 이 도롱뇽 소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지율이다. 도롱뇽을 소송당사자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기까지는 지율의 눈물 겨운 노력이 있었다. 비록 법원에서는 도롱뇽에게 당사자적격을 부여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패소했지만, 자연적 존재가 재판의 당사자로서 가능할 것인가를 두고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다. 황가누이강에 인격을 부여한 뉴질랜드의 사례 등 최근의 국제적 추세로 보자면 이 도롱뇽 소송은 법학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선진적인 화두를 던진 사건이었다.

한편, 지율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단식. 보통 인간에게는 '3/3/3' 생존원리라는 게 있다고 한다. 즉, 사람은 3분간 숨을 쉬지 않으면 죽고, 3일간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고, 3주간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 그래서 투쟁 중에서도 단식투쟁은 짧은 기간 동안 목숨을 내걸고 진행하는 투쟁인지라 예로부터 가장 극단적인 투쟁방법의 하나였다.

닭의 목을 사정없이 비틀면서 새벽이 오기를 갈구했던 민주화운동의 산 역사 김영삼 옹도 23일 단식만에 곡기를 다시 받아들였다. 더 버티겠다는 걸 여러 사람들이 말리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끝내는 모양새가 되기는 했지만, 더 진행했으면 무슨 불상사가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지난 세월호 투쟁 당시 광화문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일베라고 하는 패륜집단이 그 앞에 와서 폭식투쟁을 전개했었는데, 단식농성하는 사람 앞에서 음식냄새 풍기는 짓을 해댄 건 이게 처음이 아니다. 김영삼이 병원에서 링거 꽂아가며 단식하고 있었던 그 시대에도 안기부 요원들이 와서 병실 문 앞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던가... 하여튼 이 안기부는 과거의 중정이 채홍사 노릇을 하고 이후의 국정원이 덧글부대로 전락한 중간다리에서 이 짓들 하고 있었던 거다.

폭식투쟁이나 고기 구워먹던 것들이 위암에 걸려 뒈지거나 말거나 간에, 아무튼 지율의 단식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건이 되었는데 바로 그 기간 때문이었다. 통상 3주 즉 20여일 정도 곡기를 끊으면 인간은 걍 요단강 건너는 게 상식이다. 이 정도 굶으면 그 땐 몸이 지방은 물론이고 근육의 단백질, 신경섬유를 죄다 에너지로 소모해버리고 하다못해 멘탈까지 소화시켜버림으로써 가죽과 뼉다구만 남게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가 바로 지율.

일단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것만 지율은 다섯 차례의 단식농성을 하는데, 가장 짧았던 기간이 39일, 가장 길었던 기간은 100일을 훌쩍 넘어선다. 이정도로 먹지 않고 살아 버틴다는 게 가능한 건지는 내가 직접 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겠지만, 나는 차라리 먹고 죽을지언정 단식은 하지 않으리라. 어쨌거나 이정도 장기단식은 무슨 도 닦는 사람들 전설 외에는 들어본 바가 없다.

굶었으니 아무리 지율이라도 그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건 당연지사. 뒤에서 이것 저것 먹은 거 아니냐는 구설도 많았으나 그건 아니었고, 통상 단식을 하게 되면 효소액 같은 거 조금씩 먹기는 하는데 그것도 한 열흘 지나가면 먹으나 마나다. 무슨 종합 비타민제도 아니고...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율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하루하루 지나갈 때마다 스님이 열반하지 않을까 걱정이었고, 천성산이고 도롱뇽이가 다 모르겠고 누가 단식을 한다는데 도대체 며칠까지 가능한지 궁금한 장삼이사들은 무슨 기록재듯이 날짜를 확인하기도 했다. 다행히 염라대왕 호출하는 사태까지는 가지 않고 이 단식들은 끝났고, 사법적으로는 지율의 노력이 거의 다 물거품이 되었지만 대형 토건사업과 환경보전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경종을 울린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단식투쟁 이후로 웬만한 단식은 사람들의 뉴스가 되지 못하게 되었다. 누가 단식을 한다고 하면 한 백일 쯤은 되어야 "아 단식 좀 하는구나" 이렇게 되어버린 것.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실제 이후 단식투쟁이라는 게 그다지 치열함이라는 걸 느끼지 못하게 만든 감도 없지 않다.

가장 최근에 파인텍 고공농성장에서 노동자와 연대인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일이 있다. 33일간 이어지던 단식농성은 사측과 합의를 하면서 종료되었지만, 혹한의 겨울에 그것도 지상 75m 바람 거센 하늘 아래 굴뚝에서 한달을 넘게 단식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생사기로까지 갔다가 돌아온 일이지만, 지율과 날짜를 비교하자마자 그 노력의 가치가 절하되도록 만드는 짓은 하면 안 된다.

목숨을 건 투쟁으로써 단식과는 달리, 건강관리차원에서 하는 단식도 있다. 최근 각광을 받는 단식이 바로 '간헐적 단식'이라는 건데, 이건 다이어트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봤을만한 살 빼기 방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 '간헐적 단식'의 핵심은 음식을 섭취하는 시간이다. 음식을 섭취하는 시간에 일정한 간격을 두어서 그 간격 안에서는 뭔가를 먹지 않도록 하는 게 '간헐적 단식'이다. 예를 들어 저녁 7시에 밥을 먹고 다음날 아침 7시까지는 물 외에 아무 것도 안 먹는 거다.

이 시간 동안 쫄쫄 굶으면서 어떻게 지내냐? 뭘 어떻게 지내나? 자면 되지. 물론 저녁 나절에 술마실 일이 많은 사람들에겐 거의 도를 닦는 수준의 인내를 요구하는 일이 되겠지만, 저녁 7시에 일찌감치 밥 먹고 11시~12시쯤 자서 아침 6시쯤 기상해 밥상 차려 7시쯤 먹으면 끝. 과정만 보면 이렇게 쉬운 게 없는데 효과가 상당하다고.(일주일에 이틀 단식, 하루 중에 16시간 단식 같은 것도 간헐적 단식이라고 하더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단식투쟁을 한다고 해서 살펴봤다.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 임명을 청문회 없이 강행한데 대한 반발이라고 한다. 투쟁할 일이 있으면 투쟁하는 게 맞다. 지난번 드루킹 특검하자고 김성태가 단식하던 뻘짓 같은 짓만 아니라면 말이다. 싸대기 주어 터지면서 9일 간 했던 그 단식 덕분에 뭔 일이 벌어졌는지만 생각하면 이걸 씹어 먹어도 분이 안 풀리...

아무튼 이번에 그래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단식을 한다고 하고, 게다가 릴레이 단식을 한다고 하길래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철회할 때까지 하려나보다, 대통령이 맘 먹고 임명고수하면 자유한국당에서 열사 몇 명 나오겠구나 생각했다...는 건 새빨간 구라고, 당연히 그럴리가 없지 이 자한당 꼼수들이. 암튼 궁금해서 살펴보니 뭐? 5시간 30분 릴레이 단식? 5주도 아니고 5일도 아니고 5시간?

뭐 하던가 말던가 알아서 하라고 내비 두겠는데, 간헐적 단식이라는 것도 효과를 보려면 꾸준히 해야 한다. 꼴랑 하루, 그것도 '5시간 30분' 하는 걸로 뭔 효과를 보겠는가? 다이어트 효과도 없고 청와대 겁주는 효과도 없고... 그냥 우스갯거리가 되는 효과는 있겠구나. 그런데 이번 건 그다지 웃기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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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18:54 2019/01/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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